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처럼 빛나는 맛
스리랑카 커리

‘상냥하고, 친절하고, 낙천적이고, 미소가 아름다운….’ 스리랑카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들이다. 홍차와 보석의 나라, 인도가 흘린 눈물 한 방울이라고 불리는 찬란하게 빛나는 섬 스리랑카. 우리나라 면적의 2/3 정도 되는 작은 나라지만 곳곳에 다양한 별미들이 숨어있는 나라다.


스리랑카 최고의 음식은 커리
긴 해안선을 따라 각종 해산물 요리들이 발달했고, 풍부한 강수량과 최적의 기온으로 3모작이 가능해 20여 종류가 넘는 쌀로 쌀 요리가 발달했으며, 열대 과일과 향신료들이 저마다 온갖 향내를 뿜어내는 곳이 스리랑카다.
그곳에는 보석처럼 빛나는 맛, 커리가 있다. 스리랑카 사람들도 인도나 네팔 사람들처럼 매일 커리를 먹는다. 인도의 영향을 받았지만 인도 커리와는 또 다른 맛을 가지고 있는 스리랑카 커리는 매운 맛이 가장 큰 특징이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운 스리랑카 고추인 ‘미리스’ 때문이다. 스리랑카 커리도 인도 커리만큼이나 그 종류가 다양하다. 커리는 맛과 향이 좋을 뿐 아니라 식욕과 소화를 도와주고 음식물의 부패를 방지해주기 때문에 건강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지혜가 커리 한 접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예로부터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커리를 최고의 음식으로 여겨왔다. 그래서 스리랑카에서의 커리는 먼 옛날에도 먹었고, 지금도 먹고 있고 미래에도 먹을 음식이다.

코코넛이 맛의 비결
스리랑카 최대의 도시인 콜롬보에 위치한 델칸트 재래시장의 각종 채소와 향신료를 보면 얼마나 많은 종류의 커리를 끓일 수 있을지 짐작이 간다. 커리를 끓일 때에 향신료 종류나 양을 조금씩 달리하면 매일 먹는 커리도 늘 새로운 맛으로 요리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커리 종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한다. 또 스리랑카에서는 코코넛이 들어가지 않는 커리 요리가 없다고 할 정도로 코코넛을 많이 사용한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면 쓰임새가 많은 코코넛 나무를 뜰에 심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코코넛은 과육을 긁어서 짜면 걸쭉한 코코넛 크림이 되고, 물을 섞어 짜면 코코넛 밀크가 된다. 코코넛 밀크는 커리의 강렬한 맛을 부드럽고 감미롭게 해주고, 생선 커리의 비린내를 없애주는 역할을 한다.
보통의 식사는 바나나 잎을 접시 삼아 밥을 담고 콩으로 끓인 달커리와 2~3종류의 채소커리, 뽈삼발을 곁들여 먹는다. 뽈삼발은 다진 양파와 미리스, 코코넛 과육, 레몬즙을 넣고 잘 버무려서 소금 간을 한 일종의 양념이다. 코코넛 과육의 지방 성분이 미리스의 매운맛을 부드럽게 감싸주기 때문에 그 맛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다. 맵고 시고 짭조름하면서도 뒷맛으로 남는 부드러움, 어느 것 하나라도 튀지 않고 서로 조화를 이루어 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입맛이 없어도 뜨거운 밥 한 공기에 뽈삼발 두어 숟가락이면 입맛이 확 되살아난다.

잭 플루츠의 묘한 매력
커리는 길쭉하게 생긴 스리랑카 붉은 쌀로 지은 밥이나 국수처럼 뽑아 둥글게 모양낸 스트링 후퍼와 함께 먹는다. 커리를 먹을 때는 인도와 마찬가지로 먼저, 손을 닦고 오른손 세 손가락의 둘째 마디를 사용한다.
스트링 후퍼는 커리에 적셔 먹고 밥을 먹을 때는 커리와 밥을 고루 섞어 둥글게 빚는다. 둥글게 빚은 밥을 엄지손가락으로 살짝 밀어 입속에 넣는다. 그래서 손이 먼저 음식 맛을 보고, 손끝에 남은 밥알을 깨끗이 닦아 먹는 손맛으로 식사는 끝이 난다.
여러 커리 중에서 꼬스커리와 게커리는 스리랑카만의 독특한 맛을 품고 있는 커리로 기억하고 있다. 꼬스커리는 익지 않은 잭 플루츠로 끓인 커리다. 잭 플루츠는 동남아시아에서 흔히 먹는 과일로 한 개의 무게가 보통 10㎏이 넘고 울퉁불퉁하게 생긴, 스리랑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다.
단단한 껍질 속에 숨어 있는 노란 과육은 비타민이 풍부하고 소화가 잘 되기 때문에 과일로도 먹지만 건강 요리의 재료로 즐겨 사용한다. 익지 않은 잭 플루츠는 커리를 끓이고, 잘 익은 것은 달고 쫄깃쫄깃한 맛이 매력적이어서 과일로 먹고, 농익은 것은 잼 바르듯이 빵에 발라 먹기도 한다. 익지 않은 과일로 커리를 끓인다는 사실이 새로웠고 그 맛에는 더욱 놀라웠다.
잭 플루츠는 쫄깃쫄깃하게 씹히는 식감이 좋을 뿐 아니라 강렬한 커리 향과 맛을 한결 부드럽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언뜻언뜻 느껴지는 미리스가 뿜어내는 맵디매운 맛도 묘한 매력에 한 몫을 한다. 함반토타의 한 레스토랑에서 커리향 속에 숨어 있던 잭 플루츠의 발견은 새로운 식재료와의 만남에서 항상 그러하듯 놀라움 그 자체였다.
잭 플루츠의 매력에 빠져버린 그 날의 기억은 언제 꺼내 봐도 즐거운 일이다. 스리랑카는 섬나라답게 해산물 커리 종류도 다양하고 그 맛도 화려하다. 그 중에서도 오묘한 커리향으로 범벅이 된 게커리는 가끔씩 지치고 힘든 여행길에 큰 위로가 된다.
맛있기로 유명한 스리랑카 머드 크랩의 쫄깃쫄깃한 속살이 커리와 만났으니 그 맛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라도 게살을 발라 먹느라 두 손 적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맛이다.
부드럽고 달큰한 뒷맛이 매력적인 커리도 좋지만 어느 때는 귀에 왱왱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매운 커리도 좋다. 콧물 눈물에 재채기까지 날만큼 고통스럽지만 그 매운맛이 자주자주 그립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려 밥맛이 달아난 이런 날에는 잘 차린 푸짐한 밥상보다 한 접시의 꼬스커리가 더욱 그립다.


백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