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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반 김지영 오너셰프  <통권 422호>
취재부 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20-05-06 오전 05:25:14

“잊혀가는 우리나라 고유의 식문화 이어갈 것” 

규반 김지영 오너셰프  


트렌디한 카페와 맛집들이 즐비한 청담동 대로에서 살짝 비켜선 골목 초입에 한식당 규반이 위치해 있다. 
평범한 외관이지만 문을 여는 순간 차분하고 고풍적인 분위기에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규반은 몇 달 전 한 TV프로그램을 통해 방송인 이영자가 이곳을 극찬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방송 중에만 몇 백통의 예약 전화를 받고 
김지영 셰프의 이름도 포털사이트 검색어에 오르며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다. 
글 김은석 기자 kesh@foodbank.co.kr 사진 조지철 팀장






드라마 대장금 손 대역으로 출연
한식의 세계화는 2004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대장금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왕이 아닌 궁중에서 음식을 만드는 궁녀 이야기다. 드라마의 인기로 아시아권에서 한식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주인공의 손 대역을 맡았던 김지영 셰프는 일본, 중국에서 드라마 속 한국 전통요리를 소개하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식 전문가로 거듭났다. 
그가 궁중요리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이탈리아 유학 준비 중 찾아왔다. 
“1998년 취미로 서양 음식을 배웠다. 전문적인 요리 공부를 위해 이탈리아 유학을 준비했다. 막상 넓은 세계로 나가려니 두려웠다. 나고 자란 곳의 음식인 한식부터 알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경쟁력을 갖기 위해 우리나라 음식의 뿌리인 궁중요리부터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궁중음식연구원을 찾아갔다.”
차림새와 법도를 지켜야하는 궁중요리는 보수적인 이미지가 강해 쉽사리 접근하기 어렵다. 
“10명 정도의 동기들과 함께 했다. 수업 내용을 따라가기 쉽지 않았다. 가르쳐주신 내용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이후 그는 호텔조리과정 코스를 이수하고 내실을 다지기 위해 조리관련 자격증을 모두 섭렵했다.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얻는다고 했던가. 그의 이력을 본 지인의 제안으로 MBC 미술센터 면접을 봤고 운명적으로 드라마 대장금을 만났다. 

일본·중국에서 궁중요리 선보여 
드라마 현장에는 자문을 위해 궁중음식연구원 전문가들이 함께 했다. 대본이 나오면 시대적 배경을 찾아보고 고증을 거쳤다. 김지영 셰프는 손 대역뿐만 아니라 식재료 준비부터 세트 세팅, 공간 연출까지 관여했다. 
“만두 어선경연대회가 열리는 신을 위해 50가지 이상의 만두를 만들었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긴 신을 찍어야 해서 4일 동안 밤을 새며 촬영했다.”
준비기간만 1년이 걸렸고 촬영만 꼬박 1년, 정리 기간이 6개월이 걸린 대장정이었다. 쉽지 않은 제작환경이었지만 드라마 대장금 경력 덕분에 또다른 기회가 주어졌다. 드라마의 판권이 여러 나라로 팔리면서 김지영 셰프에게 행사를 함께 진행하자는 연락이 빗발친 것. 일본에서 1년 동안 머물며 당시 문화관광부, 농림부와 함께 수라상을 전시하고 드라마 장면을 재현했다. 중국에서도 대장금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상하이에 문을 연 한식 레스토랑의 총괄 셰프 자리를 제안 받아 3년 동안 궁중요리를 소개했다. 
“30여 명의 외국인 스탭을 데리고 중국에서 한식을 만들었다. 주 고객은 상하이에 지사를 둔 각국의 지사장들과 영사들이었다. 궁중요리를 생소해 하면서도 재미있어 했다. 오히려 한국 손님이 가장 어려웠다. 이 음식이 왜 우리 궁중음식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근거없는 음식 만들지 않아
한자로 기록된 고서를 바탕으로 궁중요리를 공부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단어 하나에도 다양한 해석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김지영 셰프는 하나의 철칙이 생겼다. 사실로 드러나지 않은 부분은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책을 찾아보고, 연구 논문을 보고,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모두 모아 근거가 확실한 부분만 손님에게 소개하고 설명을 덧붙인다. 
“근거가 없는 음식을 상상으로 만들지 않는다. 대장금의 배경은 조선 중기로 당시 매운 고춧가루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 맛은 고추의 매운맛이 아니라 산초나 천초와 같은 약재에서 나온 매운 맛이었다. 맛의 차이가 확연하다. 직접 먹어본 음식이 아니다보니 맛을 구현하는 데 한계에 부딪치기도 하지만 확실한 사료를 바탕으로 정확한 식재료를 소개하기 위해 노력한다.” 
사실에 근거를 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규반의 5월 프로모션 주제는 세종대왕이다. 메뉴 구성을 위한 정보를 얻고자 김지영 셰프는 실록부터 살펴보았고 명의들이 남긴 글들도 조사했다. 
“음식에 대한 기록은 실록에 남아있지 않지만 세종대왕은 육식을 선호했고 당뇨가 있어 의녀 처방을 받아 음식을 먹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를 통해 세종대왕 당시 의녀가 누구였는지, 어떤 책에 이러한 부분이 기록돼 있는지 역추적했다.”

식재료, 당일 배송 당일 소진 원칙
김지영 셰프가 요리를 시작한 20년 전만 해도 좋은 재료를 찾기 위해서는 수소문하고 발품을 팔아야 했다. 재료를 고르는 노하우가 쌓일수록 맛과 영양이 뛰어난 우리나라 고유의 식재료가 사라지는 게 안타까웠다. 그 대표적인 게 바로 토종미다. 그는 일본에서 토종미에 대해 깊이있는 연구를 했고, 전 세계 200명만 보유하고 있는 밥 소믈리에 자격증도 취득했다. 
“우리나라 쌀은 앉은뱅이 쌀이라 누워 자라 잘 썩고 쉽게 상한다. 결국 재배하기 쉽고 수확량이 많은 개량종을 많이 쓰면서 토종미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 임금님 진상품인 ‘자채미’와 김포 지역에서 나는 ‘자광미’ 두 가지가 100% 우리나라 토종쌀이다. 쌀알이 작고 탁도 자체가 개량미와 다르다.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식재료에 대한 김지영 셰프의 엄격함은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는 규반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모든 식재료는 당일 배송, 당일 소진을 원칙으로 한다. 원하는 맛을 내기 위해 재료를 미리 손질해 놓지 않으며 냉동 보관도 허용치 않는다. 
“손님 예약 시간에 맞게 재료 손질을 시작한다. 육즙을 잡아두기 위해 고기 양념을 재우는 일도 당일에 한다. 만만치 않은 작업량이지만 한 분, 한 분 정성스럽게 모시기 위함이다.”
작은 음식 하나까지 정성을 기울이는 세심함은 디저트로 나오는 쑥떡에서도 엿볼 수 있다. 쑥향을 잡아두기 위해 저녁 식사가 마무리 될 쯤 쑥을 손질하고 떡을 쪄낸다.




계절에 따른 제철 한정식 선보여 
김지영 셰프는 1~2년 장기 계획을 두고 메뉴를 구성한다. 계절별 또는 각 지방의 진상품들을 살펴보며 제철재료를 골라낸다. 이렇게 매년 바뀌는 메뉴를 통해 손님들에게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번 봄철의 재료들은 추운 겨울을 지낸 표고, 봄 도다리, 그리고 청포묵 등이다. 오방색을 띠는 대표 요리답게 청포묵을 이용한 탕평채는 눈까지 즐겁게 만든다. 
“110년 전통의 도토리묵 제조법으로 만든 청포묵을 이용한 채소 무침이다. 청포묵은 녹두로 쑨다. 녹두 전분은 한 번 얻을 때 그 양이 많지 않아 청포묵을 많이 만들 수 없다. 현재 시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청포묵은 수입산 콩을 가공한 청포묵 대용묵이다. 청포묵처럼 희소성있지만 전통의 맛을 지닌 음식들을 꾸준히 알리고 싶다.”
규반의 메뉴판에는 친절하게 식재료 설명과 함께 조리 방법, 명칭 유래 등이 소개돼 있어 요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음식을 서빙하는 직원들의 친절한 설명도 음식에 대한 신뢰감을 높이는 데 부족함이 없다. 
최근 TV에 노출되면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던 메뉴는 바로 너비아니다. 직화로 달궈진 돌 위에 고기를 올려 구워먹는 것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옛 그릇인 은기에 고기 음식을 놓으면 금방 식어버린다. 어떻게 보온을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자연 친화적 소재인 돌을 생각했다. 직화로 돌의 온도를 올려 뜨겁게 달군 후 고기를 올리면 ‘촤’ 하는 소리와 함께 기호에 맞게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다.”

한식,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지 않을 것
외국에서 머물며 한식을 알린 후 한국에 돌아와 느낀 점은 궁중음식만 소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용기부터 재료 수급까지 100% 재현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궁중요리로 한정 짓지 않고 한식을 기본으로 한 다양한 음식을 선보이려 노력한다. 
“중국에서 돌아와 멤버십 클럽에서 10년 넘게 일했다. 당시 메뉴판이 따로 없었다. 맞춤서비스로 회원들의 기호에 맞게, 그들이 함께 온 일행들의 취향까지 파악해야 했다. 때로는 국적도, 종교도 달랐다. 매일 새로운 메뉴를 짜고 매번 낯선 요리들을 선보였다. 겉보기에 같아보여도 양념이나 조리방법을 다르게 시도했고 다행히 손님들의 반응이 긍정적이었다.”
이제는 대표이자 오너셰프로 자신의 첫 한식당을 2년째 운영중이다. 회원이 점점 늘고 꾸준히 오는 단골손님도 있지만 가끔 미쉐린 레스토랑의 서비스 품질과 비교하며 좋지 않은 글을 남기는 손님도 있다. 
김지영 셰프는 “미쉐린 레스토랑을 지향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문화 고유의 정성이 담긴 밥 한끼를 대접하는 것이다. 한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잊혀가는 고유의 식문화를 계속 고수하며 알릴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성장해 나갈지 지켜봐 주길 바란다”고 말한다.
규반에서는 홍시즙과 초간장을 곁들인 소스와 대구알을 넣은 쌈장까지 새로운 듯 익숙한 한국식 소스와 장을 만날 수 있다. 말린 도라지와 우엉을 끓인 물부터 반달 모양의 소반인 반월반 위에 올려진 냅킨과  집게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놓인 게 없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는 말처럼 다양한 접근과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만의 독창적인 면을 드러내고 옛것을 지키려 묵묵히 노력하는 김지영 셰프에게 한국 음식 알림이 역할이 기대되는 건 당연하다. 

 
2020-05-06 오전 05:25:14 (c) 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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