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부족 상황 아래
외식업계 냉메뉴 개발백태

올해 3월 후쿠시마 지역에서 발생한 쓰나미와 이로 인한 원자력 발전소의 중단으로 올 여름 일본 전역은 전력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정전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정부기관은 물론 각종 상업시설, 일반 가정에서도 절전 목표 달성을 위해 에어콘 온도를 낮추거나 사용을 자제할 것이 요구되고 있다.


계획정전으로 절전이 확산됨에 따라 일본 외식업계의 여름메뉴 개발이 더욱 분주해지고 아이디어도 다양해지고 있다. ‘따뜻한 것은 따뜻하게, 차가운 메뉴는 차갑게 제공한다’는 고정관념을 털어버리고 미각은 물론 후각, 시각적인 만족감까지 제공하는 이색 냉메뉴가 유난히 돋보인다. 전력부족과 도쿄 기준 연일 32℃를 웃도는 불볕더위가 계속되는 상황 아래 여름메뉴 개발에 다급해진 곳은 일상적 외식이라고 할 수 있는 규동, 덴뿌라(튀김)덮밥 전문점과 각 편의점의 도시락 메뉴다.

얼린 후라이드 치킨 등 여름메뉴 빅 히트
일본 외식기업 1위에 랭크돼 있는 젠소그룹의 규동브랜드 「스키야」는 차갑게 먹는 규동인 ‘히야시 규마부시(ひやし牛まぶし)’를 출시했다. 이 메뉴는 반 정도는 기존의 규동과 똑같이 먹고 나머지 반은 파와 생 와사비 소스로 간을 맞춘 후 다시국물을 부어 오차쯔케처럼 먹는 콘셉트다. 밥과 토핑으로 올라가는 쇠고기 양에 따라 미니사이즈(430엔)에서부터 보통(480엔), 고기 1.5배 사이즈(580엔), 곱빼기(580엔), 특곱빼기(690엔), 메가(810엔) 등 6가지 종류 중 선택할 수 있다. 절반은 일반 규동처럼, 절반은 차갑게 먹을 수 있어 한 번에 두 가지의 색다른 메뉴를 맛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로얄호스트 그룹에서 운영하고 있는 튀김덮밥 전문점 「텐야(てんや)」는 튀김덮밥에 차가운 다시국물을 부어 먹는 덴뿌라 오차쯔케(天ぷら茶漬け)를 여름 한정메뉴로 판매한다. 새우, 아나고 등을 튀겨서 올린 덴뿌라 덮밥에 다이콩오로시(大根おろし: 갈은 무), 묘가(みょうが: 일본의 악용 채소)를 올린 후 시원한 다시국물(出汁)을 부어 와사비 소스로 간을 맞춰 오차쯔케처럼 술술 먹는 형태. 다이콩오로시의 깔끔함과 묘가의 살짝 쏘는 맛, 와사비의 매콤함이 어우러진 이색 튀김덮밥을 맛볼 수 있다. 가격은 650엔.
차갑게 먹는 후라이드 치킨도 새삼 인기를 끌고 있다. 후쿠오카를 중심으로 14개 점포를 운영 중인 「유메유메도리(努努)」는 차갑게 얼려먹는 치킨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180℃에서 25분간 튀겨낸 치킨에 특제 타레와 스파이스를 버무려 영하 25℃에서 30분간 얼리면 완성되는 독특한 치킨.
바삭하게 튀겨낸 따끈따끈한 치킨에 익숙한 치킨 마니아들에겐 상상조차 하기 힘들지만, 차갑게 얼려 낸 이곳의 치킨은 바삭바삭한 치킨 고유의 맛이 살아있어 안주는 물론 간식용으로도 빅 히트를 치고 있다. 날개 20개 기준 가격은 1050엔이다. 인터넷 주문도 가능하다.

냉자루, 시원한 카레우동 등 냉메뉴 확산
편의점 업계 역시 가격적 메리트를 살린 이색 냉메뉴로 직장인 및 학생층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훼미리마트는 450엔짜리 ‘돼지샤브를 얹은 냉자루(豚しゃぶのせ冷や汁)’를 선보였다. 밥은 전자레인지에 따뜻하게 데운 후 돼지샤브 및 보리된장, 전갱이와 두부·오이·파·실고추 등의 재료를 넣은 다시국물을 부어 먹는 이색메뉴. 이외에도 냉우동 및 냉소바 등 다양한 여름철 메뉴를 구비해 놓고 외식업계와의 한판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미스터도넛은 냉장고에서 살짝 얼리면 더욱 식감이 살아나는 도넛이라는 점을 강조한 신메뉴를 추가했다. 기존의 인기메뉴를 업그레이드 한 형태로 미스터도넛 부동의 인기메뉴인 엔젤크림도넛을 변형한 엔젤텐디시리즈와 오차와 팥으로 맛을 낸 맛차아즈키 후렌치, 허니딥파이, 카스타드, 애플캐러멜 등이다.
식품회사 하우스 식품은 간편성을 염두에 둔 차갑게 먹을 수 있는 카레를 한정 판매한다. 삶은 우동이나 소바 등 각종 면 위에 1시간 이상 냉장고에서 차갑게 한 레토르트 카레를 붓기만 해 간편성을 살린 차가운 카레우동의 모토(冷やしカレ-うどんの素)가 그것으로 일본풍 카레 고유의 맛과 향이 살아있어 간편하고 시원하게 카레 우동을 맛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빨간불 속에서도 다양성 시도 본받아야
일본의 주간지 주간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3월 대지진 이후 일본 외식업계의 전반적인 매출이 전월대비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저녁 매출비중이 높은 디너레스토랑, 이자카야 등은 전년 동기 대비 20%에 가깝게 추락한 반면 일상적 외식으로 패스트푸드는 전월대비 8.3% 감소에 그쳤다. 스키야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오히려 7.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감소 및 고령화, 디플레이션,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구조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일본의 외식경기를 낙관적으로 보는 입장은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 아래서도 사회적 흐름에 적극 대응한 메뉴개발과 마케팅을 고안해 내며 소비자 니즈를 파악, 실행력으로 옮기고 있는 일본 외식업계의 다양성에 대한 시도는 한국 외식산업의 발전과정에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을까 싶다.


손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