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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 셰프의 비기(&#31061;技)가 되다  <통권 441호>
취재부 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21-12-06 오전 04:36:11

발효

셰프의 비기(祕技)가 되다


식재료를 오랫동안 저장하며 먹기 위해 전 인류가 오래전부터 택해 온 방식, 
발효는 단순한 저장 방식을 떠나 어느덧 셰프들의 비기가 됐다. 
우리 식문화에 깊숙이 자리해 온 발효를 적극적으로, 그리고 창의적으로 접목한 곳들을 찾아 물었다. 
“발효의 매력은 무엇인가?”
글 장새별 객원 기자  사진 이경섭




발효, 조리법이 되다

‘제1의 맛은 소금, 제2의 맛은 양념, 제3의 맛은 발효의 맛’이라 칭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말대로 발효에 대한 관심이 몇년째 밀물 때를 맞은 듯 밀려들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양상은 ‘저장 방식’에서 하나의 ‘조리법’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셰프들이 직접 발효를 연구하거나, 발효 요소들을 재해석해 메뉴에 적극 접목하기 시작한 것. 이러한 발효 바람을 전 세계 주방에 불어넣은 주역 중 한곳은 덴마크를 대표하는 레스토랑 ‘노마’다. 발효 연구실을 차려 수많은 실험을 진행해 온 르네 레드제피 셰프는 《노마 발효 가이드》라는 책을 통해 요리 레시피가 아닌 발효의 기본 개념부터 과정, 콤부차, 식초, 누룩, 젖산 발효 과일과 채소, 간장, 가룸(고대 로마 시대부터 이어진 피시 소스) 등 노마 요리의 중심을 이루는 갖가지 발효 레시피를 아낌없이 풀어내기도 했다. 그는 책을 통해 ‘발효는 풍미를 풀어내는 방법뿐 아니라 음식을 먹기 좋은 상태로 만들어 주는 요령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다.


맛과 향을 보존하거나, 완전히 새로워지거나

발효가 요리의 맛을 좋게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단백질이나 전분 분자가 단당이나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면서 체감할 수 있는 뚜렷한 감칠맛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흔히 ‘깊은 맛’으로 통칭되는 그 맛이 오븟의 오재성 셰프가 꼽는 발효의 매력이다. 알렌의 서현민 셰프 역시 이 깊은 맛이 요리 맛의 층위를 하나 더 쌓아주며 바디감을 높여준다고 말한다. 
그 밖에 주방에 발효 요소를 도입한 셰프들이 체감하는 발효의 매력은 무엇일까? 에빗의 조셉 리저우드 셰프는 “발효를 거친 식재료는 기존의 성질과 다른 새로운 식재료로 봐도 무방하다”며 하나의 재료에서 다채로운 맛을 뽑아낼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들었다. B3713의 정혜민 셰프는 재료의 맛과 향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는 것도 발효의 매력으로 꼽았다. “인삼 꽃, 두릅, 은달래 등 향이 좋은 재료들은 소금이나 식초를 사용한 발효로 가급적 재료 고유의 맛과 향을 보존하고 있다. 계절이 지나면 찾아볼 수 없는 재료들을 사계절 느낄 수 있는 가장 궁극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셰프의 시각으로 풀어내다

발효 재료들이 셰프를 만나면서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본래의 용도에서 벗어난 역할을 할 때도 있다는 것. 발효제인 누룩을 굽거나 끓여 소스의 재료로 사용하고, 고기를 찍어 먹거나 간을 맞추는 역할 정도에 머물러 있던 멜젓은 비릿한 향을 중화해 감칠맛 있는 소스로 재탄생 시킨다. 숨겨진 맛을 표면으로, 익숙한 맛을 새롭게 드러내며 재료의 활용도를 넓히는 것이 셰프들이 공통으로 꼽는 발효의 진짜 미학이다. 



점점 더 깊어지는 한국의 맛 
에빗

푸른 눈의 호주 출신 셰프, 한국 식재료와 발효를 접목한 요리, 한국 술 페어링까지. 3년전 조목조목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등장한 에빗은 한국적인 맛의 깊이를 더해가며 그 호기심을 찬사로 바꿔 놓았다. 



한국 식재료를 탐닉하다 
오픈 1년 만에 미쉐린 가이드 1스타에 이름을 올리고, 2021 미쉐린 영 셰프 상까지 거머쥐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에빗. 겉으로 드러난 별의 가치 뒤에는 조셉 리저우드 셰프의 탐구 정신이 숨어 있다. “내가, 혹은 한국 사람조차 잘 몰랐던 식재료를 탐구하고 접목하는 레스토랑의 철학은 지금도 한결같다. 오히려 더 깊어지는 중이다”라는 조셉 리저우드 셰프. 오픈 당시에는 없었던 자신만의 장(醬)도 생겼다며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전남 담양의 기순도 명인을 찾아 직접 담근 고추장, 간장 등을 사용하며 에빗의 요리는 한층 더 깊은 한국 발효의 맛을 더해가는 중이다. 

시간, 경험, 그리고 창의성   
한식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조셉 셰프를 비롯해 다양한 국적의 주방 구성원의 경험을 녹여낸 접시들은 과연 에빗만의 요리라고 칭할 만한 창의성을 담고 있다. 그중 장독대 미니어처에 올린 새우 요리는 다니엘 헤드 셰프가 어릴 때 즐겨 먹던 젤리에서 영감을 받았다. 달고, 짭조름하고, 산미까지 갖춘 한입 요리로 얇게 저민 감을 에빗표 고추장에 재워 쫀득한 식감으로 만든 뒤 녹진한 단맛의 딱새우를 감쌌다. 그 안에 기순도 명인의 고추장으로 깊은 발효의 맛을 한번 더 더했다. 나뭇가지에 열매처럼 매단 목련 요리는 봄철 수확한 목련꽃을 발효와 숙성을 거쳐 청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잘게 다진 목련꽃, 그날그날 좋은 허브와 채소를 조합해 들깨 크래커 안을 채워 바삭한 식감과 향긋한 달콤함이 입 안에서 경쾌하게 터져 흐른다. 
목련꽃 외에도 벽 한편에는 산사나무 열매, 흑마늘, 적자꽃, 버섯, 비파 등 조셉 셰프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채취하거나 농장에서 얻은 작물들이 에빗의 시간을 빼곡하게 채워가고 있다. 14살 때부터 요리를 배워 온 셰프지만 새로운 작물 앞에서 다시 겸손해지고, 탐구의 정신을 가다듬는다. “발효를 거친 재료는 그 전의 성질과 다른 또 하나의 새로운 식재료가 된다”며 재료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각각에 모든 발효 방법을 시도 해본 후 가장 맛이 좋은 결과물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소금으로, 식초로, 또 설탕에 감싸진 채 익어가는 발효 재료들의 깊은 감칠맛은 에빗의 요리에서 킥 역할을 한다. 조셉 셰프는 “발효 재료만 사용하면 요리가 무거워지고 자칫 지루할 수 있다”며 “발효하지 않은 재료들의 신선함과 조화롭게 섞이면서 작은 요리 하나에도 다양한 맛의 층위를 쌓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근본을 요리하다  
알렌


17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2018년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색깔 찾기에 여념이 없던 서현민 셰프. 다양한 시도의 반복 끝에 긴 시간 자신이 해 온 프렌치라는 장르, 한국인이라는 뿌리, 그리고 좋은 식재료라는 요리의 근본이 결합된 컨템포러리 다이닝 알렌으로 우리 앞에 다시 섰다. 



형태적인 한식에서 벗어나다 
서현민 셰프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요리를 선보였던 곳, 임프레션은 대중에게 ‘한국식 프렌치’로 통했다. 가자미식해를 재해석한 방어 요리, 쌈 형태로 제공되는 한우 요리 등이 깊게 각인되면서다. 단숨에 미쉐린 2스타에 이름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지만 서현민 셰프의 고민은 깊어졌다. “한국 사람이니까 한식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는 그는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형태적인 한식’에서 벗어나 보다 고차원적으로 한국의 식문화를 녹여낼 방법을 고민했다. 
해답은 요리의 가장 근본인 식재료에 있었다. 친환경 농법을 실천하는 직영 농장의 작물을 필두로 한국의 사계절을, 그 외 다양한 로컬 식재료로 고유의 맛을 담아내는 것. 여기에 그 맛을 돋보이게 해 줄 발효와 숙성이라는 기법, 20여 년의 세월 동안 촘촘히 쌓아 온 요리 테크닉을 집결시킨 곳이 바로 레스토랑 알렌이다. 

셰프의 경험과 함께 익어가는 요리들  
알렌에서는 서현민 셰프의 오랜 발자취를 따라 무르익은 요리들을 맛볼 수 있다. 그중 숙성 한우는 주방 안에서 이미 3개월여의 시간을 보낸 재료다. 뼈째 2개월간 숙성한 한우를 잘라 직접 만든 쌀누룩에 다시 2주간 숙성, 이 과정에서 연육이 이루어지면서 응축된 맛을 지니게 된다. 가니시로는 버번 위스키를 저장했던 오크통에 숙성한 젓갈, 레몬 주스로 조리한 돌산 갓을 제공한다. 곁들임 요리로는 채소와 레드 와인을 넣고 라구 소스처럼 뭉근하게 끓인 호랑이 콩과 액젓에 절인 대파를 올린 스윗브레드, 유산균 발효를 거친 샐러리·배추·콜라비 피클을 함께 제공해 발효와 숙성의 다채로운 면모를 경험할 수 있다. 
서현민 셰프는 “발효는 맛의 층위를 한 단계 더 쌓아주는 역할을 한다”며 “간단한 예로 샐러드에 치즈 하나만 더해도 비어 있는 맛을 채워주며 요리의 바디감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또 재료에 간을 더하고 향을 입히는 역할도 하는데, 삼해소주를 생산하는 삼해소주가에서 수급한 술지게미에 된장 등을 더한 후 숙성한 생선에는 은은한 발효 향취와 함께 달고 짠 맛이 배어있다.
수 없이 망치고 버리는 과정을 반복하며 이제는 재료에 따라 보리누룩, 쌀누룩을 능숙하게 만들어 사용하게 된 서현민 셰프. 이곳의 주방에서 깊어지는 것은 비단 재료의 맛만은 아닐 것이다. 동시대라는 의미의 컨템포러리 장르를 표방하는 만큼 그가 한국에서 하는 경험들이 켜켜이 쌓여가며 진해지고 다채로워질 시간의 맛을 기대해본다. 



발효의 미학을 전하다  
B3713


따뜻한 오후의 햇살과 저녁의 풍경을 담아내는 화사한 실내, 요리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오픈 주방의 활력, 패션 브랜드 데무의 쇼룸이 뿜어내는 모던함. 그리고 그 뒤에 살풋이 놓인 정혜민 셰프의 발효 곳간에 B3713의 진짜 이야기가 숨어 있다.




뉴노르딕 퀴진을 말하다 
올해 문을 연 B3713은 호주 아티카, 덴마크 108 그리고 발효의 메카 노마의 테스트 키친을 거친 정혜민 셰프가 뉴노르딕 퀴진을 선보이는 곳이다. 미디어와 미식가들을 통해 자주 입에 오르내리지만 한국에서는 좀처럼 실체를 마주하기 어려웠던 뉴노르딕 퀴진. 정 셰프는 “발효를 기반으로 생산자, 요리사, 소비자의 장벽을 허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로컬 생산자와의 연대, 재료가 가장 맛있는 제철에 수급해 사용하고 동시에 발효를 통해 연중 소비하는 것, 그리고 가장 알맞은 조리법으로 소비자에게 소개하는 선순환이 단순히 맛으로만 정의 내릴 수 없는 발효의 가치이자 그가 배운 뉴노르딕 퀴진의 핵심이다. 

새롭지만 낯설지 않은 발효 요리 
오픈한 지 4개월 남짓됐지만 인삼꽃, 청각, 톳, 고사리, 은달래, 청귤 등 이미 쇼케이스를 가득 메우고 있는 발효 병들은 정 셰프가 그 가치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각각의 재료들은 서로의 부족한 맛을 채워주며 온전한 하나의 요리가 된다. 예를 들어 애플&콜라비는 포도 발효 소스에 절인 콜라비와 계절별로 달라지는 사과, 봄 향기를 간직한 인삼꽃 피클, 소금에 절인 여름 매실, 허브 골든 베리 등 사계절을 조화롭게 쌓아 올린 후 토마토 발효액을 스프레이로 더해 완성한다. 흔히 과일 샐러드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쌉쌀함과 새초롬한 맛, 짠맛과 단맛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정혜민 셰프에게는 누룩도 발효제가 아닌 식재료다. “요리사의 시각으로 풀어내고 싶었다”는 그는 직접 만든 보리누룩으로 다양한 소스를 만든다. 누룩을 구운 후 유크림에 담가 만든 고소한 몰리 소스는 미트볼 파스타 맛의 핵심적 역할을 한다. 소금과 물을 넣고 갈아 한번 더 발효한 누룩을 냉동시킨 후 면포 위에서 천천히 해동시켜 받은 누룩물은 새콤한 감칠맛으로 담백한 생선 요리의 단조로움을 달래 준다. 정 셰프는 “다른 방식이지만 한국 사람들은 장, 식초, 전통주 등으로 누룩의 맛과 향을 의식하지 않고도 경험해왔다. 조리 방식이나 외형적인 모습은 낯설지라도 ‘어렵지 않고 맛있다’는 고객들의 반응이 많다”고 말했다. 익숙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새롭지만 낯설지 않게 풀어낸 그의 뉴노르딕 퀴진은 이렇게 순항 중이다.



재료의 가치를 높여가다   
오븟


일본 식재료의 보고 홋카이도에서 가이세키 요리로 경력을 쌓은 오재성 셰프에게 로컬 식재료의 사용은 요리사의 본분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오픈 전 1년을 포항 죽도시장에서, 오픈 후에는 서울 가락시장 근처로 거주지까지 옮겨 한국 식재료 탐방에 열을 올리며 오븟의 DNA를 완성했다. 



계량을 체계화한 한식 터치 
멜젓 목살구이, 고추장으로 만든 김부각, 매실청과 흑초로 맛을 낸 소스에 버무린 가지 찹쌀 강정. 대충 메뉴판만 훑어봐도 오븟이 한식의 요소를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식재료를 일식만으로 풀어내는 건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오재성 셰프는 “한식의 발효 재료를 사용하되, 손맛에 의지하지 않고 계량을 체계화했다”고 덧붙였다. 

제철 로컬 재료와 발효의 만남 
주로 발효의 강렬한 향은 중화시키고, 감칠맛은 배가하는 방식으로 재료의 활용도를 높였다. 예를 들어 제주에서 돼지고기를 찍어 먹는 정도로 사용하는 멜젓을 청주, 물, 생강과 배합해 소스로 만든 뒤 여기에 두툼한 한돈 목살을 이틀간 숙성한다. 이대로 별도의 간 없이 숯불에 굽기만 해도 감칠맛 가득한 고기 요리가 완성된다. 그리고 소금물 2%의 농도로 발효한 청갓, 막걸리 식초로 볶아 쓴맛을 줄인 라디치오, 단호박 퓌레를 곁들여 산미와 쌉쌀함, 단맛이 균형을 이루는 한 접시를 완성했다. 언뜻 막걸리와 김치, 고기를 함께 먹는 듯한 재미도 자아낸다. 제철을 맞아 맛이 꽉 찬 재료들도 발효를 가미하면 한층 더 깊은 맛으로 다가온다. 제주 보리새우를 이틀간 간장에 숙성한 새우장은 짜지 않아 녹진한 새우의 맛과 탱글한 식감을 고스란히 즐길 수 있다. 감초, 대추, 검은콩, 다시마, 표고버섯을 넣어 짠맛을 덜고 구수하고 깔끔한 단맛을 끌어올린 간장에 재우는 덕이다. 여기에 은은한 홍시향과 응축된 단맛을 가진 말똥성게알, 쌀 발효주인 사케를 넣고 지어 곡물 특유의 단맛이 풍성해진 쌀밥을 곁들이면 이보다 호화로운 겨울 밥상이 있을까. 
“내 요리의 근간이 된 홋카이도와 비교해보면 한국의 식재료는 아직 품종의 다양성, 개량의 측면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 그러나 불평은 요리사의 몫이 아니다. 풍부한 해산물, 발효 재료의 깊은 맛을 장점으로 삼고, 반대로 외면받거나 아직 활용도가 높지 않은 재료를 발굴하고 고급화하다 보면 소비가 늘고 생산의 다양화도 이루어지지 않을까.” 오븟이 걸어온 지난 발자취이자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해 셰프는 거창한 포부가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고 담담하게 덧붙였다. 

*더 많은 정보는 <월간식당> 2021년12월호를 참고하세요. 


 
2021-12-06 오전 04:36:11 (c) 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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