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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진국이요? 진흙탕 인생 30년에서 얻은 진주 같은 브랜드죠  <통권 375호>
(주)섬김과 나눔 손석우 대표
관리자 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16-06-03 오전 11:13:41

얼굴에 쇳가루가 잔뜩 앉아 눈을 뜰 수가 없다. 온몸은 먼지투성이에 사방은 피선과 철강으로 덮여있고 폐품은 하늘 높이까지 쌓여있다. 10년 전 여름, 손석우 대표는 3500평 어마어마한 크기의 고물상 한가운데 서 있었다. 열손가락으로 다 셀 수 없을 만큼 계속되는 실패,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변수들로 그의 몸과 마음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30여 년간 진흙탕 속을 헤매던 그가 드디어 진주를 찾았다. 프리미엄국밥 브랜드 「The진국」으로 손석우 대표는 처음으로 인생의 봄날을 맞고 있다. 42년 인생 중 팔 할을 벼랑 끝에 서있었던 그에게 The진국은 단순한 사업 그 이상의 의미다.  글 황해원 기자 banana725@foodbank.co.kr  사진 이종호 팀장   




만인이 사랑하는 명품국밥!
「The진국」의 시작은 2011년 여름이다. (주)섬김과 나눔 법인을 설립한 후 경기도 성남에 105㎡(32평) 매장을 열었다. 수육국밥과 한국인의 소울푸드인 순대국밥을 중심으로 얼큰국밥과 한방홍차국밥, 수육보쌈, 수육전골 등을 판매했다. 국밥을 선호하는 40~50대 중년층뿐 아니라 젊은층과 주부 고객도 자주 찾았고 주말에는 연인이나 가족단위로 방문해 주류와 함께 수육보쌈과 수육국밥을 먹고 가기도 했다. 그해 직영 매장을 두 곳 더 오픈했다.
‘국밥집’ 하면 2대, 3대가 이어가고 있는 유서 깊은 집이거나 허름한 노포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The진국은 국밥 아이템으로 젊은층을 공략한 것이 특징이다. 육수나 수육, 순대 등 국밥에 들어가는 재료가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다. 비계 대신 살코기 중심의 목살과 목전지 부위를 부드럽게 삶고 육수도 세 번 끓이는 동안 기름을 완벽히 제거해 눅눅하거나 느끼하지 않다. 
그래서 여성고객을 비롯한 젊은 세대부터 중년층, 노년층까지 호불호 없이 즐기는 데다 부산물을 선호하지 않는 이들도 부담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실제로 전국의 The진국 매장들은 주로 주류전문점이나 맛집들이 몰려 있는 대학가나 번화가에 입점해있고 계절 상관없이 꾸준하게 높은 매출을 유지한다. 




확장보단 안정, 성공에 대한 유혹 버려야
The진국은 현재 직영점 포함 44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한 달 내 많게는 20~30개 가맹점을 오픈하며 볼륨을 키워가는 여느 브랜드들에 비하면 5년간의 실적치곤 소박한 편이다. 그러나 손석우 대표는 “급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이야기한다. 
“외식업으로 먹고사는 일이 그리 만만하고 쉬운 일이 아니다. 신메뉴를 뚝딱 만들어 팔고 반응이 좋으면 2호점, 3호점 쭉쭉 오픈해가며 마치 도화지에 그림 그리듯 가맹사업을 할 수는 없다. 가맹점주들의 생계가 달린 문제다. 사업 확장보단 기존 가맹점주들이 얼마만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는지, 영업 매뉴얼에 적응을 못 하거나 매출이 저조하진 않은지 등을 지속적으로 살피고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신규 출점이 생길수록 그만큼 관리해야 할 품이 늘어나는 것인데 빠르다고 좋을 게 없다.”
흔히 가맹점을 모집하기 위해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본사의 시스템만 잘 이수하면 외식업 경험이 없는 초보자도 쉽게 운영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러나 손석우 대표는 오히려 가맹점주들에게 ‘외식업은 고단하고 힘드니 잘 생각해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장사 경험과 조리 기술이 전무할수록 외식업 운영이 힘든 건 당연하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132~165㎡(40~50평) 매장 기준으로 하루 300명 이상 고객을 응대하고 내부적으로는 6~10명의 직원을 관리하며 매출까지 신경 써야 하니 보통 인내심 갖고는 힘든 게 외식업이다.”
현재 The진국 매장 중에는 월 매출 1억원 이상인 곳들이 많은데 7000원짜리 국밥, 냉면 한 그릇씩 팔아 그 정도 매출을 달성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 손 대표의 설명이다. 
“오픈 후 6개월은 죽었다 생각하고 고생해야 한다. The진국으로 잘 나가는 국밥집 사장님이 될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다 잃게 될 수도 있다.”



4억원 빚, 온 가족 야반도주에 고물상 허드렛일까지…
진흙탕 같았던 30년
The진국 매장을 오픈하고 싶다며 찾아오는 예비 점주들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는 말부터 꺼내니 초창기만 해도 본사 직원들이 의아해했을 정도다. 그러나 손 대표는 사업 실패 앞에서 가진 걸 다 잃고 돈도 사람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을 때의 고독과 절망감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늘 가난했다. 서울 태생에 자란 건 부산, 부친의 사업 부도로 다섯 번이나 지역을 옮겨 다녔다. 한밤중 자다 일어나 밤 열차를 타고 새벽까지 달렸던 적도 있다. 야반도주였다. 빚쟁이들에게 쫓겨 다니는 통에 그에겐 유년시절의 추억도, 그 흔한 죽마고우도 없다. 집 근처 교회에서 먹고 자며 친구를 사귀는 동안 목회자의 길을 생각한 게 전부였다. 
2001년 군 제대 후 판교에 있는 198㎡(60평)짜리 단층 건물을 얻었다. 부친이 5년간 임대해줬던 자리였다. 고깃집에 한정식 코스를 접목한 한식당을 오픈하려고 준비하다 하루 전날 엎었다. 메뉴 전체를 담당했던 조리장이 전날 술을 마시고는 그 다음날까지 말썽을 부렸다. 한동안 한식 전문 조리장을 구하기 위해 구인 광고를 올리고 수소문해보기도 했지만 쉽지 않았다. 
외식업이 처음인 데다 주방일과 요리에는 더더욱 문외한이었던 손 대표는 앉은 자리에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1600만원 어치의 재료를 하루아침에 날렸다. 
얼마 후 동네 주민의 추천으로 일식집을 열었다. 일식당 경험이 있는 지인에게 자문을 구해 일식 스타일의 룸 7개를 만들고 고가의 사시미와 스시를 팔았다. 근처 한국도로공사 본사를 비롯한 기업들이 몇 있어 법인카드를 사용하는 단체회식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하루 평균 300만원 이상 매출을 유지할 만큼 장사가 잘 됐다. 그러나 원재료 코스트만 40% 이상, 일식 전문 조리장 6명을 운용하는데 들어가는 인건비도 만만치 않아 매출 대비 순익이 아쉬웠다. 게다가 법인카드 접대비 상한제도가 생기면서 단체회식 고객이 절반 이하로 줄어 계속되는 적자로 또 한 번 문을 닫았다. 이후 한정식전문점, 황태요리전문점, 대나무통밥전문점, 등갈비전문점, 홍합밥전문점 등 업종을 여러 번 바꿔가며 운영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임대료 100만원도 제대로 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결국 건물주에게 쫓겨나듯 매장을 넘기고 나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 사업이 또 한 번 부도가 났다. 내 앞으로 4억원의 빚이 생겼다. 무일푼으로 쫓겨난 통에 어림짐작도 안 될 만큼 터무니없는 금액이라 실감도 안 났다. 그런데 죽지 않고서야 어쨌든 사는 동안 갚아야 할 돈 아닌가. 죽기 살기로 일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내와 아이들을 본가에 맡기고 1만1570㎡(3500평) 규모의 고물상에 들어갔다. 창고 한편에 자리를 만들어 생활했다. 아침에 눈 뜨면 전선 벗기는 작업부터 했다. 구리나 철통 3~4톤씩 들어오면 무게를 늘리기 위해 저녁 내내 흙을 붓고 절반으로 찌그러뜨려 창고에 쌓았다. 고물상을 오고 가는 노동자들은 창고를 화장실처럼 사용했다. 
“고물상에 있는 이들 대부분이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전쟁처럼 일하고 서로를 헐뜯고 무시한다. 온갖 인격 모독에 가슴에 구멍이 나는 기분이었다. 여기저기 쇳가루와 먼지투성이에 폐품에서 나는 악취까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잠깐 눈 붙이려고 창고로 가면 대소변 냄새가 여기저기서 났다. 사람의 삶이 아닌 것 같아 밤새 울었다.”
살기 위해 악에 받쳐 일했고 4년 만에 4억원의 빚을 다 갚았다. 중간 관리자급까지 올라가면서 이제 좀 승승장구 하나 싶었는데 갑자기 총 책임자에게 고물상을 나가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피폐한 환경 속에서 죽을 힘 다해 살아남았건만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다니. 한동안 절망감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 후로 9개월간 화물차를 운전하며 고물과 파지를 팔러 다녔다.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고 인상이 붉으락푸르락해져서 가족도 나를 못 알아볼 정도였다. 하루는 친동생이 찾아와 26㎡(8평)짜리 돈가스집을 오픈했으니 형이 대신 맡아 달라고 하더라. 고생만 하는 내가 안쓰러워서였다. 그 길로 동생이 운영하는 돈가스집으로 갔다.”
돈가스와 쫄면을 한 접시에 담아내는 ‘돈쫄’ 메뉴를 구성해 대박을 냈다. 매장 앞은 매일 웨이팅 손님들로 가득 찼다. 그러나 테이블 4개 매장에서 아무리 회전이 빨라도 재료비와 기타 고정비를 제하면 늘 남는 게 없었다. 월세가 빠듯해 결국 결혼반지와 목걸이까지 팔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자 동생과 상의 후 매장을 접었다. 




The진국 론칭으로 인생 제2서막 열다
The진국을 론칭하기 전 그는 1년간 충남 천안에 있는 국밥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근무했다. 지인이 대표로 있던 브랜드였다. 한동안 가맹사업을 공격적으로 하더니 20억원이 벌리자 대표는 갑자기 부산으로 내려가 버렸다. 본사는 하루아침에 공중분해 됐고 가맹점주들은 매장만 덩그러니 쥐고 있는 상태가 됐다. 그는 부산으로 본사 대표를 찾아가 ‘다시 본사로 돌아와 가맹점을 봐 달라’고 무릎 꿇고 사정까지 했다. 그러나 부산에서 이미 다른 가맹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엉망진창인 프랜차이즈 시스템에 화가 난 손 대표는 ‘나라도 나서서 정말 좋은 브랜드와 본사 시스템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프랜차이즈를 위한 창업 준비에 돌입했다. 
2011년 2월부터 그는 명품국밥 브랜드를 준비했다. 화학조미료와 분말가루로 어설프게 육수 맛을 흉내 내는 게 싫어 소·돼지 사골과 양지고기, 감칠맛을 더하기 위해 닭 뼈와 약재를 넣고 육수를 우려냈다.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구현하기 위해 세 번을 끓여 기름기를 완벽하게 걸러냈다. 끈적거리지 않고 라이트한 데다 고기와 사골을 함께 우려내 국물이 뽀얗고 담백했다. 육수 매뉴얼을 완성한 후 경기도 용인에 임대공장부터 마련했다. 
“외식업을 번번이 실패하는 동안 가장 큰 문제는 주방 인력에 있다는 점을 파악했다. 전문 주방장 없이도 메뉴 구현이 가능하도록 물류 생산시설과 레시피, 운영 매뉴얼 구축에 주력했다.”
The진국의 메인인 수육국밥에는 수육 100g이 들어가고 순대국밥에는 수육 50g과 순대 5개, 얼큰국밥은 순대국밥에 매운 양념을 넣고 얼큰하게 끓여낸다. 한방홍차국밥은 약재와 한방홍차 티백을 넣어 웰빙 한식의 경쟁력을 더했다. 
국밥용 수육은 살코기 위주의 목살과 목전지를 사용하고 안주용 수육보쌈을 커팅하고 남은 자투리도 국밥에 넣어 식재료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있다. 국밥 아이템 특성상 하절기엔 매출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파악, 직화불고기와 냉면을 동시에 주는 세트메뉴를 저렴하게 구성해 매출 밸런스를 맞추도록 했다. 저녁 시간에는 수육보쌈이나 수육전골 등의 안주메뉴로 주류 매출을 높이고 오후 시간대에는 주부 고객을 5~10팀 정도 받을 수 있도록 직화구이정식과 수육백반정식도 구성했다.
The진국을 론칭했던 첫해 3억2000만원 매출을 달성했고 2년 후 가맹점과 직영점을 각각 30호점, 10호점까지 전개하며 연매출을 68억원까지 올렸다. 2015년에는 연매출 90억원까지 상승, 올해 4월 중국 웨이하이 1호점을 오픈하며 세계진출을 위한 출사표를 던졌다. 





탄탄한 가맹사업 바탕으로 B2C시장 공략
손석우 대표의 최종 목표는 외식산업과 식품산업을 아우르는 대기업을 만드는 것이다. 작년에는 식품회사 ‘케이즈푸드’를 설립하고 올해 3월에는 경기도 이천 4958㎡(1500평)부지에 1652㎡(500평) 규모의 공장도 세웠다. 
축산물가공품 제조장과 식품제조공장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The진국에서 특허받은 육수를 비롯해 각종 양념과 소스 등 10여 종의 핵심 재료를 생산하고 있다. 글로벌 외식·식품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전초기지를 마련한 셈이다. 
또한 완성도 높은 메뉴 구현을 위해 푸드연구소를 별도로 두고 기존 메뉴는 끊임없이 검토·보완하며 연령별 고객층 니즈에 맞는 신메뉴도 지속적으로 연구·개발하고 있다. 
손석우 대표는 “본사 법인명인 ‘섬김과 나눔’처럼 고객을 섬기고 가맹점주와는 나누며 동행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다”며 “가맹점주들이 80세까지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브랜드력과 물류 시스템을 더욱 공고히 다져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녹슬어 퀴퀴한 냄새가 나는 폐기물 사이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인생의 봄날이나 이상을 그려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실패는 정말 무서운 일이다. 그러나 지옥 같은 진흙탕을 견디고 나면 그다음 차례엔 반드시 진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 과정이 너무나 억척스러웠지만, 대신 사람에 대해 깊게 이해하는 능력이 생겼고 어떤 상황이든 받아들이고 헤쳐 나가는 방법을 알게 됐다. The진국 매장을 오픈하기 위해 본사를 찾아오는 예비 점주들 중에는 나처럼 여러 번 사업 실패를 겪고 절망에 빠져 있는 분들이 있다. 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인생의 긴 터널이 있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얼마만큼 참고 나아가느냐에 따라 그만큼의 빛이 주어지는 것 같다.”
뒤늦게 찾은 인생의 봄날이라 그런지 그는 앞으로가 더욱더 기대된다. 그래서 어딜 가든 늘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당신도 할 수 있다’고.  


 
2016-06-03 오전 11:13:41 (c) 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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