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과 로컬 음식
유기농법과 자연식의 하모니‘라 샷사네뜨’

2009년 여름, 스페인에 머물던 당시 프랑스 남부지역의 레스토랑을 소개하는 내셔널 지오그라피의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요리에 사용하는 모든 채소와 허브, 과일을 직접 유기농법으로 재배하는 레스토랑이었다. 그 당시엔 국내에서도 푸드 마일(food miles)1)이란 신조어가 생기며 로컬 식재료가 새롭게 재조명을 받고 있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 뒤, 필자는 그곳의 음식을 맛보고 싶어 프로방스 지역으로 여행을 떠났다.


오뜨뀌진의 채소에 대한 관심
수많은 식도락가가 2011년의 푸드 트렌드로 꼽았던 이슈는 채식열풍이었다. 많은 국제 도시에선 일주일 중 하루는 ‘육식하지 않는 날(Meat-free day)’로 정하고 채소의 섭취를 권장하고 있다. 채식주의 메뉴는 이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쉽게 볼 수 있으며, 일본의 채식 방법인 ‘칸샤’가 국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파리에 있는 레스토랑 「아르페쥬」의 셰프 알랭 파사드는 제철 채소 위주로 메뉴를 구성한다. 이곳의 요리는 가격 논란에도 불구하고 채소를 프랑스 오뜨 뀌진의 주연으로 올려 놓은 주인공이다.

모던하지만 지역적인 레스토랑 라 샷사네뜨
프랑스 남동쪽 프로방스 지역은 재료 위주의 심플한 음식을 즐긴다. 그곳에 있는 소도시 아를, 천재 화가 반 고흐가 일생을 마친 곳으로 더 유명한 그곳에 레스토랑 「라 샷사네뜨」가 있다. 이곳은 60만 평에 달하는 유기농 농장과 함께 운영되기에 농장에서 재배되는 모든 식재료는 레스토랑 식탁에 오른다.
라 샷사네뜨는 현대 예술품 수집가이자 스위스의 제약 재벌 마야 호프만과 미국의 영화감독이자 그의 남편인 Stanley Buchthal의 투자로 2000년에 설립되었다. 아를에서 유년기를 보낸 마야 호프만은 자연주의자 아버지를 따라 생태계를 존중하는 유기농법과 자연식에 자연스레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녀의 성장배경이 예술과 자연, 미식이 함께 어우러진 복합공간을 만들어 낸 것이다. 미슐랭 가이드는 라 샷사네뜨에 유기농 콘셉트의 레스토랑 중 최초로 별을 부여했다. 하지만 그 별은 2004년 오픈 멤버였던 셰프 장 럭 라바넬이 떠나면서 잃게 되었다.

셰프 아르망 아날
2007년 레스토랑을 새롭게 책임질 젊은 셰프가 나타나기 전까지 지난 4년간 라 샷사네뜨는 미식계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프랑스 몽페리에 출신의 아르망 아날은 파리의 라 그랑드 까스까드에서 전통 프렌치 요리를 수학한 뒤 알랭뒤카스 사단에 합류하여 뉴욕 에섹스 하우스에서 일하며 국제적인 안목을 키웠다. 프랑스의 누벨 뀌진을 뉴욕에 소개하던 유망한 젊은 셰프는 돌연 오뜨 뀌진의 세계에서 은퇴를 선언하고 프랑스 남부의 한적한 시골 마을로 자신의 거처를 옮겼다. 자신의 젊은 시절을 오뜨 뀌진에 바쳤지만, 그는 수수하고 자연스러운 음식을 하고 싶은 요리사였던 것이다. 간단해 보이는 음식이 오히려 셰프에겐 더 많은 과정을 요구한다며 농장에서부터 식탁까지 음식 생산의 전 과정을 보는 셰프, 그 이상 꿈 같은 일이 없다고 느꼈기에 그는 주저함이 없이 라 샷사네뜨의 팀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라 샷사네뜨 요리의 특징
“웬만한 푸아그라보다 낫지 않나요?” 셰프 아르망이 콩 한 접시를 내주며 말한다. 정원에서 갓 따낸 강낭콩을 버터에 볶은 뒤 적당한 소금간을 하여 알맞게 익혀 낸 요리였다. 제철에 나는 최고의 재료와 그 재료의 맛을 잘 살려주는 조리법을 사용하는 것이 그의 요리 신념이다. 그의 여름 메뉴엔 풍미와 질감을 살린 제철재료들로 가득했다. 토마토와 순무, 샹트렐 버섯, 호박, 파프리카 등 농장에서 직접 길러 낸 채소의 맛에 크게 놀랐다. 특히 딱새우와 토마토, 순무를 함께 버무린 샐러드와 샹트렐 버섯을 곁들인 비둘기요리가 일품이다. 주재료보다는 함께 나온 채소 가니쉬가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2007년 인터뷰에서 그는 잃었던 별을 다시 받고 싶다고 했다. 그 별은 요리사로서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라 샷사네뜨의 자연과 생명을 존중하는 신념을 위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2년 뒤 그는 2009년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별을 받게 된다. 라 샷사네뜨가 10년간 지켜온 신념이 다시금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자연과 생명을 존중하는 레스토랑
교외에서 직접 재배한 재료로 요리하는 셰프의 음식을 먹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돈을 들여 찾는 손님이 얼마나 많을까?
대도시에 밀집된 많은 레스토랑은 대부분 같은 공급업체에서 생산자에 대한 별 관심 없이 재료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성으로 공들여 키운 식재료가 농약으로 뒤덮여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온 재료보다 홀대받는다면, 그야말로 식문화 발전을 저해하는 큰 요소가 아닐까? 로컬 식재료의 사용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우리가 잠시 잊고 살았던, 하지만 반드시 돌아가야 하는 필연적인 길이다.
우리에게도 자연 친화적인 착한 밥상을 내놓는 레스토랑들이 전국에 많이 있다. 산나물과 약초, 수많은 절임과 발효 장류는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보물 같은 존재이다. 트렌드를 좇아 세계인의 입에 맞춘 음식이라 하여 한식에 어색한 옷을 입히기보다는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었지만 무관심했던 우리의 진짜 음식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짜고 맵고 단 양념에 범벅된 한식이 아닌 자연과 생명에 기초한 진짜 우리의 밥상을 말이다.


강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