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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과 열정, 끈기가 최고로 이끌다  <통권 380호>
메르씨엘 윤화영 셰프
관리자 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16-10-28 오전 08:47:26



해운대 달맞이길에는 프렌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메르씨엘(Merciel)’이 있다. 2012년에 오픈한 이곳은 윤화영 셰프와 박현진 대표 부부가 운영하는 공간이다. 프랑스에서 정통 프렌치 요리를 배운 후 에릭 브리파, 장 프랑수아 피에주, 피에르 가니에르, 알랭 상드랑 등 세계적인 셰프와 함께 일해 온 윤화영 셰프가 프렌치의 불모지인 부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윤화영 셰프는 2015년 해비치 호텔에 제주도 최초의 프렌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밀리우’ 오픈 셰프로도 참여해 주목을 받았다. 한국의 수많은 셰프들이 인정하는 윤화영 셰프를 메르씨엘에서 만났다. 
글 육주희 국장 jhyuk@foodbank.co.kr  사진 이종호 팀장 

국내 최고 프렌치 셰프, 부산 달맞이길에 레스토랑 오픈
윤화영 셰프는 2000년대 초반 미식의 성지로 불리는 프랑스 르 꼬르동 블루와 프랑스 고등 국립조리학교에서 정통 프렌치 요리를 공부하고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팰리스급 호텔 정직원으로 입사하는 등 셰프를 꿈꾸는 젊은 조리사들과 다이닝 업계에서는 일찍이 화제가 된 인물이다. 특히 장 프랑수와 삐에주(Jean-Francois Piege), 에릭 브리파(Eric Briffard), 피에르 가니에르(Pierre Gagnaire) 등 프랑스 요리의 거장들이 한창 활동할 당시 주방에서 함께 일한 유일한 셰프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정통 프렌치 파인다이닝을 시작한 것은 모험이자 놀라움 자체였다. 부산이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서울에서도 프렌치 파인다이닝을 즐기는 층이 얇은데 이에 비하면 부산은 더 낮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윤화영 셰프가 부산에 정착한 것은 파리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의 고향이 부산인 것도 한 몫을 했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파리에서 레스토랑 오픈을 준비하던 중 2008년 리먼사태로 프랑스 경제가 악화되면서 레스토랑 오픈을 미루고 호텔 포시즌스에 다시 취업을 했다. 그러다 한국에 잠시 들어올 기회가 있었는데 양가 어른들이 모두 귀국할 것을 원했다. 그때 파리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서 시작한 곳이 바로 해운대 달맞이고개에 위치한 이 자리다. 무엇보다 테라스에 서면 훤히 내려다보이는 부산 앞바다, 백만불짜리 야경이 마음에 쏙 들었다. 하루 종일 주방에서 종종거려야 하는 그의 숨통을 틔워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또 세계적으로 좋은 식당은 모두 아름다운 자연에 위치한 곳이 많고, 자연은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훌륭한 인테리어이기 때문에 선택에 있어서 중요한 고려 요소였다. 
메르씨엘은 총 3층 건물로 지하 1층에는 아내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갤러리 ‘BIS’가 있으며 1층은 차와 디저트, 애프터눈 티를 즐길 수 있는 ‘살롱 드 떼’, 2층은  프렌치 파인다이닝을 제공하는 ‘메르씨엘’로 구성돼 있다. 특히 2층은 시간과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데다 음식 퀄리티의 특별함 때문에 서울을 비롯해 기타 지역에서 고객들이 많이 찾아온다. 



미술사 공부 위해 프랑스로 건너가 프렌치 요리사 되다
윤화영 셰프가 요리를 하고자 마음먹은 것은 미술사를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어학원을 다닐 때였다. 와인을 좋아해 친구들과 자주 어울려 파티를 했는데 그가 만든 음식을 먹은 친구들이 하나같이 맛있다며 칭찬을 해 줬다. 반복해서 칭찬을 듣다 보니 스스로 요리에 소질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란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진로를 바꿔 르 꼬르동 블루와 프랑스 국립고등조리학교(ESCF)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웠다. 흥미가 있는 분야이다 보니 재미가 붙어 스스로 책을 찾아보고 열심히 공부를 하면서 호텔 크리용에서 스타지(Stage) 생활을 했다. 6개월간 새벽 5시 50분에 출근해 일을 마치면 새벽 1시였다. 
그렇게 치열하게 견습 생활을 하던 중 알랭 뒤카스 셰프의 오른팔이자 호텔 크리용의 주방장인 장 프랑수아 피에주로부터 입사 제의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에는 너무 힘들어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노’를 하고 스타지를 마친 후 3일간 쉬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팰리스급 호텔 주방의 정직원이라는 첫 단추를 끼웠다. 2004년 프랑스로 건너간 지 3년 만의 일이다. 이후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물급 셰프들 아래에서 실력을 다져 나갔다. 한국인으로서는 잡기 드문 기회를 잡은 그는 먼 이국땅에서 인터넷 커뮤니티 ‘싸이월드’를 통해 현지의 이야기와 폭넓은 지식을 공유했다.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제이자 넓은 세계와 이어주는 통로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윤화영’ 이라는 존재를 알렸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셰프인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도 한 매체 인터뷰에서 “2004년 싸이월드를 통해 윤화영 셰프가 올리는 음식 사진, 주방 풍경을 접하게 됐다. ‘미쉐린 레스토랑이란 게 엄청나긴 해도 감히 범접하지 못할 곳은 아니구나. 좋은 재료로 진심을 다해 엄격하게 음식을 만들면 그것으로 평가받는 구나’ 생각했다”며, “미식의 중심 국가인 프랑스에서 언어·문화장벽을 이겨 내고 현지 요리사들과 어깨 겯고 일하는 윤 셰프가 자랑스럽고 감사했다. 그때부터 내 꿈도 분명해졌다. 한국 음식을 한국 셰프로서 알리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좋은 재료가 없으면 좋은 요리가 나올 수 없다
메르씨엘은 프렌치 퀴진이 아닌 ‘파리지앵 퀴진’을 표방한다. 파리지앵 퀴진의 핵심은 오픈 마인드다. 프랑스는 자본이 풍부하고 식재료 도매시장에 가면 세계 각국에서 들어온 식재료가 넘쳐난다. 또 외국인과 이민자가 많아 세계 각국의 음식이 다양하게 유입되었지만 그 속에서도 철저하게 그들의 음식을 지켜나가는 것처럼 그도 정통 프렌치 요리 속에 기장의 멸치, 대저의 토마토, 원동의 딸기 등 부산의 식재료를 가미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요리사가 잘한다고 해도 결국은 좋은 재료가 없으면 좋은 요리가 나올 수 없다. 윤화영 셰프는 “아이러니하게도 부산은 고품질의 식재료를 구하기가 어렵다. 유통구조 때문에 좋은 식재료는 모두 서울에 있다. 부산이나 통영에서 나는 질 좋은 해산물도 모두 서울에서 경매를 받아 내려오기 때문에 식재료 값이 서울보다 15~20% 더 비싸다. 또 기장에서 나는 생선은 퀄리티가 높지만 갈수록 어업 인구가 줄어들고 물건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데 제한이 많다. 이처럼 식재료 값은 높은 반면 음식가격은 낮고, 서울에 비해 프렌치 파인다이닝을 소비할 수 있는 층은 얇은 것이 큰 딜레마다”라고 말한다. 
그의 레스토랑을 찾는 고객들은 대부분 서울에서 내려온다. 어떤 식재료를 어떻게 조리하고 어떤 소스를 곁들이고, 무슨 와인과 함께 먹어야 맛있는지 철저하게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에 집중하는 그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먼 길을 찾아오고 있다. 때문에 메르씨엘은 주중에 비해 주말이 바쁘고 7~8월 휴가철이 성수기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식당 11월호에 있습니다. 

 
2016-10-28 오전 08:47:26 (c) 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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