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HOME > People
외식업 2세 경영인  <통권 371호>
미래 한국 외식업계 우리가 이끈다
관리자 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16-01-29 오전 01:26:46

외식업은 아침부터 밤까지 종일 업장에 매여 있어야 하고 식재료 관리부터 원가·재고 관리, 메뉴구성, 직원관리, 매출분석 등 신경 써야 할 요소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막노동’에 가까운 업무와 일상을 견뎌야 하는 것이 외식업 경영주들의 몫이다. 이 힘든 여정을 어릴 적부터 지켜봐왔음에도 불구하고 대를 이어 외식업에 뛰어들겠다는 2세 경영인들이 있다. 오랜 시간 외식업에 몸담았던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아, 이전 세대가 지켜온 정통성을 바탕으로 톡톡 튀는 시각과 열정을 가미해 새 시장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다. 젊은 장사꾼, 2세 경영인들의 현장을 찾았다. 



청암박물관 정복모 관장 &박물관 옆 카페 정석원 대표
보스 기질 아버지와 학구파 아들의 환상궁합

정복모 회장과 아들 정석원 대표는 닮은 듯 다르고, 다른 듯하면서도 닮은 구석이 많다. 아버지는 앞에서 끌어주는 보스의 기질을 타고난 반면 아들 정석원 대표는 학구적이면서 안정감 있게 일을 처리하는 성향을 지녔다. 그러나 자신만의 콘텐츠와 내공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면에선 부전자전이 따로 없다. 작년 여름, 정석원 대표는 아버지 정복모 회장의 오랜 터전인 청암박물관 바로 옆에 「박물관 옆 카페」를 내고 본격적으로 외식업에 뛰어들어 강의에 논문준비, 카페 운영까지 아버지보다 더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글 황해원 기자 banana725@foodbank.co.kr  사진 이종호 팀장   



박물관, 피자레스토랑, 이제 카페까지!
「박물관 옆 카페」는 1990년대에 ‘허니문하우스’ 레스토랑으로 유명했던 공간이다. 한동안 영업을 하지 않고 사회적 기업에 임대해 왔는데, 주말이나 공휴일 청암박물관에 들른 가족 단위 고객들이 박물관 관람 후 바로 옆 피자성효인방에서 피자를 먹고 나면 꼭 한 번씩 비어있는 카페 안쪽을 스윽 둘러보곤 발걸음을 돌렸다. 고풍스러우면서도 웅장한 외관부터 시선을 끄는 공간이 방치된 채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 7월 정석원 대표는 커피가 맛있고 예쁜 테라스까지 있는 박물관 옆 카페를 만들자는 구상을 했다. 
정복모 회장도 아들의 의견에 적극 공감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박물관과 음식, 휴게공간이 있는 복합외식문화공간 구현을 꿈꿔왔기 때문이다. 추진력이 뛰어난 두 부자는 바로 실내 인테리어에 들어가 조명, 테이블, 테라스 정원 정리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하는 한편 정석원 대표는 커피 블렌딩을 배우면서 준비를 해 한 달만에 오픈을 했다. 
청암박물관을 개관할 때에도 그랬다. 케케묵은 LP판과 낡은 포스터, 성냥갑, 옛날 이발소에서 사용하던 구식 바리깡과 가위, 녹슬어 있는 놋그릇과 온갖 장신구들…. 고전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옛날 물건들의 퀴퀴한 냄새를 그는 아홉 살 때부터 맡았다. “박물관을 개관하기 전엔 집안 창고에 가득 쌓여있던 물건들이었다. 어머니 잔소리의 대상이었던 기억도 얼핏 난다(웃음). 박물관을 개관한 후 방학만 되면 아버지 손잡고 박물관에 가서 일을 도왔다. 커서 아버지 일을 이어가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30년이나 지난 지금 박물관 일이 마치 늘 해온 일인 양 손에 척척 맞는 것을 보면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제자리를 잘 찾는 것
박물관 옆 카페는 오래된 목재 소재의 문짝을 테이블로 만들고, 30~40년 전 실제로 사용하던 전화기와 커피 블렌딩 기계 등 장식품으로 멋을 더하면서 블랙 계열의 전등과 은은한 조명으로 포인트를 줬다. 
정석원 대표는 “그러고 보면 제자리를 잘 찾는 게 중요하다. 어딘가로부터 버려진 헌 문짝이 이곳에 오니 근사한 테이블이 됐고 오랫동안 인적 드물었던 공간이 지금은 커피와 달콤한 빵 냄새가 나는 맛있는 공간이 되지 않았나. 무엇이든 그 자리에 있을 때 생명력이 생기고 빛을 발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그릇에 잘 맞는 자리를 찾아야 옥석처럼 빛발할 수 있다.
카페는 정석원 대표가 전적으로 맡아 운영하고 있다. 정 대표가 원하는 색깔은 휴식처 같은 공간이다. 특정 콘셉트를 좇기보다 내 집처럼 편안하고 친숙한 공간을 만들고 싶단다.
정복모 회장은 잔소리 보태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자신의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아들이 자랑스럽다. 일머리보단 공부머리가 뛰어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박물관 일을 맡아 해보라는 말을 늘 아꼈는데, 효자 아들 아니랄까봐 먼저 나서서 해보겠다고 하니 그저 고마운 마음이다. “조용하고 착실하게 제 할 일만 하던 녀석이라 재미는 좀 없다(웃음). 고객들이 과연 저 무뚝뚝한 사장을 좋아할까 내심 걱정도 됐지만 또 상황에 닥치니 잘하더라. 이제 걱정 없다.” 
정 회장이 아들에게 바라는 건 딱 한 가지다. 저녁은 무조건 가족과 함께 먹는 것.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 가족이다. 가정을 지키지 못하면 결국 바깥일도 제대로 할 수 없으니까. 외식업에 몸담는 동안 활활 타오르기보단 정도를 지키면서 고요하게 빛을 내며 오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정석원 대표는 조용하고 어떤 일에서든 침착한 편이다. 외식인의 삶이 그의 운명에 없었다면 아마 공무원이나 연구원, 교수의 타이틀로 더 조용하게 살았을 것이다. 여전히 공부하랴, 강의하랴 또 박물관 경영에 매장 영업까지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을 다할 때 오히려 더 빛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것이 아버지 정복모 회장이 바라는 삶이기도 하다.  




동신떡갈비 박영수 대표&동신화로 박헌웅 대표
서로의 든든한 조력자로  3代 외식업 가업을 잇다

한국외식업중앙회 상임부회장을 역임하면서 「동신떡갈비」를 운영, 동시에 조리외식경영학 박사로 활동 중인 박영수 대표와 그의 아들 박헌웅 씨를 만났다. 30여 년간 한눈팔지 않고 정도를 걸어온 박영수 대표와 반듯한 인성과 태도로 아버지 뒤를 이어갈 아들 헌웅 씨는 여느 부자지간처럼 무뚝뚝한 듯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따뜻한 응원과 시선을 보내고 있다.
글 황해원 기자 banana725@foodbank.co.kr  사진 이종호 팀장   


30년 내공의 떡갈비와 숯불직화구이의 만남
작년 5월, 헌웅 씨는 서울 상암동 먹자골목에 115.70㎡(35평) 규모의 돼지고깃집 「동신화로」를 오픈했다. 숯불직화구이 삼겹살과 목살을 판매하는 집이다. 메뉴 선정부터 콘셉트, 사이드메뉴 구성, 덕트, 주방 오퍼레이션, 인테리어까지 헌웅 씨가 직접 진두지휘했다. 
고깃집을 처음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2014년. 스물여섯의 어린 나이에 과감히 도전 했다. 군대 제대 후 다양한 콘셉트의 펍과 이자카야에서 아르바이트한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마침 요즘 한창 뜨는 핫플레이스인 상암동 안에서 좋은 자리를 구할 수 있었고, 방송국과 오피스 밀집 지역이라는 점을 파악해 대표 회식메뉴인 삼겹살을 메인메뉴로 선택한 것이다. 
사실 박영수 대표는 오랫동안 운영해온 「동신떡갈비」를 아들이 이어가줬으면 하는 은근한 바람이 있었다. 오랜 시간 내공을 인정받은 무기가 있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여러 번 실랑이도 했다. 
“헌웅이는 어릴 때부터 음식점에만 데려가면 식당 주인에게 ‘이 집은 이런 부분들을 수정해야 장사가 잘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겨우 초등학생이 배짱 좋게 훈수 두는 것을 보고선 민망하기도 했지만 ‘타고난 장사꾼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30년간 잘 보듬어놓은 동신떡갈비를 아들이 대를 이어 운영, 확장해 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헌웅 씨는 독립을 고집했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아들의 선택을 존중했다. 안전한 울타리 대신 본인이 직접 부딪히고 경험하며 다방면을 배우겠다고 나섰으니 이제 묵묵하게 지켜보며 조력하는 역할이 주어진 셈이다. 
동신화로는 주메뉴가 삼겹살과 목살이지만 점심시간에는 떡갈비 정식을 8000원에 판매한다. 박영수 대표의 30년 내공이 녹아있는 떡갈비를 접목함과 동시에 오피스 상권에 맞게 점심메뉴 구성으로 추가매출을 높이고 있다.

3대에 걸친 외식업 인연 
동신화로를 준비하면서 부자간 의견 충돌도 많았지만 그래도 박 대표는 아들 헌웅 씨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외식업 현장에 직접 부딪혀 보겠다고 나선 아들 헌웅 씨를 보고 있으면, 3대에 걸친 외식업은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아버지는 평안북도 정주, 어머니는 황해북도 사리원 출신이다. 실향민이었던 부모님은 동두천에 자리 잡고 ‘평안면옥’이라는 냉면집을 차렸다. 중학교 다닐 때부터 하교 후엔 늘 부모님 매장에서 옛날식 기계로 면을 내린 후 직접 반죽도 하고, 육수 냉장고가 없어 큰 통에 얼음 깨 넣고 육수를 직접 식혀야 했다. 쉬는 날엔 자전거를 타고 냉면 배달을 했다. 한 손은 자전거 손잡이를, 다른 한 손은 나무로 짠 배달통을 들고 가는데 배달통 안에 들어있는 냉면이 쏟아질까 걱정 되면서도 친구라도 만나면 창피할 것 같은 마음에 안절부절 했다”고 박 대표는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당시 외식업은 모든 걸 다 손으로 직접 만들어내야 했던 환경이었다. 부친은 그가 고단한 외식업을 이어가지 않길 바랐다. 그러나 자라면서 보고 배운 건 무시 못 하듯 운명처럼 음식점을 운영하게 됐고, 이제 그의 아들이 3대째 외식업에 뛰어들었다. 
헌웅 씨는 제법 씩씩한 면이 있다. 어리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너무 많은 조언들이 오갈 때 흔들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스스로 중심을 잡아가는 그는 “경험이 부족해 앞으로도 시련이 많겠지만 그러한 과정까지 아버지가 믿어줬으면 좋겠다”는 속마음을 내비쳤다.
박 대표는 “30년 이상 외식업에 있으면서 힘들 때마다 아버지의 조언이 참 그리웠다. 그 역할을 아들에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다 보니 가끔은 잔소리로 비춰졌을 수도 있다. 좀 더 쉬운 길로 어긋나지 않게 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며 “리더는 앞에서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이다. 목에 힘주지 않고 늘 겸손하고 고개 숙여 일하는 외식인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옛날민속집 서연자 &최광준&최지은 대표
전통을 지키면서 변화도 꿈꾸는 2세 경영인

서울시 종로구 진흥로에 위치한 「옛날민속집」은 1989년 오픈한 이래 한결같은 맛을 고수하는 전통 있는 두부전문점이다. 단골 고객의 비율이 80%를 차지하는 이곳은 현재 본점과 1호점이 있다. 북한산의 아름다움을 담은 옛날민속집에서 서연자 대표와 그 정신을 이어가고자 하는 최광준·최지은 대표를 만났다.   글 이내경 기자 nklee@foodbank.co.kr  사진 이종호 팀장   


누룩+ 통해 자유로운 끼를 발산하고 있는 최광준 대표
최광준 대표는 옛날민속집에서 약 10년 동안 일하다가 와인&막걸리 퓨전 다이닝바 「nuLOOK+(이하 누룩+)」를 오픈하면서 독립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음식점을 운영하지만 ‘옛날민속집’이라는 큰 틀에서 꿈을 품고 있는 세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최광준 대표는 대학 졸업 후 EBS 방송국의 연출부에서 일했지만 자신이 돌아갈 자리가 가업이라면 보다 일찍 제대로 배워보겠다는 생각에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매장에 뛰어들었다. 본점 운영과 옛날민속집의 전반적인 경영을 담당했던 최광준 대표는 식재료 구매도 인근 식료품 매장에서 품목별로 농가와 직접 계약하거나 산지수매 등으로 실리 있게 조정하며 영업 수완을 발휘했다. 이때부터 주 식재료인 콩은 강원도에서 전량 수매하는 등 유통라인을 확보해 지금까지 좋은 품질의 콩을 수급하고 있다.
10년 동안 본점을 운영하면서 사업 확대에 대한 욕심도 있었다. 그러나 ‘전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옛날민속집은 그대로 두고 최 대표는 2011년에 새로운 브랜드를 계획했다. 막걸리에 고급화를 더한 와인&막걸리 퓨전 다이닝바 누룩+가 그 결과다. 누룩+는 기존의 콘셉트를 고수하기보다는 트렌드에 맞게 변화하는 ‘유연성’이 특징이다. 초기엔 고급 주류와 요리를 마리아주한 파인 주점 콘셉트를 표방하다가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포차로 전환, 소주와 맥주 등 저렴한 주류와 오돌뼈 같은 대중적인 안주 메뉴를 구성해 고객의 부담을 낮췄다. 또 벤치마킹을 통해 여러 흥미로운 시스템을 매장에 조금씩 적용하기도 하고, 메뉴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 대표는 “누룩+는 모든 직원에게 재료비의 제한 없이 메뉴를 개발할 기회를 제공한다”며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호평을 받은 요리는 메뉴로 구성하는 등 전통을 중시하는 옛날민속집과 달리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푸드스타일리스트에서 가업을 잇기로 결심한 최지은 대표
최지은 대표는 10년 동안 푸드스타일리스트로 활동했다. 전공인 시각디자인을 공부하면서도 어린 시절 한식당을 운영하는 어머니를 보고 자라 요리에도 관심을 두어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땄던 것이 연이 됐다. 푸드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다가 옛날민속집에 참여한 것은 2008년부터다. 푸드스타일리스트라는 일의 성격상 요리는 기본적으로 해야 하기에 요리공부를 병행하던 중, 힘에 부쳐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작은 힘이지만 옆에서 거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최지은 대표는 옛날민속집의 맛을 이으면서 고객 관리 등의 서비스 부문에서 음식점 운영을 돕고 있다.
서연자 대표와 최광준, 최지은 대표가 옛날민속집을 함께 운영한 시기도 이때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세 사람이 함께하니 초반에는 의견 충돌도 많았지만 끊임없는 소통으로 변화를 모색했다. 이때 단품으로만 판매하던 메뉴를 10% 할인된 가격의 세트 메뉴로 제공해 고객의 호의적인 반응을 끌어냈고 현재까지도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최지은 대표는 “이처럼 성공한 변화도 있지만 단골이 주를 이룬 상권과 전통 한식당이란 특징 때문인지 대부분의 시도가 뜻대로 이뤄지지 않아 어머니의 조언대로 ‘전통’에 무게를 많이 두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옛날민속집 기본, 변화도 꿈꾸는 2세 경영인
서연자 대표가 아들, 딸에게 강조하는 것은 “양심을 속이지 말고 현재 운영하는 점포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이런 가르침 밑에서 최광준, 최지은 대표는 옛날민속집의 전통을 이으면서 젊은 감각을 더 해 변화하고자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최광준 대표는 “어머니가 힘들어하면 언제라도 옛날민속집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현재 누룩+를 운영한 경험은 훗날 옛날민속집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파생된 새로운 브랜드를 선보이기 위한 나만의 외식 경영 수업”이라고 말했다. 최지은 대표도 “어머니가 하시던 그대로 운영하는 게 기본이지만 변화도 필요하다”며 “단골도 좋아할 만한 변화를 찾는 한 해를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지은 대표는 4년 동안 커피 공부를 하고 있어 음식과 커피를 함께 제공하는 음식점을 경영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한단다. 
10년 후의 옛날민속집의 모습을 그리며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는 최광준, 최지은 대표. 옛날민속집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새로운 변화와 시도를 어떻게 적절히 구현할지는 그들의 어렵지만 행복한 고민인 듯하다.  



야반 강민주 대표&야반 두 번째 이야기 정원혁 대표
행복한 밥을 짓는 야반의 정신을 잇다

오픈한 지 2개월 남짓, 경기도 광주 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위치한 「야반 두 번째 이야기」는 사실 청소년들을 위해 강민주·정원혁 대표가 마련한 밥집이었다. 분식이나 인스턴트 음식 맛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집 밖에서도 친구들과 부담 없이 들러서 든든한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지금은 의도했던 바와 다르게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되었지만 매일 따뜻한 밥을 짓는 정성만은 그대로다.
글 안정은 기자 netineri@foodbank.co.kr  사진 이종호 팀장   


어머니의 배려, 가장의 책임감이 일구어낸 공간
제철 식재료, 직접 담근 효소로 정갈하고 푸짐한 웰빙 한정식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한 야반의 강민주 대표의 아들 정원혁 씨가 또 다른 한상차림을 완성해냈다. 지난 11월 15일 문을 연 「야반 두 번째 이야기」는 어머니의 손맛과 아들의 야심 찬 기획이 결합해 탄생한 가정식전문점이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한 번만 왔다 가는 손님은 없을 정도로 음식 맛은 단연 으뜸이다.
그 배경에는 아침 일찍부터 음식을 준비하는 아들의 성실함도 한몫했다. 외동아들인 정원혁 씨는 「들밥」, 「야반」을 운영하는 어머니 밑에서 5년간 일을 배웠다. 일주일에 한 번 구리시장, 가락시장을 따라다니며 식재료를 고르고 구매하는 법부터 주방에서 각종 찬을 만들어 상에 내는 일, 홀에서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까지 도맡으며 단순히 사장의 아들이 아닌 직원처럼 일일이 식당 일을 익혔다. 
원혁 씨는 외식업에 뛰어들기 전, 패션디자인 전공을 살려 2년 정도 의류 관련 일에도 몸담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고 한다. 되레 어머니에게 음식을 하나씩 배우고 고객들이 기분 좋게 식사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희열과 행복을 느꼈다. 맛있게 먹고 간다는 말 한마디에 힘을 얻었고, 요리 실력도 발전하면서 조금씩 외식업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힘은 들지만 행복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행복한 직업이 외식업이라는 결론이 그를 외식 경영인의 길로 이끌었다.
20대 중반 이른 나이에 가정을 꾸린 원혁씨는 어머니의 일손을 도와드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함을 느꼈다. 한 아이의 아빠이자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지면서 좀 더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했다. 강민주 대표도 홀부터 주방까지 경력을 쌓아 온 아들을 보며 이제 충분하다는 생각에 자립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상권에 맞는 적절한 아이템을 구상하던 원혁 씨도 어머니의 든든한 격려와 지원에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투자해 야반 두 번째 이야기로 자신만의 첫 둥지를 틀었다. 
“남들은 2세 타이틀을 힘겨워하지만 외식업에 종사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랄 수 있어 오히려 행운”이라고 말하는 정원혁 대표. 그는 사실 야반에 흠이 갈까 봐 상호를 다른 이름으로 열고 싶었다고 말할 정도로 진정성과 겸손함을 갖추고 있었다.

1인을 위한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엄마밥집
야반이 가족식사나 단체모임으로 즐길 수 있는 분위기의 건강 한정식전문점이라면 야반 두 번째 이야기는 좀 더 캐주얼한 공간에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1인 밥상을 기본으로 한다. 특히 국과 메인 반찬에 많은 신경을 쓰며 식단구성도 매일 바꾸는 편이다. 어머니의 깊은 손맛을 능가할 수 없어 아직은 60%가 야반 식단 위주지만 원혁 씨는 고객층에 맞는 입맛을 공략하기 위해 열심히 연구 중이다. 
그가 매장을 운영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지역별 고객층의 반응이 다르기 때문에 매장 위치에 따라 음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점이다. 멀리서도 찾아오는 손님이 많은 야반에서는 산나물, 산채무침, 연근 등 건강한 찬들이 인기 있는 편이지만 야반 두 번째 이야기를 찾는 고객 대부분은 오징어볶음, 소시지채소볶음, 어묵볶음 등 익숙하면서도 매콤하거나 자극적인 음식들을 선호한다.
야반 두 번째 이야기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나면 이후에 직영형태의 매장을 차츰 늘려나갈 계획이다. 아직까지는 음식의 깊이를 마음으로 전하는데 한식만한 메뉴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매장의 콘셉트는 특정 분야에 국한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는 “결국 음식은 맛이 가장 중요하다. 음식의 깊은 맛은 사람의 마음, 정성인 것 같다”며 규모가 큰 식당보다 알차고 실속 있는 식당, 혼자와도 즐길 수 있는 심플한 메뉴들로 구성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겉멋이 든 음식보다 정성, 혼이 들어가 있는 밥장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강민주 대표. 그녀는 아들이 밥장사를 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고 보람을 느끼도록 앞으로도 격려할 생각이다. 제철 식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고객에게 대접하다 보면 좋은 고객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돈보다 소중한 자산을 벌게 된다고 말하는 강 대표는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는 공간이 아니라 장사의 어려움도 겪어보고 부족한 부분들을 하나씩 채워가면서 단계적으로 커가길 바란다”며 아들이 내디딘 첫 걸음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2016-01-29 오전 01:26:46 (c) Foodbank.co.kr
quickmenu
월간식당 식품외식경제 한국외식산업경영연구원 한국외식정보교육원 제8회 국제외식산업식자재박람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