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gi BBQ Taco Truck
로이 최 - Chef Roy Choi


한식에 섹시함과 흥을 더해 세계의 이목집중

사람들은 신사임당의 ‘초충도’가 아닌 백남준의 ‘비디오 광시곡’에 열광한다. 박동진 명창의 판소리 ‘적벽가’보다 가수 보아의 ‘Eat You Up’이 외국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반만년을 지난 대한민국의 고상한 역사는 사람들에게 ‘감동’이지만 ‘즐거움’이 되지 못했다. 우리의 한식에 힙합을 들려주고 섹시함을 더해 ‘재미’를 선물할 수 있는 셰프가 있다면 어떨까. 2009년 우리는 셰프 ‘로이 최(한국명 최성문)’를 주목하고 있다.

2달러로 선물하는 맛있는 즐거움
매일 늦은 시간까지 LA 지역 일대에서는 600여 명의 사람들이 트럭 앞에 줄을 선다. 바로 2달러짜리 ‘고기 타코’를 먹기 위해서다. 캐롤라인 신 맹귀라, 마크 맹귀라, 셰프 로이 최 등이 모여 지난해 11월 문을 연 ‘고기 바비큐 타코 트럭(Kogi BBQ Taco Truck)’은 뉴욕타임즈, CNN, 뉴스위크지 등을 비롯한 미국 내 주요 언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무섭게 성장해왔다. 이 타코 트럭 ‘고기’의 맛을 책임지고 있는 주인공이 바로 셰프 로이 최다.
셰프 로이는 미국 요리사관학교 CIA를 거쳐 뉴욕의 르 베르나딘 등의 유명 레스토랑, 베버리힐스 힐튼호텔의 수석 주방장을 지내면서 화려한 이력을 쌓아왔다. 그런 그가 하얀색 셰프 모자의 화려함을 뒤로 한 채 힙합 모자와 카우보이 두건을 두르고 거리로 나섰다.
“‘고기’의 음식은 도시의 길거리 푸드(Urban Street Food)입니다. 음식을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죠.” 셰프 로이는 그의 음식을 한국 음식이라고 단정짓지 않는다. 그가 자란 미국 LA의 자유로운 몸짓과 길거리 문화를 한국 식재료인 김치, 깻잎, 고추장 등으로 쓱싹쓱싹 양념한 후 멕시칸 토르티야로 돌돌 말아 사람들에게 선보였다. 주머니 속의 2달러로 교육, 경제 사정을 넘어서 모두의 입가에 맛있는 즐거움을 선물하는 그의 음식은 꾸밈이 없다. 정직하다. 국경을 뛰어 넘고, 피부색에 상관없이 음식으로 사람들에게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그의 가슴 속에 ‘한국인’이라는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는 지금, 우리가 그를 주목할 때다.

한식의 맛과 멋 핵심만 뽑아 접근성 높여
셰프 로이는 지난달 16일부터 19일까지 진행된 미국 최대 식자재 및 외식전문박람회인 ‘2009 국제외식산업박람회(NRA Show)’에서 한식을 알리는 행사에 동참했다.
그가 내놓은 음식은 ‘김치 퀘사딜라’였다. 우리의 김치와 깻잎을 사용하여 미국인들에게 익숙한 퀘사딜라(밀가루로 만든 토르티야 사이에 치즈·고기·해산물·야채 등을 넣고 오븐에 굽는 멕시코 요리)를 만든 것이다. 김치의 감칠맛과 깻잎의 향긋함이 치즈 속에 부드럽게 녹아내려 사람들의 이목을 단숨에 집중시켰다. 한국 음식이 맞는 것이냐는 의문 속에서도 분명한 것은 우리의 ‘김치’와 ‘깻잎’이 행사에 참여한 모두의 입맛을 매료시켰다는 것이다.
“너무 고지식한 사고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가 관건이죠.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사람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조차 알지 못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시대에 맞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셰프 로이는 우리 전통과 역사를 간직하되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 예컨대 한복을 입고 한식을 제공하는 것은 미국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한식의 맛과 멋의 핵심을 뽑아 ‘흥미로움’과 ‘재미’를 겸하여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식으로 세계와 소통하는 진정한 한국인
셰프 로이는 현실을 미화하지 않았다. 담백하고 솔직하게 현실을 직시하며 정직하게 한식을 바라보았다. 세계 시장으로 뻗어 나가고자 하는 대한민국 스스로가 미국을 이해하고 접근해야 함을 거듭 강조했다. 미국이 고리타분한 한식을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식당을 방문했을 때 영어를 구사하는 직원도 없으며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설명도 해주지 않고 가격만 턱없이 비싸다면 누가 한식당을 찾겠냐고 일침을 가한다.
12첩 반상을 차려 놓고 외국인들이 전부 소화하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의 지나친 욕심이다. 때로는 한식이 말쑥한 턱시도를 차려 입을 수도 있고, 섹시한 비키니로 변신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그 안에 녹아 있는 우리의 참맛이다.
“나는 한국인임이 자랑스럽습니다.” 셰프 최성문의 마지막 한마디는 한식 세계화를 향한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다. 한국인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이 손끝에서 묻어 나오는 셰프 로이 최. 한식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문을 활짝 열어주기를 기대해본다.
글/시카고 차승희 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