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질서와 끊임없는 연구로 얻어낸 명성
셰프 에릭 리퍼트(Eric ripert)-1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셰프를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셰프가 에릭 리퍼트(Eric Ripert)일 것이다. 프랑스 앙티브 태생의 에릭 리퍼트는 17세에 파리의 400년 전통의 레스토랑 라 뚜르 장의 주방을 시작으로 프랑스 요리계의 살아 있는 전설 조엘 로부숑의 레스토랑 자맹에서 수년간 경력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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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명장들을 한자리에서 만난 꿈같은 자리
필자가 미국 마이애미에서 근무하던 당시였다. 매년 3월 열리는 마이애미의 푸드 앤 와인 축제의 대미를 장식할 유명 셰프들의 갈라디너 행사가 있던 날이었다. 이 갈라 디너는 유명 셰프들이 각자 한 코스씩 맡아 전체 테이스팅 메뉴를 구성하는 것이다. 코스메뉴를 책임질 셰프들을 소개하자면 프랑스 태생으로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셰프 다니엘 뵐루와 에릭 리퍼트, 나파벨리에 위치한 레스토랑 프렌치 런더리의 오너 셰프 토마스 켈러, 전 세계 22개의 레스토랑을 가진 일식 세계화의 선봉장 노부유키 마추히사까지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셰프들이었다. 각각의 셰프들은 순서에 맞춰 자신의 개성을 담은 음식을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특히 다니엘 팀은 그 명성만큼이나 환상적인 까나페를 다양하게 준비해왔다. 메추리 속에 푸아그라를 채워 한입크기로 썰어냈고, 이베리코 하몽과 곁들인 진한 트러플향의 버섯젤리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필자가 다니엘 팀을 도와 오이로 말아낸 게살 위에 캐비어를 올리고 있던 도중 행사장에 조금 늦게 도착한 셰프 다니엘과 마주쳤다. 다니엘 뵐루! 그는 한국에 있는 젊은 조리사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본 ‘젊은 요리사를 위한 14가지 조언’의 저자이자 뉴욕에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다니엘의 오너 셰프, 전 세계에 그의 이름을 내건 수많은 레스토랑들을 운영하는 국제 요리계의 슈퍼스타였다. 잠시 후 레스토랑 르 버르나르뎅의 오너 셰프 에릭 리퍼트가 보였다. 훤칠한 키의 프랑스 셰프는 티비로 봤을 때보다 실물이 훨씬 더 멋졌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셰프, 에릭 리퍼트
꿈에서만 그리던 요리 명장들을 직접 만났다는 흥분은 우리 노부 레스토랑팀이 맡은 코스의 음식을 전부 내보내는 동안까지도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잠시 짬을 내어 셰프 에릭 리퍼트와 대화할 기회를 가졌다. 요리계의 거장은 예상 외로 너무나도 겸손하고 신사적이었다. 전날 밤 노부 레스토랑에서 가졌던 식사는 너무나 훌륭했다며 재료와 조리법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다. 가벼운 대화가 오가던 도중 필자는 기회가 된다면 이번 여름에 뉴욕의 르 베르나르댕에서 견습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흔쾌한 승락과 함께 그렇게 레스토랑 르 베르나르댕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셰프들을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셰프가 바로 에릭 리퍼트일 것이다. 프랑스 앙티브 태생의 에릭 리퍼트는 17세에 파리의 400년 전통의 레스토랑 라 뚜르 장의 주방을 시작으로 프랑스 요리계의 살아 있는 전설 조엘 로부숑의 레스토랑 자맹에서 수년간 경력을 쌓았다. 1989년 미국으로 건너와 워터게이트 호텔과 레스토랑 불레이를 거치며, 1994년 레스토랑 르 베르나르댕에 합류하게 된다.

뉴욕 최고의 레스토랑, 르 베르나르댕
레스토랑 르 베르나르댕은 1972년 길버트 앤드 매기 르 코즈(Gilbert and Maguy le Coze에) 의해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해 1986년에 뉴욕으로 옮기며 그 명성을 더 쌓아왔다. 뉴욕의 수많은 레스토랑 중 뉴욕타임즈 4스타와 미슐랭 가이드 3스타를 동시에 받은 네 곳의 레스토랑 중 한 곳으로, 오픈 이래 25년째 뉴욕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1994년 오픈 때부터 주방을 이끌던 셰프 길버트가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며, 셰프 에릭 리퍼트가 주방을 책임지게 되었다. 이후 그의 고집스런 노력으로 인해 르 베르나르댕은 최고의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으로 더욱 명성을 얻었다.
에릭 리퍼트를 만났던 그 해 여름 필자는 스페인에서 견습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약속에 따라 르 베르나르댕의 주방을 체험할 수 있는 이틀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직접 체험해본 레스토랑의 주방은 너무나 훌륭했다. 처음 주방에 들어서자 50여 명의 조리사들이 각자의 섹션에서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전의 어떤 주방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분주함과 강렬한 열기가 느껴졌다.
필자의 대부분의 업무는 허브나 샬롯을 다지고 채소를 다듬는 것이었다. 서비스 시간엔 주방의 구석에서 그들의 서비스를 지켜보았는데 그 시간이 가장 즐거웠다. 르 베르나르댕에서 무엇보다 놀란 것은 음식보다 레스토랑의 시스템이었다. 150석의 레스토랑은 매일 예약이 꽉 차며 주말 저녁이면 300~400명의 고객이 식사하는 공간이 되었다.
50여 명의 조리사가 6개의 스테이션에 나뉘어 배치되고 10명 남짓의 수 셰프들은 각각의 스테이션을 철저하게 관리하였다. 조리사들은 두 개 조로 나뉘어져 각각 점심과 저녁 서비스를 맡고 있었는데 점심 서비스 후 저녁 서비스까지 두 개 조의 멤버들 간 업무 분담도 확실했다.

300여 명 수용 가능한 파인 다이닝
메뉴 개발 셰프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맛을 시도하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같은 메뉴라도 날마다 가니쉬와 플레이팅에 조금씩 변화를 주었다. 거추장스러운 가니쉬나 복잡한 플레이팅은 버리고, 신선한 해산물과 그 맛을 살려줄 재료와 기술이 연구되었다. 레스토랑이 사용하는 재료와 보관에 다시한번 놀랐다. 최상품의 해산물은 매일 새벽 일본에서 비행기로 공수하며, 신선한 지역의 유기농 채소와 허브가 냉장고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모든 소스는 각각의 서비스 시간마다 전부 새로 만들었고 이는 정확한 레시피에 맞춰 철저하게 일관성을 유지했다.
보통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은 50명 이상의 손님을 받을 수 없다고들 말한다. 필자 역시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 이상의 고객을 맞는 레스토랑은 음식의 질과 일관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욕의 주방은 달랐다. 수많은 관광객과 비즈니스가 오가는 대도시 뉴욕이라는 공간은 하루 300여 명의 손님 수용이 가능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주방이야말로 실용성을 중시하는 미국의 문화가 낳은 대량 생산형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강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