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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으로 간 셰프들 Farm to Table  <통권 448호>
취재부 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22-06-29 오전 05:58:39


농장으로 간 셰프들

Farm to Table



세상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종국의 끝에 다다르면 흙 묻은 농부의 손이 있다는 말이 있다.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게 된 지속가능한 미식과 친환경이라는 외식업계 화두의 근간도 따지고 보면 식재료가 나고 자라는 땅에서 출발한다. 농장으로 간 셰프, 요리사를 닮은 농부를 만나 팜투테이블(Farm to Table)의 가치를 들어봤다. 
글 이지혜 기자  사진 이경섭  
참고도서 《음식의 제국, 에번 프레이저·앤드루 리마스》,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라즈 파텔·제이슨 무어》






무분별한 살충제의 위험을 세상에 처음 고발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Silence Spring》이 출간된 지 올해로 60년이 됐다. 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 지구의 농장과 작물 생태계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농약의 생태계 파괴를 고발한 이 책은 미국의 유기농 식품 인증 도입의 신호탄 역할을 했다. 하지만 책 《음식의 제국》에서는 집약적 기계 농업의 선봉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먼저 유기농 인증제를 시행한 것을 두고 아이러니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1970년대 오일 쇼크로 농약과 비료값이 오르게 되자 농부들이 화학물질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 배경이라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대지에서 수확한 채소는 식재료라는 상품이 되면서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늘날 밭에서 땀 흘리는 농부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농부는 많은 작물을 길러 팔아야 한다. 다양한 작물을 키우던 농토는 단일 작물 재배지로 바꿔 효율성을 높여야 이해타산이 맞기 때문이다. 이는 경기도 남양주에서 셰프의 팜을 운영하는 ‘준혁이네 농장’ 이장욱 대표의 말과 일맥 상통한다. 트렉터 사용은커녕 땅을 갈아엎는 것도 하지 않는 자연농법을 고수하는 그는 “농장에서 다양한 작물을 조금씩 골고루 키워 판매하는 농부가 몇이나 되겠나. 그러다간 망하기 십상이다”고 운을 뗐다. 자본주의 농업은 현금이 잘 들어오는 단일 작물만 재배하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장욱 대표는 대량 생산 농법을 철저히 지양하면서 가치 있는 농사와 돈 벌 수 있는 판로 개척,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말했다.
지속가능한 형태의 미식 산업으로 나아가는 외식업계의 방향성도 팜투테이블의 가치에 날개를 달아줬다. 최근 화려한 퍼포먼스나 플레이팅 같은 기교보다는 식재료 본연의 맛 자체에 집중한 음식들을 선보이는 파인 다이닝이 늘어가는 추세도 같은 이유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경영자나 오너 셰프들은 자신이 원하는 질감과 맛을 내는 채소를 길러줄 농장을 직접 찾아가고 레스토랑 전용 농장에서 농부가 돼 직접 수확하기도 한다. 이는 식탁에 올라가는 식재료를 대하는 셰프와 농부의 철학에서 싹 튼 변화라 할 수 있다.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를 설명한다 (I am what I eat)’는 히포크라테스의 격언이 여전히 유효한 까닭이다. 농장의 농부와 레스토랑, 그리고 고객의 연결고리가 더욱 건강한 생태계로 이어지기 위한 팜투테이블 현장을 이어서 소개한다. 




준혁이네 농장 이장욱 대표 

셰프의 상상이 이뤄지는 농장



서울 강남에서 30분 차를 타고 달려 도착한 ‘준혁이네 농장’은 경기도 남양주시 진관산업단지의 물류창고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초행길이라면 ‘이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작은 간판 하나 없는데다 겉보기엔 특별할 것 없는 비닐하우스 6동 규모였다. 하지만 준혁이네 농장 이장욱 대표의 뒤를 쫓아 온실 안으로 들어가자 저마다의 아름다운 빛깔과 향기를 뿜어내는 식용 꽃들과 허브들이 무성하게 자란 탓에 아치 모양으로 낯선 내방객을 반겨주었다. 살풍경한 회색빛 창고들과 대조적인 이곳의 첫인상은 르네상스 시대 보티첼리의 화폭에서 본 아름다운 꽃밭이 펼쳐진 듯 했다.  
이장욱 대표 말고도 이날 마침 농장으로 아침 일찍 출근한 이가 바로 한식 다이닝 권숙수의 권우중 셰프다. 아이스박스를 어깨에 메고 있던 권 셰프가 꽃을 건네며 “이게 바로 고수꽃이다. 양갈비 메뉴 위에 고수무침을 얹는데 고수만 올리면 나물처럼 보여서 고수꽃을 함께 올린다. 응축된 허브 맛을 이 꽃에서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수꽃이 막 떨어진 뒤 열매 알갱이를 맛봤다. 고수잎과는 달리 쌀알 크기 만한 알갱이 안의 알싸함과 기분 좋은 풋내가 입안 전체를 꽉 채웠다.  

    




유명 셰프들에게 월급 받는 농부
이장욱 대표는 1997년 스물일곱살의 나이에 농사를 시작했다. 남들처럼 관행대로 농약 뿌리고 비료를 주며 다량으로 수확할 수 있는 작물을 주로 재배했지만 돌연 지금의 자연적인 유기농법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는 바로 아들이었다. 농장 이름도 아들 이름을 따왔다. “2015년에 아내에게 아들 이유식 만들 채소를 건네며 ‘깨끗이 씻어’라는 말을 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이때부터 물에 씻지 않아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채소를 기르자고 결심했다”고 전했다. 이후 화학비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고 유기인증 비료만 극소량 사용하고 있다. 무농약은 물론 경운기를 사용해 땅을 갈아엎는 것도 하지 않는다는 이장욱 대표는 그만큼 농부가 흘려야 하는 땀방울이 더 많다는 점도 덧붙였다. 같은 해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서 열리는 도심형 장터인 ‘마르쉐’에서 강민구 셰프를 만나며 그의 농장은 또 한번 일대 변화를 맞게 된다. 통상 콜리플라워는 하얀색이 일반적인데 이 대표는 초록색 콜리플라워를 가지고 장에 나갔고 강민구 셰프가 이것을 모두 구매해 간 뒤로 이 둘의 특별한 인연이 시작됐다. 그렇게 셰프들 사이에 알음알음 소문이 나 자연스레 지금의 셰프스팜(셰프의 농장) 형태가 형성된 것. 실제 농장 안은 작은 나무 팻말에 적힌 유명 레스토랑 이름들이 눈에 띄었다. 주옥의 신창호 셰프, 알렌의 서현민 셰프, 오프레의 이지원 셰프 등 현재는 25명 안팎의 한국의 내로라하는 유명 셰프들이 매주 2회가량 농장을 찾아와 직접 식용꽃과 허브, 채소들을 수확해 간다. 셰프들을 위한 이른바 ‘공유농장’이라 할 수 있겠다.      

요리사가 농사를 알고 농부가 요리를 알면 벌어지는 일 
셰프의 농장에서 나고 자라는 허브와 식용꽃들은 모두 노동집약적 작물이라고 소개한 이장욱 대표는 유통의 세심함도 필수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농장에서 만난 권우중 셰프는 직접 허브 종류인 타임꽃과 메인 요리에 가니쉬로 사용할 한련화 꽃잎들을 쭈그리고 앉아 하나 하나 따서 보관 용기에 종류별로 조심스레 담았다. “셰프가 직접 와서 수확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농부는 작물을 얼마나 팔아야 할지 재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반대로 셰프 입장에서는 식재료의 단가 걱정, 발주 시 유통 과정 중 신선도에 대한 염려도 내려놓을 수 있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이어 무엇보다 계절의 흐름을 온전히 겪으며 작물의 성장을 지켜보던 셰프들의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식재료에 대한 태도와 철학으로 이어진다고 언급했다. 
마트나 시장에서 판매하는 식재료들 대부분은 그 열매의 뿌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시든 잎은 다듬어진, 깨끗한 식물의 극히 파편화된 모습만을 보기 때문이다. 준혁이네 농장에 가서야 아스파라거스가 이토록 키가 큰 나무였는지, 펜넬의 가지에 옥수수 수염같은 잎들이 수북히 달려있는지를 알게 됐고 말린 잎차로만 먹어본 레몬버베나의 실제 생김새도 처음 눈으로 목격했다.






사계절 지낸 농장에서 요리 철학 배워 
셰프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권우중 셰프는 텃밭의 고수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이 토종 고수는 가평의 부모님 집에서 가져온 씨앗을 받아와 이곳에 뿌려 키운 것이다. 꼬박 3년이란 시간이 흘러 올해 드디어 수확했다. 이곳에서 계절의 흐름에 따라 자라고 시들어 다시 땅으로 회귀하는 채소의 생애주기를 직접 보며 느끼는 바가 많다. 그 과정에서 셰프로서 엄청난 아이디어가 생기고 생각이 확장되더라.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게 됐다.” 
권 셰프는 매주 두차례 시간을 따로 내 준혁이네 농장을 찾는 수고로움을 가리켜 일상을 잠시 잊을 수 있는 행복한 순간이라 했다. 동시에 자신 스스로에게 떳떳해지는 일련의 ‘리추얼’같은 행위라고도 덧붙였다. 국내 정상급의 셰프로 미쉐린 스타를 거머쥔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작은 허브와 토마토 등을 직접 따는 그의 흙 묻은 손을 보며 식재료 자체에 대한 겸허함과 자연의 섭리를 귀히 여기는 주방 안의 순례자 같은 모습이 엿보였다.         
식재료를 대하는 자세는 결국 요리사가 어떤 방향의 음식과 미식을 추구하는지를 결정짓게 하는 첫단추가 되지 않을까. 준혁이네 농장에서 마주친 주옥의 신창호 셰프도 “셰프라는 직업인으로 나만의 한결같은 루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도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바탕이 다져진 뒤에야 레스토랑의 보여지는 여러 요소들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다. 이 농장에 수년째 식용꽃들을 따가고 채소들을 수확하면서 이러한 나만의 규칙과 철학이 공고히 다져졌다”고 표현했다. 
이렇게 농장에서 장화를 신고 절반은 농부가 된 셰프들은 주방에서 쉽게 버려지곤 했던 열매의 뿌리와 잎사귀를 귀하게 모아 새로운 음식으로 탄생케 했다. 또 후배 셰프들에게 반드시 주방 창가나 옥상 텃밭에서라도 작물을 키워볼 것을 권하게 됐다. 모두 준혁이네 농장과 건강한 땅에서 자란 식재료를 귀히 여긴 셰프가 함께 쏘아 올린 공인 셈이다.

다품종 소량 생산이 가르쳐준 자연의 가르침 
무엇이 한국의 내로라하는 셰프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 준혁이네 농장에서 나고 자란 채소는 이곳 온실에만 뿌려지는 특별한 햇볕이나 남모르는 농법이라도 있는걸까. 이장욱 대표는 파인 다이닝으로 고객의 미각을 만족시키려는 셰프들이 원하는 특별한 식재료에 방점을 뒀다고 말했다. 오감을 자극하는 요리에 들어가는 채소를 기르기 위해 맛의 희소성에 집중한 것이 준혁이네 농장의 비결이라 밝혔다. 과거 농작물의 대량 생산을 위한 획일화된 재배법과 경작법을 벗어나 일반 채소를 특수 채소로 가꾸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일한 품종이라 할지라도 수확시기에 따라 농법 기술에 따라 한 계절 안에서도 전혀 다른 맛과 식감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 이장욱 농부의 자신감이었다. 그는 작물의 다양성을 거론하면서 결국 균질화된 모양과 맛의 단일품종을 최대한 많이 생산하는 농법에서 과감히 벗어나서 다양하고 많은 종류의 작물을 키우는 것이 오히려 생산자 입장에서 ‘돈이 되는’ 효율성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견해를 밝혔다. 결과적으로 결국 요리사, 소비자에게도 선택의 다양성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농법은 결국 맛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다양한 종류의 작물을 키워 생산한 농부 스스로가 가격을 정해 제시할 수 있게 되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이 철학자 농부의 포부이기도 하다.      
오가닉 라이프나 팜투테이블은 소비자가 지갑에서 더 많은 돈을 꺼내 지불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직접 내 땅에 농사를 지어야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농부와 셰프, 그리고 레스토랑을 찾은 고객의 세 꼭지점이 각자의 권리와 의무를 다한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자연의 순리대로 키워진 식자재가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여정이 그저 건강할 수 있도록 말이다. 



초고층 식(食)물원에서 선보이는 채소의 아름다움 

이타닉가든 

서울 역삼동 조선팰리스 36층에 위치한 이타닉가든. 아름다운 한국의 식문화를 깊이 있게 연구해 새로운 한식을 선보인다. 이곳에서는 손종원 셰프의 섬세하면서도 정교한 음식을 통해 계절감은 물론 색다른 미식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글 김종훈 기자  사진 이경섭






깊이 있는 한국의 식(食)을 색다르게
이타닉가든의 주방을 지휘하는 손종원 셰프는 뉴욕의 요리학교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서 공부했으며, 북유럽을 대표하는 코펜하겐의 ‘노마’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퀸스’에서 수셰프 자리에 오른 실력자다.
식물의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서 얻은 지식을 보급하고 있는 식물원처럼 이타닉가든은 ‘식(食)물원’을 지향한다. 심을 식(植)이 아닌 밥 식(食)을 사용해 아름다운 한국 식문화에 대한 문화와 역사, 식자재, 조리법 등으로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한식을 선보이겠다는 뜻이다. 이타닉가든은 코스에 제공하는 메뉴마다 엽서를 함께 제공한다. 아름다운 식재료 일러스트가 그려진 엽서에는 재료에 대한 문화와 역사, 조리법과 먹는 방법, 생소한 채소의 설명까지 음식에 대한 정보를 정성스럽게 담았다. 고객들은 엽서를 보며 음식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할 수 있어 배려받는 경험도 얻는다. 이타닉가든은 식물원을 지향하는 만큼 채소와 꽃을 활용한 독특한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봄 메뉴로 제공했던 유채꽃과 봄나물은 계절을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미식의 세계로 초대한다. 유채꽃은 제주의 유채밭을 그릇에 담은 것처럼 싱그러운 분위기를 자아냈고 봄나물은 방풍나물, 돌나물, 세발나물 등 10종의 제철 나물을 선보여 푸른 봄을 느낄 수 있다. 선풍적인 호응을 얻은 봄 메뉴를 뒤로하고 손종원 셰프가 심혈을 기울인 여름 메뉴는 가지다. 껍질을 벗긴 가지는 발효시킨 식초물에 단시간 절여 새콤하면서도 달큼해 입맛을 돋운다. 마지막에는 시소를 올려 상쾌하게 마무리했다. 더불어 시각적 시원함을 주기위해 음식 아래에는 얼음을 깔았고 여름에 피는 차이브꽃으로 장식해 계절감을 보여준다.

셰프의 역할은 음식을 만드는 것만이 아니다
이타닉가든 주방 한켠에는 요리에 사용되는 꽃, 허브 등 다양한 작물이 있다. 요리를 직업으로 하지만 꽃과 허브 등 식재료의 생육과정을 이해할 필요를 느껴 직원 교육 차원에서 기르고 있다고 손종원 셰프는 설명했다. 손 셰프도 식재료에 대한 끊임없는 공부와 영감을 얻기 위해 농부시장 마르쉐에 정기적으로 방문한다. 손 셰프는 “계절감을 느끼기에 마르쉐만큼 좋은 곳이 없다. 농부와 대화를 통해 식재료에 대한 견문을 넓힐 뿐만 아니라 신메뉴 개발에도 영감을 얻는다. 또 소중하게 작물을 기른 농부의 얼굴을 보면서 식재료에 대한 가치를 다시 한번 느낀다”면서 “이제는 단순히 농부가 셰프에게 작물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셰프들도 농부가 키운 다양한 작물들을 활용해 새롭고 음식을 만들어 고객에게 전달해야 한다. 희소성을 지닌 채소를 다양하게 소개해서 작물의 다양성을 확대할 수 있고 그만큼 고객의 선택 폭도 넓어지리라 생각한다. 이를 바탕으로 농부들의 경제적 자립에도 도움이 되는 시스템이 생기지 않을까, 어쩌면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이 셰프로서의 직업적 소명이라고 느낀다”라고 말했다.



한접시의 요리가 지구를 구한다  

기가스


내 음식이 맛있다는 반응은 너무나 당연하다며 그 안에 담긴 문화에 집중해달라는 셰프가 있다. 건강한 지중해식 요리에 셰프의 옹골진 철학이 버무려진 곳. 푸른 차양이 달린 기가스의 문을 
활짝 열어봤다.
글 이지혜 기자  사진 이경섭






‘기가스의 첫번째 여름’이라는 제목의 인스타그램 피드가 올라온다. 이어진 메뉴 설명은 이렇다. 와니농장 제철 채소와 허브, 지중해의 음식 문화를 보여주는 식재료인 새우와 조개, 절인 돼지고기, 쌀, 올리브오일, 제주도 수라향, 카라향 등 오렌지가 준비됐다고 나열한다. 마지막 두줄에는 지속가능한 미식과 친환경, 유기농이란 문구가 적혀있다. 
메뉴 안내는 없고 식재료 아닌가 반문할 수 있다. 정하완 셰프는 ‘기가스는 음식보다 식재료가 더 중요한 곳’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스페인에서 경력을 쌓고 독일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에서 헤드 셰프로 일한 그에게서 기대한 말 치곤 너무 심심한 답변이기 때문일까. 하긴, 기라성 같은 셰프들이 한결같이 ‘재료가 실력을 이긴다’고 입을 모으는 요즘이다. 
찬찬히 들어보니 정하완 셰프의 요리 한접시에는 우주 같은 방대한 철학이 담겨있었다. 

지금 아니면 내년을 기다려야 하는 맛
시작은 기가스의 식재료를 공급하는 와니농장이었다. “부모님이 사시는 경기도 군포 와니농장에서 대부분의 식재료를 키워서 사용한다.”
농장에서 갓 따온 과일과 채소로 만든 요리는 무엇이 다를까. 정하완 셰프가 만든 샐러드는 디너코스의 가장 첫 메뉴다. 재료라곤 와니농장 딸기 한움큼, 이탈리아산 버팔로부라타치즈, 눈물콩(Tear drop pea)과 질 좋은 올리브유가 전부다. 조리 과정은 이보다 더 단출했다. 눈물콩은 뜨거운 물로 한번 샤워 시킨 후 치즈 위에 나머지 재료를 얹기만 하고 맛을 보란다. 6월이 제철인 딸기의 달콤한 맛과 살캉하게 씹히는 연두빛 콩, 부드러운 크림맛의 부라타 치즈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 맛이었다. 콩알 만한 식재료들이 빚어내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밸런스가 작은 접시 안에서 위풍당당했다. 
계절마다 수확하는 농장의 채소로 메뉴를 구성하는 정하완 셰프는 ‘요리사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는 신념이 많은 이였다. 참치 같은 멸종 위기에 처해있는 식재료는 다루지 않는다고 했다. 뚜렷한 계기는 없었다면서도 유럽에서 십년 넘게 요리를 하며 자연스레 체득한 행동이라고 했다. “식재료를 함부로 쓰고 소비하는 건 요리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연에서 일하는 농부, 어부들과 요리를 맛보는 고객 사이에서 나는 중간의 가교 역할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
큰 틀에서 생각하는 외식 생태계에 대한 그의 철학도 흥미롭다. 누군가의 희생을 발판 삼아 착취하며 비대해지는 환경은 결코 건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농부도, 식당에서 일하는 직원도, 고객 모두 공생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기가스 운영과 와니 농장의 일꾼으로 주 7일 일하는 정하완 셰프는 쉬는 날이 없어도 힘들지 않다고 웃었다. 자연에 대한 경외를 담은 그의 올곧은 철학의 지속가능한 레스토랑의 그림자가 뒤따라 오는 후배 셰프들에게 나침반 역할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더 많은 정보는 <월간식당> 2022년 7월호를 참고하세요. 


 
2022-06-29 오전 05:58:39 (c) 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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