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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열치열 탕반음식의 화룡점정 육개장  <통권 376호>
관리자 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16-06-29 오전 04:45:03

젓가락으로 고기 한 점 건져 올리면 따라오는 건더기만 한 움큼이다. 고사리, 토란, 숙주나물, 대파까지 입속에 넣고 씹다 보면 각각의 채소가 지닌 식감과 풍미가 고소한 양지 고기와 한데 섞여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고추기름 베이스의 얼큰한 국물 한 입까지 떠먹으면 뱃속이 든든해지면서 왜 우리 선조들이 육개장으로 몸을 보했는지 알 수 있다. 육개장은 한국의 전통 탕반 중 채소와 육류의 밸런스가 잘 맞으면서 얼큰하고, 파에서 우러나는 은근한 단맛이 매력적인 음식이다. 냉면의 계절이라고? 천만에. 여름은 이열치열 육개장의 계절이다.
글 황해원 기자 banana725@foodbank.co.kr  사진 황해원 기자·업체 제공




순종이 육개장을 먹고 눈물을 흘린 까닭
“이제야 알았습니다. 순종임금이 왜 이 음식을 먹으며 눈물을 흘렸는지… 이 소고기 탕에는 조선의 모든 것이 담겨있습니다. 평생 묵묵히 밭을 가는 소는 조선의 민초요. 고추기름에는 맵고 강한 조선인의 기세가, 어떤 병충에도 이겨내는 토란대에는 외세의 시련에도 굴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고사리에는 들풀처럼 번지는 생명력이 담겨있습니다. 나라를 잃고 상심한 임금에게 대령숙수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조선의 정신을 아뢰었던 것입니다. 순종임금은 대령숙수의 그 마음을 읽은 것이지요. 그래서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영화 ‘식객(食客)’의 대사다. 조선의 마지막 황제였던 순종이 나라 잃은 슬픔에 식음을 전폐하고 있을 때 대령숙수가 올린 육개장 한 그릇을 눈물을 흘리며 남김없이 다 먹었다는 일화다. 
이처럼 조선의 왕까지도 사랑했던 육개장은 그 역사만 100년이 넘는다. 곰탕, 설렁탕에 이어 ‘세기’의 역사를 지닌 몇 안 되는 한국의 전통 탕반음식이다. 현재는 고사리와 숙주나물, 토란, 대파 등의 채소와 소고기를 푸짐하게 넣은 시뻘건 장국을 육개장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육개장은 개장(狗醬)에서 비롯됐다. 
지금도 복날만 되면 보신탕을 챙겨 먹는 것처럼 선조들도 마찬가지 보양식으로 개장, 즉 보신탕을 즐겨 먹었는데 삼국시대 유적지에서도 개 뼈가 자주 발견될 정도로 우리 민족의 보신탕 사랑은 각별했다. 개장을 유별나게 좋아했던 지역은 경상도다. 안동의 양반 집안에서도 잔치나 경사가 있으면 개를 잡아 개장국을 끓여 먹었다. 개장 철에는 당연히 개가 귀했다. 개가 품귀현상을 보일 때마다 마을 어른들은 병들거나 나이 든 소를 공동 도축해 국을 끓였는데 그게 육개장의 시작이다. 현대에 와서도 개고기 식용에 대한 찬반이 갈리는 것처럼 당시에도 개고기를 거부하는 일부 양반가들에 의해 개고기 대신 소고기를 넣은 육개장을 만들어 먹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로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는 ‘개고기가 식성에 맞지 않는 자는 소고기로 대신하고 이를 육개장이라고 하여 시식을 빠트리지 않았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1929년 종합잡지 <별건곤>에서는 ‘남도지방 시골에서는 ‘사돈양반이 오시면 개를 잡는다’고 할 정도로 개장이 여간 큰 대접이 아니다. 이 개장은 기호성과 개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정까지 살피고 또는 요사이 점점 개가 귀해지는 기미를 엿보아서 생겨난 것이 곧 육개장이니 간단하게 말하자면 쇠고기로 개장처럼 만든 것인데(…생략)’과 같은 내용도 엿볼 수 있다. ‘개를 대신한 소고깃국’이라고 해서 ‘대구탕(代狗湯)’으로 부르기도 했고 일부 양반가에선 소고기 대신 닭고기를 넣은 ‘닭개장’을 즐겨 먹기도 했다. 



‘진짜’ 육개장의 시작은 대구
고추기름이 동동 떠있는 맵고 얼큰한 육개장은 일제시대 이후 대구에서 시작됐다. 그 전까지만 해도 개장이나 육개장은 된장 베이스 국물이었고 얼큰한 맛을 내기 위해서는 추어탕처럼 산초가루를 가미하는 정도였다. 고춧가루가 한국에 처음 들어오면서 문헌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614년 무렵. 풍물지리서인 <지봉유설>에서 고추에 대한 기록이 처음 발견됐다.  물론 1910~1940년 무렵까지는 대구에서도 매운 육개장을 먹지 않았다. 고추를 디딜방아나 돌확에 넣고 빻았기 때문에 고추 입자가 굵어 제대로 된 고추기름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말 때만 해도 대구읍성 근처 육개장은 지금만큼 붉지 않았다. 1942년 오픈한 대구의 대표적 해장국집인 ‘청도집’도 고춧가루가 거의 배제된 우거지해장국 스타일의 국밥을 냈다. 일제시대 이후 고추를 분말처럼 갈 수 있는 고성능 기계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처럼 매운 육개장이 완성됐다. 
대구 육개장의 특징 중 하나는 붉고 걸쭉한 고추기름이다. 국이 끓기 시작하면 녹인 소기름과 고춧가루로 고추기름을 만들어 넣는다. 칼칼하면서 약간은 기름진 듯한 묘한 매운맛이 돈다. 조선시대 경상감영의 정문 격인 대구 영남제일관 앞거리에 매운 육개장을 만들어 파는 집들이 생기면서 대구식 육개장 인프라가 형성됐고, 현재의 육개장 모습으로 완성된 것이다. 





제주 고사리육개장 별미, 서울식 육개장은?
서울의 경우 1960년대까지 고춧가루가 많이 들어간 매운 육개장은 등장하지 않았다. 개성 음식의 영향 탓이다. 가정에서는 무와 국간장, 소금을 약간 넣어 간을 맞춘 소고기 탕국을 끓여 먹는 정도였고 오히려 사골과 된장 베이스 국물에 선지와 우거지를 넣은 해장국이나 설렁탕을 선호했다. 서울 종로 ‘청진옥’은 전형적인 서울 해장국을 내는 대표적인 곳이다. 화끈하게 매운 육개장은 대구에서나 통했다. 
서울식 육개장은 양지머리와 사태를 소양 등과 함께 삶아 진간장과 다진 파, 마늘, 참기름, 깨소금, 후춧가루 등으로 양념한 후 장국에 넣어 한소끔 끓여 만든다. 대구식 고추기름 대신 고춧가루와 참기름을 섞어 만든 양념을 넣는 것이 특징이다. 1980년대 들어서 서울 강남터미널과 서울역 앞 식당가에서는 육개장에 당면과 후춧가루, 그리고 달걀을 풀어 넣기도 했다. 칼칼한 국물을 선호하는 이들은 다소 퍽퍽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오래전부터 이 맛에 길들여진 단골들은 부드럽고 묵직한 맛에 찾는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중구 70년 전통의 ‘우래옥’이다.
제주도는 파와 숙주 대신 고사리를 갈아 죽처럼 걸쭉하게 끓인 고사리육개장을 먹는다. 특이한 점은 소고기 대신 돼지고기로 육개장을 끓인다는 점이다. 
육개장 형태의 탕반음식은 안타깝게도 대구와 서울, 제주도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역사를 찾아볼 수 없다. 전남 나주는 나주곰탕, 목포는 홍어애국, 전북 전주는 오모가리탕, 서해안 지역은 우럭젓국, 부산은 돼지국밥, 울릉도는 꽁치미역수제비국, 북한에서는 순대국밥이나 온반 등 각 지역 향토 재료를 활용한 전혀 다른 형태의 탕 요리를 즐겼다. 



‘육개장 춘추전국시대’ 육개장 바람 다시 불어…
지역별 향토음식과는 별개로 육개장 맛집은 전국적으로 골고루 포진해있다. 서울은 ‘우래옥’과 ‘한일관’, ‘부민옥’이 대표적이다. 최근 등촌동 ‘명랑식당’도 미식가들 사이에서 각광 받고 있는데 명랑식당은 대전 매장이 본점으로 이미 전국구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다. 경북 안동 신시장 내 위치한 ‘옥야식당’은 육개장 베이스에 선지를 넣은 ‘해장국’ 스타일의 육개장으로 사랑받고 있으며 충남 천안의 ‘온달네식당’은 잘게 찢은 소고기와 떡심을 푸짐하게 담아낸 육개장에 천년초 분말을 넣고 지은 쌀밥을 함께 내는 곳으로 유명하다. 
돼지국밥의 발상지인 부산에도 유서 깊은 육개장전문점이 있다. 60년 전통의 ‘태화육개장’이다. 이 집은 토란대나 고사리 대신 숙주나물과 소고기, 소면을 넣고 고추기름 대신 고춧가루를 사용해 칼칼한 국물의 독자적인 육개장을 구현한다. 
대구는 육개장의 본고장인 만큼 다양한 개성의 육개장집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대파와 소고기가 푸짐하게 들어간 정통 육개장전문점으로는 ‘옛집’과 ‘온천골’, ‘진골목’, ‘벙글벙글식당’이 있고 따로국밥 스타일로는 ‘국일따로국밥’과 ‘교동따로국밥’, ‘한일따로식당’, ‘대덕식당’등이 있다. 우거지와 선지가 메인이 되는 대덕식당의 육개장은 엄밀히 따지면 ‘선지해장국형 육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중에는 사골육수를 바탕으로 하는 곳도 있고 일반 반가의 소고깃국처럼 양지머리 육수로 국을 끓이는 집도 있다. 벙글벙글식당은 ‘파개장’이라고 불릴 만큼 큼직하게 썬 대파를 수북하게 담아낸다. 요즘은 이러한 파개장 스타일의 육개장이 대세다. 재료 가짓수를 파와 소고기로 단출하게 구성한 ‘선택과 집중’형 육개장 브랜드들이 프랜차이즈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다. 얼큰하면서도 은은하게 도는 단맛으로 젊은층을 공략한 것이다. 
각 지역별 소문난 육개장 맛집 외엔 아직까지 푸짐하고 완성도 높은 육개장을 제대로 내는 육개장집이 많지 않다. 그만큼 경쟁력 있는 블루오션 아이템이라는 이야기다.
육개장은 다양한 나물과 채소를 넣고 끓여 식감이 살아있고 국물이 느끼하지 않아 많이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한국 사람은 맵고 얼큰한 국물에 대한 선호가 반드시 있다. 육개장만의 분명한 강점이다. 오죽하면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도 육개장을 먹고 눈물을 흘렸을까. 
 

 
2016-06-29 오전 04:45:03 (c) 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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