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세계화를 위한 노력에 있어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한식세계화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종합 분석한 현지사정을 사용자 입장에서 함축적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 한식세계화 위한 터전 꾸려져
한국에서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된 지 20여 년. 자주 듣는 말로 “외국에 나가보면 자발적으로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었다. 당시 미국에 거주하면서 한인으로서의 자랑거리를 목마르게 찾던 필자에게 이 말은 더욱 강하게 느껴진 바 있다. 요즘처럼 자동차나 IT 등의 첨단 기술이 한국을 대표하던 시절이 아닌지라, 가장 쉽고 친근하게 한국을 대변하는 것은 한식당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당시만 해도 한식의 대중성은 타민족 식당에 비해서 두각을 보이지 못했다. 한인타운을 벗어나면 한식당의 존재 자체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제 높아진 한국의 위상과 더불어 늦게나마 한식세계화가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한식세계화를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민관이 합동으로 다양한 노력을 해야하겠지만, 무엇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한식세계화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종합 분석한 현지사정을 사용자 입장에서 함축적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는 한식이 최고라는 인식이 너무 강하다. 물론 한국 사람이라면 평생 먹어야 할 음식이고, 또 세계 각국의 음식과 비교할 때 건강식으로 손색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최고라는 것은 남이 알아줄 때 가치가 있는 것이다. 체계화된 경쟁력을 갖추고 타민족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콘텐츠를 연구하는 것이 급선무다.
최근 정부가 나서서 한국 대표음식 124가지에 대해 영문 표기법을 마련한 바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메뉴에 통일된 영문표기법이 없다. 추가된 메뉴를 파악해 표기법을 제작하는 일관된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둘째, 맛도 중요하지만 환경적인 요인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고객에게 제공하는 상품은 음식이 먼저고 그 다음으로 서비스와 분위기가 뒤따라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는 환경이 음식을 돕는 보조 상품의 역할을 한다는 등식으로 성립된다. 하지만 한식당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한식 고유의 맛과 더불어 인테리어나 서비스 등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
해외에서 한식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위생적인 환경은 물론, 한국 고유의 인테리어를 잘 살리는 것도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다. 음식과 문화는 공존해야만 빛을 더할 수 있다. 인테리어도 민화 및 음식사진을 고급스럽게 프레임화해 전통을 살리면서도 외국인들의 기호에 맞추는 것이 필요하며 간판 역시 영문화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 보조의 한식당 컨설팅을 통해 10여 개의 업체가 현주소를 파악하였고 경영주의 이념과 종업원들의 서비스 실태, 그리고 조리사의 조리능력을 점검, 인테리어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또 이를 통해 개선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아쉬운 점은 이 같은 혜택이 일부 업체에만 해당된 사항이라는 점이다. 좀 더 많은 한식당이 이러한 도움을 받아 한식세계화에 한걸음 더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셋째, 한식을 취급하는 것이 꼭 한국인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한식은 우리 음식이지만, 반드시 한국인들만이 식당을 경영하고 고객 역시 한인만이 찾아온다면 굳이 세계화를 운운할 필요가 없다. 음식은 다국적, 다민족이 함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상당수 일식당은 한인들이 운영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왜 한인들이 일식의 세계화에 일조를 했는가? 그런데 왜 외국에 있는 한식당 주인들만 모두 한인들인가?
필자는 이에 대한 해답으로 타민족이 호감을 갖는 한식 조리교육기관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창하고 싶다. 미 전역에 1700여 개의 한식당이 분포되어 있는데, 조리자격증을 소지한 사람은 200여 명뿐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한식세계화에 대해 강박증을 가지고 서두르기만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이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으로 한식전문 조리학교를 설립해 졸업자에게는 자격증을 수여하고, 홀서빙 종업원들에게는 장기적인 영어교육과 서비스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한식을 세계화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넷째, 한식을 제공할 때 타민족의 입장을 반드시 고려해야 하며, 식문화를 현지인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자연스런 문화체험으로 제공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 대표한식인 비빔밥을 낯설어 하는 미국인들에게 미국인의 45% 이상이 매일 접하는 샌드위치의 주문방식으로 바꾸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대중적인 접근을 통해 한식은 ‘상다리가 휘어지게’ 먹을 수도 있지만, 한 그릇만 비벼먹어도 건강을 고려한 훌륭한 음식이 나올 수 있다는 한식문화를 대중적으로 전파할 수 있는 것이다.
한식당은 화려하고 규모가 커야하며 무조건 고급스러워야 한다는 고급화에만 몰두해 ‘꿈의 한식당’ 분위기가 조성되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한식당이 고급스럽기만 하고 맛이 없으며 서비스도 엉망이라면, 그것은 실속없이 보여주기 위한 한식당일 뿐이다. 자국음식의 세계화에 성공한 일본과 태국은 우수식당 인증제를 도입, 정부주도로 인증마크 및 Q마크제도를 운영하여 음식세계화 정책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러한 타국의 사례에 영감을 얻어 우리나라도 공식적인 ‘한식당 추천 인증제’를 실시해 보는 것은 어떨까. 모든 한식당들이 한식세계화를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줄 때 그 의미는 더욱 크다고 본다.

다섯째, 협의체 주도의 식자재의 공동구매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는 지원도 필요하다. 미서부 지역의 경우, 교포들이 많아 한식재료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거의 모든 식재료가 한국산이 아닌 중국산이어서 한식의 진정한 맛을 내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일부업체는 한국산을 구입해오지만 가격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역별 특성에 맞는 협의체 주도의 지자체와의 연결 및 정부의 지원을 기대해본다.

결론적으로 한식세계화는 보다 실질적인 지원으로 내용면에서는 알차고 현지사정에 맞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흔한 홍보자료나 요란한 구호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한식당을 찾아온 고객들이 거부감 들지 않는 편안함으로 음식에 접근하게 해야한다.
한식의 세계화가 탄력을 받으려면 타민족 경영자도 많이 배출되어야 하며 여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인재를 교육시키는 것이다. 유관기관은 이점에 착안하여 다양한 방안을 제시해주고, 해외 한식세계화 협의체 실무자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줬으면 한다.


임종택
•미서부 한식세계화협회 회장
•미래은행 창립이사
•L-SQARE INVESTMENT GROUP INC 대표
•수원갈비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