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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커피의 거장 테라로사 김용덕 대표  <통권 394호>
관리자 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18-01-03 오전 05:13:59

 

자판기 커피가 대중커피로 인식됐던 2000년대 초, 김용덕 대표는 강원도 강릉 외곽 지역에 330.58㎡(100평) 규모의 저택 같은 커피전문점 ‘테라로사’를 열었다. 최상급 원두로 맛있는 핸드드립 커피를 내며 커피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았고 서울·경기와 제주, 부산까지 직영 매장을 확장하며 16년 만에 그는 명품 커피의 대가로 우뚝 섰다. 국내 커피산업이 고가와 저가 시장으로 나뉘며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테라로사 김용덕 대표를 통해 커피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새겨봤다.
글 황해원 기자 banana725@foodbank.co.kr  사진 이종호 팀장

 

연매출 243억 원, 고급 커피 시장 개척
테라로사는 한국에 고급 커피 시장의 활로를 연 대표 브랜드다. 2002년 강릉에 처음 문을 연 테라로사는 독보적이었다. 아메리카노보단 자판기 커피가 익숙했던 16년 전 케냐와 르완다, 과테말라, 에티오피아 등 각국에서 공급 받은 고급 원두를 로스팅해 핸드드립해주는 커피라니. ‘과테말라 로스 아구아카토네스’, ‘파나마토니-부르봉’, ‘코스타리카 카를로스’ 커피명까지 생소해 매장 안까지 들어왔다가 메뉴판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그냥 나가버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강릉 테라로사가 지역 명소로 자리 잡기까지는 수년이 걸렸다. 테라로사가 알려진 건 소문을 듣고 찾아온 커피 마니아들에 의해서다. 전국의 명품 커피집을 찾아다니던 이들이 테라로사의 정보를 접하고 강릉까지 찾아온 것이다. “커피는 공간과 문화를 파는 산업이라고 하잖아요. 테라로사를 찾은 많은 커피 마니아들은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한 잔씩 골고루 주문해 음미하면서 건물 인테리어와 분위기에도 감탄했어요. 강릉이라는 소도시에 유럽 저택 같은 공간이 있다는 게 그들은 좋았던 거죠. 일부 마니아들의 입소문으로 테라로사는 강릉의 명물이 됐어요.”
테라로사는 2002년 강릉 본점을 시작으로 현재 서울 한남동과 이태원, 예술의전당, 광화문, 제주와 부산, 경기도 양평 등 총 13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각 매장마다 건물 구조와 인테리어를 완전히 다르게 구상했다.
“규모나 건물 구조, 인테리어 요소뿐 아니라 미학적 느낌이나 동선도 제각각 달라요. 테라로사를 준비하면서 유럽의 유명한 건축박물관과 미술관을 다니며 건축과 예술, 디자인에 대한 시각을 키웠어요. 그때 익혔던 미학적 감각이 테라로사 매장을 만들 때 정말 많은 도움이 됐죠. 주변의 풍경과 주택의 모습, 빛이 들어오는 방향과 사람들의 시선, 동선이 머릿속에 그려져요. 가구도 유럽 각국을 다니며 하나하나 사들인 것들이에요. 매장마다 느낌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테라로사를 찾았을 때 ‘가히 테라로사답다’는 감탄사가 나온다는 거예요(웃음).”
특히 경기도 양평 서종점은 구식 한옥 건물을 감각적으로 디자인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만들었고 부산 수영점은 고려제강의 철강제품 생산 공장을 리뉴얼해 인더스트리얼 느낌의 분위기를 구현했다.

나는 분노감 때문에 커피를 시작했다
테라로사를 만들기 전 그는 21년간 은행에 다녔다. IMF 때 명예퇴직한 후 돈가스집을 운영했는데 당시 음식을 배우면서 와인을 함께 공부했고, 그 관심은 자연스럽게 커피 쪽으로 옮겨갔다.  
“충격이었어요. 국내 커피산업이 다른 나라에 비해 이렇게까지 낙후될 수가 있는 건지.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만 해도 좋은 커피를 수입해 대중이 즐겨 마시던 때였는데 우리는 고작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가 전부였거든요. 아메리카노가 대중적 인기를 끌게 된 것도 몇 년 안 됐잖아요. 충격은 분노로 이어졌어요.”
한국의 문명은 어느 정도 선진화됐는데 왜 아직까지 일부 먹고 마시는 문화는 수십 년이나 뒤처진 것일까. 와인을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커피를 배우면서 그는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분노 비슷한 감정이었다.
바로 유럽행 티켓을 끊었다. 커피 문화를 꽃피운 곳. 그는 각국의 유명한 정통 커피집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하루 수십 잔의 커피를 마시다 보니 문득 원두가 궁금해졌다. 그때부터 전 세계 수백 개의 커피농장을 다니며 햇콩의 냄새를 맡고 그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치는 최상급의 원두를 선별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에티오피아의 하라 지역이었어요. 비가 많이 내리지 않는 지역이라 목숨만 겨우 유지하는 커피나무가 대부분인데 어렵게 버티며 맺은 커피 열매가 한 그루당 고작 300~500g 밖에 안 돼요. 양이 적으니 공급받긴 어렵죠. 맛있는 커피라기 보단 애잔한 커피로 와 닿았어요.”

악마의 음료가 인류의 음료가 되기까지

그에게 커피는 다 같은 커피가 아니다. 맛있기도 하고 때론 달기도 하며 어떨 땐 에티오피아에서 느꼈던 것처럼 애잔한 맛이 나기도 한다. 산지나 원두 종류 별로 맛을 분리하는 학습의 차원을 벗어난, 그러니까 ‘구별’을 떠나 ‘차별’의 단계까지 온 것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이렇게 커피 맛을 구별하고 또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원두의 품종을 찾게 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아요. 와인이나 차를 비롯해 모든 음료의 역사가 기원전부터 시작하는데 커피는 그렇지 않죠. ‘에티오피아 아비시니아 지방에 살았던 목동 칼디가 커피 열매를 발견했다더라’ 하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나온 것도 800년 정도 밖에 안 됐으니까요. 터키 이스탄불에 세계 최초의 커피집이 생겼는데 그게 겨우 15세기예요. 1641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유럽 최초 카페가 생겼고 이후 1760년 로마에도 카페가 생겨요. 그러니까 터키에 최초의 카페가 생긴 후 커피 문화가 유럽으로 퍼지기까지 200년, 유럽 전역에 커피가 보급되는 데는 120여 년이 걸린 셈이죠. 커피를 전 세계적으로 마시게 된 건 불과 150년이 채 안 된다는 이야기예요. 그만큼 더뎠어요. 역사가.”
커피는 이슬람 음료였다. 검은 빛이 돌아 기독교에선 악마의 음료라 칭하며 마시는 걸 금기시했다. 1605년 천주교와 교회의 주교들이 교황에게 악마의 음료를 마시지 못하도록 금지해달라고 청원했을 때, 당시 교황이었던 클레멘트 8세는 커피 맛을 본 후 이렇게 말했다. “이토록 훌륭한 음료를 이교도의 음료로 두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이 음료에 세례를 내리노라!”
“유럽에 커피집들이 생기고 대중화되기 시작한 게 그 무렵이에요. 종교나 정치, 사회적인 흐름 때문에 커피의 발달 속도가 한참 느렸던 거죠. 느린 시간에 비해 현재 커피 시장 규모는 몰라보게 커졌죠? 지금은 정치, 경제, 사회, 종교에 가장 영향을 받지 않고 누구나 즐기는 문화가 됐어요. 종교에서 말했던 악마의 음료가 대중의 음료, 결국 인류의 음료가 된 셈이죠.”

스타벅스를 뛰어넘는 전략은?
명품 커피의 대가. 그를 두고 언론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더러 미국에 스타벅스가 있다면 한국엔 테라로사가 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2016년 테라로사의 연매출은 243억 원. 하루 1000만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매장이 절반 이상이다. 전체 매출은 스타벅스와 비할 바 아니지만 점포당 매출은 이미 두 배를 넘어섰다. 중요한 건 기업의 시가총액이나 규모를 떠나 국내 커피업계에 미친 영향력이 스타벅스와 견줄 만큼 막대하다는 것이다.
“그냥 저는 커피를 가지고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일 뿐이에요. 스타벅스와 자주 비교 당하기도 하지만 사실 스타벅스와 테라로사가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은 아예 달라요. 스타벅스는 커피 품질이나 맛보단 브랜드와 공간을 파는 곳이고 테라로사는 커피 자체에 중점을 둔 브랜드예요. 서구적인 인테리어와 건축물의 예술적 감각도 커피에 더욱 집중하도록 하는 장치고요. 질적으로는 스타벅스를 뛰어넘었다고 자부해요.”
얼마 전엔 KBS ‘장사의 신’ 프로그램에 출연해 화제가 됐다. 매장 막내 직원의 초봉이 업계 중간관리자 정도의 연봉인 데다 지방 매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겐 1인 숙소를 지원하고 그 밖에 자녀 교육이나 복리후생도 알뜰하게 챙긴다는 것이다.
“테라로사를 국가 경쟁력이 되는 브랜드로 끌어가기 위해선 탄탄한 조력자가 필요해요. 우리나라는 외식업을 천대했던 과거가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환경이 열악하거든요. 외식업에 몸담고 있는 젊은 친구들이 대우 받으며 전문성을 갖춰나가기가 쉽지 않죠. 단순히 매출을 올리기 위한 계산만 할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산업을 만들어간다는 생각으로 업에 임해야 돼요. 그 기초가 되는 것이 직원 복지고 교육인 셈이죠.”

리더의 자질 ‘역사관과 본질을 꿰뚫는 힘’
테라로사를 시작한 지 10여 년이 지나니 이제 그의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국내 커피문화가 왜 그토록 뒤처졌는지,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한 국가의 음식·예술 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커피 공부를 하면서 유럽사와 한국의 근대사, 세계사, 건축과 디자인, 미술 등에 대한 정보와 철학을 거침없이 섭렵하는 동안 그의 뇌리에 꽂히는 한 가지가 있었다. 리더의 자질이었다.
“유럽에 커피 문화가 보급되기 시작했던 1600년대 유럽은 르네상스 시대를 맞으며 문화예술의 정점을 찍게 돼요. 클로드 모네, 빈센트 반 고흐,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현대까지 이름을 알린 수많은 화가들이 전부 르네상스를 이뤘던 주인공들이죠. 그들의 예술은 커피 문화와도 밀접해있어요. 각자만의 단골 카페가 있었고 반 고흐는 자신이 자주 가는 커피집 여직원의 모습을 그림에 담기도 했어요. 철학자 루소도 반드시 자신이 가는 카페에만 갔고요. 한국은 조선 건국 후 약 300여 년이 지났을 무렵이에요. 만약 그때 선조 왕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갔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봐요. 이전 세종대왕이 유럽이나 중국으로 대장정을 다녔다면? 유럽 곳곳을 다니며 율리우스 카이사르(로마 공화정 말기 정치가)의 내전기나 갈리아정복기 등을 읽고 유럽사를 공부했다면? 과연 지금 우리는 어떤 국가가 됐을까요. 작은 도시국가였던 로마는 5만 군대를 동원해 50만 군대인 갈리아를 뛰어넘고 당시 게르만족이었던 독일, 영국까지 넘어 페르시아 지방과 이집트까지 점령하고 통일해요. 그 막강한 힘의 원천은 생존 본능이었겠죠. 당시 조선도 오랑캐의 침략을 수없이 받았지만 힘을 기르지 못해 제압하지 못했어요. 안으로는 군사력을 강화해 중국을 뛰어넘고, 밖으로는 유럽의 문명과 문화를 배우고 공부했어야 해요. 그랬다면 커피는 물론 외식업과 국민성, 국가의 모든 경쟁력과 힘이 달라졌을 거예요.”
결국 그가 말하는 리더의 자질은 세상을 보는 거시적인 관점과 제대로 된 역사관이다. 국가는 물론 기업의 리더 역시 산업을 보는 안목과 역사관에 뿌리를 둔 운영 전략이 필요하다. 테라로사가 스페셜티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도 국내 커피산업의 질적 성장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비전과 역사관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분노감을 시작으로 파고들었던 게 여기까지 왔네요. 집요하죠(웃음). 결국 먹고 마시는 일은 인류 문명의 본질이에요. 외식업의 처음과 끝이기도 하고요.”

테라로사를 국가 경쟁력으로 만드는 일
커피집 몇 곳 오픈하는 것으로 만족했다면 지금처럼 커피와 역사, 예술을 깊게 파고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그랬듯 그는 커피산업 측면에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단순히 커피로 新시장을 만드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테라로사를 어떻게 하면 국가의 경쟁력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생산기술의 A부터 Z까지 갖고 있는 삼성전자의 시가 총액이 300조 원인데 스타벅스는 커피만 팔아 시가총액을 100조 원까지 올렸어요. 스위스의 커피음료생산기업 네슬레가 300조 원이고요. 콜라콜라는 수십 년간 음료시장에서 1위 자리를 꿰차고 있죠. 이탈리아 최고의 부자는 누텔라를 만든 사람이에요.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식품·외식산업의 무한한 경쟁력이다. 거시적 관점에서 이러한 경제의 순환을 보면 외식업을 대하는 관점과 자세가 달라진다. 그만큼 먹고 마시는 산업이 경쟁력을 갖추고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안정궤도에 오르면 그 브랜드는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된다. 테라로사를 국가 경쟁력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상향이다.
“파리에 갈 때마다 늘 방문하는 우동집이 있어요. 20평도 채 안 되는 공간에서 하루 100만 원 어치의 우동을 팔아요. 테이블과 좌석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모르는 사람과 등을 맞대고 먹어야 할 만큼 비좁아요. 근데 그 우동집을 방문하는 유럽인들은 그 분위기 자체를 즐겨요. 회전도 빠른데 객단가도 높아요. 사람들은 주로 18유로나 되는 튀김우동을 먹는데 한국 돈으로 2만5000원쯤 되죠. 거기에 맥주 한 잔 시키고 오니기리까지 주문하면 객단가 3만 원이 훌쩍 넘어가요. 그렇게 한 달에 3억 원을 버는데 그 매장이 단순히 작은 일식당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한 우동집으로 생기는 가치는 어마어마하거든요. 그 집에서 사용하는 간장부터 그릇, 면, 육수나 튀김재료, 밥 등 전부 일본 제품이니 그 부가가치는 전부 일본으로 가겠죠. 게다가 음식만 파나요? 일본 우동의 장인 정신과 문화도 함께 파는 거니 여러 모로 국위선양하는 셈이죠.”
외식업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음식에 대한 철학과 위생에 대한 철저한 개념, 그리고 하드 트레이닝을 통한 조리기술만 확실하다면 해외로 나가 얼마든지 산업의 가치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그는 향후 외식업전문학교를 세우는 것이 목표다. 음식과 커피, 와인 나아가 역사와 철학, 건축, 디자인까지 교육시킨 후 외국에 나가 새로운 경쟁력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커피 역사를 공부하면서 느낀 건 지금 이 순간도 역사라는 사실이에요. 지금 우리가 어떤 안목을 가지고 업을 대하느냐에 따라 내공이 쌓이고 쌓여 후대 역사로 남는 거죠. 우리는 지금까지 충분히 봤어요. 지도자가 누구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과 문화의 흐름이 뒤바뀌고, 그 속에서 어떤 국가는 도약하기도 하고 어떤 국가는 패망하는 것을요. 비록 우리나라는 약소국가로 일부 문화가 뒤처진 상태지만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다 생각해요. 커피산업을 대하는 자세와 비전에 따라 앞으로의 국내 커피산업의 역사가 달라질 수 있다고 믿어요.”

테라로사(Terarosa). 포르투갈어로 붉은 땅, 브라질에서는 희망이 있는 땅이라는 뜻이다. ‘커피가 잘 자라는 비옥한 보랏빛 땅’이라는 의미를 담은 상호지만 사실 이 안엔 커피를 비롯한 모든 음료와 외식의 역사가 담겼다. 포르투갈이 브라질을 식민지로 통치할 당시 포르투갈은 브라질에서 생산하는 질 좋은 커피를 들여와 커피 문화를 급속도로 발전시켰다. 포르투갈의 통치 하에서도 브라질은 희망을 기다렸고, 포르투갈은 생존을 위해 수많은 도시를 지배했다. 희망과 생존의 사투 안에서 커피 문화가 싹 트고 발전해온 것을 보면 인류의 운명은 전부 역사 안에서 갈리는 것 같다. 그렇기에 김용덕 대표에게 커피는 역사 그 자체고 생존이며, 또한 희망이다.
 

 
2018-01-03 오전 05:13:59 (c) 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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