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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펜시아리조트 인터컨티넨탈호텔 ‘플레이버스’-윤영범 셰프  <통권 397호>
관리자 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18-04-09 오전 06:22:48



“두 번의 올림픽에 셰프로 참여한 건 큰 영광이죠”
알펜시아리조트 인터컨티넨탈호텔 ‘플레이버스’ 윤영범 

윤영범 셰프의 호(號)는 유송(柳松). 풍파를 견뎌내며 줄기는 굽었어도 뿌리만은 견고한 굽은 소나무의 모습이 큰 사고를 당하고도 40년 간 주방을 지켜온 그의 모습과 닮아있다. 출장요리를 갔다가 당한 사고 후유증으로 오래 서 있으면 고통이 심하지만 단 한 번도 이 직업을 선택한 일을 후회한 적이 없다. 88년 서울올림픽과 평창 동계올림픽에 셰프로 참여하며 올림픽을 성공으로 이끈 또 다른 주역인 윤영범 셰프.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세상에 인사한다. ‘오늘도 건강하게 요리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글 안지현 기자 may17@foodbank.co.kr  사진 이종호 팀장



평창 동계올림픽 IOC 위원들 조식 전담…위원들 개별 요구 반영한 맞춤형 식단 제공으로 큰 호응,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달걀, 치즈, 빵, 주스 등 단순한 메뉴 위주로  

Q.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인터컨티넨탈호텔 플레이버스’(이하 플레이버스)에서 IOC 위원들을 위한 조식을 전담했는데, 어떻게 선정됐나?
지난 2011년 동계올림픽 실사 당시 평가위원 개개인의 취향과 기피음식을 파악한 메뉴제공으로 IOC 실사단의 극찬을 받은 적이 있다. 또, 스페셜 올림픽, 세계산불총회, 생물다양성협약 총회 등 굵직굵직한 국제 행사를 치러낸 경험과 노하우도 선정이유로 작용했던 것 같다.
플레이버스는 ‘건강한 삶’, ‘품격있는 스타일’을 지향하고, 지중해식 이탈리아 요리들을 추구한다. 파스타, 스테이크, 피자 등의 메뉴로 구성돼 있다. 고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음식으로는 루콜라 피자와 토마토 씨푸드 파스타가 있다. 그뿐 아니라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한식 메뉴도 즐길 수 있다. 

Q. IOC 위원들에게 어떤 메뉴들이 제공됐나? 
올림픽 기간 중에는 일반 고객을 받지 않고, IOC 위원들과 관계자 300명의 조식을 전담했다. 일단 주방과 홀의 인원을 2배 이상 늘려 총 60명의 스태프들이 고객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하려 애썼다. 이전 올림픽의 메뉴들을 연구해 우리나라에 맞게 메뉴를 구성하고, 채식주의자 및 각자 체질에 따라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는 재료를 개인별로 구별해 제공했다. 
한국적인 퓨전 음식을 중심으로 이태리식, 동남아식 그리고 웨스턴 요리로 구성해 매일 총 120가지 메뉴를 뷔페식으로 준비했다. 특히 써니사이드업, 오버이지, 오믈렛 등 고객이 원하는 메뉴를 직접 골라 라이브로 달걀요리를 제공했다. 오픈키친이라 풍미와 소리 덕분에 IOC 위원들과 관계자들의 더 큰 호응을 얻었다.


Q. 올림픽 기간 동안 특별히 신경 썼던 부분이나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다면?
철저한 사전 준비와 반복적인 리허설을 통해 특별한 문제는 없었지만, 갑작스럽게 외국 현지의 독특한 소스나 식자재들의 요구가 있을 때 즉시 구매에 조금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IOC 위원과 관계자들이 플레이버스의 음식과 서비스를 굉장히 좋아해줬는데, 그에 대한 만족감을 허그나 서양 문화권의 스킨십으로 표현해 직원들이 쑥스러워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올림픽 기간 내내 달걀, 치즈, 빵, 주스 등과 같은 단순한 메뉴 위주로 매일 같은 식단을 이용했다. 위원들마다 개별적인 요청에 따라 주스나 식단을 구성하기도 했다. 실제로 어떤 위원은 주스에 들어가는 채소와 과일의 비율까지 맞춰 요청하기도 했는데, 그런 요구들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며 큰 자부심을 느꼈다. 

영광과 고난 함께 겪은 셰프 인생, 서울 올림픽 셰프로 참여해 공로상 받아
워커힐 호텔 근무시절 출장파티에서 엘레베이터 추락사고 당하기도

Q. 요리를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군대를 전역하기 전에는 요리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군대를 전역하고 동대문의 호텔에서 홀 서빙을 했다. 바쁠 때마다 주방 일을 돕는 모습을 보고 故장인영 셰프가 요리를 해보라 추천해줬다. 그 이후 엠파이어호텔에서 주방보조를 시작했는데, 경주호텔학교에서 교육받으며 친해진 동기들의 권유로 워커힐 호텔에 방문하면서 내가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즉시 그간의 경력을 다 포기하고 워커힐 호텔의 헬퍼(조리보조)로 갔다. 29살에 헬퍼로 들어가 3년 동안 식재료 나르는 일만 했다. 그대로 손 놓고 있을 수 없어 주방을 유심히 관찰하며 직접 손으로 그린 나만의 그림 레시피북을 만들었고, 그렇게 5년 정도 지나니 선배들도 인정을 해주기 시작했다.

Q. 셰프로서 가장 자부심을 느낀 것은 언제인가?
40년 동안 셰프로 살아오면서 25년을 워커힐 호텔에서, 8년은 이곳에서 일했다. 긴 세월 요리 한 길만 걸어오다 보니 30년 전 서울 올림픽에 셰프로 참여해 공로상을 받기도 했고, 2018년 올해 평창 올림픽에서도 IOC 위원들의 조찬을 대접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열린 두 번의 큰 스포츠 축제에 내가 평생 해온 직업으로 참여할 수 있어 뜻 깊고, 영광이었다.

Q.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1987년 1월 워커힐 호텔 근무시절, 출장파티에 나갔다가 예기치 못한 엘리베이터 추락 사고를 당했다. 당시 사고로 양 무릎을 심하게 다쳐 반년 넘게 병원생활을 하고 긴 공백을 겪었다. 그때 사고 후유증으로 지금도 오래 서 있기 힘들고 주기적인 통증이 있다. 다시 걸을 수 있을지 모르는 큰 사고였기 때문에 깊은 슬럼프를 겪었지만 가족들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 재활을 하며 다시 요리를 시작했을 땐 동료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Q. 셰프로 일하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였나?
한 달에 한 번 알펜시아에서 지적장애시설 애지람에 점심을 제공하러 간다. 그 친구들은 어릴 적 소풍을 기다리듯 우리의 방문을 기다린다. 다음 달 메뉴를 물어보고, 봉사 날이 되면 차가 도착하자마자 반기며 뛰어나온다. 7년째 꾸준히 짜장면, 볶음밥 등 60인분의 메뉴를 준비해 참여하고 있다. 사실 봉사가 아니라 우리가 되려 힐링을 받고 온다.

Q. 요리철학이 있다면?
요리는 지금도 너무 어렵다. 그 중 가장 어려운 것은 밥 짓는 일이다. 밥 한 그릇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도정과 품종 등 모든 것을 고려해보면 과학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을 지키는 것이다. 좋은 식재료로 기본에 충실한 것이 중요하다. 셰프는 표준 조리법을 지켜 요리하며 그 레스토랑의 맛을 유지시켜야 한다. 누가 요리하든 같은 맛을 내야 한다. 


*더 많은 정보는 <월간식당> 2018년 4월호를 참고하세요.

 
2018-04-09 오전 06:22:48 (c) 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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