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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엘 불리」 최초의 한국인 황 / 선 / 진  <통권 274호>
기자, , 2008-01-07 오전 03:12:16

“아이디어 스케치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해요”
예술로 승화시킨 ‘요리 전시회’ 꿈


지금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요리는 분자요리다. 음식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전혀 새로운 맛과 질감을 탄생시키는 것으로 내로라하는 유명 레스토랑이 앞 다퉈 선보이는 트렌디한 조리법이다. 세계 최고의 분자요리 레스토랑으로 손꼽히는 스페인의 「엘 불리」. 이곳의 유일한 아시아 여성이자 한국인 조리사라는 수식어의 주인공 황선진 씨를 만나봤다.


조리사 황선진을 대하는 곱지 않은 시선
“경력도 없으면서” “날로 먹는 거 아냐?”
한국에 돌아와서 소위 잘 나간다는 한국인 조리사를 여럿 만났다. 그 때마다 은근히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단다. 남들처럼 죽어라 고생을 한 것도, 그렇다고 오랜 경력을 지니지도 않은 ‘여자’였기 때문이다.
선진 씨 나이는 올해 서른하나다. 게다가 전공도 조리가 아닌 미술, 대학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미술 공부를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가 음식에 대한 흥미를 느끼고 현지 요리학교에 입학하며 진로를 바꿨다. 엘 불리에 들어간 것은 2005년. 여기까지의 짧은 이력만 본다면 남들 배 아프게 할 만큼 ‘운 좋은’ 조리사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자신을 무시하던 이들도 눈앞에서 실력을 확인한 후에는 태도가 달라진다. “한국 조리사들은 아직까지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것 같다”는 나름의 판단으로 새로운 것을 인정하기까지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다는 의미다. 급변하는 세계 음식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자세를 바꿀 필요가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나에게 일터는 놀이터
엘 불리는 전쟁터와도 같다. 욕은 일상이고 조금 잘못했다가는 따귀를 후려치는 것도 예사라 처음 배운 스페인어 몇 마디가 전부 욕이었을 정도다. “한 달을 꼬박 허드렛일만 했어요. 차라리 뽑질 말든지….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다른 레스토랑으로 옮겨달라고 하자 들어올 땐 맘대로 왔어도 나갈 땐 그렇게 못한다고 하데요. 제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곳으로 보내준다며 엘 불리의 가장 중심 파트에 넣어줬어요.”
그에게 주어진 일은 한 가지 메뉴가 제대로 나갈 수 있도록 밑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고등어 요리가 들어오면 고등어를 제외한 나머지 재료를 접시 위에 세팅하는 식으로 눈에 띄지는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역할이다.
세팅 시간을 1초라도 줄이기 위해 초시계를 앞에 두고 연습하며 이를 악물던 선진 씨가 하루는 쓰러졌다. 라인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일이 뒤죽박죽되어 버린 상황에서야 비로소 그의 노력과 역할을 인정받았고 한 단계 한 단계 위로 올라가 라인의 가장 높은 위치에까지 서게 되었다. 5개월이라는 길지 않은 근무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엘 불리 베스트 쉐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것은 이러한 노력과 열정 때문이다.
“아이디어 스케치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해요. 남들에게 뒤처지는 것이 싫어서 일터에 나가면 여기서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해요. 몸이 약한 핸디캡은 아이디어로 극복했고요. 사람들이 너 같은 애 처음 본다고 해요. 아마 그래서 인정받을 수 있었나봐요.”

저는 분자요리사가 아니랍니다
분자요리로 유명한 엘 불리 출신인 까닭에 항상 ‘분자요리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하지만 분자요리는 자신의 요리 세계를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소재일 뿐, ‘황선진=분자요리사’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엘 불리는 동심을 많이 건드려요. 풍선 좋아하냐, 그럼 풍선에 향이 나는 가스를 넣어 음식과 접목시켜봐라. 뭐 이런 식이죠. 그런 부분이 저와 정말 잘 맞았고 그래서 남들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의 꿈은 분자요리라는 액세서리를 활용해 자신만의 푸드 아트를 완성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위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아이디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예술로 승화시킨 음식을 가지고 전시회를 여는 것이 꿈이예요.”
선진 씨는 내년 4월 영국의 팻 덕으로 자리를 옮긴다. 팻 덕 역시 엘 불리와 함께 세계 레스토랑 트렌드를 이끄는 곳 중 하나다. 그곳에서 일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렌다는 선진 씨. 한국인을 대표하는 동시에 황선진 개인의 자존심을 건 전쟁이자 놀이가 또 한 번 기대된다.

 
2008-01-07 오전 03:12:16 (c) 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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