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세대인 비치히만과 아랫세대인 볼파르트 사이에 끼여 항상 독일 내 레스토랑 순위에서 2위권에 머물렀던 디터 뮐러. 하지만 독일의 지역 조리법과 식자재를 활용해 신 독일음식(Neue deutsche Kuche) 트렌드의 기초를 다진 셰프임은 자명하다. 2009년 12월 자신의 이름을 딴 「고메 레스토랑 디터 뮐러(Gourmet Restaurant Dieter Muller)」를 마지막으로 셰프의 자리에서 물러나기까지, 그는 독일 최고령 3스타 셰프이자 젊은 요리사 못지 않게 창의적인 셰프 중 하나였다.

축구선수를 꿈꾸던 꼬마 요리사
1954년 스위스 베른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독일은 2번의 세계대전으로 잃었던 자신감과 단결력을 되찾았다. 자연스럽게 독일의 많은 소년들은 축구선수를 꿈꿨고 슈바르츠발트의 작은 시골에서 살던 뮐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소년의 일상은 축구와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고향에서 작은 펜션과 식당을 하던 부모님을 도와 오리, 거위, 양, 염소 등을 키웠던 것이다. 진로를 결정해야할 시기, 뮐러의 아버지는 한살 터울의 형인 요르크(독일의 유명한 스타 셰프)가 직업교육과정에 있던 뮐하임의 호텔 바우어에 뮐러도 강제로 등록해 버리고 만다.
축구선수를 꿈꾸던 뮐러는 아버지의 결정에 승복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요리사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요리책에서 “엄한 주방장 밑에서 식자재 관리와 품질과 음식에 타협하지 않는 마음 가짐을 바덴 지역 조리법과 함께 배웠다”며 이 시절을 회상한다.
성공적으로 직업학교를 마친 그는 당시 남부 독일에서 유명하던 프라이부르크의 콜롬비라는 레스토랑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지만 또다시 아버지의 결정에 따라야 했다. 그의 부모님이 라이헨바흐의 호텔 포스트를 인수하면서 그의 도움이 필요해진 것이다. 갓 직업학교를 마친 젊은 그와 전통의 방식을 고수하던 그의 아버지는 때로는 의견 충돌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간을 통해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뿌리인 바덴 지역과 가족의 전통 조리법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본격적인 파인다이닝 세계의 생활 시작
사회에서 배웠던 직업이나 전공을 군대에서 적극 활용할 수 있던 독일의 징병시스템 덕분에 뮐러는 사병식당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미식가 중대장의 도움으로 사병식당을 개선, 그가 이끌던 사병식당은 불과 3개월 후에 ‘독일군 최고의 식당’ 훈장을 받게 된다. 군대를 전역한 뮐러는 독자적인 길을 걸어가기로 마음 먹고 스위스 베른의 유명한 레스토랑인 슈바이처 호프에서 견습생으로 다시 일을 시작한다. 사원식을 만들기 위해 채소를 다듬는 일을 하던 뮐러는 주방장이었던 에어네스토 슐레겔의 눈에 띄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팀의 일원이 됐다. 본격적인 파인다이닝 세계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독일의 바덴 음식을 기반으로 했던 그의 요리 패턴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도 이즈음이다. 이곳에서 그는 독일 전통 서민음식점에서 익힐 수 없었던 다양한 프랑스식 소스와 디저트 분야를 경험하게 된다. 더 많은 배움을 원하게 된 뮐러가 다시 한 번 선택 한 곳은 그리스의 코르푸(Korfu)섬이었다. 당시 독일에서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싱싱하고 다양한 해산물 다루기와 조리법을 익힌 그는 프랑스, 스위스 등을 돌며 배움의 길을 걸어갈 예정이었다.

뮐러 형제 독일을 달구다
요리사인 형 요르크는 당시 슈바이처 슈투벤의 주방장을 맡고 있었고, 동생인 뮐러에게 운명적인 전화를 하게 된다. 요르크의 제안은 형제가 같이 일해보자는 것. 뮐러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형의 오른팔이 되기를 자청했다. 독일의 유명한 요리명가인 ‘뮐러가’의 시작이었다. 이들의 요리는 소문을 타고 바덴 지역 전체로 퍼져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1974년 뮐러형제는 첫 번째 미슐랭 스타를 받았고 1977년 두 번째 별을 따냈다. 1979년에 클라우스 베서가 독일 최초로 발간했던 레스토랑 순위에서 당시 독일어권 요리사의 선구자였던 비치히만의 레스토랑을 제치고 독일 최고의 레스토랑 자리에 오르게 된다. 1981년 형 요르크가 독립하고 1990년까지 주방장으로 일하면서 뮐러는 2번이나 독일 올해의 요리사 상을 받는 등 만천하에 그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꿈을 실현한 ‘고메 레스토랑 디터 뮐러’
독일은 성의 나라다. 그리고 다양한 성을 개조해 고급 호텔이나 레스토랑으로 사용하고 있다. 뮐러는 요리사의 삶을 살면서 두 가지 꿈을 꿨다. 세계 곳곳을 돌며 음식과 식문화를 배우는 것이 첫 번째 꿈이었고, 두 번째가 바로 성을 개조한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는 것이었다. 당시 큰 체인 호텔의 계열 총괄 주방장을 제안 받았던 그는 거절하고 고급호텔과 레스토랑 프로젝트를 시작하려던 유명한 호텔리어 토마스 알트호프의 슐로스호텔 레어바흐의 제안으로 인생 최대의 결정을 한다. 레스토랑 개조 중 그는 2년여 동안 미국, 프랑스, 일본, 태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세계 각국을 돌며 각국의 식문화를 배웠고 1992년 2월, 마침내 그의 이름을 딴 「고메 레스토랑 디터 뮐러」가 문을 열게 된다. 1993년 1스타, 1994년 2스타를 차례로 받아낸 그는 1997년 3번째 별을 받으며 자신의 목표이자 꿈을 실현하게 된다.

파격적인 시도였던 아뮤즈 메뉴
뮐러는 2000년도 중후반 독일에서는 혁신적이었던 아뮤즈 메뉴를 개발한다. 스페인에서는 아주 많은 코스가 나오는 것이 어느 정도 알려진 상태였지만, 독일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스타일의 코스요리를 고집하고 있었다. 그는 점심메뉴로 18~20가지의 작고 아기자기한 아뮤즈 메뉴를 시작, 큰 호응을 받았다. 점심메뉴의 저렴한 가격에 3스타의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은 열광했다.
현재에 와서는 많은 독일 셰프들이 글로벌화된 가스트로노미 업계의 분위기를 따라 가고 있지만 당시에는 상황이 그렇지 않았다. 뮐러 음식의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보면 다른 독일 셰프들과의 차이가 확연히 들어난다.

첫째, 곳곳에 숨어있는 전통 독일 음식의 조리법이다. 지금이야 엘버펠트, 비슬러 등을 필두로 독일 전통 음식들이 다양하게 재해석 되고 있지만, 그 원조는 바로 뮐러라고 할 수 있다. 자우어크라웃의 재해석이나 독일식 적양배추의 즙을 이용한 소스, 블룻부어스트(독일식 돼지 피가 들어간 소세지), 독일식 감자경단이라 할 수 있는 크뇌델 등 다양한 조리법과 식자재를 사용한다.

둘째, 생선과 해산물의 사용이다. 코르푸에서 해산물요리에 눈을 뜬 그는 생선과 해산물을 즐겨 사용하기로 유명했다. 그의 후계 자인 닐스 헨켈도 스승의 영향을 받아서 생선요리를 잘하기로 유명하다.

셋째, 아시아적인 터치를 가미하는 것이다. 태국과 일본 생활을 경험한 그의 음식에는 스시를 자신의 스타일로 변형한 요리나 태국의 향신료들이 자주 등장한다. 세계와 교류가 많지 않던 독일 가스트로노미 업계의 상황에서 그는 이미 90년대부터 이런 조리법과 식자재를 받아 들였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발전시켰다.
2009년 3월 그는 정들었던 그의 레스토랑을 후계자인 닐스 헨켈에게 물려주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이름이 붙여져 있던 레스토랑도 「고메 레스토랑 레어바흐」로 변경되었다. 그가 원했던 것처럼 축구 선수가 되었다면 어떠했을까? 독일 가스트로노미 업계에 뮐러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지금 일어나는 독일 전통 식문화에 대한 고민과 실용이 조금은 더 늦어졌을 것이며, 대부분의 엘리트 요리사들이 여전히 전통 프렌치를 고집하고 있지 않았을까 감히 추측해 본다.

김용주
경기대학교 외식조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대학에 북유럽학과 경영경제학을 공부하러 갔다가 현재 일본식 누들바에서 근무하고 있다.
독일과 독일 식문화를 더 사랑하고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