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고수하는 정통 냉면 명가
원산면옥

밀면이 강세인 부산에서 전통 냉면 제조 방식을 고수하며 수십 년 동안 굳건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원산면옥」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냉면 명가로 통한다.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 온 고(故) 오길선·이승선 부부가 부산에 자리를 잡고 냉면을 팔기 시작, 대를 이어온 원산면옥의 역사도 어느덧 60년이 넘었다.
글/이정연 기자 iylee@foodbank.co.kr, 사진/포토그래퍼 김봉수


전통 방식 그대로 명가의 역사를 더하다
난리통에 정신없이 내려와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냉면 장사였다. 평양이 고향인 남편 고(故) 오길선 옹과 원산댁 고(故) 이승선 여사는 자식들을 먹이고 가르치기 위해 가장 자신 있는 음식인 냉면을 만들기 시작했고, 피난민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진한 맛으로 이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프랜차이즈화하자는 유혹도 많았고, 상품화하자는 제의도 받았지만 고객들에게 한결같은 깊은 맛을 제공하자는 일념 하나로 걸어 온 외길의 60년이었다.
초기에는 국제시장 한편에 자리를 잡았었다. 매장이란 것도 없는 조촐한 자리였지만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던 실향민들에게 원산면옥의 냉면 한 그릇은 향수를 달랠 수 있는 작은 위로가 되었다. 먹어 본 사람들이 단골이 되면서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냉면 맛을 보기 위해 식사 시간을 막론하고 손님들이 줄을 섰던 것이다.
고(故) 이승선 여사는 사실 냉면 요리에 일가견이 있었다. 전쟁이 나기 전 이북에 살 때도 냉면 가게를 운영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향인 원산에서야 흔하게 맛볼 수 있는 냉면이었지만 부산 지역에서 이북식 냉면은 쉽게 접할 수 없는 새로운 맛이었을 터. 그래서였을까 운영 초기부터 늘 손님이 끊이지 않았고 멀리 서울에서, 제주도에서, 해외에서…. 한 번 맛 본 사람들은 그 시원하면서도 깊은 맛에 또 다시 찾곤 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매장도 현대식으로 새롭게 가꾸었지만 찾아주는 고객들이나 맞이하는 주인장의 마음은 모두 한결같다. 정성을 다해 한 그릇 푸짐한 냉면을 담아 주면, 그것을 맛있게 비워내는 주인장과 고객의 궁합은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기 때문이다.

옛 맛에 웰빙을 더한 건강한 맛으로 재탄생
메밀과 고구마 전분을 섞어 반죽한 면에 육수를 부어 먹는 평양냉면과 100% 고구마 전분으로 반죽한 면에 양념장을 넣어 비벼먹는 함흥냉면이 원산면옥의 대표 메뉴다. 모든 음식은 그날그날 산지에서 직송되는 최고급 재료를 사용해 만들며, 두말할 나위 없이 국내산 재료만 고집한다.
십수 년 전 건강 음식에 대한 개념이 부족할 때에는 사실 약간의 조미료를 사용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화학조미료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10여 년 전부터는 화학조미료를 일절 배제하고 천연조미료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육수에 들어가는 재료만 어림잡아도 10가지를 웃돈다. 좀 더 건강한 맛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그 노력을 알아서일까. 고객들 중에는 전국의 내로라하는 냉면집은 모두 가봤지만 원산면옥의 냉면 맛이 최고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단골도 있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주일에 5번씩 방문하는 80대 노신사도 있다.

위기일수록 빛을 발하는 역사의 지혜로움
올 3월 배추, 무, 대파 등 기본 채소 값이 10배 이상 뛰는 갑작스러운 위기가 있었다. 60년 동안 운영된 원산면옥도 처음 겪는 이상스러운 일이었다. 항상 최고급 재료만 고집하던 터였기에 더욱 큰 위기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더욱 기본을 지켜야한다는 창업주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더 싼 재료로 대체할 수는 없었다. 피난민을 상대했던 창업 초기부터 현재까지 이윤을 내는 것 보다는 고객들의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힘을 보탠다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통했는지 위기로 흔들렸던 매출도 잠시, 빠르게 예년 수준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창업주인 고(故) 오길선·이승선 부부가 강조했던 말은 “돈을 주고 사먹는 음식인데 집에서 먹는 음식보다 못해서는 안 된다. 다 먹고 난 후에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최고의 재료로 최고의 맛을 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몫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 그 뜻은 2대 대표였던 오경록 씨와 그의 아들 오재욱(현 대표) 씨, 그리고 실질적인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오경훈(창업주의 작은 아들) 지배인에게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전통 냉면 맛의 힘
냉면이 가장 잘 팔리는 한여름에는 하루 1000그릇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평양냉면의 심심하면서도 구수한 맛을 즐길 줄 아는 중년층이 60~70%, 매콤하고 질깃한 함흥냉면을 좋아하는 젊은 층도 상당수를 이룬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중 일본인을 포함한 외국인 방문객이 하루 100~120명에 이른다는 것. 일본 지진 이후 일시적으로 방문객이 줄긴 했지만 최근 다시 회복세를 타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 최근 원산면옥은 새로운 목표를 계획 중에 있다. 그동안은 관리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해 꺼렸던 지사 설립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한 것이다. 60년 동안 부산에서 인정받아 온 맛과 신뢰를 바탕으로 서울과 해외에 직영점 형태의 매장을 오픈한다는 계획이 그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실행 단계에 있지는 않지만 타지에서 온 관광객들이나 외국인 손님들에게도 인기가 좋은 원산면옥 냉면 맛으로 봐서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 짐작된다.

·메뉴 : 평양냉면(8000원), 함흥냉면(8000원), 온면(8000원)
·대표 : 오재욱
·영업시간 : 11:00~21:30
·주소 : 부산 중구 창선동 1가 37
·문의 : 051-245-2310


●INTERVIEW _오경훈 지배인
“세계인의 사랑받는 명소로 거듭나길….”
오경훈 지배인은 창업주의 작은 아들로 외국 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인 오재욱 대표를 대신해 실질적인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대학졸업 직후인 1983년부터 일을 했으니 원산면옥 역사의 절반을 함께 한 셈이다. 오 지배인은 원산면옥 냉면의 면과 육수는 우리 몸에 좋은 재료를 사용해 만드는 만큼 최고의 건강식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 몸에 좋은 고구마 전분과 메밀을 섞어 면을 뽑고, 10여 가지 채소와 최고급 쇠고기 등으로 육수를 내는데 이보다 더 좋은 건강식품이 또 있을까요? 지금도 하루에 2끼를 매장에서 해결할 만큼 우리 냉면의 영양과 맛에 자신이 있습니다.”
오경훈 지배인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온 만큼 앞으로도 전통 냉면의 맛을 알리는 데 더욱 노력할 것”이며, “원산면옥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명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