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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유, 그의 두레 유  <통권 388호>
관리자 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17-07-03 오전 11:17:25



한국에서 뉴코리안 퀴진의 막을 열었던 셰프 토니 유가 한식당을 열었다. 18년간 세계 각국의 다이닝 현장과 국내 한식당에서 농축시킨 그의 내공을 빚어 ‘두레유’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글 황해원 기자 banana725@foodbank.co.kr  사진 이종호 팀장

공성신퇴(功成身退). ‘공을 이루었으면 몸은 후퇴해라’. 한 마디로 박수칠 때 떠나라는 뜻이다. 2016년 12월 그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토니 유가 주방을 지켰던 ‘이십사절기’가 《미쉐린가이드》 1스타의 영광을 안자마자 무슨 영문인지 그는 이십사절기를 떠났다. 본격적인 뉴코리안 퀴진의 시대를 열 것이라 기대하며 한국의 미식가들과 언론이 토니 유를 주목하고 있을 무렵,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그가 주방을 나온 것이다.
“8년간 한식다이닝을 선보이면서 느낀 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코리안 퀴진, 한식 파인다이닝이 점점 한식의 본질을 잃고 동떨어져간다는 것이었다. 전통을 기반으로 과거부터 자연히 흘러들어온 문화가 아니라 밤 도깨비처럼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말만 한식당이지 한식도 양식도 아닌 어중간한 형태의 음식을 내는 곳들도 많고…. 한식의 뿌리가 어디인지 처음부터 다시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서예 작품을 보면 별다른 기교 없이 꾹꾹 눌러 그린 선 하나에도 수십 년간 붓을 잡아온 노장의 관록과 세월이 묻어나 있다. 이탈리아나 프랑스 요리에서도 그는 그러한 힘을 느꼈다. 독특하고 창의적인 다이닝이든 평범한 일상식이든, 하나의 역사와 뿌리를 토대로 흔들리지 않는 그들만의 정체성이 부러웠다. 한식의 근본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생각했다. 마침 이십사절기가 미쉐린가이드 스타 레스토랑 대열에 합류했다. 그간 쌓아온 내공을 한 차례 검증 받은 순간이었다.
올해 초 그가 오픈한 두레유는 60년 전통 한정식전문점 ‘두레’와의 컬래버레이션을 기반으로 한 매장이다. 두레는 1955년 경남 창녕에서 시작해 2대에 이어 서울 인사동에서만 30여 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이곳 이숙희 대표와 자주 만나 대화화면서 기존 그가 추구해왔던 현대 한식 다이닝에 두레만의 전통성, 한식의 근본과 색채를 입히기로 결정했다. 의식해서 이어나가지 않으면 금방 사라질 것처럼 전통 한식이 아슬아슬해보였단다. 오래된 한정식집들은 점점 사라져가고, 뉴코리안 다이닝이라고 해서 정체성을 잃은 음식만 쏟아지는 가운데 더 늦기 전에 전통 한식의 명맥을 이어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실 ‘뉴코리안 퀴진’, ‘한식다이닝’, ‘모던한식’과 같은 용어들이 외식시장에 흘러나온 지는 기껏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 시작점에 토니 유가 있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쉐린 2스타 프렌치레스토랑 아쿠아에서 실무를 쌓은 후 2009년 한국으로 컴백, 한식레스토랑 ‘D6’ 총괄셰프로 들어와 새로운 형태의 한식 다이닝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동충하초, 우설, 도래창, 줄꽁치 등으로 샐러드와 메인디시를 내고 산나물로 디저트를 만들었다. 정통 한식재료에 서양식 기법을 접목한 그의 한식 요리와 플레이팅은 곧 뉴코리안 퀴진으로 불리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랬던 그가 요리 생활 18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만의 둥지를 틀었는데 하필 주제가 전통 한식이란다. 뉴코리안다이닝, 모던한식이 이제 막 꽃을 피우려는 이때, 마치 귀소본능처럼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한식의 근본을 찾겠다며 60년 전통 한정식집을 이어 ‘두레유’를 연 것이다. 그는 한옥마을 전체가 들여다보이는 북촌의 2층 한옥건물에 자리를 잡았다. 옥상엔 큼직한 장독대가 가득하다. 이곳에서 토니 유는 장도 담그고 영업이 끝나고 밤이 되면 맥주도 마신다. 

토니 유가 인생 첫 식당을 차렸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오너셰프 계획은 없다고 했다. 보헤미안처럼 한 곳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주방을 다니며 경험을 쌓고 싶다더니? 그러게나 말이다(웃음). 인생이 생각하는 대로만 흘러가는 게 아니더라. 전통 한식이 멀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하다 한동안 오래된 전통 한정식집들을 다니며 관찰한 적이 있다. 주방이든 홀이든 전부 연세 지긋한 분들만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상견례나 어르신들 저녁 모임 외에 젊은 손님들은 늘 손에 꼽혔다. 셰프를 꿈꾸는 청년들은 전부 파인다이닝 문만 두드리고, 사람들은 갈수록 간편식만 찾아 먹고 있으니 이러다가 우리 한식문화가 갑자기 단절되는 건 아닌지 위기감을 느꼈다. 한정식집은 올드하고 촌스럽고 어르신들만 가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오랫동안 전통 한식을 구현해온 분들의 노하우와 밥상의 지혜를 이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걸 남의 주방에서 내 맘대로 할 수는 없으니까(웃음).  
두레한정식과의 컬래버레이션을 생각한 이유는? 두레한정식 이숙희 대표와는 그 전부터 잘 알고 지냈다. 종종 같이 밥 먹으며 전통 한식의 당위성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개인적으로 두레 음식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사실 요즘 전통 한식이 모던 한식에 비해 관심을 못 받고 있는 데다 김영란법이다 뭐다 해서 매장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그 오랜 시간 동안 한식의 지조를 지켜가는 모습이 훌륭해보였다. 서로에게 의미 있는 시너지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두레가 60년 전통을 갖고 있으니 지금부터 40년만 잘 이어나가도 한국에 100년 식당이 하나 더 생기는 거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것 같았다. 
동업 형태인가? 주변에서 비슷한 질문을 많이 하는데 아니다. 분기별 메뉴를 공동개발 한다거나 그런 양식도 없고. 대신 고추장, 된장, 간장 같은 장류는 함께 사용한다. 한식의 가장 기본이 되는 원천 식재료니까. 장은 두레에 계신 분들과 볕 좋은 날 만나 같이 담근다. 가끔 음식과 관련해서 서로 조언도 해주고 좋은 재료를 구하면 가장 먼저 연락하기도 한다. 두레의 전통을 함께 이어가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D6에선 퓨전 한식 다이닝을, 키친플로스에서는 전통 발효장 바탕의 캐주얼 한식을, 이십사절기에서는 절기에 나는 재료로 독창적인 한식요리를 선보였다. 두레유에서 구현하는 한식은 어떤 스타일인가? 지금까지 했던 요리 중 가장 전통 한식에 가깝다. 한식의 근간을 생각하다 보니 역사, 사찰 같은 콘텐츠와 떼놓고 구상할 수 없었다. 한국은 1700여 년의 불교 역사를 갖고 있고 그 안에서 사찰음식과 한정식이 탄생했으니 그에 기반을 둔 코스요리를 요란하지 않게 풀어낸 것이 핵심이다. 대신 조리과정에서 좀 더 진보적이고 새로운 방식을 추구했다. 예를 들면 고려시대 음식인 설하멱(소고기 등심을 넓게 저며 꼬치에 꿴 후 양념을 발라 구운 음식)을 낼 때 숯불에 구운 소고기를 접시에 바로 올리지 않고 액화질소에 담가 식힌 후 다시 구워 식감을 부드럽게 살리는 식이다. 사찰식 채소요리법으로 계절 채소를 손질하고 청국장을 올린 철갑상어회나 게살 오이선, 우럭과 채소를 통째로 튀겨 간장 소스를 얹은 나물어탕수도 낸다. 코스 마지막에는 구절판용 방짜유기에 아홉 가지 한식 찬과 된장찌개, 발효장으로 맛을 낸 갈비찜을 진지상으로 내는데 어르신들이 특히 좋아한다. 

솔직한 이야기
그래도 이십사절기를 미쉐린 가이드 원 스타 레스토랑으로 만든 주인공인데 찬란한 영광을 좀 더 누리지 그랬나. 뭐, 그래도 이십사절기 하면 아직까지 토니 유를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웃음). 어쨌거나 다이닝 공간으로서든 비즈니스 모델로서든 이십사절기는 이제 성공궤도에 올랐다. <미쉐린가이드>에서 별을 받은 건 셰프로서도 개인적으로도 굉장한 행운이고 영광이다. 별과 함께 평생의 자부심도 얻었으니까. 이십사절기에 있으면서 그만 둘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러나 어차피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비즈니스는 없으니까, 반드시 해야겠다고 생각한 작업들을 소신껏 하고 이루려면 오너셰프로 독립해야겠다는 확신을 가졌을 뿐이다. 물론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미련은 없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프렌치 레스토랑 주방에서 2년을 보냈다. 오래전부터 한식 하고 싶었다면서 웬 프렌치 레스토랑? 제대로 된 한식을 구현하려면 요리와 식재료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태도, 아이디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서양의 주방에서 배울 거리는 무궁무진하다. 테크닉은 물론이고 재료 활용법이나 창의적인 메뉴로 끌어내는 방법, 한계를 두지 않는 다양한 시도, 그림 그리듯 풀어내는 플레이팅, 테이블과 주방 매너 등등…. 그때 정말 재밌게 일했다. 일주일에 이틀을 쉬었는데 시간 날 때마다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시카고의 여러 다이닝을 다니며 서양의 음식 문화를 공부했다. 특히 캘리포니아는 식재료가 엄청나게 풍부한데 하나하나 향을 맡고 직접 만져보면 다양한 레시피를 머릿속에 그렸다. 집 근처엔 나파벨리 와이너리가 있어 와인도 넘치게 마셨다. 그때 얻은 영감을 한국에 오자마자 한식에 접목했으니 하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얼마나 새로웠겠나.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주영국대사관 총괄셰프로 초청 받았다. 한국의 토니 유 셰프를 본격적으로 알린 계기가 아닌지. 이름을 알렸다기보다는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자극이 된 계기였다. 올림픽은 세계에서 가장 큰 축제고, 런던은 다이닝뿐 아니라 디자인, 패션 등 전통과 트렌디한 문화들이 매력적으로 섞여 있는 굉장한 도시니까. 개인적으론 인생의 두 번째 유학 시즌이었다. 대사관 행사를 비롯해 갈라디너와 각종 리셉션, 연회, 파티 등등…. 올림픽 기간보다는 오히려 행사 전이 훨씬 바빴다. 전 세계 VIP들이 모인 자리에서 어떻게 하면 한식을 다채롭게 알릴까 그 고민을 진짜 많이 했다. 주로 한식 코스요리를 준비했는데 때마다 반응이 좋았다. 그중 김치 요리를 가장 좋아했다. 그들은 김치를 독특한 맛이 나는 샐러드로 인식했다. 올리브유 대신 참기름, 들기름을 설명하고 한국의 김과 간장, 발효음식을 매일 매일 소개했다. 짜릿한 시간이었다. 
쉬는 날엔 무얼 하나? 운동을 하거나 등산을 한다. 체력이 중요하니까. 북촌에 매장을 차리면서 집도 근처로 옮겼다. 가까운 인왕산이나 북악산에 자주 간다. 사실 도토리묵에 막걸리 마시러 가는 거다(웃음).

셰프에서 사장님으로, 정통 한식을 위하여
지금까지 한식의 변화를 지켜봐왔을 텐데 앞으로는 어떻게 변화해갈 것 같나. 이제 겨우 자리 잡은 수준이다. 그나마 정식당이나 밍글스, 권숙수, 설후야연처럼 다양한 색깔의 한식당들 덕분에 한식에 대한 관심과 니즈가 증가했다. 지금부터가 중요한데 사실 걱정이 많다. 요즘 집에서 밥도 잘 안 해먹지 않나. 가정에서 어머니가 해주는 밥과 국, 찌개, 반찬이 개개인의 소울푸드가 되고 자연스럽게 손맛이 대물림되면서 한식의 전통도 이어지는 건데 그게 점점 무너지고 있다. 정녕 우리 한식의 미래가 셰프들의 손에만 달린 것인가 싶어 염려스럽다. 
왜 그런 것 같나? 한식을 어렵게 생각해서 그렇다. 게다가 요즘 사람들 기다리는 거 절대 못한다. 30분 요리하는 것도 힘들어하는데 한국 음식은 3년 이상 묵혀야 제 맛이 나는 것들뿐이니 재미있을 리가 있나. TV 방송도 그래서 시작했다. 한식이 결코 지루하고 따분한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한식 요리를 15분 만에 뚝딱 만들어 보여주기도 하고, 10대 아이돌이나 걸그룹들의 냉장고를 보면서 요즘 젊은 친구들은 무얼 먹고 사나 관심도 갖고 대중의 니즈도 읽는다. 
셰프이면서 이제는 사장님이기도 하다. 주방에서의 삶과 경영자로서의 책임은 또 다를 텐데. 신경 써야 할 것들이 갑절로 늘었다. 사장님 소리는 아무나 듣나? 계산기도 두드려야 하고 직원 관리도 해야 하고 이제 음식과 주방뿐 아니라 전체를 아우르고 챙겨야 하니 부담도 되고 겁도 난다. 요즘은 쉬는 날 하루도 없이 하루하루가 강행군이다. 근데 다른 사람한테 아쉬운 소리 할 것 없이 온전히 내 뜻대로 하나하나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에 만족과 행복을 느낀다. 
국내 외식업계가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10개 매장 오픈하면 9개 문 닫는다고 하지를 않나. 그래도 잘 됐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망한 9곳의 식당들은 열심히 안 했겠나. 열심히 해도 뜻대로 안 됐을 것이다. 두레유도 이왕 오픈한 거 잘 됐으면 좋겠지만 이게 어디 내 능력만 갖고 되는 일인가. 모든 건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는 거다. 그나마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건 그냥 묵묵하게 갈 길 가는 것. 어쨌거나 나는 여전히 한식을 하고 있고, 내가 만들고자 하는 걸 만들어나가고 있다. 20년, 30년 뒤에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면 그럭저럭 잘 살았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 공간이 지금의 두레유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고. 내가 계획한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하며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그나저나 단발머리는 언제까지 고수할 건지? 왜, 이상한가? 하긴 지난번 ‘냉장고를 부탁해’ 프로그램에서 벌칙으로 머리를 풀었는데 지인들이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하더라. 왜죠? 근데 생각보다 단발머리가 편하다. 헤어스프레이로 멋부리지 않아도 되고, 요리할 때 단정하게 묶고 있으면 흐트러지지도 않고. 셰프들에게 추천한다. 하하하.

 
2017-07-03 오전 11:17:25 (c) 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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