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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댁 김기문 대표  <통권 445호>
취재부 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22-03-29 오전 02:46:28


경상도 상남자의 끝없는 도전

회장님댁 김기문 대표


서울의 중심인 강남에서 청년 외식기업가로 이름을 알린 김기문 대표. 그는 일찍이 경상도를 중심으로 외식사업을 펼치며 차근차근 성공을 일궈 왔다. 치킨집부터 고깃집까지 여러 업종을 두루 겪으며 외식업의 노하우를 쌓은 김 대표는 아직도 새로운 도전을 갈구한다. 이 젊은 사업가의 패기는 거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글 이서영 기자  사진 이경섭


철없던 시기 지나 바닥부터 시작한 사회생활
나는 어릴 때부터 항상 자신감이 넘쳤다. 굉장히 외향적인 성격이어서 주변에 늘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있었다. 키가 크고 체력도 좋았기에 운동부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많이 받았다. 실제 씨름과 육상 선수를 하기도 했다. 그 때는 무조건 대장을 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래서 싸움도 많이 했다. 공부는 안 하고 노는 것만 좋아하다 보니 부모님 속을 많이 썩였다. 철 없는 시절이었지만 나름 재미는 있었다. 
20살이 넘어서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궂은 일을 많이 했다. 뒤돌아 보면 정말 바닥에서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어느 날 이모가 운영하는 치킨집에서 일을 돕게 됐는데 생각지 못하게 요리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원래 집에서도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내가 그토록 맛있게 닭을 튀길 줄은 몰랐다. 당시 가게가 정말 잘 됐다. 그걸 보고 따로 나와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 가맹점을 차렸다. 나의 첫번째 외식사업이었다. 

20대에 일찍 이룬 성공…위기도 가뿐히
외식업에 발을 들이고 나서 제일 재밌었던 때는 27살 때였다. 당시 개인 브랜드 3개를 만들어 운영했다. 897식당이라는 고깃집 브랜드, 897상회라는 건어물 맥줏집, 897야시장이라는 포장마차 브랜드가 그것이다. 3개 브랜드를 합쳐 직영 매장만 50여개가 있었고, 897야시장은 가맹사업도 했다. 
매장 중에는 흑자인 곳도 있고 본전이나 적자인 곳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혈기왕성한 나이에 전국을 돌아 다니며 일을 하다 보니 그게 제일 재밌었다. 같이 일하는 친구들도 또래여서 다들 에너지가 넘치고 열정, 패기가 있었다. 우리 모두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도전할 수 있는 것도 많아서 좋았다. 
또다른 주점 브랜드인 회장님댁은 지난 2019년 내가 31살이 되던 해에 만들었다. 당시 부산 서면에 첫 매장을 오픈했는데 반응이 정말 폭발적이었다. 하루 매출이 1000만원씩 나오는가 하면 웨이팅도 기본으로 늘 80~100팀 있었다. 비교적 단시간에 수월하게 기획해서 만든 브랜드였는데 그 정도로 인기를 끌 줄은 생각도 못했다. 
회장님댁은 특히 가맹문의가 많았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계약 체결이 완료된 곳까지 합쳐 50여개 매장이 있었는데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10여개 매장이 폐점하거나 계약 해지되면서 3월 현재 30여개 매장이 운영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선방한 것이다. 최근 위드 코로나 본격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다시 속속 여러 건의 가맹 계약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에는 회장님댁을 고급 브런치 카페 버전으로 만든 ‘청담 회장님댁’으로 가맹사업을 진행했다. 시국이 어렵다 보니 주점 브랜드로만 버티기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의외로 청담 회장님댁의 반응도 꽤 좋았다. 그래서 이어 회춘이라는 카페 브랜드를 하나 더 만들었다.

다양한 경험만큼 배운 것도 많아
여러 업종을 두루 경험하다 보니 각 업종별 장단점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치킨집을 할 때는 조류독감 오는 계절이 너무 힘들었다. 조류독감은 항상 봄에 왔다. 겨울 내내 홀이 텅 비다시피 했다가 날이 좀 풀려서 고객들이 하나둘씩 오기 시작하면 꼭 조류독감이 터졌다. 
고깃집은 또 구제역이 문제였다. 날 좋을 때 사람들이 나와서 삼겹살도 구워 먹고 해야 하는데 때마침 구제역이 오니 골치 아픈 것이다. 잘 되려고 하면 꼭 천재지변이 일어나서 방해했다.
포장마차는 직원 구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포장마차 일이라는 게 육체노동은 물론 감정노동도 동반되는 것이다 보니 점주도 직원들도 고생이 많다. 
카페는 직원도 잘 구해지고 인력도 포장마차 인력의 반 정도만 있으면 된다는 게 장점이다. 무엇보다 포장마차에 비해 진상 고객이나 먹튀 고객도 거의 없고 기물 파손이 될 가능성도 적다. 반면 매출은 다른 업종에 비해 낮은 편이다. 아무래도 회전율이나 객단가가 낮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 
마진은 고깃집이 가장 좋은 것 같다. 다만 기름때 없이 매장을 청결하게 관리하기가 힘들고 밑반찬을 만들어야 해서 손이 많이 간다는 점은 단점이다.




베이커리 카페 브랜드 곧 오픈
카페의 경우 테이크 아웃 고객이 많고 회전율이 높으면 해볼만 하다. 이런 카페가 되려면 베이커리가 중요하다. 그래서 지금 베이커리 카페 브랜드를 준비하고 있다. 이제 곧 오픈한다. 주력 상품은 크로넛(크로아상+도넛의 합성어)과 쉐이크다. 
이 브랜드를 기획하기 위해 거의 1년을 투자했다. 1년 전 압구정로데오역 인근에 통 건물을 임대해 놓고 고깃집 브랜드를 만들다가 중도에 계획을 완전히 틀어 공사를 중지하고 다시 리모델링에 들어가 베이커리 카페를 만들었다. 1년간 들어간 월세만 해도 5억원 정도는 된다. 
이번 카페는 인테리어도, 메뉴도 국내에서 보기 힘든 퀄리티로 완성할 계획이다. 베이커리의 경우 셰프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내가 워낙 입맛이 까다로운 ‘빵돌이’라 비주얼이나 맛이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가차 없이 ‘다시 만들어 오라’는 주문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이커리 메뉴는 누가 먹어도 맛있으리라고 자부한다. 
이번에는 시간도, 돈도, 정신적 노동력도 많이 들인 만큼 기대가 크다. 압구정로데오 일대를 돌아다니는 이들의 2명 중 1명은 우리 카페의 베이커리와 쉐이크를 들고 다닐 정도로 핫한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 

‘하면 된다’는 말은 성공의 열쇠
앞으로는 IT, 제조, 유통쪽으로도 사업을 확장하고 싶다. 특히 온라인 기반으로 할 수 있는 사업에 도전하는 게 단기적인 목표다. 우리 직원의 80%는 현장직이다. 다들 외식업 현장, 혹은 건설업 현장에서 먼지 마시고 음식 연기 마시면서 일한다.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내 인생 좌우명은 ‘하면 된다’다. 지금까지 운도 좋았고 좋은 인연들이 많아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안 되는 것을 왜 하냐’고 하면서 손가락질을 했지만 나는 ‘된다’고 생각하면서 했다. 지금 와서 느끼는 것은 ‘된다’라고 생각해야 주변에서도 도와준다는 것이다. 
누가 ‘너 이거 할 수 있냐’고 물었을 때 절대 ‘못 한다’ 소리는 하지 않는다. 다 ‘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그러고 나서 실제 그 일이 잘 되도록 몸으로 고생을 한다. 노력하면 상황이 돌아가는 것 같다. 처음 서울에 올라와 청담 회장님댁을 오픈하고 하루에 5만원을 팔았을 때도 ‘6개월만 지나면 잘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밀어붙였는데 결국 잘 됐다.
무언가를 준비하는 분들이 있다면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사람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지금 당장 가진 게 없더라도 미래에 더 좋은 사람, 대단한 사람이 될 줄 누가 아나. 큰 꿈을 가지고 넓게 보고 항상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하면 다 된다.

 
2022-03-29 오전 02:46:28 (c) 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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