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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쿠미곤 권오준 대표  <통권 442호>
취재부 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21-12-28 오전 04:09:39

스시로 말을 걸다

타쿠미곤 권오준 대표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 최초의 ‘일본식보급친선대사’로 임명한 스시장인>




타쿠미(匠, たくみ), 장인이라는 뜻이다. 권오준 대표를 인터뷰하기 전 운 좋게도 타쿠미곤의 스시를 먹을 기회가 있었다. 하나하나, 지금까지 먹어온 스시와는 감칠맛의 깊이와 차원이 달랐다. ‘이것을 만든 사람은 이 한점에 어떤 마음을 담았을까. 이 스시를 통해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글 박선정 기자  사진 이경섭


스시집에 취직을 하다  
1994년, 스시가 좋아서 스시를 배우기 위해 무작정 일본으로 날아갔다. 요리도, 일본어도 할 줄 몰랐지만 스시라면 당연히 본토인 일본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쿄 아사쿠사에서 가장 고급스럽게 보이는 스시집을 찾아 들어가 ‘이곳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졸랐다. 그렇게 같은 곳을 네번이나 찾아간 끝에 주인장에게 겨우 승낙을 받고 ‘취업’이 아닌 ‘취직’을 했다. 
몇년이 지난 어느날 주인 할머니가 그를 불렀다. ‘정식 직원으로서 계속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견습생, 직원을 거쳐 자신의 이름을 건 가게를 차리고 안정권에 접어들기 시작할 즈음 한국에서 전화 한통이 왔다. ‘우리 호텔 일식당을 맡아줄 수 없겠냐’는 특급호텔 총추방장의 스카웃 제의였다. 

셔벗 같았던 참치회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 일식당 ‘만요’의 총괄셰프 자리를 계약하고 2010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17년 가까이 일본에서 요리를 하던 그는 일본에서 하던 방식 그대로 회를 썰고, 요리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대형사고가 났다. VIP 고객이 ‘쓰레기통에 들어갈 음식을 내오냐’며 클레임을 제기한 것이다. “알고 보니 당시 한국인들은 참치를 해동이 덜 된 셔벗 상태로 썰어 김과 참기름에 찍어 먹고 있었다. ‘녹은 참치’는 그들에게 ‘먹지 못할 음식’이었던 거다. ‘도대체 어디서 요리를 배운 거냐’ ‘이분들이 어떤 분인지 알고 이런 음식을 내오는 거냐’며 호통이 이어졌다.” 
일본요리를 대하는 일본과 한국의 문화 차이가 너무 컸다. ‘20년 가까이 일본에서 요리를 했는데 그곳에서는 다 이렇게 먹는다’라고 설명을 해도 소용없었다. 그는 결국 해동이 덜 된 참치를 셔벗처럼 썰어 다시 제공했다. ‘아, 이런 게 문화구나. 어떻게 하면 한국의 문화에 잘 맞춰가면서 일본요리를 알릴 수 있을까.’ 권오준 대표의 고민이 시작됐다. 

일본요리연구회에 도움을 청하다 
일본에 있을 때 인연을 맺은 ‘일본요리연구회’에 연락을 했다. 일본요리연구회란 일본 내 일식 요리사들의 모임으로 회원들이 함께 일본요리를 공부하고 교류하는 모임이다. 일본 외에도 다양한 나라에 지부를 두고 운영되며 권오준 대표는 현재 한국 지부의 지부장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협회에 한국 현지 사정을 설명하면서 ‘한국의 일식 요리사들에게 일본요리를 제대로 알려주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겠냐’고 요청했다. 협회는 권 대표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하고 현지 인력을 한국으로 파견해 강연과 강의, 일본요리 시연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권오준 대표는 “일본 현지의 유명한 셰프를 초청해 강의를 하는 등 코로나19 이전까지는 연 2회씩 꾸준히 행사를 했었다”며 “코로나19로 아쉽게도 활동을 못하고 있지만 상황이 호전되면 다시 다양한 활동을 재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타쿠미곤, 숙성스시를 말하다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과 스시 전문점의 총괄셰프를 거쳐 2017년 독립해 타쿠미곤을 개업했다. 
타쿠미곤의 간판에 적힌 ‘스시 가이세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이곳에서는 스시와 가이세키를 결합한 코스요리를 선보인다. 코스의 전반부에는 계절감이 살아 있는 가이세키 메뉴로 입맛을 돋우고 중반부터는 본격적으로 스시를 즐기는 구성이다. 
권오준 대표가 추구하는 스시 장르는 에도마에 스시다. 과거 냉장·냉동시설이 없던 시절 생선을 먹기 위해서는 저장이 필수였다. 간장에 절이든 소금이나 식초에 절이든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보관 방법이 필요했고, 그렇게 보관한 생선을 이용해 스시를 만들어 먹었다. 권오준 대표가 선보이는 스시가 이와 같다. 
권 대표는 한국의 일본요리시장에서 ‘숙성스시’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지금이야 사시미와 스시 모두에 숙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타쿠미곤을 오픈할 2017년 당시만 해도 숙성스시라는 단어는 생소했다”며 “알고 보면 스시 자체가 원래 숙성음식이지만, 숙성이라는 단어를 한번 더 강조해 대중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간이 만들어내는 감칠맛 
타쿠미곤에서는 생선을 날것 그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간장이나 소금, 식초, 다시마 등을 이용해 숙성을 하는 과정에서 재료에 간이 밴다. 먼저 간을 입힌다는 것은 곧 조리를 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렇게 짧게는 3일, 길게는 3년까지 숙성을 한다. 
권오준 대표는 숙성스시의 특징으로 감칠맛과 편안함을 꼽았다. 그는 “기본적으로 숙성 과정에서 단백질이나 지방이 자연적으로 분해돼 감칠맛이 아주 뛰어나다”며 “맛도 맛이지만 많이 먹어도 소화가 잘되고 속이 더부룩하지 않다. 탈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활어나 선어에는 독소가 있어 컨디션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면 탈이 날 수 있지만, 숙성스시는 어르신이나 아이가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 건강한 음식”이라며 “몸에 흡수가 잘 되니 그만큼 영양소를 온전히 섭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시간이 만들어내는 맛에는 이처럼 이로움이 많다. 

한국의 일본요리는 ‘수준급’ 
권오준 대표가 한국에 온 지도 10년이 넘었다. 2010년 무렵 호텔 일식당을 제외하고는 전국에 4~5개에 그쳤던 스시전문점의 수도 지금은 서울에만 400여개나 된다. 그는 이러한 스시의 인기가 앞으로 20~30년 정도는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해외여행이 재개돼 다시 일본 현지 요리를 맛볼 기회가 열리기 시작한다면 경쟁력이 부족한 곳들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레 점쳤다. 이어 “일본음식점의 숫자가 많고 적음보다는 이 시장이 얼마나 오래 생존할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내 일본요리의 수준도 많이 높아졌다. 권 대표는 특히 현지에서 유학 등 공부를 하고 온 젊은 요리사들이 그들만의 감각으로 새로운 시장을 펼치고 있다는 점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 “과거에는 ‘이건 이렇게 하는 것’이라며 옛 방식을 답습하거나 여기저기서 눈으로 배운 것을 모방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며 “요즘은 현지의 전문학교에서 공부도 하고 자격증도 취득하고…. 경험의 질 자체가 과거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결과물의 질에서도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난다. 이런 젊은이들이 앞으로도 계속 잘해줬으면 좋겠다. 나도 그들에게 힘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장과 직원 아닌 스승과 제자 사이 
지금껏 권오준 대표와 함께 일하던 직원 중 서넛이 독립해 제 가게를 차렸다. 지금도 타쿠미곤의 직원 둘이 독립을 준비 중이다. 권 대표에게 물었다. 애써 키운 직원들이 독립한다고 나갈 때면 서운하지 않으냐고. 그는 “자식 키워서 시집장가 보내는 기분”이라고 답했다. “품 안에 있던 자식을 결혼시켜 내보내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서운한 감정만 가질 수는 있나. 나가서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내 가게를 찾는 단골들에게 ‘기회 되면 가보라’며 권하기도 하고. 결혼한 자식이 잘 살길 바라는 게 부모 마음이니까.” 
조리사(調理師)의 ‘사(師)’는 선비 사(士)가 아닌 스승 사(師)다. 그에게 직원은 단순히 급여를 주는 존재가 아닌, 내가 가진 것을 가르쳐줘야 하는 제자다. “스승과 제자는 오래 갈 수 있는 인연이다. 달리 생각하면 부모와 자식 같은, 늘 돌봐줘야 하는 존재다.”

한국인 최초의 일본식보급친선대사
권오준 대표는 지난해 2월 일본 농림수산성이 지정하는 ‘일본식보급친선대사’에 임명됐다. 일본식보급친선대사는 일본의 농림수산성이 일식 식문화의 매력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만든 제도다. 아시아에서는 22명의 일본식보급친선대사가 활동 중으로 한국인으로는 권오준 대표가 유일하다. “일본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거 아닌가. 일본요리를 하는 사람으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권오준 대표는 일본식보급친선대사로서 지난해 초 일본 대사관과 함께 ‘한일한마당’이라는 한일교류 행사를 진행했다. 이외에 일본식을 알리기 위한 다양한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활동을 하지 못했다. “이왕 한국에서 일본요리를 하는 김에 더 많은 사람에게 제대로 알리는 것이 목적이고 바람이다. 지금까지는 혼자 해왔지만 이제 대사관과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힘이 난다. 코로나19 상황이 끝나면 지난해 하지 못했던 다양한 것들을 해보고 싶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가 내준 참돔스시와 고등어스시를 맛봤다. 
도미는 소금과 식초를 이용해 숙성하는데, 소금의 삼투압을 이용해 맛을 응축시킨 뒤 식초물에 헹궈 냉장고에서 3일 정도 숙성한 것이라고 했다. ‘한국과 일본을 통틀어 가장 맛있을 것’이라고 자신하는 이유를 알 만했다. 
고등어는 소금에 절인 뒤 식초에 절여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을 숙성해 사용한다. 매년 고등어가 가장 맛있는 한겨울 부산공동어시장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골라 한꺼번에 작업한 뒤 저장해 두고 사용한다. 한번에 작업하는 양은 1000~2000마리 정도. 요즘처럼 만석이 이어진다면 2000마리를 모두 소진하는 데 2년이 채 안 걸릴 것 같단다. 
살면서 1년이 넘게 숙성한 고등어스시를 먹어볼 수 있는 기회가 몇번이나 있을까. 권오준 대표는 오늘도 스시로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이것은 시간과 함께 다시 태어난 생명이라고, 나는 그것을 다루는 의사와 같은 사람이라고. 그래서 언제나 하얀 조리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고 겸허한 마음으로 당신들을 위해 이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고.


 
2021-12-28 오전 04:09:39 (c) 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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