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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란 문화 그리고 교감. 고료리 켄 김건 셰프  <통권 389호>
관리자 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17-08-01 오전 02:22:49



지난 6월, 서울 압구정동 한 골목에 얌전한 음식점 하나가 문을 열었다. 고료리 켄(小料理建). 작은 접시에 담긴 ‘소요리(小料理)’를 전문으로 내는 김건(金建) 오너셰프의 일본요리점이다. 가이세키, 갓포, 스시, 이자카야는 있었어도 소요리를 내세우는 일식당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없었다. 빨리 그를 만나고 싶어졌다. 
글 박선정 기자 sjpark@foodbank.co.kr  사진 이종호 팀장

인터뷰를 하기 전 고료리 켄의 음식을 모두 맛보고 싶은 마음에 예약 전화를 했다. 7월 초였음에도 이미 ‘이달 예약은 다 끝났다’는 답이 돌아왔다. 예약이 취소되면 언제라도 좋으니 연락을 달라고 했지만 기사를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소식이 없다. 
서울 연남동 이자카야 ‘이노시시’를 시작으로 갓포요리전문점 ‘이타치’, 이자카야 ‘이치에’를 통해 이름을 알린 김건 셰프가 지난 6월 ‘고료리 켄’을 열었다. 일본요리를 술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술집이다. “일식 술집이라니 이자카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이자카야와는 달라요.” “뭐가 다르죠?” 
우리나라에서 이자카야 업종은 진입장벽이 높지 않은 캐주얼한 콘셉트로 고급 요리 개념이 아닌 부담 없는 안주류에 중점을 맞춰 음식을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다양한 요리를 주문해 여럿이 나눠 먹는 쉐어 형태의 문화다. 1인 1안주의 개념이 아니니 인원 수 대비 테이블당 주문하는 메뉴 수가 적어지고 자연스럽게 잘 팔리는 것들 위주로 메뉴가 축소된다. 이자카야는 많아도 메뉴들이 비슷비슷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한계다. 
고료리 켄은 쉽게 말해 1인 1안주를, 5품7품9품 단위로 주문해 적게는 다섯 가지에서 많게는 아홉 가지의 안주에 다양한 술을 매칭하며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5품이란 5가지의 요리로 구성된 코스가 아닌 5가지 작은 안주들의 모음이다. 따라서 잘 짜여진 코스요리처럼 정해진 순서도 없다. 대신 재료와 조리법을 각기 달리해 개성을 살린 다양한 요리들이 나온다.
술도 안주에 맞춰 다양하게 즐기라고 200여 가지 일본 술을 병이 아닌 도쿠리 위주로 판매한다. “일본 술, 특히 도수가 높은 소주를 750㎖ 병째 판매하는 것은 말이 안돼요.”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나 맛있는 요리들에 똑같은 술을 계속 마시라는 것은 애주가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노릇일 거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짜리 술집 
2009년 연남동에 이자카야 이노시시를 오픈하면서 처음으로 오너셰프가 됐다. 지금이야 연남동이 다국적 맛집이 모여 있는 핫 플레이스로 통하지만 그때는 조용한 주택가에 지나지 않았다. “왜 하필 첫 가게를 그런 곳에?” “그때 가진 돈으로 가능한 곳이 그곳밖에 없었어요.” 
그는 그곳을 25석 규모의 이자카야로 꾸미고 주력메뉴로 모듬 사시미를 한 접시에 3만5000원에 팔았다. 선어회와 와사비의 ‘일식 사시미’보다는 광어우럭 위주의 활어회와 초고추장으로 대변되는 ‘한국식 회’에 익숙했던 당시 등푸른 생선과 조개류 등을 포함한 10여 가지 다양한 생선으로 구성된 모듬 사시미는 파격이었다. “처음에는 손님 한 두 명이 고작인 날도 많았어요. 하지만 점점 알려지면서 줄을 서야 하는 술집이 됐죠. 사시미 등 해산물을 전문으로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는 이자카야는 그때까지 없었거든요.” 이노시시와 함께 1세대 이자카야로 불리는 이태원과 이촌동 일대 이자카야들이 야키도리(꼬치) 정도에 집중하고 있을 때다. 그가 ‘국내에 제대로 된 새로운 이자카야 문화를 소개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유다. 



“저 유학파 아니에요” 
요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다. 미식에 관심이 많던 부친과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 많은 음식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요리가 좋아졌다. 공부에 딱히 흥미가 없던 그는 대학 대신 요리학원을 찾았다. “조리사자격증반에 등록했는데 자격증이 잘 따지더라고요(웃음).” 그렇게 한식일식양식복어조리사 자격증을 따면서 기초를 배운 뒤 신라호텔 외식사업부에 입사해 다양한 업장에서 근무를 했다. “일식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어느 날 식재료를 빌리러 신라호텔 일식당 아리아케에 가게 됐어요. 거기서 흰 접시 위에 올라간 다양한 사시미를 봤어요. 빨주노초…. 그때까지 봐 왔던 회와는 너무도 다른 그림 같은 모습에 문화적 충격을 받았어요.” 일식에 꽂혀 아리아케 입사를 몇 차례 시도했으나 아쉽게도 실패했다. 그리고 군에 입대해 취사병으로 전역을 한 뒤 곧바로 일식당에 취업을 했다. 
“일본에서 요리를 배운 것이 아니라?” “저 유학파 아니에요.” 부모님이 일본 요리학교 유학을 권했지만 마다했다. 운전학원에서 면허 따듯 요리를 공부하기는 싫었다. 그렇게 배워봤자 요리에 대한 센스와 실력은 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모님께 차라리 그 돈으로 일본 현지의 유명 식당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것을 경험하겠노라 선언했다. 서울의 고급 일식당과 회전초밥, 스시집 등 유명하다는 곳들을 찾아가 일을 배우면서 중간중간 일본을 왔다 갔다 하며 유명한 곳들의 다양한 요리를 먹어보고, 스스로 공부를 했다. 
한국에서의 일식당 근무는 그리 길지 않았다. “4년 정도 지나니 더 이상 근무할 곳이 없더라고요. 일본에서 접했던 진짜 일본요리가 아닌 한국화한 일식당이 훨씬 많았거든요.” 그리고는 바로 이노시시를 개업했다. 우리나라에 진짜 일본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의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갓포요리를 아십니까
갓포요리를 콘셉트로 하는 두 번째 식당 이타치를 개업한 건 2년 뒤인 2011년이다. 김건 셰프의 표현에 따르면 갓포요리란 캐주얼 가이세키다. 이자카야인 이노시시에서는 시도할 수 없는 고급요리를 내기에 가장 무난한 콘셉트가 갓포요리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 일대(고료리켄이 위치하는 압구정동) 일식당은 전부 갓포예요. 식당이름 앞에 갓포를 붙이는 게 유행이 됐어요.” 
2011년 당시 우리나라 일식 시장에 갓포요리란 생경한 장르였다. 6석의 작은 규모에서 매일매일 메뉴를 달리해 평일 저녁 예약제로만 운영하다가 6개월 후 문을 닫았다. 처음부터 길게 할 생각은 없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것이 통할까 하는 테스트 차원이었다. “그래서요? 통하던가요?” “제가 하고 싶은 고급요리를 다양하게 했어요, 일식을 코스로 제공하는 새로운 시도도 했고요. 이타치를 운영하면서 느낀 것은 고객은 항상 새로운 요리를 기대한다는 거예요. 이자카야가 아닌 일본요리의 가능성을 많이 봤죠.” 
그는 이노시시와 이타치가 한국의 일본음식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고 자평한다. 국내 일식시장에 고급 일본요리가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다. “이노시시와 이타치 같은 곳이 없었더라도 고급 일본요리 시장은 생겨났을 거예요. 하지만 그 시기가 늦어졌겠죠.” 
이타치를 정리하면서 첫 가게인 이노시시 경영권도 동업자였던 친구에게 넘겼다. 그리고는 2012년 압구정동에 이자카야 이치에를 새롭게 열고 강북에서 강남으로 영역을 이전했다. “왜 그렇게 하신 거예요? 정들었던 연남동에서….” “그런 게 있어요, 요리 하는 사람이라면 압구정에 내 식당 하나 내고 싶은 그런 로망 같은 거(웃음).” 이치에는 이노시시와는 달리 생선을 포함한 다양한 식재료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사시미를 중심으로 구이, 튀김, 일품요리 등 50여 가지 안주에 다양한 일본 술을 즐길 수 있는, 이노시시의 확장형 콘셉트다. 초기에는 김건 요리 마니아를 중심으로 하는 아지트 같은 공간이었지만 오픈 후 5년 정도가 되니 수요미식회 이자카야편에 등장할 정도로 대중들 사이에서도 인지도가 높아졌다. 

김건의 요리를 즐길 준비가 됐나요? 
그는 요즘 오전에 이치에로 출근해 오후에 고료리 켄에서 퇴근한다. “여기(고료리 켄) 음식은 저밖에 만들 수 없어요, 준비부터 요리까지 모두 제 손으로 하고 있어요.” “그래도 서빙하는 사람이 없어 인건비는 조금 줄겠네요?” “네. 하지만 제 입이 너무 아파서 힘들어요(웃음). 아홉 분이서 9품 요리를 시킨다면 메뉴 설명을 63번 해야 하는 거잖아요. 들어오시는 타이밍과 드시는 타이밍이 모두 다르니까.” 
고료리 켄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메뉴판을 다시 한 번 살펴보니 이렇게 해서 돈을 벌기는 커녕 망하지 않으면 다행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5품7품9품 요리 가격은 각각 4만5000원, 6만3000원, 7만9000원. 제 값 받고 팔려면 못해도 15만 원에서 20만 원은 받아야 할 만한 요리들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이 정도 값을 지불하고 일식당을 찾을 사람은 없어요. 그런 콘셉트로 운영했던 몇몇 곳들이 다 문을 닫았죠. 스시 정도라면 모를까, 그냥 ‘일본요리’에 돈을 지불할 만큼의 인식이 아직은 없는 거예요.” 맞는 말이다. 프랑스이탈리안 레스토랑의 값비싼 요리와 와인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그럼 돈은 어디서 벌어요?” “여긴 마이너스만 아니면 돼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요리를 내는 자기만족식당이에요. 수익은 이치에에서 얻죠.”
메뉴판에는 5품7품9품의 세 가지가 전부지만 매일 준비하는 요리는 열 가지 이상이다. 추가주문에 대비해서다. “저는 늘 새로운 요리를 준비하는데 SNS나 블로그를 보고 오신 분들 중에는 ‘그 메뉴’를 주문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럴 때 안타까워요. 고료리 켄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매일매일 달라지는 제 요리를 온전히 즐겨주셨으면 하거든요.” 
그의 주방에는 냉동실이 없다. 생물만을 사용하는 데다 아침마다 장을 봐서 그날 판매할 양만큼만 준비하기 때문에 식재료가 냉동실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 생선도 수산시장에서 당일 구입해 손질한 뒤 신선한 상태일 때 모두 소진한다. 그래서 수족관도 없다. 이렇게까지 정성과 품을 들이는 요리라면 모든 것을 셰프에게 맡긴 채 즐겨주는 것이 맞는 거다. 

“고료리 켄 다음은 무엇인가요? 궁극에는 어떤 요리를 하고 싶으세요?” 
“나중에 나이가 들면 지방 한적한 곳에서 료칸(고급 요리가 제공되는 일본식 여관)을 운영하고 싶어요. 요리란 문화잖아요. 왜 이 계절에는 이 음식을 먹는지, 왜 이 음식에 이 술을 곁들이면 좋은 것인지. 만드는 이와 먹는 이가 그러한 것들을 교감하면서 즐길 수 있는 곳이 우리나라에도 하나쯤은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2017-08-01 오전 02:22:49 (c) 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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