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겨울 앞에 꼭 ‘우중충한’ 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가 있다. 여름 내 비어가르텐(Biergarten)에서 맥주를 즐기던 독일인들에게 해가 일찍 저물어 가는 겨울은 받아들이기 힘든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맥주가 없이도 행복한 겨울만의 즐길거리가 있으니 바이나흐츠마르크트(Weihnachtsmarkt), 바로 크리스마스 시장이다.

겨울을 나기 위한 생필품 시장에서 축제의 시장으로
보통 대림절 기간 동안 열리는 크리스마스 시장의 시작은 중세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의 바이나흐츠마르크트(Weihnachtsmarkt)는 보통 하루정도 열리며 겨울을 나기 위해서 필요한 고기와 생필품들을 팔던 곳이었다.
14세기 무렵부터 크리스마스 관련 장식과 선물들을 판매하는 형태의 시장으로 발전했고 20세기 들어 현재 크리스마스 시장의 모습을 갖추었다. 현대의 크리스마스 시장은 보통 대림절 기간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대림절이 시작되는 시기에 시장이 문을 열고 대림절이 끝나는 시기에 문을 닫는다. 약 한달 간의 겨울 축제가 열리는 것이다.
독일인과 유럽인들에게 이 시장은 겨울 최고의 축제 공간이다. 최근에는 유통물류체계의 발달로 몇몇 음식들은 일년 내내 접할 수 있지만, 크리스마스 전인 대림절 기간에 즐겨야 맛과 멋을 더 살릴 수 있는 몇 가지 음식들을 소개해볼까 한다.

추운 겨울 몸을 녹여주는 따뜻한 글뤼바인
글뤼바인은 따뜻하게 데워 먹는 와인이다. 겨울 하면 생각나는 것이 한국에선 어묵탕과 소주라면 독일의 겨울은 글뤼바인으로 통한다. 몇몇 지역에 따라서는 크리스마스 시장을 글뤼바인 시장이라고 부를 정도이니 이들의 글뤼바인 사랑을 알만하다.
글뤼바인은 화이트나 레드와인 두종류로 만들 수 있지만 독일에서는 대부분 레드와인을 이용한 글뤼바인을 마시고, 이탈리아 북부지역 독일어권에서는 화이트와인으로, 오스트리아에서는 화이트와 레드 모두 즐겨 마신다. 최근에는 로제와인을 이용한 글뤼바인이나 북유럽에서 자주 마시는 달콤한 멧(Met)이나 스웨덴 스타일의 글뤼바인인 글(Glogg) 등도 시장에서 종종 만나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와인에 계피, 팔각, 정향, 레몬껍질을 넣고 끓여서 만드는데 지역이나 제조자에 따라 카다몸이나 생강 등의 향신료가 들어가기도 한다. 80도 이상 가열하면 알코올 성분이 날아가기 때문에 절대 그 이상 가열하지 않는다.

축제의 상징 렙쿠헨
독일에서 열리는 많은 축제에 장식용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렙쿠헨이다. 쿠헨(Kuchen)은 보통 케이크라고 번역하는데 독일에서는 케이크뿐만 아니라 다양한 쿠키류의 과자들도 쿠헨이라고 표현한다. 맥주 축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글귀가 적힌 과자들이 렙쿠헨의 한 종류지만 일반적으로 많이 먹는 때는 크리스마스 전의 대림절 시기다.
아시아의 대표 향신료였던 후추의 이름을 딴 페퍼쿠헨, 향신료가 많이 들어갔다고 해서 게뷔르츠쿠헨, 혹은 달콤한 꿀이 들어가서 호니히쿠헨이라고도 불린다. 오리엔탈릭한 향신료인 정향, 팔각, 계피가 기본적으로 쓰이는데 이 과자의 가장 큰 특징은 효모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효모 대신에 탄산암모늄이나 탄산칼륨이 주로 쓰이고 밀가루의 함량이 10%대에서 많아야 50% 정도의 비율로 일반 빵이나 쿠키에 비해 현저히 낮다. 그림형제의 동화 때문에 유명해진 과자의 집도 이 렙쿠헨으로 만든 것이다.

케이크의 왕 바움쿠헨
나무의 나이테를 닮아 바움쿠헨, 꼬치에 끼워서 굽는다고 해서 붙여진 슈피스쿠헨은 독일어권에서 케이크의 왕으로 불린다. 1682년 요한 지기스문트 엘스홀츠에 의해 처음 사용된 이 케이크는 꼬치에 반죽을 겹겹이 발라서 구워 만든다. 기본 반죽은 밀가루:버터:달걀이 1:1:2의 비율로 이뤄지며 사용되는 부재료인 견과류와 알코올 등에 따라서 맛과 모양에 조금씩 변화가 있다.
과거에는 꼬치에 바른 반죽을 불에 구워서 만들었지만 최근에는 이 케이크만을 위한 기계도 존재하니 그 인기를 실감할 만하다. 또 덩어리째 구입해 먹기 부담스러운 현대인을 위해서 최근에는 쿠키처럼 조그마한 규격의 바움쿠헨도 슈퍼마켓에서 판매하고 있다.

아기 예수를 떠올리게 하는 크리스트슈톨렌
담요에 싸인 아기 예수를 떠올리게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크리스트슈톨렌. 보통 슈톨렌이라고 부르는 이 빵은 드레스덴이 유명하지만 원래는 수도원의 음식이었다. 사순절, 대림절 등의 기간에 동물성 음식과 지방을 자제하던 시기에 밀가루와 물, 귀리, 평지기름으로 만든 빵이었던 것이다. 건포도 등 다양한 건과일과 견과류과 포함되었는데 현재는 버터나 우유 등 동물성 지방도 사용한다.

그 외 다양한 먹거리들
독일이 소시지의 나라인만큼 다양한 구운 소시지나 돼지고기 스테이크, 구운 양파, 지역의 특산물인 햄과 살라미 등을 빵에 끼워서 바로 먹을 수 있도록 판매하고 있다. 알자스 지방에서 유래한 독일어권 피자인 플람쿠헨, 독일 남부지역 손가락 모양의 감자면인 슈프누델, 쾰른근교를 비롯한 라인 지역의 기름에 튀긴 반죽에 슈가파우더를 더해서 먹는 무첸을 비롯해 다양한 맛의 구운 아몬드, 초콜릿을 바른 과일 꼬치와 머랭에 초콜릿을 바른 샤움쿠스 등의 달콤한 먹거리들은 어른들이 글뤼바인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이들의 눈과 입을 만족시켜준다.
춥고 우중충한 독일의 겨울, 그로 인해 잠시 우울해졌던 독일인들의 마음을 녹여주는 크리스마스 시장은 독일인들이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세계 어디에서나 각국의 문화와 서민들의 삶이 녹아들어 있는 시장과 길거리. 이곳에서 독일인들이 겨울을 나는 방법과 그들의 삶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김용주
경기대학교 외식조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대학에 북유럽학과 경영경제학을 공부하러 갔다가 현재 일본식 누들바에서 근무하고 있다.
독일과 독일 식문화를 더 사랑하고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