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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을 사랑한 3인의 셰프  <통권 365호>
음식의 가치 한식을 통해 말하다
관리자 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15-08-06 오전 04:15:35

최근 한식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동경의 대상인 스타 셰프들이 너도나도 한식 레스토랑을 오픈하는 시대다. 하지만 반대로 한식은 여전히 ‘정통성’에 있어 논란의 대상이자, 요리사를 꿈꾸는 새싹들에게 기피의 대상인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식 셰프들은 늘 ‘세계화’에 대한 꼬리표를 부채의식처럼 안고 가야 했으며, 익숙한 음식이라는 이유로 평가절하를 당하기도 했다. 요리하는 이라면 ‘쉽지 않은 길’임이 익히 예상 가능한 이 길을 변치 않는 뚝심으로 걸어온 셰프들이 있다. 이들이 한식을 사랑하게 된 계기는 다양했지만, 현재진행형인 셰프들의 바람은 신기하게도 같았다. 
‘한식의 가치가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길…’
한식을 사랑하는 셰프 3인을 만났다.  
글 취재부 | 사진 이종호 팀장

우리의 식재를 살리는 것이 한식을 발전시키는 일

올해로 17년의 요리경력을 지닌 권우중 셰프는 고등학교 때부터 요리를 시작해 대학 시절, 한식업계에 감각적이고 컨셉츄얼한 요리를 선보이는 요리사가 부족한 것을 보고 한식에 도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인간의 3대 생활 요소인 의·식·주 중 의와 주는 변화했는데 음식만큼은 변하지 않고 꾸준히 한식을 먹고 있습니다. 중식, 일식, 프렌치, 이탈리안 등 수많은 먹거리가 있지만 그만큼 우리한테 가장 편안하고 익숙한 음식이라는 거죠. 또한 가까운 곳에서 계절마다 다른 식재를 구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합니다.”
오너셰프로 있었던 「이스트빌리지」와 총괄셰프로 활동한 CJ푸드빌의 「다담」 그리고 7월 초에 오픈한 「권숙수」의 공통점은 권 셰프가 직접 선정한 귀한 제철 식재료로 한식을 선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권 셰프는 무조건 토종 식재료를 쓰는 것이 아니라 값어치 있고 맛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잊혀져 없어지려고 하는 식재료를 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우리의 음식문화가 획일화된 식재료를 사용하고 매번 똑같은 음식을 먹고 있기 때문에 후에 내 아이와 자손들에게 우리나라의 다양한 식재료들을 소개해주고 싶고 그것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양념 맛에 치우쳐 재료 고유의 맛을 잃어버린 한식의 맛을 되찾고 제대로 된 한식 문화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식재료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죠. 이스트빌리지를 닫고 2년 동안은 지방 곳곳을 돌아다니며 어부와 농부들과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좋은 식재료를 발굴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재료가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식재료에 포인트를 두고 권숙수를 오픈하게 됐습니다.”
권숙수에서는 애호박 대신 단맛과 씹는 맛이 좋은 조선호박을, 백다다기오이보다 아삭한 식감이 뛰어난 가시오이, 여름철 생선으로는 붕장어와 딱새우, 은어 등 다소 생소한 제철 재료를 사용하고 있다. 생선이나 해산물은 요리사들과 새벽에 시장을 방문해 직접 장을 보고 채소류는 전국 각지에서 택배로 직송 받는다. 구매부터 손질, 요리까지 요리사들의 손으로 직접 하고 된장, 간장, 두부장 등의 장류는 물론 식초와 김치까지 셰프가 직접 만들어 낸다. 
“지금까지 가장 인상 깊었던 식재료는 은어와 말똥성게예요. 지금 권숙수에서도 사용하고 있는데 은어는 조선시대 궁중에 진상될 정도로 맛과 향이 아주 뛰어난 생선이죠. 신선할 때는 비린내가 없고 수박향이 나는데 생선에서 향이 난다는 것이 굉장히 놀라웠어요. 말똥성게는 특유의 깊고 진한 바다 맛이 일품이에요. 매년 여름 말똥성게를 제공해주시는 해녀할머니가 계셨는데 지금은 거의 못 구한다고 해서 올여름에는 어떻게 할까 고민이에요.”
권숙수에서 눈에 띄는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낮은 테이블과 테이블 위에 올려있는 조그마한 독상이다. 본래 우리나라 고유 상차림은 1인용 소반을 하나씩 앞에 놓고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독상’이 기본이라고 한다. 권 셰프는 우리나라 고유의 독상 문화를 살리고 제대로 대접받는 한식문화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직접 디자인해 맞춤 제작한 독상으로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나이가 들고 세월이 지날수록 요리의 길은 어렵고 또 어려워지는 것 같아서 고민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 주방에는 경력 요리사들 보다는 한식에 대한 꿈과 열정이 많은 초보 요리사들도 많습니다. 숙련된 스킬은 아직 부족할 수 있겠지만 하나하나 정진해나가면 2~3년 후에는 한식을 알릴 수 있는 진정한 한식 셰프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저 또한 소비자들에게 우리나라 전통 식재를 가장 잘 활용한 한식 셰프로 50년, 100년 후에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고 싶습니다.”

한식은 한국인의 소울푸드 또는 본능

 

그의 모든 한식요리는 친할머니 손맛에서 기인한다. 어릴 적 강원도에 계신 할머니 손에 자랐다. 산과 바다, 들을 아우르며 자연친화적인 공간에서 보낸 시간은 한식재료에 대한 가감 없는 호기심과 친근함으로 이어졌다. 그가 한식 레스토랑 「이십사절기」에서 좀 더 이색적이고 모험적인 레시피를 시도할 수 있는 것도 자연과 가까웠던 시절과 할머니의 묵직한 손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토니 유는 미국과 호주, 일본 등지에서 미슐랭가이드 스타레스토랑들을 다니며 경험을 쌓은 실무형 셰프다. 현지의 맛과 현장 중심의 레시피에 익숙하다. 오로지 눈과 손, 미각과 실전으로만 쌓은 실력이다. 그는 “이론으로 고정관념을 만들어놓지 않은 상태로 현장에서 요리를 배운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설명한다. 

“많은 사람들이 ‘한식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왜 한국에 있지 않고 세계무대만 다녔냐’고 물어요. 그것도 15년씩이나. 그런데 서양의 주방에서 배울 건 정말로 무궁무진해요. 테크닉과 식재료를 바라보는 관점들, 다양한 시도, 풀어내는 방식, 테이블과 주방 매너 등….” 

그래서 그의 요리는 꾸밈이 없고 솔직하며 다채롭다. 한국에서도 그는 세 번에 걸쳐 주방을 옮겼다. 2010년엔 서울 청담동 「D6」에서 이탈리안 스타일의 한식을 구상했고, 이후 「키친플로스」에서는 전통 발효장을 바탕으로 한 캐주얼 한식을 선보였다. 세 번째 무대인 「이십사절기」에서는 파인다이닝 콘셉트를 바탕으로 그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묻어나는 다양한 이색 한식요리를 선보인다. 토니 유의 오랜 팬들은 이십사절기에서 그가 내는 한식을 보고 반가워 한단다.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것 같다는 것이다.

최근 그가 구현하고 있는 한식은 어떠한 것일까. “D6와 키친플로스에서는 약간 보여줄 듯 말 듯 내숭을 부려가며 한식의 기교를 부렸다면, 이십사절기에서는 평소 생각했던 것들을 최대한 솔직하게 풀어낸다는 점이 달라요. 점심엔 대중한식을 캐주얼하게 내고 저녁엔 생소한 식재료와 레시피를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해 마니아층을 공략해요. 과감해졌다는 평가를 많이 들어요.”

재료 선택이나 레시피 구상, 데커레이션 등에서도 제한이 없다. 특정 범주를 정해놓지 않고 주방을 활용하기 때문에 참새구이나 토끼고기와 같은 이색 요리들도 테이블에 쿨하게 내는 것이다. 

“열 명 중 세 명은 무조건 놀라요. 여섯 명 정도는 그래도 인터넷 블로그를 미리 보고 왔는지 담담하고… 나머지 꼭 한 명은 아주 질색을 하며 도망가요(웃음).”

그러나 토니 유는 자신이 구현하는 요리가 ‘이색 한식’은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전통한식이에요. 최근 들어 잘 먹지 않을 뿐 토끼고기나 참새구이는 우리 옛 선조들이 실제로 먹던 음식들이에요. 재료의 시공간에 구분을 두지 않고 다양하게,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자세와 모험 의식이 있어야 한식이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쉬운 부분은 아직까지 한국 사람은 서양식에 대해선 관대하나 한식에 대해선 정통성만 강조한다는 점이에요. 모험을 거부하죠. 사실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 어릴 적 할머니가 차려주신 소박한 된장국과 다양한 레스토랑에서 내는 한식의 출발선은 같은데….”

한식은 한국 사람의 소울푸드고 본능이란 생각엔 변함이 없다. 최근 들어 한식이 뜨고 있고 한식 셰프들에까지 관심이 쏠리게 된 것에 대해서도 그는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다 돌아오게 돼 있습니다. 사람에겐 귀소본능이 있거든요. 우리 예전 생각해봐요. 그땐 아토피가 어디 있었어. 산에서 들에서 뒹굴고 벌레 잡고 뛰어놀아도 튼튼했지. 다 된장국에 밥 말아 후루룩 잘 먹었기 때문이에요. 이제야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거예요.”

토니 유는 보이는 곳에서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예나 지금이나 늘 즐겁게 한식을 요리하고 있다. 그에게 주방은 아직까지 꿈과 이상의 공간이자 실현의 무대다. 오너셰프 타이틀을 잠시 미뤄두고 다양한 주방의 단맛을 찾아다니는 이유기도 하다.  

고정관념을 벗어나면 더욱 가치 있는 한식

 

음악을 전공한 김민지 셰프는 네덜란드 유학 시절 ‘생존’을 위해 요리에 입문한 케이스다. 제대로 끼니를 챙기기도 힘든 유학생활 중 입에 맞는 음식을 찾기 위해 직접 한식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그의 오감은 한식이라는 요리에 사로잡혔다. 

네덜란드에서 만드는 한식은 자연히 식재료 등에 제약이 많았다. 하지만 김민지 셰프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타국의 재료로 한식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재료에 대한 선입견이나 두려움이 없어야 했습니다. 틀에 박힌 조리법에서도 벗어나야 했고요. 비빔국수가 먹고 싶은데 소면이 없으니 파스타면으로 대체하는 식이었죠. 마치 숨은그림찾기 하듯 즐겁게 요리를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것이 1996년. 6년 정도의 오케스트라 생활 동안 직업 음악가로 활발히 활동했지만, 여전히 그에게 한식은 음악만큼이나 갈급하고 궁금한 미지의 세계였다. 유학생활 중 이미 요리하는 재미에 흠뻑 빠졌던 김민지 셰프는 취미라는 명목으로 유명한 한식 요리 연구가들에게 본격적인 한식 조리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요리연구가들에게 다양한 조리법을 사사받을 때부터 일찍이 감각을 인정받고 필드에 나가라는 조언을 들었던 김 셰프는 2007년, 기존에는 없었던 새로운 개념의 한식 레스토랑을 선보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민스키친」을 오픈했다. 

“한식은 식재료, 조리법이 우수하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데 반해 그 가치가 돋보이지 않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특히 한식 상차림에서 반찬이 불필요하게 많이 나오는 것이 싫었어요. 메인 디쉬에 집중하고 담음새에 차별화를 주는 등 기존 한식의 틀에 박힌 제공방식을 벗어나고 싶었죠. 민스키친을 오픈할 때 가장 크게 고려한 것입니다.”

민스키친은 우리에게 익숙하고 평범한 한식을 제공한다. 하지만 먹는 사람의 편의를 고려한 조리방식이나 모던한 플레이팅은 분명히 뭔가 색다른 가치를 느끼게 한다.

기본을 지키면서도 그 안에서 작은 변화를 준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지만 김민지 셰프는 자신만의 명확한 조리 가치관만 있다면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한식의 근간인 조리법과 오방색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것을 기본으로, 한식이 짜고 맵기만 하다는 선입견을 벗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도 그 가치관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어느 음식이 그렇듯 재료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 재료를 기본으로 큰 틀의 조리법을 유지해나가는 것이 한식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외에는 먹는 사람의 편리함을 고려하거나 플레이팅에 모던함을 가미하는 것 등이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의 다양한 변주입니다. 전통성과 변주의 기준선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음식을 하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가장 잘 알 거에요. 주객이 전도되지 않도록 정통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지.”

한식세계화에 대한 김민지 셰프의 견해도 이와 마찬가지다. 정통의 맥을 지키는 선에서 세계화에 좀 더 날개를 달 수 있는 다양한 노력을 함께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식만으로 세계화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한식을 단순한 음식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인식시키기 위해서는 K-pop, 드라마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함께 융합해 진출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면 세계인에게 한식이라는 ‘문화’를 전파하는데 좀 더 속도를 낼 수 있지 않을까요?” 

 
2015-08-06 오전 04:15:35 (c) 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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