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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과 소비자의 건강한 삶, 그 중심에 선 우리 쌀 지킴이  <통권 377호>
칠갑농산(주) 이능구 회장, 이영주 대표
관리자 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16-07-25 오전 02:16:29

산골 자락에서 생산된 작은 식품 회사의 건강한 먹거리가 쿠팡, 11번가, 카카오톡 등 온라인 유통 채널은 물론 20여 개국 수출을 통해 점차 시장을 넓혀 가고 있다. 쌀 가공 식품 산업의 대부 이능구 회장이 30여 년 일궈 온 ‘칠갑농산’은 이영주 대표를 비롯한 2세들의 가세로 더 높이 날기 위한 힘찬 날갯짓을 시작했다.   글 이은영 기자 eylee@foodbank.co.kr  사진 이종호 팀장, 업체 제공



우리 쌀 지킴이, 쌀 가공 산업의 물꼬를 트다
이능구 회장의 하루는 깊은 밤 1시, 한 시간에 걸친 근력 운동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충남 청양의 칠갑산 자락에 공장을 짓던 당시 도와줄 사람이 달리 없어 매일같이 청양 현장을 오가던 중 몸에 무리가 오면서 혈전이 생겼다. 20년 가까이 치료를 받았고 운동도 하기 시작했다. 
이 회장은 우리나라의 쌀 가공 산업을 이끌어 온 장본인이다. 국내에 슈퍼마켓이 등장하기 시작하던 때 서울에서 식품 유통업에 종사하고 있던 그는 소비자가 물건을 골라 담아 계산대로 가져오는 슈퍼마켓 시스템이 생소했다. 식품 제조업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좋은 물건을 잘 만들어 시장에 내놓으면 소비자가 직접 고르는 슈퍼마켓에서 잘 팔릴 것 같았다. 무엇보다 식품위생법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았던 시절, 믿을 만한 제품을 만들고 싶었다. “지금의 가락시장인 도매 시장이 용산에 있던 때였다. 쌀이 귀했던 시절이긴 했지만 국수, 떡볶이가 모두 밀가루 제품인 걸 보면서 쌀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떡까지 밀가루로 만들었으니… 그래도 전통음식은 쌀로 만들어야지 하지 않나.” 충남 청양이 고향인 이능구 회장은 농민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농사를 지으며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어린 나이에도 안타까웠던 마음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이 회장은 1981년 쌀을 이용한 제품 개발로 쌀 소비량을 늘려야겠다고 마음먹고 본격적으로 제조업에 착수했다. 한 번은 농림부에서 김 모 과장이 찾아와서는 쌀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며 사정을 털어놓았다. 내용인 즉 그동안 우리나라 쌀 수확량이 적어 정부에서 만들어 낸 다수확품종 통일벼가 남아돌아 골칫거리라는 것이었다. 통일벼는 수확량은 많았어도 밥을 지으면 맛이 없어 일반 쌀에 비해 값이 절반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먹지를 않았다. “1986년의 일이다. 안산 창고에 쌓인 통일벼 수백만 톤을 개 사료로 쓸 뻔했다. 벼 껍데기를 벗겨서 쌀로 저장하면 수분이 다 날아가 버리는데, 쌀 저장 기술도 없이 벼 껍데기를 벗겨서 저장했던 거다. 물에 넣으면 씻을 수도 없이 퍼석대기 때문에 먹을 수도 없다. 버리게 생겼으니 개 사료로 써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당시 정서상 국민들은 배고프게 살고 있는데 남아도는 쌀이라고 개 사료로 쓸 수는 없었다. 
이 회장은 농림부 직원에게 쌀 가공 식품을 만들어 보라고 권했다. 물론 당장에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므로 떡볶이 등 밀가루 제품을 쌀로 대체하고 쌀 가격도 밀가루 가격으로 맞춰줄 것을 주문했다. 
그렇게 쌀 가격을 절반으로 인하해 떡과 떡볶이 등 쌀 가공 제품을 만들었지만 문제는 맛에서 생겼다. 밥으로도 안 해 먹던 통일벼였다. 결국 이 회장은 정부에 통일벼 쌀 생산을 중단하고 일반미를 심을 것을 권했다. 그의 말은 받아들여졌고 통일벼 생산은 중단되었다. 
1990년엔 1800만 석의 재고미 소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석탑산업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전 국민이 3개월가량 먹을 수 있는 비상식량으로 780만 석의 비축미가 항시 준비되어 있었는데 재고미 1800만 석은 비축미의 두 배가 넘는 양이었다. 
대부분의 식품이 그렇지만 쌀은 시간이 갈수록 맛도 떨어지고 냄새가 나 상품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정부에서는 갖은 방법으로 쌀 가공 산업을 장려했고 이 회장은 그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재고미를 소진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었다.  





99.7% 제품 자체 생산, 소비자 인식을 높이다
사각 시루에서 수작업으로 떡을 만들던 옛날과 달리 지금은 기계로 떡을 생산할 뿐 아니라 포장 작업까지 자동으로 진행된다. 옛날과 비교하면 천지개벽이다. 떡류로 국한되어 있던 쌀 가공 식품도 이제는 막걸리, 미분류 등 다양한 품목으로 확대되어 소비자들의 식탁 위에 오르고 있다. 
밀가루 가공 식품들의 주원료를 쌀로 전환하여 쌀 가공 식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던 칠갑농산도 지금은 500여 종의 제품 전 품목에 쌀을 사용하고 있다. 쌀을 주원료로 한 제품이 아니더라도 칠갑농산 제품은 원료의 20~30%는 쌀을 사용하고 있는데 보리나 밀과는 특성이 달라 제품에 부드러움과 감칠맛을 더하기 때문이다. 
사실 쌀은 가공성이 떨어져 제품 생산에 어려움이 있다. 글루텐 함유량이 많은 밀가루는 제품을 만들어도 풀어지거나 퍼지는 일이 없지만 쌀 가공품은 끈기가 떨어진다. 특히 한국인은 쫄깃한 식감을 좋아해 기술력 없이 쌀 사용만으로 입맛을 맞추기가 어렵다. 
이능구 회장은 “제대로 된 쌀 가공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채 무분별하게 생산해 내는 제품들이 오히려 쌀 가공 제품에 대한 인식 전체를 흩트리고 있다”며 “쌀 가공 산업과 농촌을 살리기 위해서는 제품 검증부터 철저하게 시행하여 상품성이 있는 것은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해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칠갑농산의 경우 제품의 99.7%를 직접 생산하고 있지만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쌀 가공 식품의 상당량은 OEM 방식으로 생산되고 있다. 그만큼 쌀 가공 식품과 관련한 뚜렷한 규제와 품질 검증 기준이 마련되지 못한 현실이 그는 못내 안타깝다.
칠갑농산은 쌀 가공 식품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높이기 위해 그동안 지속적으로 제품 개발에 주력해 왔다. 특히 국수, 떡국과 같은 주력 상품은 품목별 종류가 50여 가지에 이른다. 가정식 조리용과 외식업소용이 별도로 나오고, 양념장, 육수 등 소비자의 편리성을 더한 품목을 개발하다 보니 현재 생산되고 있는 제품이 500여 종에 이르렀다. 특히 직접 개발한 주정살균법은 인체에 무해한 주정을 제품에 코팅 처리해 외부의 세균 침입을 막는 방법이다. 방부제 없이도 제품의 유통기한을 3~5개월까지 늘렸다. 
“유통기한은 세균과의 싸움이다. 세균 때문에 음식이 변하고 상하는 것이다. 칠갑농산 제품들은 무균 포장은 물론 물 관리, 냉각수 시설 등을 통해 세균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 개발은 건강한 먹거리를 만드는 칠갑농산의 방식이다. 






삼남매, 아버지의 삶을 빛내는 2세들
“어렸을 때 집에 떡방이 있었다. 자루에 담긴 떡이 오면 저울에 달아 봉지에 담고 촛불로 봉지 입구를 가열해 봉하는(실링) 일을 도왔다. 우리 삼남매가 자라 온 모습이다. 많이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이영주 대표의 시선은 줄곧 아버지인 이능구 회장을 향했다. 회계학을 전공한 이 대표는 이 회장의 차녀로 12년의 미국 생활을 접고 가업을 잇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대표가 합류하고 7년 가까이 지나며 회사는 더 성장했고 체계도 갖춰졌다. 
가업을 잇는 일은 이 대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각자의 전공을 접목해 쌀 가공 산업을 지켜가는 것이 어떻겠느냐”하는 이능구 회장의 뜻이 있었고 삼남매가 모두 응한 것이다. 미생물학을 전공한 큰딸과 유명 법률사무소의 M&A 전문 변호사로 있던 아들까지 각자의 위치에서 하던 일을 내려놓고 아버지가 일궈 온 쌀 가공 산업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 모였다. 이영주 대표는 “그간의 아버지의 삶에 대해 누구보다 자식들이 잘 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까지 일궈 온 아버지 삶을 우리가 더 가치 있고 빛나게 해 드리고 싶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감사 업무를 담당했던 이 대표는 당시 해외 지사들을 감사하는 과정에서 쌓인 경험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한류, FTA 등 유리한 수출 여건이 형성된 상황에서 칠갑농산의 수출 부서를 확대, 성장시켜 나갈 계획이다. 
이영주 대표는 “우리 2세들이 해야 할 부분은 특히 수출에 주력하고 유통 시장을 넓히는 일이다. 그동안 구식 구조에 의존하고 있었다면 이제 새로운 유통 구조에 빨리 적응하고 쌀 가공 산업을 선도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사실 지금은 그동안 활성화되지 못했던 온라인 시장 매출이 오프라인 매출 규모를 넘어선 상태다. 그리고 종국에는 유통 마진이 쏙 빠진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제품이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착한기업·착한식품, 농민과 소비자의 행복을 잇다
칠갑농산은 ‘착한기업, 착한식품’을 표방하고 있다. 착한 먹거리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기준에 대해 묻자 이능구 회장은 거침없이 ‘좋은 원료’라고 말했다. 좋은 원료로 만들어야 맛도 건강도 좋은 식품이 된다는 것이다. 칠갑농산의 공장이 경기도 파주와 충남 청양의 칠갑산 자락에 위치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산골에 왜 공장을 지었을 것 같은가. 맹모삼천지교라고, 맹자 엄마가 아들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하며 삶을 살았던 것처럼 칠갑농산도 좋은 식품을 만들기 위해 오염되지 않고 깨끗한 곳을 찾아가게 된 것이다.” 
쌀 가공 산업에 종사한 지도 벌써 48여 년. 쌀 소비 촉진과 함께 농촌 살리기에 힘써 왔지만 이능구 회장은 아직 갈 길이 구만리 같기만 하다.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도는 26%밖에 되지 않지만 그중의 80%를 쌀이 차지하고 나머지는 잡곡이 차지한다. 그나마 대다수 잡곡도 수입되고 있어 자급이 제대로 안 되는 실정이다. 농민들이 타산이 안 맞아 농사를 놓아 버리면 결국 식량 안보에 문제가 발생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아무리 다른 산업이 발달해도 먹거리가 없어지면 남의 나라에 손 벌리게 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쌀 문제는 전 국민이 지켜야 할 문제다.” 
이영주 대표는 이 회장의 이 같은 간절한 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정말 좋은 먹거리가 무엇인지 소비자들에게 올바르게 알리고 싶다. 
이 대표는 “농민과 소비자, 그리고 칠갑농산의 직원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만드는 매개체 역할을 잘해 내는 것”이 바람이라고 말한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식당 8월호에 있습니다.

 
2016-07-25 오전 02:16:29 (c) 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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