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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라기환 작가  <통권 435호>
취재부 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21-06-07 오전 11:22:59

요리 돋보이게 하는백자의 멋

도자기 라기환 작가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그릇은 따로 있다. 단순히 디자인이 멋지거나 화려한 것이 아닌 자신이 만든 요리를 돋보이게 하는 그릇이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셰프까지 사로잡은 도자기 작가가 있다. 30년 이상 도자기를 빚어 온 라기환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글 박귀임 기자  사진 이경섭





과거 셰프들이 음식만으로 승부를 걸었다면 요즘은 식기로 차별화를 꾀하는 모양새다.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유명 브랜드의 식기보다 작가들이 만든 ‘작품’이 먼저 눈에 띈다. 더 나아가 전통 한식의 상징인 놋그릇에 양식이나 브런치를 담아내거나 디저트를 백자에 플레이팅하는 등 그 영역도 허물어지고 있다. 라기환 작가의 도자기 위에도 한식과 양식, 일식, 디저트 등이 다채롭게 빛난다. 

10대부터 시작된 도자기 인생
라기환 작가는 1991년 고등학교에서 처음 도예를 배우며 도자기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대학교와 대학원에서도 도예를 전공하며 연을 이어갔다. 졸업 후 대가야의 역사가 있는 경북 고령으로 내려가 전통가마를 이용해 토기 만드는 곳에서 3년 동안 일했다. 이후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옹기 공장으로 옮겨 2~3년 정도 배웠다.
토기, 옹기 등 다양한 도예를 접한 후 2001년 경기도 이천에 터를 잡은 라기환 작가는 2002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라기환 공방’의 문을 열었다. 도자기와 처음 인연을 맺은지 10년 만의 일이다. 
“사실 이렇게 오랫동안 도자기를 빚을 줄 몰랐다. 고등학생 때 선생님이 ‘고려청자나 조선백자 해보고 싶은 사람 손 들어 보라’고 했는데 손을 들었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나를 포함해 3명이 함께 했는데 지금까지 모두 도자기를 만들고 있다.”
이천은 예로부터 흙이 좋고, 도자기를 굽는 데 필요한 땔감이 풍부했다. 1950년대 이후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재현하던 도공들이 자연스럽게 이주하면서 이천은 도자기로 유명해졌다. 그런 점에서 라기환 작가가 이천에 온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라기환 작가는 도자기 중에서도 색채 장식이 없는 백자인 순백자를 주로 굽는다. 그동안 옹기, 토기, 분청, 청자 등 많은 도자기를 경험해봤으나 그의 마음을 이끈 것은 백자였다. 백자로 마음을 굳힌 이후 골동품 백자도 찾아다니고 백자가 있는 박물관도 다니면서 백자를 공부했다. 
“전통 백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유분방함과 비대칭, 엉성한 선, 독특한 선들이 보인다. 오차 없이 정확하고 정교하게 만들 수 있지만 자연스러운 멋을 내기는 쉽지 않다. 비대칭 자체가 뭔가 멋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박물관이나 책을 통해 영감을 얻고 있는 라기환 작가는 “나도 조선백자의 형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만드는 경우가 많다”면서 “지난해 조선백자의 제기를 보고 굽 높은 접시인 디저트볼을 선보였는데 고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유명 셰프와 호텔도 반한 라기환 도자기
라기환 작가는 전통적 백자의 아름다움을 현대적 조형미로 재해석하고, 세련되면서도 단정한 아름다움을 지닌 실용성이 돋보이는 생활 용기를 제작한다. 조선백자는 색채 장식이 없는 순백자가 대부분이지만 음각, 양각, 투각 등을 적용한 것도 일부 만들어진 바 있다. 이러한 작은 변화들이 백자의 단정함과 긴장감을 유지시키며 지루함도 해소해준다. 
“백자는 백토를, 청자는 철분이 들어있는 흙을 쓴다. 청자는 흙의 특성상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때문에 음식물이 낄 수 있다. 백자는 그런 균열이 없어 식기류로 많이 쓰였다. 사실 백자가 음식을 가장 돋보이게 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한식뿐만 아니라 양식, 중식, 일식 등 다양한 요리에 두루 어우러진다.” 
라기환 작가는 자신의 순백자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으로 한식을 꼽으면서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이 있는 한식 반상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매력에 반해 라기환 작가의 도자기를 사랑하는 셰프들이 많다. ‘돼장’ 류태환, ‘이비티’ 노해동, ‘가티’ 남성렬 셰프 등이 대표적. 이 가운데 류태환 셰프는 자신이 운영하는 돼장에서 라기환 작가의 백자를 소개하며 ‘그릇의 모양이나 색이 과해 음식이 돋보이지 않거나 초라해 보이는 것보단 그릇으로서의 쓰임에 최선을 다할 때 가장 조화로운 상차림이 된다’라고 설명했다.
“셰프들은 음식과 그릇을 따로 놓고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셰프들이 내 도자기를 많이 찾아주는데 음식을 담았을 때 조화가 좋았다고 생각해주지 않았나 싶다. 감사하다. 앞으로도 셰프들과의 작업을 계속 진행하고 싶다.”
라기환 작가의 도자기는 신라호텔, 조선팰리스 서울강남 등 유명 호텔 레스토랑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신라호텔 한식당 라연의 경우 오픈 전부터 라기환 작가가 도자기 디자인에 참여했고 현재까지 1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라연에 들어가는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7~8개월 동안 정성을 쏟았다. 디자인 작업하는 데만 4~5개월, 제작에는 3~4개월 정도 걸렸다. 모든 그릇에 음식을 담아 보고 디자인도 직접 했기 때문에 지금도 애정이 크다.
물레 작업을 통해 달항아리, 화기 등 다양한 도자기를 굽고 있는 라기환 작가는 “예전에는 그릇이 단순히 음식을 받쳐주는 용기라고만 생각했다면 지금은 이야깃거리가 되는 가교 역할을 충분히 하는 것 같다. 많은 식당에서 도자기를 사용해 줘서 감사하다”면서 미소 지었다.








공방, 매장, 전시관이 한 공간…고객 소통 활발 
라기환 작가는 최근 이천 도자기 마을인 예스파크로 작업 공간을 이전했다. 이천은 지난 2009년 국내 최초 도자 특구로 지정된 지역. 예스파크는 도자기를 비롯해 미술, 음악, 조각, 사진 등 300여개 공방이 모여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예술인마을로 2018년 4월 오픈했다. 
예스파크의 라기환공방은 작업실과 전시 판매장을 한 건물에 모은 형태다. 붉은색 파벽돌의 외관 1층에는 공방과 매장이, 3층에는 전시 가능한 공간과 옥상이 있다. 2층은 주거 공간으로 사용한다. 
“예전 공방은 고객과의 소통이 어려운 구조라 아쉬웠다. 그래서 이번에 전체적으로 고객과 소통이 잘 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1층부터 3층까지 자유롭게 볼 수 있고 주말에는 작업실도 공개하려고 한다. 흔히 도자기공방은 산속에 독채로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느낌을 살리면서 중정 쪽으로 창을 내 개방감을 줬다.” 
라기환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직접 기획하고 전시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일반인들을 위한 도자기 클래스도 준비 중이다. 
마지막으로 라기환 작가는 “사람들이 수작업으로 만든 도자기의 가치를 인정해주면 좋겠다. 도자기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지만 요즘에도 일부는 ‘일반 저렴한 백자와 무슨 차이가 있는데 이렇게 비싸냐’고 물어보곤 한다. 너무 속상하다. 도자기 만드는 것이 힘든 작업이기 때문에 꼭 인정받았으면 좋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2021-06-07 오전 11:22:59 (c) 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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