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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불의 예술 50년, 도예는 나의 운명. 대한민국명장 세창 김세용  <통권 388호>
관리자 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17-07-03 오전 10:58:24



우리나라에서 대를 이어 업을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길이다. 더욱이 돈벌이가 안 되는 전통공예인 도자기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가족이 모두 도자기 관련 일을 업으로 하고 있는 일가가 있다. 바로 대한민국명장인 세창 김세용 도예가의 가족이다. 만나면 도자기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이들 가족의 유별난 도자기 사랑을 들어봤다. 
글 육주희 국장 jhyuk@foodbank.co.kr 사진 이종호 팀장

고려청자와의 운명적인 만남
햇살 좋은 6월 초, 대한민국명장 세창 김세용 선생 가족을 만나기 위해 도자기의 고장 경기도 이천으로 향했다. 
김세용 명장은 1966년 고려청자에 입문하여 81년 전승공예전 입선을 시작으로 97년 도자기공모전 금상 수상까지 다양한 수상 경력과 세계 여러 나라에 초대전을 가진 대한민국 유일의 청자 명장이다. 특히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한했을 때 이중 투각 국화과형 화병을 빚어 선물했던 투각의 대가다. 
세창 김세용 명장과 도자기와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학창시절 국립중앙박물관에 견학을 갔는데 여러 유물 중 유독 고려청자가 눈에 들어왔다. 난생 처음 고려청자를 봤지만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은은하고 청명하며 고고한 자태에 반한 그는 도예가의 길을 걷고자 다짐했다. 
그렇게 20살이 되던 해, 지인이 운영하는 이천의 도예장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도자기 만드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이천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낮에는 작업실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기숙사에서 호롱불을 켜놓고 조각과 성형 등 공부에 매진했다. 워낙에 손재주와 눈썰미가 좋고, 청자에 대한 열정이 높았던 그는 입사 1년 만에 도자기 조각실 실장으로 승진할 만큼 빠른 속도로 실력이 늘었다. 처음 도예에 입문해 같은 요장에서 일하던 부인 이순이 씨도 이곳에서 만나  평생 도반(道伴)이 되었다. 

법고창신’의 정신으로 완성시킨 이중삼중 투각   
세창 김세용 명장은 청자 도예가로서는 국내 최초의 명장이다. 수많은 시련과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열정을 기울인 고려청자에 대한 외길 인생이 명장이라는 결실로 맺었다. 
1966년 도자기에 처음 빠져든 이후 1981년 제11회 전승공예전 입선을 시작으로 매년 수상을 거듭했다. 도예가로서 생애를 바쳐 연구한 이중투각기법은 전통 청자의 기법은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더해 1984년 제7회 국제현대미술제전 도예부 대상, 97도자기 공모전 금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더했다. 이후 그의 투각기법은 나날이 발전을 해 삼중투각까지 성공하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청자 및 투각 명장이 되었다. 
2002년 대한민국 명장에 선정된 그의 작품은 청와대를 비롯해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달라이 라마 왕궁 등에 소장돼 있다. 또 2004년 일본 시네마현 초청 대한민국 명정전을 비롯해 중국 경덕진 도자천년제 초대전, 제3회 세계도자비엔날레 도자 퍼포먼스를 비롯해 수많은 해외 초대전을 열었다. 
올해는 이탈리아 밀라노 디자인 뮤지엄에서 열린 ‘한국 공예의 법고창신전’에 각 분야별 16명의 작가가 참여해 전시를 했다. 여기서도 외국인들은 단연 우리나라 청자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이중투각은 ‘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만들자’라는 ‘법고창신’의 뜻에 완전히 부합하는 장르로 눈길을 모았다. 홑 투각은 종종 선보이지만 이중삼중 투각 도자기가 과연 사람의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인가라는 놀라움이었다. 투각 작품은 일반 작품에 비해 보통 열 배 이상의 정성과 시간이 요구된다. 작품 하나를 가지고 몇 달씩 씨름하는 지극한 정성은 수행과 진배없다.

가장 아름답고, 정교하고, 큰 청자를 만들자
청자에 빠져서 오로지 한 길만을 걸어 온 지난 50여 년, 돌아보면 김세용 명장에게도 위기의 순간은 여러 번 찾아왔다. 도예가로서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1980~9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청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던 일본인들이 대량으로 청자를 구매해 호황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당시 남보다 한 발 앞서가기 위해서는 보다 창의적이고 새로운 것을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에 도자기를 만들어 팔기보다는 흙, 유약, 도예공정 등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밤잠을 설치며 연구 개발에 매진했다. 흙을 깨끗하게 빨리 말리는 방법을 개발한 것도 이때다. 그러나 성공하기까지 2년 여 동안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당시 5000만 원이라는 큰 빚까지 짊어지기도 했다. 다행이 시행착오 끝에 흙과 유약개발 등 도예 공정 개선에 성공, 도자기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이중삼중투각도 그의 이러한 창의성과 도전정신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김세용 명장은 도자기를 만들며 세운 4가지 원(願)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 가장 아름다운 청자를 만들자. 둘째, 가장 정교한 청자를 만들자. 셋째, 가장 큰 청자를 만들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과정을 마음의 수행으로 생각하자는 것이다. 그 수행의 과정에서 최고 전성기 때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금강산과 매화꽃 이중투각으로 세창도예연구소 전시관에 보관하고 있다. 
나는 고려시대 도공이었다
세창 김세용 명장은 “처음 도예를 시작할 땐 몰랐지만 50여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니 자신은 아마도 전생에 고려시대 도공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한다. 고려청자를 처음 보는 순간 전율을 느끼고 마치 운명처럼 이끌리듯 도자기 외길을 걸어온 그는 지금도 흙을 만지고 있을 때 마음이 가장 평화롭다. 
김세용 명장은 도자기는 거친 흙을 체에 쳐서 앙금을 가라앉히고 이것을 말려서 다시 반죽을 해 도자기 흙으로 만드는 과정부터가 수행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도자기의 시작은 물레질과 성형에서부터 시작된다. 김세용 명장은 성형을 중심의 미학이라고 말한다. 중심을 잘 잡아야 도자기의 가운데 즉, 속이 바로 된다.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회전을 하면서 흙을 다지기 위해 올렸다 내렸다하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이러한 과정을 ‘흙하고 논다’고 표현한다.  
김세용 명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도자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여러 공예 가운데 처음 시작할 때의 물성과 마지막 완성품의 물성이 완전히 다른 것은 도자기 밖에 없으며, 인간의 손을 떠나서 받는 불의 심판을 받아야 비로소 완성되는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어려운 시절이 많았지만 도자기를 하는 동안은 정말 행복했다고 말하는 김세용 명장. 10전 11기가 다반사일 만큼 어렵게 청자 기술을 복원하고, 이중삼중 투각에 도전해 성공을 거두면서 느낀 희열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다. 특히 올해 초 밀라노 전시회에 가서 많은 사람들이 청자와 투각 기술에 감탄하는 것을 보며 도자기 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후계자 양성을 위한 제도적 지원 절실
요즘 그는 걱정이 많다. 어렵게 복원한 청자 기술이 자칫 자신의 대에서 끊어지면 어떡하나하는 염려다. 후계자를 양성하고 싶어도 요즘 젊은이들은 배우려는 사람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제도적인 뒷받침이 없다보니 후계자를 양성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전통 도자기는 국가에서 제도적으로 뒷받침을 해 전수해야 하는 전통 문화이지만 현재 국가에서는 무형문화재의 후계자 양성만 지원해주고 명장의 후계자 양성에는 지원책이 없다. 
그러나 청자 이중투각은 세계적으로 메이드인 코리아라고 내세울 만한 전통 문화로서의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에 국격을 높이는 전통에 대한 관심과 지원 등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개인적으로는 내년에는 가족 도자기 전시회를 갖는 게 작은 꿈이다.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 그 어려운 시절을 건너올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사랑과 위안을 준 가족과 이웃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더욱이 딸, 아들이 모두 세부 분야는 다르지만 도자기를 하며 가업을 잇고 있다. 그의 바람처럼 가족 도자기 전시회에서 다시 한 번 김세용 명장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온 가족이 도자기와 지독한 사랑에 빠지다 
김현정 & 김도훈

“흙을 만지면 잡념이 사라지고 행복해요”
큰딸 김현정 씨는 원래 철학을 전공했지만 뒤늦게 도자기에 빠져 다양한 생활도자기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동생 김도훈 씨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도자기를 하겠노라고 한 터라 자신은 생각지도 않았던 길이었다. 7~8년간은 매일 20시간 가까이 도자기에 묻혀 살았다. 흙을 만지고 있으면 오히려 잡념이 없고 행복했다. 
타고난 유전자와 어릴 때부터 도자기를 빚고 굽는 과정을 보면 자란 덕에 온 마음을 다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진하다보니 그녀의 도자기는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마니아층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자신이 만든 그릇을 사간 고객에게 “지금도 잘 쓰고 있고,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으면서 너무 행복하다”는 말을 들을 때면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줄 수 있는 도자기야말로 가장 행복한 직업이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김현정 씨는 결혼과 출산, 육아로 한동안 작업을 못하고 있지만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하게 되면 아버지로부터 청자도자기와 투각을 배울 생각이다. 물론 아버지와 똑같이는 할 수 없지만 청자의 색감과 형태, 조각, 문양을 접목한 그녀만의 새로운 작품에 도전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최초 세라믹 식판·피규어 개발 도전
아들 김도훈 대표는 신소재 공학박사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도자기를 하겠다는 목표로 조소를 전공한 이후 도자기에서 가장 중요한 소지와 유약 등 신소재를 전공해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재원으로 이제는 아버지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고 있다. 
김 대표는 현재 청자가 아닌 유아용 세라믹 식판을 만들고 있다. 좋은 흙으로 만든 도자기 그릇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도자기 식판을 직접 개발, ‘테르 휘(TERRE HUI)’라는 브랜드로 선보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자동차, 가방, 집 모양 등 감각적인 디자인에 알록달록한 색을 입혀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는 젊은 주부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 
김도훈 대표는 앞으로도 손으로 만드는 작업은 계속하면서 아버지의 작품 가운데 디테일한 부분을 뜯어서 하나씩 연구해 나름의 디자인으로 새롭게 재구성하는 작업을 할 계획이다. 이는 50년 세월 동안 온 힘과 마음을 다해 전통 청자도예와 투각 기법을 연구해 온 아버지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자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하게 구축하기 전에는 아버지의 영역에 가벼이 들어가지 않겠다는 완고한 의지다. 최근에는 아버지와 함께 해야 할 것들을 찾기 위한 시동을 걸고 있는 중이다. 그 첫 번째가 아버지의 고려청자 작업을 정리 기록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청자와 투각에 대한 역사와 기술 등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우리나라 도자기의 우수성을 외국에 널리 알린다는 계획이다. 더불어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해왔던 것처럼 우리나라에 최초로 세라믹 피규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있다. 
김세용 명장이 처음으로 도자기를 배우러 들어간 곳에서 만나 앞에서 끌면 뒤에서 밀어주며 명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지지해 준 1호 팬이자 동반자인 이순이 씨를 비롯해 온 가족이 도자기에 매료돼 삶을 완성시켜 나가고 있는 이들 가족은 입을 모아 “도자기는 인생을 최고로 잘 살게 도와주는 최고의 직업이다”고 말한다.

 
2017-07-03 오전 10:58:24 (c) 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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