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스폐셜 인터뷰

HOME > People > 스폐셜 인터뷰
C2C플랫폼 서명석 대표  <통권 446호>
취재부 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22-04-28 오전 10:31:50

백절불굴의 청년 기업가

C2C플랫폼 서명석 대표


여기 사업자금을 탈탈 털어 과테말라의 한 커피 농장 진입로를 매끈하게 닦아준 청년이 있다. C2C플랫폼의 서명석 대표다. “빈 손으로 세상에 났으니 잃을 것이 무엇이냐”는 서 대표. 범상치 않은 이 청년 사업가의 인생 목표는 ‘이웃 사랑 실천’이다.
글 이서영 기자  사진 이경섭





과테말라 커피 농장에서 목격한 비극
지난 2014년, 커피 유통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커피 농장에 출장을 갔다. 사륜구동 트럭을 직접 몰고 해발 1950m 산 꼭대기에 위치한 농장으로 가는데 산중턱에서 차가 멈춰 버렸다. 기름이 다 떨어진 것이다. 차량의 오일 게이지가 망가져 있었는데 난 그냥 ‘연비가 좋은 차구나’라고만 생각했다. 급한대로 인근 농가로 가서 기름을 요청하니 인심좋은 아주머니가 기름을 나눠주셨다. 나는 답례로 아주머니의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줬다.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당시 그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커피 농장에 무사히 도착해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이듬해 재계약을 위해 그 농장을 다시 찾았다. 그런데 농장주가 갑자기 ‘지난해 아랫마을에서 아이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출력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이유가 있겠거니 싶어 차로 왕복 16시간을 달려 사진을 출력해 왔는데 내게 기름을 나눠 줬던 아주머니가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아주머니는 내가 뽑아 온 사진을 들고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그게 자기 딸의 마지막 사진이라고 하면서. 마땅한 보육시설이 없어 어린 딸을 데리고 농장으로 일하러 가다가 맞게 된 참사였다. 우기(雨期)에 비를 흠뻑 머금어 질퍽해진 땅이 순간적으로 무너지면서 아이가 쓸려 내려갔다고. 머리를 한대 세게 얻어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이웃이 자식을 잃고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나는 무슨 자격으로 이 땅에서 난 커피를 맛있고 즐겁게 마실 수 있나.’
이 사건은 내 인생에 하나의 전환점을 제공했다.


농부들을 위한 도로를 깔다
그 해에 아랫마을에서 커피 농장까지 가는 가파른 진흙길을 정비해 줬다. 원두를 구매하고 수입해서 커피를 판매해 번 돈을 원금까지 다 긁어 모아 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서 문제의 근본 원인을 파헤쳤다. 
커피는 생산지와 소비지가 완벽하게 분리돼 있는 시장이다. 그래서 중간유통 과정이 굉장히 많고 복잡하다. 현지에서 1포대에 2~3달러 하는 커피가 한국에 오면 20g에 3000~5000원이 된다. 원가 대비 100배 정도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에 있는 로스터리가 커피 농장에 직접 방문해 원두를 사오는 것도 쉽지 않다. 농장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뿐더러 너무 멀기 때문이다. 커피 농장들은 또 그들대로 구매자들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니 유통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나는 시장이 온라인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봤다. 물리적 거리와 시간적 제약의 문제가 클릭 한번으로 해소돼야 하고 농장들의 정보와 구매자들의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돼 서로 자유롭게 거래하고 흥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만든 게 C2C플랫폼이었다. 
2017년 C2C플랫폼을 론칭한 후 3년동안 적자를 봤다. 빚만 20억원을 졌다. 당시 직원들 월급을 못줄 정도로 힘들었다. 사금융까지 써야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그 때마다 과테말라 농장에서 만난, 딸을 여읜 아주머니를 생각했다. 그 통한의 절규. 일을 하다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고 손목이 아프고 잠을 못자서 피곤함이 머리끝까지 뻗쳐도 ‘내가 겪는 모든 고통을 다 합친들 자식 잃은 어머니의 고통만 할까? 그런 일이 다시는 생겨서는 안 된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어려운 시기가 지나고 지금은 C2C플랫폼의 가치를 인정하는 이들이 많아져서 매출도 많이 늘고 회사도 잘 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장사에 소질
초등학생 때는 과학자가 꿈이었고 중학생 때는 태권도 선수가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씨름으로 운동 종목을 바꾸면서 꿈이 씨름 선수로 바뀌었다가 그 후로는 사업가를 꿈꾸게 됐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장사를 했다. 용돈을 모아 학용품을 사서 사물함에 넣어 놓고 그때그때 필요한 친구들에게 팔았다. 고등학생 때는 판을 더 키웠다. 중고 휴대폰을 사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판매하는 장사를 했다. 1년간 800여개를 팔았고 4000만원 정도를 벌었다. 
그 기세를 몰아 수능이 끝난 직후 던킨도너츠 매장을 차렸다. 당시 대구에서 매출이 최상위권에 속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됐는데 10개월만에 매장 문을 닫았다. 도너츠 보다 커피시장의 잠재력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같은 자리에 ‘마사커피’라는 이름으로 카페를 열었다. 역시 좋은 반응을 얻어서 2년 후 군대에 입대하기 전까지 60여개 가맹점을 오픈했다. 마사커피는 군에 입대하면서 매각했다. 
제대 후에는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로스팅 카페 브랜드를 받아 운영했다. 학업을 병행하며 미국에서 커피 감별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미국에 있으면서 수입하고 싶은 생두가 생겼는데 이것을 계기로 ‘대왕커피’라는 커피 원두 유통회사를 설립하게 됐다. 대왕커피는 커피 원두 유통회사임에도 불구하고 8개 직영점을 운영했다. 주력 상품은 캔커피. 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 등에 입점했다. 
내가 이렇게 거침없이 사업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나보다 먼저 사업가의 길을 걸으신 아버지의 가르침과 도움이 큰 힘이 됐다. 부모님과 살 때만 해도 밤늦게 일을 끝내고 오면 아버지께 사업에 대한 일일 보고를 드리고 코칭을 받았다. 그 땐 새벽 2~3시가 되어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수면 시간은 고작해야 3~4시간 밖에 되지 않았다. 어릴 때는 그게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성공의 기초를 다진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인건비에 플렉스하는 대표
나는 사업을 해서 돈을 벌 생각이 전혀 없다. 애초에 나 자체가 돈을 잘 쓰지 않는 사람이다. 내가 제일 많이 플렉스(flex, 자신의 성공이나 부를 뽐내거나 과시한다는 의미)하는 부분은 인건비다. 매출이 오르면 직원을 더 고용한다. 아니면 급여를 올린다. 직원 한명 한명은 우리 회사의 기둥이다. 기둥이 높아져야 회사가 높아지고 기둥이 많아져야 회사가 넓어진다.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돈이 아니라 직원들의 지속적인 성장이다. 내 가족들과 직원들의 가족을 지킬 수 있는 튼튼하고 좋은 집을 짓는 게 내가 생각하는 사업의 본질이다.
지난해 서울에 C2C플랫폼의 플래그십 스토어로 구테로이테 커피바를 열었다. 구테로이테 커피바를 브랜딩할 때 특별히 신경쓴 건 ‘환경의 지속성’에 대한 부분이었다. 나는 나의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환경보호를 실천한다. 중요한 것은 나와 내 가족, 내 이웃의 생존과 생태계 구축 그리고 유지다. 여기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가 바로 환경의 지속성이다. 기후 변화로 인해 커피 농작지가 줄어들고 커피 시장이 축소되면 결국 나의 생태계도 파괴된다. 
나의 생태계 안에는 나와 경제적으로 엮여 있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회사의 직원들과 그 가족들 뿐만 아니라 커피농장, 농장의 직원들, 농부의 자녀들까지 그 고리 안에 있다. 내 인생의 목표는 결국 그 사람들과 단단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2022-04-28 오전 10:31:50 (c) Foodbank.co.kr
quickmenu
월간식당 식품외식경제 한국외식산업경영연구원 한국외식정보교육원 제8회 국제외식산업식자재박람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