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하면 연극 무대에 오르는 배우가 되는 느낌을 받아요. 오픈 전 밑 작업과 모든 준비를 마치고 오픈을 기다리는 순간은 배우가 무대에 오르기 전 설렘과 같아요. 피크타임이 끝나고 모든 열정과 힘을 다 쏟아 붓고 나서 오는 뿌듯함은 연극 무대를 마친 뒤 느끼는 희열과 같고요.”

「22서더맘」 엄현정 셰프가 처음부터 셰프를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레스토랑 총괄 디렉터가 되려면 음식도 알아야 했기에 쿠킹 클래스에 들어갔다가 무언가에 홀린 듯 셰프의 길에 빠져들게 됐다.

“우연히 덴 바버의 쿠킹데모를 보게 됐어요. 재료의 이력부터 차근히 설명하고 어렵지 않게 손질하는 것 같더니 잠깐 사이에 완전히 새로운 음식이 돼가는 과정에 저도 모르게 빠져들더라고요. 흔히 보던 재료들로 완전히 새로운 음식을 만드는 것이 참 신기했어요.”

요리학교에서의 마지막 두 달은 레스토랑 매니지먼트 과정과 뉴욕 레스토랑 인턴 생활을 병행했다. 공부와 인턴 과정을 모두 마친 그는 바로 뉴욕의 스웨덴 음식 레스토랑 「아쿠아비트」에 정식채용 됐고, 본격적인 북유럽 음식을 접한 계기가 됐다.

스웨덴 요리는 북유럽 디자인과 흡사하다. 자연의 맛을 중요시하다 보니 제철 식재료에 굉장히 민감하다. 그래서 제철, 즉 한정된 기간에 생산되는 산물을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도록 저장식이 발달했다.

“스웨덴 음식은 한국에선 아직 생소하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음식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도 김치, 젓갈 등의 저장음식과 발효음식이 익숙한 식문화잖아요.”

‘22서더맘’이라는 독특한 레스토랑 상호에는 엄현정 셰프만의 추억이 담겨있다. ‘서더맘(SODERMALM)’은 뉴욕 유학생활 중 머물렀던 스웨덴 마을 이름으로 예술적인 감성이 풍부하게 묻어나는 지역이며, 가장 기억에 남고 추억이 많은 곳이다. 앞에 붙은 숫자 22는 이곳의 번지수다. 상호 하나에도 유학시절 아름다운 추억을 담았듯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과 자신이 만든 음식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뜻을 담았다.

엄현정 셰프가 레스토랑 콘셉트로 북유럽 가정식을 선택한 이유는 북유럽 가정식이라는 요리를 사람들에게 알리고픈 마음에서다. 레스토랑을 오픈할 당시 국내에는 북유럽 가정식이 생소했고 제대로 선보이는 곳이 없었다. 차이가 있다면 본토 북유럽 가정식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색깔을 녹여낸 퓨전 스타일 북유럽 가정식을 선보이고자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중년 부부가 방문하셨는데 아름다운 추억을 생각나게 해줘서 감사하다며 눈물을 흘리셨어요. 저는 제가 할 줄 아는 음식을 만들어드린 것뿐인데 눈물까지 흘리는 모습에 당황스러우면서도 뿌듯했죠. 제가 레스토랑을 오픈할 때의 초심을 생각나게 해주신 고마운 분이에요. 앞으로도 소중한 분들의 마음을 기억하고, 음식 하나하나에 그런 고마운 마음을 담아야겠다는 결심을 다시 한 번 하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