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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커퍼 최금정 대표  <통권 427호>
취재부 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20-09-29 오전 05:38:09

강릉 커피 문화 확산의 주역

커피커퍼 최금정 대표  


강릉하면 커피가 떠오른지 오래다. 최근에는 서울우유와 강릉 보헤미안 로스터스가 합작해 ‘강릉커피’라는 라떼를 출시하기도 했다. 
강릉은 커피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기업들의 본거지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커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커피 문화의 중심에는 커피커퍼 최금정 대표가 있다.
글 이서영 기자 young@foodbank.co.kr  사진 조지철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고요히 계단을 오르는 가운데 한 문구가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커피와 관련된 터키의 오래된 속담이라고 한다. 가을 하늘이 맑게 개인 어느 날, 오후 느즈막이 찾아간 강릉의 커피 박물관(커피커퍼 박물관)은 혼자만의 사색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수십, 수백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커피 유물 앞에 앉아 향긋한 커피를 마시니 어느 대저택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이토록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박물관을 만든 이가 커피 프랜차이즈 대표라면 어떨까. 최소한 그는 커피에 대한 강한 애착과 사명감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최금정 커피커퍼 대표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안목해변 최초의 커피숍 ‘커피커퍼’
강릉에는 지난 2019년 기준(출처: 소상공인진흥공단 상권분석 시스템) 650여 개의 카페가 있다. 강릉시 전체 음식업소 가운데 카페가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달한다. 인구 20만 명의 작은 도시에 이처럼 많은 카페가 존재할 수 있는 건 관광객 때문이다. ‘커피 도시’라는 명성으로 인해 전국에서 커피 마니아들이 몰려들었고 이는 또다시 강릉 커피 산업의 발전을 가져왔다.
강릉이 커피 도시라는 별칭을 얻은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요소를 꼽자면 ‘안목 커피거리’를 들 수 있다. 비수기와 성수기가 극명하게 갈리던 강릉이 사시사철 관광객으로 붐비게 된 것도 안목 커피거리의 역할이 컸다. 커피커퍼는 한적한 어촌마을인 안목해변가에 처음으로 들어선 카페였다.

사업 실패로 강릉행…전재산 털어 카페 오픈
1990년대까지만 해도 안목해변에는 쉴만한 벤치조차 없었다. 다만 자판기 수십여 대만 줄지어 서있을 뿐이었다. 강릉시민들은 해안 철책선의 방해없이 탁 트인 바다를 보고 싶을 때마다 안목해변을 찾았다. 다른 해변에 비해 시내와 가깝고 왠지 모르게 아기자기한 느낌도 있었기 때문이다. 
최금정 대표도 이 곳에서 달달한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며 인생을 달래던 이들 중 하나였다. 20대 중반에 결혼해 남편과 함께 인천에서 출판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의 쓴 잔을 마시고 내려온 곳이 강릉이었다. 식당과 마트를 전전하며 인생의 의미를 찾고 있던 그 때,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집어 들고 너른 바다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좋은 곳에 번듯한 커피숍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사업의 시발점이 됐다. 차곡차곡 모아뒀던 전재산을 끌어모아 3층짜리 건물을 짓고 2001년 카페를 열었다. 그 시절 3층짜리 카페는 쇼킹 그 자체였다.
“첫 3개월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자판기 커피 하나에 150~200원 하던 시절인데 3000~4000원짜리 커피는 사치품 수준이었다. 그래서 테이크 아웃으로 8온스 컵에 원두커피를 1000원에 팔았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니 상황이 역전됐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커피를 사가기 시작했다.”




커피 문화 저변 확대에 큰 기여
이렇게 탄생한 강릉 토종 커피 브랜드인 커피커퍼는 그간 커피 문화 저변 확대에 누구보다 큰 힘을 쏟아 왔다.
최금정 대표는 지난 2000년 대관령 왕산면에 커피농장과 커피 박물관을 만들었다. 안목해변에 카페를 열기 전부터 교육용으로 사용할 요량으로 제주도에서 커피 묘목을 가져와 심었던 것. 대관령은 여름에도 서늘해 고랭지 농업을 할 정도로 평균기온이 낮다. 커피 생육지로서는 최악인 곳에 700평 온실을 지어 10년이 넘게 커피나무를 가꾼 결과 상업용으로도 손색이 없는 퀄리티의 원두를 생산할 수 있었다. 국내 최초의 국산 상업용 커피였다. 커피농장에서는 현재까지 연평균 600~700kg의 원두가 생산되고 있다. 최 대표는 “대관령에서 커피나무를 키운다는 것 자체가 최초의 도전”이라며 “커피나무가 자라 한 잔의 커피가 만들어지기 까지 모든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2008년 강릉 커피 박물관을 정식 개관하고 부터는 커피 로스팅 및 핸드드립 체험 등을 선보이며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하기도 했다. 아울러 커피 박물관을 필두로 ‘박물관, 길 위의 인문학’을 비롯해 지역 내 중학교에서 방과 후 바리스타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지역 주민에게 커피 문화를 알리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지난 2014년에는 전세계를 통틀어 유일무이한 커피메이커 백과사전인  《커피메이커스》(엔리코 말코니 저)를 번역 출간했다. 판권 구입에서부터 번역까지 커피커퍼가 자체 진행한 사업이었다. 

커피 박물관 3곳 운영…1500년 된 유물도
커피커퍼는 현재 커피 유물 2만여 점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유물은 1500년 된 터키식 이브릭(터키 커피를 끓이는 데 쓰이는 길고 좁은 편수 냄비)으로, 오스만투르크제국 시대의 것이다. 최금정 대표는 남편인 김준영 강릉 커피박물관 설립인과 함께 전 세계를 돌며 커피 유물을 모았다. 그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한 번은 커피메이커스에 실려 있는 사이펀 작품 사진을 보고 어렵게 수소문을 해 셀러를 찾았다. 셀러가 절대로 팔지 않겠다는 것을 끈질기게 설득해 유물을 사오게 됐다. 하드케이스에 담아 한국으로 가져 왔는데 수하물을 찾고 보니 케이스가 파손돼 있는 거다. 그래서 질겁을 하고 유물을 꺼냈는데 다행히 유물에는 이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경험이다.”
커피커퍼가 운영하고 있는 커피 박물관은 3개다. 대관령의 강릉 커피 박물관, 강문해변의 커피커퍼 박물관, 중국 망시에 있는 커피 박물관이다. 유물들은 주기적으로 교체된다. 커피 마니아라면 주기적으로 강릉에 와야할 이유가 여기 있다.





‘강릉 믹스 커피’ 콘셉트로 사업 확장 계획
커피커퍼는 올해로 설립 20년차를 맞았다. 내년이면 20주년이다. 최금정 대표는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전국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확장하는 것. 이를 위해 안목 커피거리에 위치한 커피커퍼 1호점을 리모델링하고 있다. 최 대표는 “‘강릉 믹스 커피’라는 뉴트로 콘셉트로 1호점을 새단장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내비쳤다.
“강릉 믹스 커피라고 하면 한국의 분말 커피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누군가는 안목 해변의 자판기를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런데 인류 최초의 커피인 터키식 커피도 사실 믹스 커피와 다를 것이 없다. 커피를 으깨서 가루로 만들고 거기에 원유를 붓는 식이다. 터키식 커피 퍼포먼스와 뉴트로 감성이 어우러진 매장을 구상하고 있다. 고객 호응도에 따라 이 콘셉트로 사업을 확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사드 문제로 주춤했던 중국 사업도 재개할 계획이다. 커피커퍼는 지난 2016년 중국 최대 커피 생산지인 망시에 커피 박물관을 개관했다. 이를 계기로 중국 내 커피 사업에 시동을 걸었으나 사드 갈등이 일자 잠정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최 대표는 “현재 중국 내에서 사업 관련 러브콜도 받고 있는 만큼 가능성이 보인다”고 말했다. 

최금정 대표는 인터뷰 내내 미소띤 얼굴로 이야기를 했다. 그 속에서 어떤 여유로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모든 사업이 내가 생각한대로 됐다”며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잘 판단해 물 흐르듯이 살면 다 잘 되더라”고 말했다. ‘비워야 채워진다’고 역설하는 그의 경영 철학을 들으며 다시 한 번 성공 불변의 법칙을 확인했다.

 
2020-09-29 오전 05:38:09 (c) 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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