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셰프가 선사하는 조리 철학
데이비드 장(David Chang)

작년 봄 미국 타임(TIME)지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영웅 부문에 피겨요정 김연아 선수가 선정되어 국내에 큰 이슈가 되었다.
그런데 예술가 부문에 또 다른 한국계가 이름을 올렸으니, 현재 뉴욕 전역에 다섯 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모모푸쿠 매드너스(momofuku
madness)* 열풍을 만들었던 데이비드 장(David Chang)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 영어로 정신이상, 광기란 뜻으로 모모푸쿠의 음식에 빠져든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난 유행어이자 신조어이다.


한국계 셰프로는 유례 없는 국제적 명성
데이비드 장의 시작은 이스트 빌리지의 작은 일본식 라멘집 모모푸쿠 누들바(Momofuku noodle bar)였다. 이후 쌈바(Ssam bar), 밀크바(Milk bar), 코(Ko), 마 뻬슈(Ma pache)까지 차례로 성공시키며 뉴욕에 모모푸쿠 제국을 건설했고, 최근 호주 시드니에 오픈한 세이오보(seiobo)와 내년 오픈 예정인 모모푸쿠 토론토까지 이제 국제적으로 모모푸쿠의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데이비드 장은 한국계 셰프로선 유례 없는 국제적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뉴욕 여행 당시 방문했던 미슐랭 2 스타 레스토랑 모모푸쿠 코에서 경험했던 그의 음식은 너무나 참신하고도 유쾌했다. 10평 남짓 해 보이는 이 레스토랑은 셰프의 요리과정을 전부 볼 수 있는 오픈 주방과 단 13명만 앉을 수 있는 바 형식의 테이블 뿐이었다.
신선한 해산물과 매일 아침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에서 구입해온 신선한 채소를 이용한 테이스팅 메뉴는 아시안 요리에 프렌치 테크닉이 적절하게 가미된 창작요리였다. 간단해 보이지만 독창적인 그의 음식은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하지만 코스 중 한식을 응용한 요리가 한두 개 정도 있을 것이라 기대했었는데 전혀 만날 수 없었던 점이 못내 아쉬웠다.
그렇게 1년 뒤, 다시한번 방문하여 이번에는 모모푸쿠의 주방을 구경해 보고 싶어 레스토랑으로 연락을 취했다. 아시안 퀴진을 베이스로 다양한 음식문화를 녹여내어 이제 뉴욕을 넘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그만의 비밀이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후 그 곳에 일하고 있는 지인을 통해 그의 첫 레스토랑 모모푸쿠 누들바에서 견습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일시적 트렌드 아닌, 확고한 스타일 요리
누들바는 약 70석 정도의 공간으로 평일 저녁 기준으로 200~300명, 주말에 400~500명을 커버하는 바쁜 레스토랑이다. 주방은 고객과 마주하는 오픈 주방과 서비스를 보조하는 뒷 주방, 밑 준비를 하는 지하주방으로 나뉘어 있다. 오픈 주방은 누들, 소테(Saute), 가드망제(Garde manger), 번(bun)으로 나뉘고 각 스테이션마다 한 명의 조리사가 배치되어 있었다. 모든 조리사들은 손님을 마주하는 오픈 주방에서 음식을 조리하고 접시에 담는 과정까지 능숙하고 청결하게 마무리했다.
누들바라는 이름처럼 제일 바쁜 곳은 누들 스테이션이었다. 일본식 라멘이나 볶음면 같은 여러 가지의 면 요리를 만들어 내는 곳으로, 일본 전통의 깊고 깔끔한 돼지육수가 아니라 베이컨의 훈제 향이 강한 미국인 취향의 육수가 특징이었다.
가드망제 스테이션에서는 샐러드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에피타이저 요리를 만들어 냈고, 소테 스테이션은 그날의 특선 요리와 갖은 볶음 요리를 만들어 내는 곳으로 다양한 계절 채소를 이용한 요리가 인기였다.
번 스테이션에서 만드는 포크번(pork bun)은 모모푸쿠 레스토랑을 소개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시그니처 디쉬인데, 중국식 꽃빵 속에 훈제한 삼겹살과 오이, 호이즌 소스를 곁들여내어 정말 매혹적인 맛을 냈다. 대략 그날 나간 포크 번의 개수로 손님 수를 측정할 만큼 모모푸쿠에 방문하는 대부분의 손님들이 이 포크번을 즐긴다.
혹자는 모모푸쿠가 단지 독특한 콘셉트를 통해 누리는 일시적인 인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데이비드 장은 누들바와 쌈바의 대중적인 성공 이후로 좀 더 자신의 스타일을 확고히 해나갈 연구공간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모모푸쿠 코이다. 코에서 근무하는 메뉴개발 셰프는 수많은 메뉴를 시도하고 개발하며 이렇게 얻어진 다양한 레시피는 모모푸쿠 계열의 누들바와 쌈바, 마뻬슈로 전달된다. 각각의 모모푸쿠 레스토랑은 자신의 콘셉트에 맞춰 이런 다양한 기술들을 응용하는 것이다. 2008년 코의 존재는 데이비드 장이 업계에서 누릴 수 최고의 영광인 미슐랭가이드 별 두개를 선사했다. 모모푸쿠가 트렌드 업장이 아닌 진정한 뉴욕의 명소로 자리 잡은 것도 이때부터였다.

토종 셰프의 ‘코리안 푸드 매드너스’
셰프 데이비드 장은 다양한 국제 미식 세미나에 초청되면서 이미 뉴욕을 넘어 미국을 대표하는 셰프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그의 레스토랑을 경험해 보면서 모모푸쿠를 코리안 레스토랑이라 부르기엔 무리가 있음을 느낀다.
그의 요리는 한국음식 못지않게 일본과 중국, 미국식 길거리 음식에도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아시안 음식을 기본으로 한 아메리칸 푸드, 그게 모모푸쿠의 음식인 것이다.
가끔 한인 2·3세대의 성공에 쏟는 우리의 관심은 필요 이상일 때가 있다. 많은 한국의 언론에서 모모푸쿠를 뉴요커를 매료시킨 새로운 한식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곤 하는데, 사실 셰프 데이비드 장은 이런 한국 언론의 인터뷰에 난색을 표한 경우가 종종 있다. 자라온 환경 자체가 다른 이민 2세대들에게 하루아침에 한국적인 문화와 정서를 요구하기엔 우리가 너무 이기적인 것이 아닐까? 모모푸쿠의 음식도 한식이 아닌 그냥 모모푸쿠의 음식으로 사랑받고 있을 뿐이다.
요즘 들어 뉴욕 곳곳에 한국의 뿌리를 가진 토종 셰프들의 도전 소식이 들리곤 한다. 한식을 먹고 자라온 그들의 분투가 진정한 우리 음식의 세계화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모모푸쿠를 넘어설 토종 셰프의 ‘코리안 푸드 매드너스(Korean food madness)’ 현상을 기대하며 열정과 도전으로 뭉친 그들의 선전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강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