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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부심, 우리 따라올 자가 없죠  <통권 389호>
풍천도 노성도, 노훈 대표
관리자 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17-08-01 오전 02:21:07



밤 10시. 서울 연희동 주택가 지하 1층에 불이 켜지더니 ‘챙챙챙’ 쇳덩어리가 부딪치면서 생기는 날렵한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들린다. 머리가 희끗한 남자가 불에 구운 쇳덩이를 망치로 두드리고 있다. 그렇게 밤새 자세 한 번 바꾸는 일 없이 쇳덩이를 두드려 모양을 잡고 손잡이를 다듬는다. 34년간 그는 매일 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칼을 만들며 아침을 맞았다. 뜨거운 불 앞에서 씨름하며 담금질과 망치질을 이어온, 한국의 몇 안 되는 대장장이 ‘풍천도’ 노성도 대표와 그의 아들 노훈 씨의 이야기다.    
글 황해원 기자 banana725@foodbank.co.kr  사진 이종호 팀장

바람과 하늘을 가르는 칼
밤새 두드려 각을 잡은 칼을 차에 한가득 싣고, 다음날 노성도 대표는 경기도 일산의 두 번째 작업장으로 향한다. 33.06㎡(10평) 정도 되는 공간에 큼직한 불가마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망치로 앞뒤로 내리쳐 기초 모양을 잡은 칼을 1300℃의 불가마에 넣고 달군다. 
쇠에도 여러 가지 성분들이 있다. 노 대표의 말을 빌리면 ‘불가마에서 열처리하는 동안 쇠가 녹으면서 다양한 쇠 성분들이 골고루 섞이는데 칼의 기본 재질이 형성되는 첫 단계이자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좋은 음식을 만들려면 좋은 식재료가 있어야 하잖아요. 칼도 마찬가지예요. 좋은 칼을 만들려면 원재료가 좋아야 하고 만드는 과정이 견고해야 합니다. 칼은 시간과 인내의 결과물이에요.”
가열한 칼은 바로 급랭시킨 후 다시 500℃ 온도의 불에서 5시간 정도 뜸을 들인다. 가열하는 동안 쇠의 강도가 높아졌다면, 급랭하는 동안에는 쇠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최소화한다. 단단하고 일정한 재질의 칼을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쇠는 온도 변화와 공기 노출 정도에 따라 성분의 변화가 다양한 형태로 일어나는데 이 열정과 냉정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야 쇠의 밀도가 더욱 촘촘해지고 단단해진다. 어떤 곳은 뜸 들이는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급랭하거나 모양을 잡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이러한 인내의 시간을 견딘 칼과 그렇지 않은 칼은 내구성이나 단단한 정도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품안에 감싸기만 하며 키운 자식은 컸을 때 중심과 줏대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쓴 맛은 모르고 따뜻한 품속만 그리워하니 영 무르고 용기가 없지. 내 손을 거친 칼이 남의 집 남의 손으로 갔을 때 미움 안 받고 평생 제 노릇 하려면 그만큼 품을 많이 들여야 해요. 불에 달구든 천천히 식히든, 조바심 버리고 기다리는 자세가 그래서 중요해요. 내 손재주만 믿고 덤벼들었다가 기다리는 거 못해서 칼 수천 개는 버렸지(웃음).”
칼 뜸 들이는 데만 반나절이 걸려 노 대표는 1주일에 2~3일 정도는 늘 일산의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낸다. 차를 마시거나 정치, 사회 관련 뉴스를 찾아 읽는다. 가끔은 세상 돌아가는 일에 둔감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항상 신문과 책을 챙겨 본다. 그렇게 인생의 팔 할을 작업장에서 보냈다.
반나절 뜸 들이고 난 후엔 메질과 담금질을 계속한다. 그런 다음 만들 제품의 크기에 따라 시우쇠(쇠를 불려서 만든 쇠붙이의 하나)를 토막 내는데 이를 대장장이들은 ‘깜 잡는다’라고 한다. 깜을 잡은 뒤엔 화로에 넣어 풀무질로 쇠를 달궈 수메(손잡이 속에 들어간 부분)를 들이고 다시 날을 괸다. 다음에 괸 날을 오그리고 다듬어 자루를 박는다.
“도금하고 연마하기 전 가장 중요한 작업이 바로 가공이에요. 칼 모양을 완성하는 단계. 많이 두드려야 해요. 고생스러워도 예외 없어요. 쇠끼리 뭉치면서 생기는 공기가 그 두드리는 과정에서 빠지거든. 공기를 완전하게 빼야 칼이 단단하고 오래 가요. 그러고 나서 모양 잡는 데만 하루 꼬박 걸려. 예전 장군들의 칼을 그렇게 만들었지. 풍천도, 바람과 하늘을 가르는 칼이란 뜻이에요.”



대를 이은 손기술, 장인 인생 30년
기계로 한꺼번에 수십, 수백 개의 칼을 대량 생산하는 시대가 오면서 현대 대장장이들은 모습을 감췄다. 그래도 십 수 년 전에는 오랜 시간 공들여온 기술과 정신력에 박수 쳐줬는데, 갈수록 장인들의 손때 묻은 물건에 대한 가치가 야박해지는 것 같다. 1980년 들어서는 작은 시골에서조차 대장장이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노성도 대표가 칼을 다루기 시작한 건 1984년이다. 이북 황해도 출신의 조부를 이어 부친까지 집안 대대로 손 기술이 좋았다. 당시 농사를 지었던 조부는 농기구를 직접 만들어 사용했을 정도. 앞마당에선 늘 쇠를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한여름 볕 좋은 날은 불에 구운 쇠를 하루 종일 바깥에서 말렸다. 두드리고 굽고 말리고, 다시 두드리고 굽고 말리고. 어느 때부턴 아버지도 똑같이 자잘한 기구들을 직접 만들어 썼다. 모루(공작재료를 얹어놓고 망치로 두드려 가공하는 대)나 메(말뚝을 박거나 짚을 바수거나 떡을 칠 때 사용하는 일종의 나무 망치), 집게, 쇠망치, 가위, 칠지도 같은 연장은 전부 아버지의 손에서 나왔다. 
조부와 부친의 작업이 그렇게 대단한 기술이라 생각한 적도 없고 대장장이를 꿈꾼 적은 더더욱 없지만, 역시 피는 못 속였다. 그도 이것저것 만져보고 만들어보다가 어느 순간 여기까지 왔다.
“세상에 없는 것 빼고 다 만들 줄 알았던 우리 아버지가 딱 하나 못 만드는 게 있었는데 그게 바로 칼이었다(웃음). 속으로 ‘아버지도 참, 그게 뭐 어렵다고…’ 생각하면서 쇠를 굽고 모양을 만들어보다 보니 어느새 전업이 됐다. 그런데 만들면 만들수록 좋은 칼에 대한 욕심이 생기더라. 특히 사시미나 스시 같은 날 것 위주의 음식은 칼질 한 번으로도 식감과 맛이 전혀 달라지지 않은가. 음식을 직접 썰어보기도 하고 작업 과정을 상상하면서 방향을 잡고 날을 간다.” 
풍천도의 칼은 양면의 날을 골고루 갈아 터치 한 번으로도 손질이 가능하다. 식재료에 칼이 닿는 범위를 최소화해 재료 본연의 맛과 온도를 최대한 살리는 것이다.

아버지 정신, 그리고 풍천도 정신
조선 전기 대장장이의 신분은 양인과 천인이었다. 후기에 들어서는 양인(良人, 조선시대 신분 범주에서 천인 이외에 모든 사람을 이르는 법제적 규범)에 들어 관청의 사역에서 벗어나기도 했지만, 오랜 시간 대장장이에 대한 천대를 아주 면하지는 못했다. 
아들 노훈 씨에 대한 노 대표의 바람은 사실 반반이었다. 점점 더 기계화·공장화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대장장이로 사는 삶이 과연 행복할까, 그러면서도 3대에 걸친 손재주와 좋은 칼에 대한 고민을 아들도 함께 이어가주길 바라는 마음. 이러나저러나 걱정이었다. 그러나 아들 노훈 씨는 한 번도 다른 삶을 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단다. 
“아버지는 밤에만 작업을 하세요.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지면 그때 연희동 작업실로 내려가 밤새 칼을 다듬고 손잡이를 만들어요. 눈 붙일 시간은 낮에 잠깐 뿐이에요. 30여 년 동안 그렇게 칼을 만들어 오셔서 이젠 밤 작업이 습관이 되신 것 같아요. 오랫동안 햇빛 한 번 제대로 볼 시간 없이 고생스럽게 이뤄온 것들을 아버지 세대에서 마칠 순 없잖아요. 아깝기도 하고…. 당연히 제가 해야죠. 그리고 재밌어요. 아버지는 세상 모든 것들이 기계화되어간다고 하지만 그럴수록 아날로그의 간지는 드러나는 법이죠(웃음).”
다행히 노훈 씨는 친화력이 있고 여럿이 어울리는 생활도 좋아해 틈틈이 셰프들의 오프라인 모임이나 각종 외식업 행사들을 다니며 많은 이들에게 풍천도를 알리고 있다. 특히 ‘칼날’이 생명인 셰프들에게 수작업으로 제작한 풍천도의 칼은 신의 선물이나 다름없다. 주문제작만으로 만들어지는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칼’의 희소가치는 셰프들 사이에서 자존심 같은 게 됐다. 무엇이든 간편하고 가벼운 것만이 각광 받는 시대에 인내와 수고, 땀으로 만들어내는 물건의 가치가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칼부심으로 뭉친 아버지와 아들 “고마워, 고마워요”
아직 아들 노훈 씨는 배우는 단계다. 제법 흉내는 내는 것 같은데 디테일이 부족하다. 칼과 손잡이의 이음새와 칼날을 갈 때의 힘 조절, 방향, 속도 같은 것들이 아버지의 완성도에 비해선 떨어진다. 열처리하고 가공하는 큰 그림 정도만 아들에게 맡기고 모양을 잡거나 연마 과정은 전부 노 대표의 손을 거쳐야 한다. 
“칼 만드는 과정은 크게 쇠를 두드려서 형태를 잡아주는 한마, 거기에서 나온 모양을 망치로 다듬고 열처리를 하는 대장, 쇠를 견고하게 갈고닦는 연마로 나눌 수 있는데 이중 가장 중요한 게 연마 작업이에요. 이 작업에 얼마나 디테일한 기술을 접목하느냐에 따라 칼의 가치가 천차만별로 달라져요. 근데 아이러니한 게 뭔지 아세요? 기술이 중요하면서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 결국 집요함이 있어야 하고 사물이나 물건에 대한 애착이 있어야 합니다. 거의 집착에 가까울 정도의 애착. 이렇게도 만져보고 저렇게도 만져보고 끊임없이 들여다보면서 관찰하고…. 요즘 사람들 말로 오타쿠라고 하죠(웃음). 뭐 그런 게 있어야 해. 근데 아들은 아직까지 그런 게 좀 부족하더라고(웃음).”
일본 장인의 칼이 한국에서도 사랑 받는 이유는 그러한 정신 때문이다. 일본 장인은 칼을 만들기 전 목욕재개를 하고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는다. 그만큼 정성을 들이고 혼신을 다한다는 의미다. 그러한 마인드와 자세가 얼마나 좋은 기술력으로 발휘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만큼의 애정이면 뭔가 달라도 다르지 않을까. 아버지가 해줬던 많은 이야기들을 아들 노훈 씨는 그렇게 의미 있게 새기고 있다. 마치 ‘유전’처럼 대물림하고 있는 손기술과 장인정신을 이어준 것에 대해 그는 너무나도 감사하다. 노성도 대표 역시 아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마음이다. 
“크게 바라는 건 없어요. 내 손힘 닿는 데까지 좋은 칼 만들고, 아들이 잘 이어가주면 되는 거지 뭐. 그게 풍천도 정신 아니겠어요? 거 아들하고 나하고 사진이나 좀 멋들어지게 찍어줘요. 그러고 보니 십 수 년을 이 지하 작업실에서 같이 보냈는데 같이 찍은 사진 한 장 없네(웃음).”

 
2017-08-01 오전 02:21:07 (c) 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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