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음식하면 바로 떠오르는 단어는 맥주와 소시지 그리고 감자일 것이다. 독일 여행, 축제를 생각해보면 많은 이들이 옥토버페스트라 불리는 10월의 맥주 축제를 손에 꼽는다. 그 맥주 축제의 장소, 그리고 눈앞에 그려지는 이미지가 바로 오버바이에른(Oberbayern)지역에서 시작된 비어가르텐 문화이다.

맥주에 대한 열망이 만들어낸 비어가르텐
19세기 비어가르텐 문화가 태동하던 시절 바이에른주는 여전히 지역에서 공표한 맥주 법규에 따라 맥주 양조일을 9월 29일에서 이듬해 4월 23일까지로 제한하고 있었다. 이는 이 기간이 맥주 양조과정 중 필요한 온도를 유지하기가 유리했고, 더불어 당시 양조 기계의 문제로 여름에 자주 일어나던 양조장의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16세기 바이에른에 하면발효법(발효 온도 4~9도)이 전파된 후, 19세기에는 이미 대부분 하면 발효 맥주를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맥주의 숙성 온도를 유지하기 어려워 여름에는 쉽게 접하기 힘들었다. 증가하는 수요에 고심하던 뮌헨의 몇몇 양조장들은 양조허가 기간에 양조한 맥주를 도시를 지나던 도나우강 주변의 지하맥주 창고에 얼음과 함께 차갑게 보관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맥주를 일 년 내내 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비어가르텐 문화의 시작이다. 슈반트할러회에 하이드하우젠 지역이 대표적인 비어가르텐 집중 지역이었다. 이 지하 창고 주변에 자연스레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났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게 됐다.
이 시기에 햇빛을 막아 온도를 낮게 유지하는 역할로 심어졌던 밤나무와 그와 함께 바닥에 뿌려졌던 조약돌들은 여전히 독일에서 비어가르텐을 상징하는 존재로 남아있다.

시기가 만들어낸 독특한 문화
새롭게 등장한 문화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비어가르텐으로 몰렸다. 그러자 일반 식당이나 술집 종사자들의 반발이 심해졌고, 1812년 이 지역의 왕이었던 막시밀리안 1세는 법적으로 비어가르텐에서 맥주와 빵만을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다른 음식이나 안주거리의 판매를 금한 것이다.
비어가르텐은 주로 강가나 공원에 위치했기 때문에 주말이나 휴일 산책과 휴식을 취하려는 사람들로 붐볐고, 이들은 간단한 음식을 싸서 산책한 후 비어가르텐에서 맥주를 즐기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 1825년 이 법안은 완화되고 비어가르텐에서도 음식과 다른 음료를 팔 수 있게 된다. 많은 수의 비어가르텐은 소득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법안을 받아들였지만, 몇몇 오랜 전통을 지닌 곳들은 음식을 판매하면서도 과거처럼 고객들이 자신의 음식을 가져오는 것을 허용했다.

비어가르텐의 규칙 ‘추아그로아스테’
‘방문자에게’라는 뜻의 바이에른 사투리 ‘추아그로아스테(Zuagroaste)’는 비어가르텐을 방문하는 사람이 지켜야 할 몇 가지 간단한 규칙이다.
첫째, 음료와 음식은 셀프서비스다. 많은 고객이 드나드는 곳이기에 독일에서는 드물게 본인이 모든 것을 챙겨야 한다.
둘째, 주변에 앉은 사람들과는 존댓말이 아니라 반말을 한다. 영어에는 없지만 독일어에는 존칭이 있고, 당연히 처음 보는 이들에게는 보통 존칭을 쓰는데 비어가르텐에서만은 예외다. 합석하는 경우도 독일에서는 드물지만, 이곳에서 만큼은 무뚝뚝한 독일인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으며 체면이나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즐겁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셋째, 지켜야 할 예절이 있다. 독일어로 슈탐티쉬(Stammtisch)라고 적힌 단골들의 전용 공간에 침범하지 않는 것이다. 이곳에는 자리가 비었다고 옆에 앉거나 그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 수 없다. 단 그쪽에서 허락을 하면 두 번째의 공식이 통용된다.
넷째, 건배는 맥주잔의 바닥이 보일 때까지 해야 한다. 보통 이 지역의 맥주잔은 맥주 축제에서 자주 보이는 1ℓ잔이다. 독일어로 ‘마스(Maß)’라고 하는데 이 잔이 비는 순간까지 마실 때마다 건배를 한다. 독일의 전통적인 히트송들이 나올 때도 항상 잔을 함께 높이 치켜들고 맥주를 마신다.
필자는 비어가르텐에서 독일 중년 아저씨들과 신나게 이야기를 하며 마시고 싶었으나, 연신 나오는 음악과 건배 소리에 한 시간만에 3잔 반을 마시고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 독일 아저씨들이 한껏 튀어나온 배를 두드리며 웃으면서 분발하라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섯째, 음식을 가져오는 것은 상관없지만 패스트푸드는 금지다.
여섯째, 잔을 치우러 오면 조금 남은 맥주는 그대로 둔다. 바이에른 지역뿐만 아니라 독일 전반적으로 신선한 맥주를 좋아하므로 잔을 치우러 직원들이 오면 조금 남아있던 탄산 빠진 맥주는 마시지 않는다.

세상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비어가르텐 정신
최근 독일에는 일반 노천카페나 식당 등에서 운영하는 전통과는 다소 거리가 먼 비어가르텐이라 불리는 공간들이 많다. 태동기의 배경과 문화와는 다른 새로운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보관과 양조 기술의 발달로 일 년 내내 아무 문제 없이 맥주를 즐길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시대가 변화하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삶의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니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즐기는 이들의 마음이다.
독일인들이 삶에서 긴장을 풀고 웃고 떠들며 즐기는 공간 중 가장 중요한 두 곳이 여름의 비어가르텐과 겨울의 크리스마스 시장이다. 화창한 날을 소중하게 여기는 독일인들에게 아름다운 날씨와 더불어 고단한 삶에 휴식과 여유를 주고, 주변인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바로 비어가르텐이다.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시끌벅적 친구들과 떠들며 느끼는 소박한 기쁨. 세상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비어가르텐의 정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김용주
경기대학교 외식조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대학에 북유럽학과 경영경제학을 공부하러 갔다가 현재 일본식 누들바에서 근무하고 있다.
독일과 독일 식문화를 더 사랑하고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