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을 이어온 안성국밥의 전설
안일옥

1920년대 말 안성장터 한 귀퉁이에 작은 무쇠솥 하나를 걸고 시작한 「안일옥」. 모두가 어렵고 배고팠던 그때 그 시절, 안일옥의 장국밥은 정해진 값이 없었다. 그저 배불리 먹고 가진 대로 정성껏 내고 뒤돌아서면 그 뿐. 8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안일옥의 밥장사 정신은 늘 따듯하고 한결같다.
글/이지연 기자 praise@foodbank.co.kr, 사진/이종호 기자


3대째 이어온 우탕 전문 명가
안일옥의 첫인상은 ‘안성에서 제일 편안한 집’이라는 이름처럼 긴 세월을 묵묵히 지켜 온 고목 같았다. 안성에서 내로라하는 밥집이지만 겉멋 부리지 않은 소박함이 느껴져 더욱 매력적인 곳이다. 1920년대 김종열 대표의 할머니인 故이성례 여사가 안성장터에서 국밥을 팔기 시작하면서부터 안일옥의 역사가 시작됐다. 할머니의 손맛은 김 대표의 어머니인 故이양귀비 씨에게 이어졌고 1997년 김 대표가 물려받아 3대째 가업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전국 3대 장(場)으로 유명한 안성장은 당시 특산품인 유기와 함께 우시장이 유명했다고 한다. 그래서 장터에서는 소의 각 부위를 활용한 우탕이 가장 대중적인 메뉴였다. 지금은 부위별로 도가니탕, 꼬리곰탕, 소머리국밥, 우족탕 등으로 메뉴가 세분화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이 모든 것을 그저 우탕이라 불렀고 안일옥은 우탕의 명가로 손꼽히게 되었다.

고단한 삶에 지친 이들의 쉼터
김종열 대표가 어렴풋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안일옥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상인들과 장꾼들로 늘 북적대던 모습이다. 앉을 곳도 마땅찮은 장터 어귀에 옹기종기 서서 먹는 우탕 한 그릇에는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위로와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당시 안성장터가 많은 이들의 삶의 터전이었다면 안일옥은 그곳을 찾는 이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정해진 음식 값 또한 없었다. 춥고 배고픈 이들이 그저 미안한 표정으로 줄을 서면 팔팔 끓여낸 우탕에 정을 가득 담아 퍼주기 일쑤였다. 창업주인 故이성례 여사는 밥집은 배고픈 사람들이 찾는 곳이므로 최소한 배불리 먹고 든든하게 나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기본이라고 늘 강조했다. 김 대표는 할머니의 그 정신을 잊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 나가고 있다.

맛의 비결은 흉내낼 수 없는 진한 국물
안일옥의 모든 메뉴는 소의 고기와 부산물을 이용해 만드는 만큼 식재료의 질과 신선도가 그 맛을 좌우한다. 사골과 잡뼈, 소머리, 양지머리 등을 넣고 푹 고아서 만든 국물이 모든 탕의 기본 육수다. 육수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정성. 그 정성은 다름 아닌 시간을 뜻한다. 안일옥은 80년 동안 가마솥의 불이 한 번도 꺼진 적이 없다고 한다. 24시간 동안 정성들여 육수를 끓여야만 제대로 된 맛이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정성은 아주 단순한 이치”라며 “오래 끓이면 그저 제 맛이 난다”고 말했다. 너무 쉬운 모범답안 같지만, 많은 음식점주들이 시간에 따른 연료비 혹은 인건비 등이 아까워 서두르기 때문에 제대로 된 국물 맛을 낼 수 없는 것이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인기메뉴는 단연 곰탕과 설렁탕. 곰탕은 양지고기만 들어가고 설렁탕은 양지와 소머리고기가 함께 들어가는 것이 둘의 차이점이다. 소면은 손님들의 기호에 따라 넣어먹을 수 있도록 접시에 따로 낸다. 국내산 재료만을 고집해 만든 김치와 깍두기도 그 맛이 일품이다. 이 밖에도 도가니탕, 꼬리곰탕, 소머리국밥 등 모든 메뉴를 맛보고 싶은 손님들을 위해 안성마춤 우탕을 만든 것이 눈에 띈다. 아침메뉴인 해장국밥과 웰빙메뉴인 특산삼설렁탕과 홍삼갈비탕도 안일옥의 이색메뉴다.

안일옥, 100년의 전통을 이어가다
김 대표의 꿈은 안일옥 100년의 전통을 손수 만드는 것이다. 역사가 있는 식당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전통의 맛과 멋을 지켜나가겠다는 각오다.
또 100년의 역사에 걸맞게 직접 한옥을 지어 이름 그대로 안성에서 가장 편안한 집을 만드는 것이 남은 과제라고 했다. 대에 걸쳐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이 언제든 이웃집 놀러오듯 올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은 이유에서다.
김 대표는 “어머니 생전에 늘 입버릇처럼 ‘설렁탕은 100년을 끓여야 제 맛이 난다’고 말씀하셨다”며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 어렴풋이 그 의미를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아들 역시 일찌감치 한국조리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영국에서 외식산업에 대한 공부를 마치고 최근 귀국한 상태다. 100년의 역사를 이룬 이후 안일옥의 바통을 이어 받을 준비를 이미 시작한 것이다.

·메뉴 : 곰탕(7000원), 설렁탕(7000원), 홍삼갈비탕(9000원), 안성마춤우탕(1만8000원)
·대표 : 김종열 대표
·영업시간 : 08:00~22:00
·주소 : 경기 안성시 영동 24
·문의 : 031-675-2486


●INTERVIEW 김종열 대표
“블로거들의 쓴소리가 즐거워요”
80년의 전통을 이어오면서 안일옥은 단골손님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입소문을 듣고 몰려 온 손님들로 붐빈다. 맛집블로그를 운영하는 인기블로거들의 방문도 많다.
“블로거들이 다녀가면 꼭 후기를 찾아 직접 모니터링을 해요. 칭찬도 많고 쓴소리도 많지만 모두 다 저희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쓴소리를 들으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고치려고 최선을 다하죠.”
그만하면 자부심을 느껴도 될 법한데 김종열 대표는 늘 겸손하다. 안일옥의 인기비결을 말해달라고 해도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한다.
“글쎄요. 좋은 재료로 만들고 배불리 드실 수 있게 양을 아끼지 않는 것 뿐이예요.”
어쩌면 평범한 그의 답변 속에 롱런의 비결이 담겨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래가기 위해서는 결코 자만해서는 안된다는 이치를 잘 아는 김 대표는 오늘도 서두르지 않고 묵묵히 한길을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