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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스며든 고기 미식 - 샤퀴테리  <통권 442호>
취재부 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21-12-29 오전 04:40:42

일상에 스며든 고기 미식

샤퀴테리




발음부터 낯설었던 샤퀴테리가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됐다. 혹시 여전히 멀게 느껴지더라도 높은 확률로 이미 먹어봤을 수 있다.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베이컨도 바로 샤퀴테리니까. 모르는 사이 우리 삶에 샤퀴테리가 성큼 들어오기까지 충실한 맛과 친숙한 방식으로 말을 건네 온 샤퀴테리에들의 노력이 있었다. 
글 장새별 객원 기자  사진 이경섭



장기 보관을 위한 태초의 식문화 
샤퀴테리는 염장과 발효, 숙성, 건조를 거치거나 익히고 쪄낸 육가공품이다. 보통은 돼지고기를 주원료로 사용하는데 소, 오리, 닭은 물론 생선, 그리고 그것들의 부산물까지 재료의 범주는 정해져 있지 않다. 돼지고기가 주원료가 된 이유는 단순하다. 역사적으로 가장 많이 기르는 가축이었고, 동서고금 막론하고 소고기보다 저렴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도 우리나라처럼 돼지 잡는 날이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였고, 정형 기술을 가진 사람이 돼지를 잡으면 함께 소시지도 만들고 염장하고 말려 두고 먹었다. 우리가 농사 기반의 식문화에서 콩으로 메주를 쒀서 장을 만들고, 채소를 발효해 장아찌를 만들어 먹었던 것처럼 장기 보관을 위해 생긴 식문화였다.  


다양한 부위의 맛, 발효의 감칠맛이 새로운 맛으로 다가와 
냉장 기술이 발달한 시대의 샤퀴테리는 고기를 맛있게 먹는 하나의 방법으로 부상했다. 미트로칼 윤유경 대표는 “발효 과정에서 나오는 감칠맛은 다른 조리법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깊은 맛”이라며 “처음엔 낯설어하던 손님들도 어떤 부위로 어떻게 만든 것인지 하나하나 설명을 듣고 맛을 보면 금세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고기를 구이로 즐기는 문화 속에 오랜 시간 돼지고기의 삼겹살과 목살, 소고기의 안심과 등심이 주로 소비되던 한국에서 뒷다릿살, 어깨살, 턱살 등을 사용해 만들었다는 이야기나 불 대신 시간이라는 조리법을 사용한 이야기는 접시에 맛을 더하는 역할도 할 것이다. 소금집 조영훈 팀장은 샤퀴테리의 매력으로 ‘이야기’를 꼽는다. 다양한 부위, 만드는 방법, 맛 등의 표면적인 것부터 식문화 등을 나눌 수 있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고 말이다. 


햄 말고 잠봉, 소시지 말고 초리조 
이야기는 비단 말로만 건네지는 것이 아니다. 햄 말고 잠봉, 소시지 말고 초리조처럼 의식하지 않고도 샤퀴테리 이름 몇개쯤은 쉬이 말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샌드위치나 피자, 브런치 플레이트 등 보다 간결하고 쉬운 메뉴로 대화를 걸어온 샤퀴테리에들의 행보가 있다.  




고기, 소금 그리고 이야기의 맛 

소금집 델리


음악하던 이들이 모여 시작한 베이컨 하우스에서 잠봉 뵈르의 성지가 되고, 망원동에 이어 안국동에 자리 잡은 지난 5년의 세월. 잠봉 뵈르 하나만 두고 말하기엔 소금집에 차곡차곡 쌓인 이야기가 많다. 




동네와 함께 자라는 델리숍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주인공이 단골 델리숍이 무너지는 걸 보고 분노하는 장면을 보면 델리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 수 있다”는 조영훈 팀장. 시대와 지역 정서에 맞게 형태는 달라져도 ‘동네 사람들과 함께 숨을 쉬는 곳’이 델리라고 덧붙였다. 델리는 작은 슈퍼마켓일 수도, 이름 있는 샌드위치 전문점이나 캐비어와 샴페인 등의 고급 식자재를 파는 오래된 백화점의 식품코너일 수도 있다. 그중 소금집 델리는 직접 만든 가공육과 그 가공육을 주재료로 한 요리들, 따끈한 수프, 여기에 어울리는 술 한잔까지 두루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바쁠 때는 포장까지 단 15초면 완성되는 잠봉 뵈르를 한손에 들고 끼니를 때울 수도 있고 가공육 외에 훈제 치즈나 아몬드, 꿀, 솔트 캐러멜 등의 식료품도 만나볼 수 있는, 대중과 가볍게 호흡하는 그런 곳이기도 하다. 
음식뿐 아니라 이야기로도 호흡을 나눈다. 조 팀장은 “샤퀴테리는 이야기의 집합체다. 유래가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먹으면 맛있는지 이곳을 방문하는 고객들은 그런 대화를 누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게 목표라면 배달로도 충분하지 않나”라며 규모가 커진 지금은 하나하나 설명할 수 없을 때가 많지만 샤퀴테리 보드가 나갈 때면 작은 설명지를 함께 건네 대화의 여지를 열어둔다고 했다. 

간단하게, 다양하게 즐기는 샤퀴테리 
‘잠봉 뵈르에 15초’. 시간을 극단적으로 줄일 수 있었던 이유는 조리가 필요한 거의 모든 작업을 공방과 프렙 키친에 맡기고 매장 내에서는 조립과 서비스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잠봉 뵈르를 만들기 위한 잠봉을 비롯해 모든 육가공품은 공방에서 짧게는 며칠, 길게는 수개월의 시간을 보낸 뒤 매장으로 들인다. 사우어크라우트, 매쉬드 포테이토, 심지어 케첩과 수란까지도 모두 완성된 상태로 들어온다. 
잠봉 뵈르의 유명세는 여전하지만 소금집의 면면을 맛보고 싶다면 역시 소금집 보드만한 게 없다. 염장한 돼지 목심을 생으로 건조한 코파,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배합해 건조한 제노아 살라미, 돼지 등심을 발효한 론지노, 다진 돼지고기와 향신료를 케이싱에 채워 장시간 낮은 불로 구워낸 살라미 코토 등 다양한 슬라이스 샤퀴테리와 치즈, 훈제 아몬드, 크래커까지. 샤퀴테리가 아직 익숙하지 않다면 소금집 보드로 취향을 찾아가도 될 만큼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로컬 재료와의 맛있는 만남 

미트로칼


무항생제 한돈을 사용한 샤퀴테리와 로컬 재료로 건강한 고기 문화를 제안하는 미트 로칼. ‘고기’와 ‘만나다’라는 이중적 의미의 미트, ‘지역’과 네덜란드어로 ‘클래스룸’을 뜻하는 로칼의 합성어인 미트로칼은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중이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맛으로 연결하다 
발효와 전통 한식을 공부하며 국제 슬로푸드 한국협회에도 몸담았던 윤유경 대표. 해외의 농장들을 드나드는 기회가 많던 가운데 눈에 띈 것이 바로 ‘샤퀴테리’라는 이름의 슬로푸드였다. “해외에는 농장에서도 직접 육가공품을 만든다. 버려지는 부위 없이 다양하게, 새로운 가치로 태어난 제품들을 보면서 한국에도 이런 건강한 식문화를 소개하고 싶었다.” 소규모 농장의 판로를 넓히고, 뒷다릿살처럼 소비자 선호도가 낮은 부위의 재발견 등 샤퀴테리를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할 수 있는 지점들을 엿본 것이다. 단순히 로컬 재료를 소비하자고 부르짖는 ‘운동’이 아닌, 실생활에 녹아들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맛’이었다. 국내에서 독일 육가공 마이스터 과정을 수료하고 프랑크푸르트 식육 박람회(IFFA)에 참가해 수상을 하며 원동력을 얻었고 이후 국내외 활동하고 있는 외국인 셰프들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레시피를 연구하는 데만 6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샤퀴테리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다   
로컬 재료와 건강하고 맛있는 맛을 기조로 삼은 윤 대표는 먼저 한국인 입맛에 맞을만한 샤퀴테리를 선별했다. 무항생제 등급의 한돈을 사용해 고유 제조 방식을 따르되 매콤한 향신료의 일부를 국내산 고춧가루로, 라임이나 리크는 각각 풋귤과 대파를 사용하는 등의 변화를 줬다. 잠봉, 모르따델라, 코파, 살라미 등의 건조 소시지, 생 소시지와 훈제 소시지 등 미트로칼의 곳간은 그렇게 채워졌다. 또 사과철이 되면 사과 소시지를, 제주도 고등어나 통영 굴에 스모크 햄을 만들 때 쓰는 훈연 방식을 차용해 시즌 메뉴를 선보이기도 한다. 윤 대표는 “단순히 로컬 재료로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둔 것은 아니다. 흥미롭고 맛있는 방식으로 로컬 재료의 가치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트로칼은 10여 석 남짓한 공간이다. 윤 대표는 이러한 가치들이 이 작은 공간에만 머무르지 않고 소비자 각각의 삶 속에 스며들길 바랐다. 햄치즈 그릴 샌드위치, 반미트 로칼 샌드위치, 살라미 샌드위치 등 레시피를 간결하게 짠 이유다. 이 메뉴에는 흔히 말하는 ‘특제 소스’가 없다. 누구든 미트로칼의 샤퀴테리와 빵, 채소나 피클 정도의 몇 가지 부재료만 있으면 집에서도 뚝딱 만들어 먹을 수 있다. 그외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도 쉽고 다양한 레시피를 제안하며 와일드 루꼴라, 방사 유정란 등 요리에 사용하는 재료들을 함께 판매하기도 한다. 샤퀴테리를 중심으로 파생될 수 있는 다양한 로컬 재료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베이컨의 진짜 얼굴  
 
사실주의 베이컨


다양한 풍미의 베이컨이 가득한 사실주의 베이컨의 쇼케이스에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방부제, 발색제, 화학 조미료. 화장을 지운 베이컨의 진짜 얼굴을 만나볼 수 있다. 



건강한 베이컨을 만들다
“어릴 때 어머니는 햄, 소시지 등의 육가공품을 일절 먹지 못하게 했다. 대부분이 비슷한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라고 서두를 뗀 남윤서 대표는 “산업화 과정에서 첨가물 범벅이 된 육가공품의 원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중 베이컨이라는 아이템을 선택한 건 이전에 운영하던 바비큐 레스토랑 스모키러버스에서 유독 인기가 많았던 메뉴이기 때문. 따로 판매를 요청하는 고객도 있었던지라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4년이 지난 현재는 소시지, 파스트라미, 잠봉 등 다양한 샤퀴테리를 만들고 있지만 여전히 건강하고 맛있는 베이컨에 가장 주력하고 있다. 
사실주의 베이컨의 건강함은 3無 원칙에서 온다. 방부제 대신 고수씨를 사용해 보존성을 높이고, 발색을 위한 합성 첨가물이나 감칠맛을 위한 화학 조미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또 좋은 환경의 동물복지 농장에서 자란 핀란드산 돼지고기를 사용한다. 부위별 통고기를 살코기와 지방의 비율이 적절하도록 다듬고 신안산 천일염과 갖가지 향신료에 5일간 염지 과정을 거친 후 건조와 숙성, 사과나무로 5시간 훈연까지 거치면 완성. 베이컨 한덩어리를 만드는 데 꼬박 일주일이 걸린다. 

이토록 다양한 베이컨 
화학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만큼 염지 과정에서 향신료의 배합에 공을 들인다. 블랙, 핑크, 화이트 3가지 후추를 사용한 페퍼 베이컨, 달콤짭조름한 메이플 베이컨, 매콤함과 알싸함이 매력적인 치폴레 베이컨, 바질 베이컨, 홍차 베이컨, 설탕을 넣지 않은 키토 베이컨까지 다양한 풍미로 완성하고 목살과 삼겹살 두 가지 부위를 사용해 고객의 선택지를 한번 더 넓혔다. 
집에서 에어프라이어에 튀기거나 프라이팬에 굽기만 해도 맛있을 것이라는 게 남 대표의 설명이다. 베이컨이라는 이름은 익숙하지만 그 원형에는 낯선 손님들을 위해 홈페이지에 레시피를 소개하고 매장에서는 샌드위치, 면 등 몇 가지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이때 재단 과정에서 생기는 자투리 베이컨을 활용한다. 맛과 품질은 동일하지만 제품으로 판매할 수 없는 형태의 조각들을 사용해 매장 내 손실까지 줄인 일거양득의 맛이다. 



시간과 기술로 빚은 우직한 맛  
 
패딩턴

몇분이면 완성되는 간단한 요리 뒤에 보이지 않는 3개월의 시간이 녹아있다. 특별한 맛이 아닌 정통 샤퀴테리의 맛을 보여주고 싶었던 셰프의 무기는 기술과 시간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것이었다. 




셰프의 손에서 모든 것이 완성되다 
패딩턴은 주류 주문이 필수인 샤퀴테리 와인 바이지만, 소믈리에는 없다. 조리는 당연하고 와인 선정부터 테이블 서비스까지 모두 라파엘 셰프를 비롯해 요리사들이 직접한다. 스파클링, 레드, 화이트, 로제, 오렌지 와인 등 50여종의 적지 않은 와인 리스트는 모두 ‘직접 맛 보고’ 엄선한 것들이다. 
그 이유에 대해 라파엘 셰프는 “패딩턴은 셰프들이 하고 싶은 걸 재미있게 풀어내는 놀이터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신들의 요리 맛을 가장 잘 아는 이들이, 그 요리와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을 하나하나 골라가는 이 놀이는 결국 소비자의 즐거움으로 이어질 것을 알았던 게 아닐까. 지난해 봄에 오픈한 패딩턴은 일부러 금호동을 찾아야 할 이유로 금세 떠올랐다.

요령이 없는 샤퀴테리의 세계 
패딩턴의 메뉴는 간결하다. 각종 샤퀴테리에 어니언 잼, 레드 커런트나 샐러드 등 각각에 어울리는 가니시가 곁들여지는 식이다. 호주 르꼬르동 블루를 졸업하고 패딩턴 지역을 중심으로 프렌치 퀴진을 익혀온 라파엘 셰프의 경험에서 묻어난 것들이다. “특별한 비법은 없지만 보통 가업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어렵게 배운 것은 사실이다. 차곡차곡 배워 온 레시피를 기반으로 한국인 입맛에 맞춰 염도를 조절했다”는 셰프. 요령 없이 기술과 시간으로 완성한 대표 메뉴가 패딩턴 플레이트다. 잠봉, 초리조, 브레사올라 등 평균 3개월의 시간을 거쳐 완성한 샤퀴테리에 적당히 녹아든 훈연 버터, 어니언잼과 코니숑을 곁들여 낸다. 포트 와인을 넣고 졸인 듯 유달리 짙은 갈색빛의 어니언 잼은 오직 양파를 오랜 시간 볶아 만든 것으로 작은 가니시 하나에도 잔꾀가 없다. 접시 위의 모든 요소를 한데 얹어 먹으면 치즈처럼 묻어나는 육향, 달콤함, 새콤함, 고소함 등이 입안을 짙게 메운다. 
그 밖에도 샤퀴테리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피자 메뉴도 준비되어 있다. 화덕에서 바삭 쫄깃하게 구운 도우 위에 잠봉과 훈연 버터를 듬뿍 얹어낸 잠봉 피자, 초리조와 페페론치노의 고소하고 짭조름한 맛을 즐길 수 있는 페페로니 등으로 남다르게 진한 피자 맛을 경험할 수 있다. 


*더 많은 정보는 <월간식당> 2022년1월호를 참고하세요. 



 
2021-12-29 오전 04:40:42 (c) 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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