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쇠고기

(주)벽제외식산업개발 / 박영근·윤원석 이사
한국을 대표하는 한우전문점으로서 명성을 쌓아오고 있는 「벽제갈비」는 사내 장인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등심장인 박영근·한우장인 윤원석 이사가 바로 그 장본인들. 요리사라기보다는 선생님의 경지에 오른 이들 쇠고기 장인에게 쇠고기, 벽제갈비, 나아가 한식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들어보았다.

한식이라는 포괄적인 개념 아래 구이문화는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구이류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맺어온 국내 외식업계는 ‘소에 울고 소에 웃는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쇠고기는 기쁨의 상징이자 애증의 대상이기도 했다. 미국산 쇠고기의 전면 수입개방으로 외식업계의 미국산 쇠고기 점유율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치솟을 것인가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한편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가 전면 확대 시행되는 원년인 2009년 기축년(己丑年) 소띠 해를 맞는 쇠고기 전문점, 그 중에서도 한우전문점에게 새해를 맞는 각오는 좀 더 비장할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한우전문점으로서 명성을 쌓아오고 있는 「벽제갈비」는 사내 장인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인생의 절반가량을 쇠고기와 동행해 온 한우장인이 있는 만큼 올 한 해는 더더욱 의미가 깊은 해가 될 것으로 사뭇 기대가 높다. 등심장인 박영근·한우장인 윤원석 이사가 바로 그 장본인들. 요리사라기보다는 ‘선생님’의 경지에 오른 이들 쇠고기 장인에게 쇠고기, 벽제갈비, 나아가 한식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01# 연탄불에 탕 끓여 본 기억
일반 한우만으로는 도무지 성에 안 차 자체 브랜드육을 생산해 A++만을 엄선하고 있는 한우요리전문점 벽제갈비. 최고급 원료육을 고집하는 것으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벽제갈비의 주방에는 30여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을 함께 해 온 박영근·윤원석 이사가 있다. 58년생 동갑내기인 박영근·윤원석 이사는 20대 초반부터 음식을 배우기 시작해 현재는 대한민국 최고의 쇠고기 박사라고 해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경지에 올라와 있는 한우업계의 큰 별들이다.
지금이야 한식업계에도 오픈키친이다, 즐거운 주방이다 해서 주방환경이 많이 개선됐지만 이들이 처음 주방에 발을 들여놓았을 땐 연탄불에 탕 끓이던 시절이었다고. 둘째 가라면 서러울 위계질서는 또 어떠한가. 고기에 칼집 내는 기술은 주방장의 온갖 눈치를 감수하고 심부름을 도맡아야, 그것도 어깨 너머로나 배울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회상만으로도 춥고 덥고 답답하고 살벌했던 추억이 엄습해 오는 옛날의 주방. 오너가 아니면서 어떻게 짧지 않은 30여년이란 시간을 주방에서 보낼 수가 있었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은 너무나 간결했다. “고기를 다룰 때가 가장 설레였기 때문”이란다. 음식을 다룰 때 전해지는 마약 같은 두근거림은 30년 동안 주방을 지킬 수 있게 한 근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라는 당연한 진리를 새삼 되새기는 동시에 “한 분야의 최고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 또한 통감하게 된다.

02# 음식에 대한 열정, 사람에 대한 애정
음식에 대한 전문가가 한명도 아닌 2명이나 있는 주방에서 30여 년간 단 한 번의 말다툼도 없었다면 과연 믿을 수 있을까. 그러나 두 사람이 서로를 대하는 눈빛, 30년 지기지만 아직도 하대(下待)를 하지 않고 존댓말을 쓰고 있는 대화를 들어볼 기회가 있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흔히들 주방하면 크고 작은 알력 다툼을 상상하고 실제 그런 경우도 종종 있긴 하지만 음식점은 고객을 위해 존재한다는 대 전제를 놓고 봤을 때 사사로운 감정 따위는 별로 중요한 것이 못 된다”라고 일치된 의견을 피력한다. 음식 관리하랴, 사람 관리하랴 가끔 힘이 부칠 때는 그저 “오늘 한잔 어때요?”라는 한 마디가 서로의 위로가 돼 왔다고. 음식이 좋아서, 그리고 본인의 손을 거쳐 간 음식을 맛있게 먹고 즐거워하는 고객을 보는 게 흐뭇해서 음식 외에 다른 길은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다는 두 사람은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정반대의 성격이다.
신세대식 유머와 재치로 분위기를 띄우는 쪽이 윤 이사라면 박 이사는 전형적인 외유내강 스타일이다. 본인 스스로를 “하모니카 불고 기타 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윤 이사는 상품개발을 담당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벽제갈비 북경점 오픈을 총괄하며 한국과 중국을 바쁘게 오갔다. 그는 “중국에서 약 3000여 가지의 음식을 경험해 보면서 한식이 얼마나 우수한지 새삼 느끼는 계기가 됐다”며 “한국음식이 세계 어느 음식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생각 중”이라고 한다.
한우의 꽃이라 불리는 등심을 섬세한 칼끝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박 이사는 등심의 부드러운 육질을 오랜 시간 보존시킬 수 있는 국내 최고의 노하우를 갖고 있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그러나 여전히 “어떻게 칼집을 내야 더 맛있고 보기에 좋을까, 오늘 날씨는 쌀쌀한데 숙성은 얼마나 시켜야 할까 고민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밝히는 것에서 소탈함과 겸손함이 묻어난다. 한우를 다루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만나보고 싶어 하는 동경의 대상인 박 이사는 한 마리의 소를 120여 가지로 분리해 내는 기술은 기본이요, 손에서 닿는 촉감만으로도 등급판정을 알아맞출 정도의 쇠고기 박사로 통한다. 그런 그는 아직도 홀 서버들에게 당부하는 게 있다. 메뉴에 대한 컴플레인이 있으면 즉시 알려달라는 것. 그는 “시대가 변하고 물과 공기가 변하듯 고기의 육질도 변한다. 어제의 소와 오늘 소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료를 먹고 자랐어도 맛이 다르다. 식당의 가장 좋은 인테리어는 고객이라고 하지 않나. 고객 입맛에 맞춰 손질하는 방법도 끓임 없이 변화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것을 평생의 지론으로 삼고 있다. 그는 “요즘은 옛날과 달리 음식을 배울 수 있는 곳도 많고 쉽게 배울 수 있다. 그만큼 쉽게 손을 놓아버리는 친구들도 많은데 그럴 땐 너무 안타깝다”며 “각종 매스컴의 영향으로 음식을 다루는 직업이 유행처럼 비춰지곤 하는데 요리는 사람에 대한 애정을 담는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윤 이사 역시 “음식에 대해 많이 안다고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아무리 화려한 기교를 부리더라도 사람에 대한 진심을 담아내지 못하면 진정한 요리사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03# 열정 가득한 CEO와 함께 하는 기쁨
벽제갈비를 비롯해 봉피양(평양냉면 전문점), 벽제구이로(참숯불 한우요리 전문점) 등 10개 점포를 운영 중인 (주)벽제외식산업개발. 이중 방이본점은 중앙주방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어 본점의 주방인원만 해도 30여명에 달한다. 30여명의 인원들이 불협화음 없이 일사분란하게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한 분야에서 연륜을 쌓아온 선배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군기 잡힌 험악한 분위기일 것이라는 속단은 금물이다. 이제 막 입사 반년차가 됐다는 한 직원은 “윤 이사님은 20대도 당해내질 못할 유머로 분위기를 밝게 해 주시고 박 이사님은 지저분한 걸 아주 싫어하시는 어머니 같다”라며 쑥스러워 한다. 벽제갈비하면 한우도 한우지만 김영환 회장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좋은 소를 찾기 위해 한반도 끝자락에서부터 최북단까지 전국을 샅샅이 돌았다는 이야기며, 맑은 공기, 맑은 물, 좋은 흙, 큰 일교차가 좋은 소를 키운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러한 조건을 갖춘 포천에 한우전문점으로서는 국내 최초로 계열목장을 세우고 맞춤 사료를 먹여 키운 설화 한우를 생산해 최고의 한우요리 전문점이라는 타이틀에 부합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기로 잘 알려져 있다. 두 명의 벽제한우 장인은 “스스로 대령숙주의 길을 선택했을 지라도 오너와의 코드가 맞지 않았으면 오늘날이 가능했겠냐”라며 “서로를 인정하고 신뢰하는 공감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전한다.

04# 거지처럼 입어도 음식만은 최고를 맛봐라
이들에게 있어 음식은 가장 친한 친구이자, 연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평생 요리를 한다는 것은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존재가 있다는 이야기로 적잖은 부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음식을 통해 세상을 알고 인간사를 경험했다는 윤 이사. 그는 한국음식의 뿌리부터 음식문화의 발전과정, 음식과 문화와의 상관관계, 한국에서 구이류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이유, 한식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까지 두루두루 섭렵하고 연구하고 있는 중이다. 다양한 음식을 접하기 위해 1인분에 100만원에서부터 비싸게는 1000만원 대의 음식까지 먹어봤고 아직도 기회가 되면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그는 “이제 정성만으로 좋은 음식을 만드는 시대는 지났다”며 “스스로가 즐기면서 음식을 하고 고객에게 즐거움과 재미까지 줄 수 있는 예술가가 되어야 하는 시대”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음식을 경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그는 “벽제갈비에서 갈비박사, 쇠고기가 요리의 대가라는 찬사를 듣게 됐는데 이제부터는 궁중요리에 대한 연구로 세계시장에 한식을 알리는 것을 미션으로 삼고 있다”며 요리사로서의 식지 않는 열정을 드러낸다.
아직도 작업할 쇠고기가 입고되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칼을 잡는다는 박 이사는 쇠고기의 촉감을 느낄 수 있는 현장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너무 바빠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갔지만 지금 돌아보면 고기를 만지고 손질하고 기술을 익히는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에 대한 예의가 깊어졌다”고 회상한다.
농경사회에 기반을 뒀던 우리 조상들은 소를 부(富)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우직함은 소가 갖고 있는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지고 있다. 음식 다루는 것을 천직으로 생각하며 곁눈질 한 번 하지 않고 묵묵하게 황소걸음을 하고 있는 이 두 명의 한우장인처럼 2009년 외식업계가 외부 환경에도 끄떡하지 않는 우직함을 발휘해 더 많은 부(富)와 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 이종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