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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토성에프시 권태균 회장  <통권 282호>
육주희 기자, jhyuk@foodbank.co.kr, 2008-09-25 오전 11:09:22

넘치는 열정으로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아이디어 뱅크


(주)토성에프시 권태균 회장은 업계에서도 괴짜이자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한다. 그가 살아온 오뚝이 같은 인생역전 드라마도 그렇거니와 옛골토성의 상징인 바비큐기, 로스터기, 가마솥, 석쇠 등 보유하고 있는 특허만도 40개에 달하며, 월드컵을 비롯해 올림픽 등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이 경기를 하는 곳에는 빠지지 않고 나타나는 사람이 바로 권태균 회장이다.



권태균 회장을 만나면 먼저 축구 얘기가 빠지질 않는다.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는 한국 아리랑 응원단의 대표로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구는데 보이지 않는 기여를 했고, 이후 독일월드컵에서는 자비를 들여 독일까지 날아가 열심히 응원을 하며, 한국을 알리는데도 한 몫을 했다.
지난달에는 한여름 태양만큼이나 후끈 달아올랐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중국 공안들의 등쌀에 제대로 된 응원한번 시원하게 펼치지 못했지만 속으로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쳤다. 비록 좋은 성적은 거두지 못했지만 끝까지 우리 선수들을 응원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열정을 한데 모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옛골토성 과천점을 오픈하고 레스토랑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옛골토성의 직영 4호점인 과천점에서 권태균 회장을 만났다.

2008년 8월 20일은 옛골토성이 첫선을 보인지 꼭 4년째 되는 날이다. 그동안의 실적은 직영 4개 점포와 40여개 남짓한 가맹점. 냉정하게 말해서 지금까지의 성적을 보면 외식업계에서 그의 성과가 그다지 빛을 발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업계에서 그의 존재는 실적이상으로 가치를 발하고 있다.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중소형 위주의 매장전개로 가맹점포 늘리기에 열을 올릴 때 그는 더디지만 대형매장 위주로 점포를 전개, 그리 많지 않은 매장 수에도 불구하고 옛골토성의 입지는 여느 브랜드에 비해 탄탄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그렇다면 겨우 4년 정도의 내공을 지닌 옛골토성과 권태균 회장에 대한 업계의 관심이 왜 이토록 높을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의문은 이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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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포장마차로 음식업과 인연 맺어
외식업계에는 언제 처음 입문했냐는 질문에 권 회장은 불쑥 20여 년 전인 1984년 포장마차로 시작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대부분 성공했다고 하는 사장들은 힘들었던 지난 시절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마치 힘들었던 지난 시절이 있었기에 오늘의 영광이 있음을 증명이라도 해보이듯 말을 이어 나갔다. 옛골토성의 탄탄한 성장은 1984년 개포동에서 시작한 포장마차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주위에 10여개의 포장마차가 밀집해 있었는데 권 회장이 운영하는 포장마차 매출이 나머지 10여개 포장마차의 매출을 합친 것보다 많을 정도로 인기가 높은 업소였다.
“대부분의 포장마차에서 사용하는 하루 얼음 소비량이 서너 개에 불과했는데 제가 운영하는 포장마차는 하루에 얼음 소비량이 20장이 넘을 정도였어요. 또 매일 영덕대게 3마리를 삶아 팔았고, 당시 서울에서 산낙지 맛보는 것보다 산오징어를 맛보는 것이 훨씬 어려웠었는데, 산오징어를 팔아 대 히트를 치기도 했었죠. 한 마리에 2만5000원이나 받았지만 산지에 가지 않더라도 산오징어를 먹을 수 있으니 이를 먹기 위해 내로라하는 연예인들이 줄을 설 정도였습니다.”
당시 포장마차에서 한 달 매출이 4000만원에 달할 정도였으니 그 유명세가 상상이 갈 정도다. 여러 포장마차가운데 유독 그의 포장마차의 매출이 월등히 높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재료의 신선도와 종류의 다양성에서 다른 업소들을 압도했기 때문. 장사 수완도 좋았다. 대부분 포장마차는 정해진 메뉴가 있지만 그는 메뉴를 정해놓지 않았다. 대신 투명한 얼음을 수레위에 깔고 그 위에 신선하고 질 좋은 온갖 해산물을 펼쳐 놓은 후 얼음을 깨 해산물위에 뿌려 놓고 손님에게 직접 고르라고 해 요리를 해 준 것. 신선하고 먹음직스러운 해산물을 가득 쌓아 놓자 이것저것 고르게 됐고 오히려 객단가도 높게 나왔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용산시장에서 손수레를 끌고 삼각지, 이태원, 한남동 면허시장을 거쳐 영동시장까지 청과 행상을 다닐 때도, 붕어빵 장사를 할 때도 항상 그의 수레 앞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붕어빵을 팔 때는 기다리는 고객들이 행렬을 이룰 정도로 줄을 많이 세웠단다. 좋은 재료는 그대로 음식의 맛으로 연결된다는 식재료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절체절명의 위기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다
개포동 재개발사업으로 잘나가던 포장마차를 90년도에 접고, 처음으로 노점장사에서 점포를 세 얻어 영업을 시작했다. 지금의 옛골토성은 1995년 청계산에 둥지를 튼 토성가든이 전신이다. 오늘의 옛골토성이 있기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오픈 전 허가를 내야 하는데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구청 직원들이 모두 현장으로 달려가 허가받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어렵게 오픈한 토성가든은 다행이 청계산 등산로 입구에서 등산객들에게 참나무 장작 바비큐를 선보이며 점차 입소문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97년 IMF한파로 12명의 직원가운데 2명만 남기고 내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고, 식사를 마친 고객이 업소에 딸려있는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다가 심근경색으로 사망을 하는 사건이 발생해 그의 사업기반을 뿌리 채 흔드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은 그는 IMF의 파도를 넘기 위해 해장국 메뉴를 개발, 하루 2000그릇을 팔정도로 대히트를 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고, 잇달아 로스터기와 석쇠, 가마솥 등을 개발해 메뉴의 맛을 업그레이드 시키며 유명업소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절대적인 위기가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던 것.
시련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던 2002년 한일공동응원단을 결성해 정신없이 응원에 몰두해 있는 사이 6년 동안 함께 일한 믿었던 종업원이 돈을 횡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업소 계약기간이 끝나 재계약을 하기도 전에 설상가상 건물이 다른 사람에게 팔린 것. 그동안 쌓아온 토성가든의 명성과 입지를 하루아침에 버리고 다른 곳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참숯 장작 회전식 바비큐기계 개발로 옛골토성 탄생
이때 다시 한 번 그의 독기가 뿜어져 나왔다. 수없는 연구와 시행착오를 거쳐 참숯 장작 회전식 바비큐 구이기계를 개발해 냈고, 이를 바탕으로 메뉴를 개발해 옛골토성을 선보였다. “옛골토성을 오픈할 당시 다리의 골수염이 심각했는데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로 당수치가 너무 높아 수술할 수가 없었습니다. 최악의 경우 다리를 절단해야 할 상황에서 목발을 짚고 옛골토성을 오픈했어요. 오픈 이후 병원에서 매일 업장의 상황을 체크하는데 하루하루 영업이 좋아지고 있더라구요. 이젠 됐구나 한시름 놓으니 당수치가 놀라울 만큼 떨어져 수술을 할 수 있었고 다행히 지금은 완쾌돼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제 다리는 고객들이 돌려 준거나 마찬가지예요.”
옛골토성하면 참나무 장장 바비큐 구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참나무 장작 바비큐는 생돼지고기 삼겹살과 립, 오리를 꼬챙이에 꿰어 1000℃가 넘는 가마에서 빙글빙글 회전시키며 속살까지 익힌다. 이렇게 구운 고기는 기름기가 쏙 빠지고 쫄깃하고 담백해 고기를 맛본 고객들의 입소문으로 빠르게 성장해 나가고 있다.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필요에 의해 받은 특허만 40여개
권태균 회장하면 40여개의 특허를 보유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음식점을 하다 보니 주방장들에게 시달림을 받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고, 노하우는 인정하지만 어떻게 하면 주방장에게 덜 의존하며 운영할까를 고민하다가 필요에 의해서 하나 둘씩 특허를 내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40여개가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그가 최고의 야심작으로 꼽는 것이 바로 옛골토성을 있게 한 바비큐 구이기와 토성가든을 운영할 때 개발한 안타네 로스터, 가마솥 등이다.
“고기를 구워 먹은 후 보통 눌은밥과 숭늉을 먹는데 이왕이면 어릴적 먹었던 가마솥의 눌은밥과 숭늉으로 고안 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가마솥의 무게만 해도 7kg에 달했지만 종업원들의 노동 강도를 고려해 현재는 5kg짜리 가마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도 바로 가마솥에 눌린 누룽지예요.”
옛골토성에서 쓰고 있는 바비큐 기계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이다. 바비큐 메뉴는 전 세계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적인 메뉴로 현재 바비큐 음식하면 브라질이 가장 대표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구이문화가 발전한 한국의 바비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권 회장은 바비큐 기계를 개발하면서 옛골토성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접목시켜 현재는 코리아 바비큐의 모델이 되고 있으며 중국의 북경과 상해에도 진출해 한국형 바비큐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코리아 바비큐 전도사로서 활약상 기대되
권 회장은 미국에도 진출해 코리아 바비큐의 맛을 세계에 널리 전파하는 것이 목표다. 미국의 허드슨 강가에서 뉴욕 맨하탄을 내려다보며 옛골토성의 바비큐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꿈. 이를 위해 바비큐 구이기를 통관시키는데 문제가 없도록 안전성 인증 등도 꼼꼼히 준비하고 있다. 또 철저히 현지화로 승부를 걸기 위해 바비큐와 와인, 우리나라 복분자 와인과의 접목을 꾀하는 등 코리안 바비큐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키는 목표도 세우고 있다.
지금의 옛골토성이 있기까지 옛골토성을 찾아준 고객들이 있기에 이러한 목표도 가능했다는 그는 “고객에게 감동을 주는 것보다 고객들에게 감동을 받는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 고객들에게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코리안 바비큐의 위상을 세계에 널리 알림으로써 한식의 세계화에도 한 몫을 담당하고 싶다”고 말한다.
“손을 놓으면 일의 끝이고, 손을 잡으면 일의 시작이다”라는 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는 그는 “항상 한 차원 업그레이드된 옛골토성을 통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점주들과 고객들에 대한 책임과 의무”라고 말한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조금씩 업그레이드 된 시스템을 개발하고 매뉴얼을 준비하고 있는 권 회장. 향후 글로벌화 시대에 걸맞는 테마가 있는 외식공간으로 거듭나는 옛골토성과 코리아 바비큐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전도사로 활약할 그의 모습이 더욱 기대된다.
사진/이종호 기자

 
2008-09-25 오전 11:09:22 (c) 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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