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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역사를 담은 밥상 이어간다 - 낭푼밥상 김지순 명인  <통권 412호>
취재부 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19-06-28 오전 04:36:10


제주의 역사를 담은 밥상 이어간다


제주향토음식명인 1호

낭푼밥상 김지순 명인


몇해전부터 제주살이 열풍이 뜨겁다. 많은 이들이 제주의 매력에 빠진 것은 천혜의 자연환경만큼이나 개성있고 특별한 제주의 먹거리 때문은 아닐까? 평생동안 제주의 재래식 조리법과 식재료를 지켜온 이가 있다. 제주향토음식명인 1호 김지순 명인이다. 그를 만나 그의 제주 음식 이야기와 제주 향토음식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글 우세영 기자 sywoo@foodbank.co.kr  사진 이종호 차장, 업체제공





제주향토음식 명인 1호 ‘김지순’
어린 시절 김지순 명인의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아 서울까지 빙떡(메밀전병에 채 썰어 데쳐낸 무를 넣고 말아서 만드는 제주도의 향토음식)을 만들러 다녔다. 항상 같은 식재료도 남다르게 조리해 가족들에게 먹였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음식을 먹고 자란 김지순 명인도 자연스럽게 음식에 관심이 많았다. 
스무살되던 해에는 약사가 되려고 제주도를 떠나 이화여자대학교 화학과에서 공부하다가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학교) 가정과로 옮겨 공부했다. 그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음식과 전혀 다른 음식들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잠시 지인의 집에 머물던 때였어요. 음식을 해주던 조리사 할머니가 평양 출신이었는데 애호박으로 전부치고, 오이로 소박이 담고, 감자로 국 끓이고. 제주 음식하고 너무 달라 놀랐어요. 외지 음식과 다른 제주도 음식에 더욱 관심이 생겼습니다.” 요리에 재미가 붙어 결혼생활을 하면서는 집으로 사람을 불러 강의를 했다. 당시 은행 여직원들이 그룹으로 듣는 신부수업이었다. 
그가 요리로 본격적인 커리어를 쌓게 된 것은 요리 대가인 고(故)왕준련 요리연구가를 만나고부터다. 정부 주도로 혼분식을 장려하던 1970년대, 제주전문대학에서 가정과 전임교수로 일하면서 요리 교육에 힘쓰고 있는 김 명인을 눈여겨보던 왕준련의 추천으로 한국식생활개발연구회 로스앤젤레스 지부장을 역임하게 됐다. 이를 계기로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디트로이트, 일본의 시즈오카, 다카오카 등 해외를 무대로 한국의 식생활과 요리를 강의하게 됐다. 이후에도 제주산업전문대학 관광호텔조리과, 제주대학교 식품영양학과 등 교육기관에서 교수로 활동하며 『제주도 음식』(대원사·1998년), 『제주향토음식문화』(제주문화사·2001년) 등 저서도 집필했다. 제주 음식에 대한 다양한 지식, 전승 및 보급을 위한 노력 등 평생에 걸친 업적을 인정받아 지난 2010년 제주향토음식명인 1호로 지정됐다. 




제주의 상징적인 음식 ‘해녀의 낭푼밥상’. 
낭푼은 양푼의 제주 방언으로 하루 종일 바다에서 물질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과거 해녀들이 가족의 삼시 세끼를 일일이 직접 차려 줄 수 없어 낭푼을 중심으로 단순하게 차려놓는 밥상이다. 물질 가기 전, 소반 중앙에 감자를 넣고 지은 밥을 큰 낭푼에 가득 담아 올려놓고 언제든지 식구들이 둘러앉아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차린다. 김지순의 낭푼밥상에서 사용하는 양푼은 김지순 명인의 외할머니가 일제 강점기 당시 수탈을 피해 땅 깊숙이 묻어놓고 감춰뒀던 옛 유기 양푼이다. 실제 제주도민의 삶이 담긴 양푼을 사용해 더욱 의미있다.


제주 맛 알리는 열정적인 활동 이어가
제주향토음식은 ‘저게 요리냐’, ‘조리가 다 끝난 것이 맞냐’며 무시아닌 무시를 받을만큼 단순하고 투박한 음식이었다. 그랬던 제주향토음식이 독창적인 식재료와 건강한 조리법을 인정받으며 위상이 달라졌다. 김지순 명인이 평생을 바쳐온 제주 음식은 보존하고 바르게 이어야할 유산이 됐다. 김 명인도 1호 명인으로 지정된 이후 몸이 스무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더욱 왕성하게 활동을 이어가며 제주의 맛을 알리고 있다. 
그가 제주도청의 초청을 받아 최근까지 진행한 ‘향토음식창업반’은 제주에 외식업으로 정착하고 싶은 외지인 및 제주도민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교육이다. 제주에 살면서도 진짜 제주 음식을 전수받을 곳이 필요했던 도민들과 제주 음식을 공부하고 싶은 귀촌 희망자들의 요청이 이어져 하반기에도 진행할 계획이다. 
김지순 명인의 손길이 닿는 곳은 국내뿐만이 아니다. 매년 제주도에서 개최되는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은 세계 유명 셰프들이 제주를 찾아 제주의 식재료를 활용한 가든디너와 갈라디너를 비롯해 클래스 등 열흘간 다양한 행사를 통해 제주의 맛을 알리는 행사다. 김지순 명인도 매년 고메마켓, 고메위크 등에 참여해 수백명분의 향토음식을 만들어 제주 향토 음식을 알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현재는 제주관향차회 회장을 역임하며 제주 차를 연구하고 제주도 주변 섬들의 식재료 이야기를 다룬 또다른 저서를 준비하고 있다. 각종 페스티벌과 만찬을 진행하고 심사에도 참여한다. “지금은 외국에서 셰프들이 직접 찾아와서 제주의 맛을 감상해요. 국내외를 막론하고 제주 식재료와 음식에 대한 관심이 지대합니다. 그 평가도 높습니다. 제주 음식의 위상을 실감하며 사명과 책임감을 느낍니다.”




정체성 명확해야 바르게 발전할 수 있어
다채로운 식재료의 개성과 독특한 제주 향토 조리법을 활용한 제주 음식이 국내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지만 정작 제주도 내의 음식점을 살펴보면 정체성이 모호한 요리를 판매하는 곳이 많다. 김 명인이 우려하는 점이다. “제주음식에는 고추장이 없습니다. 토지와 날씨의 특성상 고추의 당도가 높아 벌레가 많이 생겨 고추 농사가 잘되지 않았어요. 벌레가 먹기 전 초록색일 때 재빨리 따먹어버렸고, 습기가 많아 빻아서 보관하는 것도 어려웠으니 고추장이 있을 리가 없죠. 제주도는 오로지 간장과 된장 문화입니다. 그런데 ‘향토음식’이라는 간판을 걸고 갈치조림같은 조림음식을 고추장   양념해 파는 곳이나, 된장을 풀어먹는 제주식 물회가 아닌 초고추장으로 맛을 낸 물회를 파는 곳들이 많습니다. 향토음식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죠. 퓨전 요리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제주색이 없는 음식에 ‘향토음식’이라는 타이틀을 걸어놓고 전혀 다른 음식을 판매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덧붙여 그가 제주 음식을 대함에 있어 가장 강조하는 것은 바로 ‘식재료에 대한 이해’다. 양념도 조리법도 단순한 제주 음식은 식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려낸 것이 특징인만큼 제주 식재료의 특성을 알고 조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육지에서 활동하는 유명 셰프들과 외국인 셰프들이 제주도의 식재료를 이해하고 조리하는 모습을 볼 때, 제주 음식이 올바르게 전파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봅니다.”



김지순의 낭푼밥상은 제주향토음식의 유래와 의미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향토밥상을 음미할 수 있는 미식 체험 공간이다. 김지순 명인과 제주향토음식보존연구원 양용진 원장이 장을 담그고, 술을 빚고, 기름을 짜 재래식 식재료로 계절에 맞게 차려낸 제주향토음식을 선보인다.
A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평화길 162  |  T 064-799-0005


원동력은 가족···힘 닿는 데까지 활동하고 싶어
제주 음식을 이어오며 명인으로 인정받고 활발히 다양한 활동을 지속하기까지 끊임없이 그녀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바로 두 명의 어머니다. 다양한 음식을 접하게 해준 친어머니와 김지순 명인을 친딸처럼 아끼며 요리의 길로 이끌어준 요리대가 왕준련이다. “어머니는 내가 젊은 시절부터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주셨어요. 제 두 아들도 길러주셨죠. 저에게 어머니는 곧 아버지이자, 형제이자, 친구같은 존재였고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왕준련 선생님은 제2의 어머니입니다. 제가 요리를 전문적으로 시작하게 해주셨고, 어딜 가든 저를 데리고 다니며 요리를 배우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게 지원해주셨습니다. 제게는 두명의 어머니가 있는 셈입니다. 이 두 분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장성한 두 아들을 비롯한 가족들도 큰 힘이 된다. 작은 아들 양용진 씨는 향토음식보존연구소를 설립해 김지순 명인과 힘을 합쳐 제주 향토음식을 알리고 있다. 김 명인이 사람들에게 직접 제주음식을 선보이고 있는 제주향토음식 전문점 ‘낭푼밥상’도 작은 아들이 기획하고 운영한다. 제주도에 요리학원이 하나도 없던 시절 차렸던 김지순요리제과직업전문학원은 작은 며느리가 관리하고 있다. 큰 며느리는 낭푼밥상 위에 자리잡은 홍차 전문카페 ‘판’을 운영하며 명인을 돕고 있다. “나이가 들어 힘이 부칠 때가 있는데, 아들이 나서서 일정을 정리해줄 때면 든든한 매니저가 있는 기분입니다. 같이 음식과 식재료를 연구하며 나누는 대화도 끝이 없고요. 내가 특별히 시킨 것도 아닌데 다들 음식에 관련된 일을 하면서 서로 돕고 있는 것을 보면 흐뭇하고 고마운 마음이듭니다.”
1936년생. 그녀의 나이 만 83세다. 제주도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눈이 반짝이고 마음이 바빠진단다. “나이가 이렇게 들었어도 ‘제주 음식’하면 눈이 번쩍 뜨여요. 내가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 한 끝까지 향토 음식을 해야죠. 앞으로는 투박한 제주 음식을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해보고 싶습니다. 고명이 없는 제주 음식들에 어울리는 고명을 연구하고, 양식의 가니쉬같은 것들을 곁들이로 개발할 수도 있죠. 옷이 음식의 그릇인만큼 투박한 그릇들도 조화롭게 배치해 제주 음식을 더욱 알리고 싶습니다.”






 
2019-06-28 오전 04:36:10 (c) 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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