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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두부젤라또 김범준 대표  <통권 418호>
취재부 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19-12-31 오전 01:40:03


31세 청년, 

창업 2년 반만에 연매출 10억 원

순두부젤라또 김범준 대표



자타공인 ‘커피도시’로 불리는 강원도 강릉. 커피 외에 이렇다할 디저트가 없던 이 도시에 새로운 디저트 브랜드가 생겨났다. 
김범준 순두부젤라또 대표의 ‘순두부젤라또’가 그것. 이제 막 서른을 넘긴 김 대표의 
순두부젤라또는 창업 2년 6개월 만에 연매출 10억 원을 달성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글 이서영 기자 young@foodbank.co.kr  사진 이종호 차장





‘젤라또’로 3년도 안돼 연매출 10억 원 달성
다소 어려보이는 얼굴에 다부진 체격. 김범준 순두부젤라또 대표의 첫 인상은 ‘순박한 청년’이었다. 운동선수라고 하면 잘 어울릴 것 같은 이미지. 어느 누가 그를 2년 6개월 만에 연매출 10억 원을 달성한 업체의 대표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러나 김 대표와 마주 앉아 대화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가 평범한 젊은이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신중하면서 겸손한 태도와 총명한 눈빛이 그의 비범성을 증명했다. 
김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순두부젤라또 1·2호점은 강릉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꼭 들러야 하는 맛집으로 자리잡았다. 강릉 여행을 소개하는 SNS 게시물에 필수 코스로 등장하고, 각종 매체에서도 ‘강릉의 핫플레이스’로 순두부젤라또를 꼽을 정도다. 
주말에는 매장 앞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줄이 늘어선다. 현재 비수기 기준으로 순두부젤라또 1호점은 월매출 8000만 원, 2호점은 월매출 1억2000만 원 정도. 1개 점포에 하루 평균 2000명에서 25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찾는다. 성수기인 여름에는 2배에 가까운 사람들이 몰린다. 2019년 1호점의 월 최고매출은 2억 원이었다. 김 대표는 “성수기에는 1호점 직원들이 정말 바쁘다”며 “1명당 1분에 젤라또 10개씩을 퍼야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4층짜리 2호점 건물을 지으면서 빌린 은행 대출금도 모두 갚았다. 지난해 5월 2호점을 오픈한지 6개월 만이다.

축구 국가대표가 꿈이었던 사나이
김 대표는 해외 구단에서 활약하던 전도유망한 축구선수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2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오로지 축구만을 위해 살았다. 12살 때 처음 주니어 축구 국가대표로 선발된 후 3년간 태극마크를 달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청소년기에도 축구 유망주로서 이름을 날렸다. 매일매일이 훈련과 대회의 연속이었기에 교복 한 번 입어보지 못하고, 수학여행도 못갔다. 교실에서 수업을 받은 날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대학생이 되면서 에이전트와 계약을 맺고 독일 함부르크의 FC 상파울리 구단으로 넘어가 2년 넘게 선수로 뛰었다. 이후 프랑스 구단에서도 6개월여의 시간을 보냈다. 어린나이에 혼자 외국 생활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성장과 발전도 많았던 시기였다. 그러나 군대 문제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이어 설상가상으로 에이전트와의 재계약도 불발되면서 선수 생활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김 대표는 당시의 심정에 대해 “살아야 할 이유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는 진로에 대한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1년여 간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렇게 방황했다. 이후 잠시 서울에서 축구 코치로 일을 해보기도 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금방 접었다. 그런 그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부모님은 ‘가업을 이으라’고 제안했다. 김 대표의 부모님은 1970년부터 강릉 초당에서 순두부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김 대표는 선뜻 부모님의 말에 따랐고, 그렇게 순두부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뜨거운 음식 먹은 손님 위해 ‘젤라또’ 생각해
부모님이 운영하는 순두부 가게 옆에는 조그만 콩창고가 하나 있었다. 순두부를 만들 때 사용하는 큰 가마솥 한 개와 콩더미가 쌓여있는 공간이었다. 김 대표는 그 공간을 1년에 몇 번 쓰지도 않는 가마솥과 콩더미에게 내어주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다. ‘저 공간에 무언가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것도 그 때부터였다. 
서비스업도, 부모님 가게에서 일하는 것도 처음이었던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부모님에게는 보이지 않았던 문제점들이 김 대표의 눈에는 보였다. 그는 손님들이 식사 후 먹을만한 디저트가 마땅히 없다는 점을 발견했다. 고작해야 믹스커피 정도였다. 김 대표는 “처음에는 손님들이 뜨거운 음식을 드시는 만큼 아이스크림을 팔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그러다 아이스크림보다 건강한 젤라또가 낫겠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젤라또는 그에게 ‘소울푸드’였다. 독일에서 유학하던 시절 가장 많이 먹었던 디저트가 젤라또였기 때문. 운동선수로서 식생활에도 신경을 써야했던 그로서는 유지방이 적고, 천연재료로 만들어 건강한 젤라또가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디저트였다. 부모님을 설득해 콩창고를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수중에 있던 38만 원으로 직접 리모델링 자재를 구해 와 페인트칠부터 바닥 공사, 유리 설치까지 혼자 해치웠다. 

2평 콩창고의 기적
막상 젤라또를 만들려고 하니 아는 것이 없었다. 젤라또를 배우려면 최소 10일에 600만 원 정도의 수강료를 내야하는 상황.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오스트리아에 있는 후배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후배에게는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3대째 젤라또 가게를 하고 있는 친구가 있었다. 그 길로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볼로냐에서 약 보름간 머물면서 무료로 젤라또를 배웠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순두부젤라또의 맛을 잡는 데에 집중했다. 최적의 배합률을 찾아야 했다. 정식 개업 전에는 무료로 순두부젤라또를 나눠주며 반응을 살폈다. 개업 첫 날. 손님 10여 명이 젤라또를 사갔다. 매출은 6만 원 정도. 처음에는 주위 사람들 대부분 순두부젤라또라는 새로운 디저트에 대해 반감을 내비쳤다. 어떤 이는 대놓고 구토하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2평짜리 작은 공간에서 파는 디저트이다 보니 무시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매출은 점점 올랐다.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서 순두부젤라또를 언급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게시물이 많아질수록 손님 수도 늘었다. 커피(또는 커피빵) 외에 딱히 내세울 만한 디저트가 없던 강릉에 새로운 디저트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열광했다. ‘커피도시 강릉’에 뺐겼던 순두부의 위상이 다시금 세워졌다. 그렇게 6개월을 보냈다. 첫 해 매출은 2500여만 원이었다. 이어 이듬해에는 3억 원까지 매출이 올랐다.

 *더 많은 정보는 <월간식당> 2020년 1월호를 참고하세요.

 
2019-12-31 오전 01:40:03 (c) 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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