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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의 본질 그리고 요리의 본질. 리스토란테 에오 어윤권 셰프  <통권 390호>
관리자 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17-08-31 오전 10:25:34


9년 만에 그를 만났다. 2008년 리스토란테 에오에서 인터뷰를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나 시간이 흘렀다. 반가운 나머지 악수를 한다는 것이 어느덧 손을 꼭 잡고 있다. 작지만 서글서글한 눈매와 반듯한 자세, 얌전히 모은 두 손. 달라진 게 없다. 있다면 지금은 미쉐린 레스토랑의 주인이 됐다는 것 정도다. 
글 박선정 기자 sjpark@foodbank.co.kr  사진 이종호 팀장 


재회 
그가 청담동 한 곳에 테이블 4개짜리 작은 레스토랑 ‘리스토란테 에오’를 연 것이 2006년이다. 우리나라 외식업계에 미쉐린은커녕 부티크 레스토랑이란 개념조차 낯설었던 때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2016년 겨울, 국내 최초로 선보인 ‘2017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서 1스타 레스토랑에 이름을 올렸다. “기대는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처음 에오를 오픈할 때부터 늘 희망은 갖고 있었어요.” 
처음 요리를 접한 건 1989년이다. 신라호텔과 세종호텔, 힐튼호텔 등 당시 요리사들에겐 선망의 코스였던 특급호텔을 돌며 기본을 익혔다. 한창 배우던 젊은 시절엔 특별한 욕심은 없었다. 그저 요리가 좋았을 뿐 오너는 꿈도 안 꿨고 어디라도 좋으니 일이라도 계속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유학 시절, 한국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본토의 요리를 익히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자신감이 붙었다. ‘한국에 가면 다 죽었어’라는 생각으로 4년여 만에 귀국을 했지만 막상 와 보니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았다. 다시 이탈리아로 가 2년 반 정도 더 공부를 했다. “쭉 7년을 계셨던 게 아니에요?” “네, 폴짝폴짝 전부 7년이에요. 중간에 귀국해 한 번 실패한 뒤 다시 갔다 왔어요.” 
완전히 귀국한 건 2004년. 월급쟁이 요리사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중간 중간 현직 셰프를 대상으로 요리 특강도 진행했다. 당시 요리사들 사이에 어윤권은 가장 트렌디한 이탈리안 셰프로 통했다. 레스토랑 근무를 마치고 밤늦게 모인 셰프들은 날이 밝을 때까지 눈을 밝히며 그의 요리수업을 들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자만하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지금과는 달리 그때 대중들이 다이닝 문화를 접할 수 있던 건 몇몇 매체의 맛집 기사가 전부였어요. 미디어가 칭찬하는 맛집 기사를 보면서 ‘이것보다 잘 하면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죠. 겸손함은 없었고 승부욕만 앞섰어요. 경험도 부족했고.” 
하지만 지나친 겸손 같다. 10년 전, 강남 도곡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열린 요리특강 자리에 어 셰프와 기자는 함께 있었다. 밤 11시가 다 돼 모인 20여 명의 셰프들, 새벽 5시까지 끊이지 않았던 질문 세례, 하나라도 더 가르치고자 했던 어윤권의 열정. 이 모든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실패 아닌 실패…그리고 현실 
2006년 리스토란테 에오를 오픈하며 오너 셰프가 됐다. 에오(Eo)란 유학 시절 이탈리아 사람들이 그의 성인 ‘어’를 발음하지 못해 에오로 불렀던 데서 따 온 이름이다. 그러고 나서 10여 년 간 콘셉트가 다른 몇 개의 레스토랑을 더 냈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리스토란테 에오 말고도 몇몇 곳이 있었죠?” “아, 구르메 에오랑 삐꼴로 에오. 지금은 다 접고 여기(리스토란테 에오) 하나만 하고 있어요.” 
2009년 오픈한 구르메 에오는 리스토란테 에오를 이전 오픈하면서 함께 선보인 곳이다. 같은 건물 1층에는 구르메 에오를, 2층에는 리스토란테 에오를 두고 함께 운영했다. 리스토란테 에오와는 달리 35개 테이블과 가든까지 갖춘 널찍한 공간에서 코스요리와 여러 가지 단품요리를 판매했다. 하지만 5년 만에 문을 닫았다. 월 매출이 3억 원 가까이 됐지만 주방에서 가든까지 음식을 나를 직원이 없었다. “아내와 함께 영화 ‘해무’를 보면서 결정했어요. 배가 침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치 우리를 보는 것 같더라고요. 떠나는 사람만 있고 들어오는 사람이 없으면 배도, 식당도 침몰하는 법이거든요.” 그렇게 구르메 에오를 정리하고, 지금의 자리로 리스토란테 에오만을 옮겨왔다. 다시는 새로운 레스토랑을 열지 않을 계획이다. 평생 이곳 하나에만 열정을 쏟기로 마음을 먹었다. 
“제가 요리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요. 요즘은 체력관리를 위해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10년은 거뜬하지 않을까요?” 에오를 처음 오픈했을 때가 서른여섯이었으니 올해로 그의 나이 마흔여덟이다. 

기술자로 살아가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사회 
2011년 오픈했던 삐꼴로 에오도 지금은 없다. 어윤권이 없어도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자리를 잡아 놓은 뒤 직원들에게 경영을 일임했으나 그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미련 없이 문을 닫았다. 
“앞으로는 점점 더 힘들어질 것 같아요. 최저임금도 오르고….” “좋은 기술을 가진 숙련된 기술자가 풍족하게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사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죠.”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신을 기술자라 칭했다. 중간 중간 튀어 나오는 숙련된 기술자, 베테랑 기술자라는 표현은 요리사로서 자신의 본질에 대한 강한 자부심으로 다가왔다. 
“한국의 식당 인건비는 선진국에 비해 결코 낮은 편이 아닙니다. 특히 숙련공이 아닌 배우는 단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죠. 대학을 졸업해 1~2년만 일을 배워도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 직군이 있는가 하면 10년을 배워야 겨우 중간 기술자가 될 수 있는 직군이 있습니다. 요리가 바로 그렇죠. 지금의 최저임금 이론을 보면 오랫동안 일을 한 기술자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구조예요.” 기술자의 입을 통해서 나온 표현은 적나라할 정도로 예리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인력난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주 40시간, 5일 근무를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다보니 젊은 친구들이 견디지 못하고 빠져나가고 있어요. 신규 유입 기술자가 없으면 숙련 기술자가 잡일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1년차나 10년차나 모두 동일해지는 거죠. 이러한 구조에서는 기능성 직군은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존폐의 위기예요.”
그렇다 해도 정책은 거스를 수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 희망은 있다. 좋은 기술자들이 기술에 집중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된다. 그들이 만든 요리의 가치를 인정하고 거기에 합당한 가격을 지불할 수 있는 미식의 풍토다. 좋은 기술자에게 풍족한 삶이 보장되는 사회라면 지금 당장 조금은 힘들더라도 확신을 갖고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나는 사업가 아닌 그저 기술자일 뿐 
리스토란테 에오 외에 하고 있는 유일한 사업이 백화점 매장이다.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식품관의 테이크아웃 매장으로 애피타이저에서 메인요리까지 60여 가지 메뉴를 판매한다. 에오 초기 주방 보조를 했던 처남이 지금은 이곳 백화점 매장의 요리와 운영을 담당한다. 
백화점 매장 운영은 쏠쏠한 편이다. 처음에는 백화점 내에서 모든 음식을 직접 생산했으나 매출이 점점 증가하면서 이제는 매장 생산만으로는 부족하게 됐다. 마침 현대백화점에서 좋은 기회를 줘 문정동의 씨티몰 가든파이브점에 생산 공장을 짓고, 가동을 위한 막바지 점검 작업 중이다. 본격적으로 생산하게 되면 외부 유통도 가능할 정도로 넉넉한 규모를 갖췄다. 
“그럼 가든파이브점에도 입점하게 되는 건가요?” “아뇨, 그곳엔 매장은 없고 생산시설만 있어요, 쇼핑객들이 어윤권이 하는 곳이라니 관심을 보인다고 해요. 왜 생산만 하고 판매는 안 하냐는 컴플레인도 있고. 어쩌면 그쪽에도 입점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백화점 매장을 무리해서 확장할 계획은 없다. 별도의 유통사업을 벌일 계획은 더더욱 없다. 돈은 ‘돈 때문에 상처 받지 않을 정도’로만, 지금처럼 아내와 둘이 오순도순 먹고 살 정도라면 족하다. 돈을 벌고 싶은 욕심이었다면 처음부터 테이블 4개의 부티크 레스토랑으로 시작하지도 않았을 거다. 
문득 유명세와는 달리 방송에 출연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무조건 방송이 싫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라이브가 아니면 출연하지 않겠다는 거죠.” 셰프들이 방송을 통해 보여주는 요리는 모두 성공한 요리들뿐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기술자라도 모든 것을 성공시키는 것은 아니다. 요리도 마찬가지다. 실패도 요리의 한 과정일 뿐이다. 프로그램 섭외가 들어왔을 때 이러한 것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라이브를 제안했다. 라이브가 아니면 요리방송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작가와 피디도 모두 오케이했는데 마지막에 맨 윗선에서 잘렸어요. 이후로도 몇몇 곳에서 제안이 있었지만 제 입장은 똑같았죠. 그러고 나서는 방송 쪽에서 연락이 안 와요. 하하.” 

에오에는 분자요리가 없다 
그가 요리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식재료다. 기교를 앞세운 비주얼 위주의 요리가 아닌 제철 재료의 특징을 잘 살린 자연요리를 추구한다. 비주얼과 맛을 위해 캐미컬 및 인공재료, 전자렌지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에오에는 흔히 알려진 분자요리도 없다. 
즐겨 사용하는 요리기법은 저온조리다. 취재 당일 맛본 가리비요리는 60℃ 정도의 저온에서 색이 나지 않게 천천히 팬 프라잉해 영양소 파괴를 최소화했다. 뽀얗고 탱탱한 것이 본연의 감칠맛을 꽉 끌어안고 있다. 생선과 육류도 마찬가지로 저온 조리를 선호한다. 특히 소고기 스테이크를 저온으로 조리하면 천천히 굽는 과정을 통해 몸에 안 좋은 포화지방이 빠져나가 고기 본연의 진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저온조리는 자칫 식중독을 유발할 수 있는  만큼 조리뿐 아니라 세척과 전처리, 살균 등의 과정에도 고도의 기술과 노하우가 필요하다. 일반적인 고온조리법에 비해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집하는 이유는 자연의 상태 그대로를 즐길 수 있는 건강한 요리이기 때문이다. 백화점 매장도 마찬가지다. 암으로 여명을 선고받았던 이의 가족이 찾아와 ‘덕분에 건강하게 지내다 가셨다’며 손을 잡아 줬을 때는 마음이 찡하면서도 고마웠다.    

미쉐린의 별을 받고 나서 달라진 것은 식당 주인 즉 어윤권 셰프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외국인 고객을 포함한 신규유입 고객도 많아졌다. 하지만 그에 비해 음식 가격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게 없다. “고객이 끊이지 않고 잘 돌아갈 수 있는 구조를 감안한 가격입니다. 지금보다 높으면 두 가지 문제가 생겨요. 고객이 끊기게 되면(만석이 되지 않고 드문드문 자리가 차면) 루틴 관리가 잘 되지 않아 직원들의 기술적인 성장이 어려워집니다. 재료 구입 시에도 바잉 파워가 떨어져 좋은 재료를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하는 것이 힘들어지고요.”
미쉐린에 선정되기 전 가격인상을 검토한 적이 있긴 하다. 많게는 아니고 5000원 정도. 우리나라 미식의 성지로 통하는 청담동에서, 그것도 미쉐린 레스토랑 오너 셰프가 5000원을 두고 고민할 줄이야. 우리나라에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오너로 산다는 것은 여전히 팍팍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희망이 훨씬 많다는 거다. 우리나라 미식문화의 수준 그리고 어윤권의 입지는 10년 전에 비해 놀라울 만큼 성장했다. 또 다시 10년 후에는 그의 말대로 훌륭한 기술자들이 맘 놓고 재량을 펼칠 수 있는 문화가 자리 잡지 않을까? 그때 다시 한 번 그를 인터뷰하고 싶다.

 
2017-08-31 오전 10:25:34 (c) 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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