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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화려한 르네상스 꿈꾼다  <통권 366호>
이탈리안·프렌치 등 서양 요리와의 페어링 자유로워
관리자 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15-09-02 오전 01:50:50

2015년 8월 서울 신사동 부근에 17평 남짓의 전통주 펍이 문을 열었다. 참나무 숯에 구운 와규스테이크와 그릴드미트볼, 카르파치오, 파스타 등 이탈리아 요리와 다양한 전통주를 맛보기 위해 오픈 첫날부터 많은 인파로 가득 찼다. 서양식 요리에 전통주를 접목하되 펍 특유의 가볍고 캐주얼한 분위기를 살려 젊은층의 호응을 얻었다. 
지난 3월에는 유러피안레스토랑 「7PM」에서 전통주 페어링을 진행했다. 담당 셰프는 모로코식 살사 소스를 곁들인 석화와 잘 어울리는 술로 ‘문배주’를 꼽았고 스페인 무르시아식 초절임 멸치와 구운 파프리카를 올린 몬타디토 요리엔 ‘매실원주’를 매칭했다. 
한식·이탈리안·프렌치 등 분야별 다양한 파인 다이닝 셰프들이 전통주의 매력에 푹 빠졌다. ‘유니크하다’는 이유를 먼저 내세웠지만, 이만큼 다양한 소스와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들과의 페어링이 자유로울지는 그들도 몰랐다. 「로칸다 몽로」, 「이파리」, 「얼쑤」, 「카덴」, 「수퍼판」, 「안씨네막걸리」, 「밍글스」 등 전통주를 취급하는 다이닝과 주점들이 늘어나고 SNS를 통한 노출이 빈번해지면서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침체기였던 전통주, 태동기를 맞는 것일까?
글 황해원 기자 banana725@foodbank.co.kr  | 사진 이종호 팀장 



왕은 청주 서민은 탁주, 전통주의 ‘시작’ 
한국의 술 문화는 오래됐다. 술에 관한 초창기 기록은 1289년 고구려 동명성왕의 건국담 <제왕운기>를 통해 발견됐고 그 밖에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지봉유설> 등에 신라주와 고려주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이전부터 술 빚기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전통주는 서양의 술과는 달리 주식을 원료로 한 발효주가 기본으로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는 ‘약식동원(藥食同原)’에서 기인한다. 대부분 조와 수수, 찹쌀, 멥쌀, 보리, 옥수수 등의 주원료를 바탕으로 만들었으며 솔잎이나 국화, 구기자. 감초 등의 약재를 넣어 맛을 내기도 했다. 개중에는 ‘방향주’라고 해서 곡식 외에 별다른 재료를 넣지 않고도 덧술의 정도나 재료의 처리방법의 차별화로 독특한 향과 맛을 내는 술도 있었다. 곡물만으로는 날 수 없는 과실과 꽃 향이 도니, 당대 문인들은 방향주를 특히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철마다 빚은 술로 계절의 변화를 느꼈고 물이 흐르고 달 뜨는 자연에서 술 한 잔에 멋과 풍류를 즐기는 것이 일상이었다. 
전통주는 크게 탁주와 청주로 갈린다. 전통주의 두 가닥이라고 볼 수 있는 탁주와 청주는 사실 특성의 차이보다는 즐겨 마시던 대상의 차이가 크다. 왕과 귀족은 청주를, 서민은 탁주를 마신 것이다. 고려 시집 <동국이상국집>에 ‘술덧을 압착하여 맑은 청주를 얻는데 겨우 4~5병을 얻을 뿐이다’고 나와 있다. 윗부분만 걸러낸 맑은 술이니 ‘가진 자’가 마시는 건 당연했다. <고려도경>에는 ‘왕궁에서는 좋은 술을 매일 마시는데, 좌고에는 청주와 법주 두 종류의 술이 질항아리에 저장되어 있다 …(중략) 고려 사람은 술 마시기를 즐긴다. 민가의 사람들이 집에서 마시는 술은 색은 짙으나 맛은 약하다. 스스로 좋을 대로 마신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시대 임금의 술이었던 청주의 제조방법을 베이스로 꽃이나 과실의 껍질을 넣으면 ‘가향주’요, 약재를 첨가하면 ‘약용주’가 됐다. 증류방식으로 알코올 도수를 높인 것을 증류식 소주라고 하는데 우리가 잘 아는 문배주, 산성소주 그리고 최근 활발한 마케팅으로 급부상한 화요 등이 이에 속한다. 
조선 후기로 가면서 각 집안마다 가전비법으로 술을 빚어 마시게 되고 이때 지방색을 띤 다양한 고급 양조주류가 등장한다. 서울약산춘, 충주노산춘, 한산소곡주 등 각지 명주들은 주막에서도 판매했다. 조선 후기는 주류의 상업화가 이루어진 시대이자 전통주의 첫 전성기 시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1905년 을사조약 강제 체결 후 1909년 주세법에 의해 가양주와 지방 토속주에 세금을 징수하기 시작하면서 전통주가 단절된다. ‘밀주(허가 없이 몰래 담근 술)’의 개념도 이때 처음 생겼다. 손맛으로 각양각색 빚어 먹던 전통주의 시대는 천편일률적인 일본 술에 빛바랬다. 

업종별 스타셰프가 주목한 전통주
대중의 관심이 한창 저도주와 크래프트 비어에 쏠리고 있는 이때, 파인 다이닝의 유명 셰프들은 일찌감치 전통주로 방향을 틀었다. 와인 마시기 위해 업장에 방문한 고객에게 셰프들은 ‘페어링’과 ‘마리아주’를 언급하며 매실원주와 문배주를 권한다. 한식다이닝 「권숙수」에서는 한국의 전통 술상 형태의 주안상과 전통술을 기본으로 제공한다. ‘주방’과 ‘시장’의 흐름이 이렇게 달라도 되는 것일까.
전통주 열풍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2011년엔 막걸리 붐이 한 차례 일었다. 언론·방송 매체에서 전국 팔도 막걸리를 소개하고 ‘역대 대통령이 사랑한 막걸리’의 타이틀로 특정 지역 막걸리가 재조명되기도 했다. 국내 막걸리전문 프랜차이즈 브랜드 30여 개가 줄줄이 론칭했다. 전통주산업진흥에 관한 법률도 처음 제정됐다. 2009년 일본에서 불었던 ‘막걸리 다이어트·미용’ 바람이 기폭제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막걸리 붐은 허무할 만큼 일찍 사그라들었다. 열풍에만 들떴지 이를 제대로 상품화하고 문화로 전승하는 일엔 소홀했던 것이다. 늘 거론되었던 값싼 포장 패키지나 맛의 차별화, 전과 홍어삼합이 아닌 다양한 음식과의 페어링에서 한계가 있었다. 다양한 지역 막걸리를 훌륭한 우리 음식과 함께 꾸준히 내는 소신 있는 막걸리전문점들을 제외하고는 한때 주목받았던 전문점과 그 많던 프랜차이즈 브랜드도 꽤 많이 사라졌다.
막걸리가 뜨면서 한 가지 좋은 점은 있었다. 당시 약주나 증류주 등의 우리 술에 대한 관심도 동시에 생겼다는 것이다. 현재 약주와 증류주 중심의 전통주 바람은 당시의 막걸리 붐이 베이스가 돼준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매실원주, 문배주 등 다양한 전통주들이 모던하고 세련된 포장 패키지로 교체, 다소 고루하고 올드하다는 전통주 이미지를 전환하는 데 주력했고 이를 젊은 셰프들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다양한 요리와 페어링하면서 젊은 세대의 관심까지 소폭 증가하게 했다. 
여기에는 SNS의 영향도 컸다. ‘해시태그’ 기능이 첨가되면서 #문배주, #이강주, #전통주 등 단순한 키워드 입력만으로도 관심 분야의 전통주 정보를 SNS 유저들끼리 공유할 수 있는 데다, ‘대동여주도’와 같이 우리 술에 대한 정보를 편안하고 재미있는 콘텐츠로 각색해 제공하는 SNS 채널들이 생기면서 전통주는 대중화 반열의 초입에 들어서는 데까지 성공했다.
 
한정된 채널, 영세양조장·패키지 한계 
전통주가 잠깐 날개를 단 적이 있었다. 문배주 5대 전수자 이승용 대표에 의하면 최근 전통주가 침체기였던 것에 비해 1990년도에는 그나마 중·장년층을 타깃으로 전통주 판매량이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전국 양조장 수에 비해 적극적으로 유통·판매하는 곳이 많지 않았고, 양조시설은 낙후돼있을 뿐 아니라 판매 채널의 한계, 마케팅의 부재, 고루한 도자기형 패키지 등은 전통주 저변 확대의 발목을 잡고 있는 요소들이다.
무턱대고 정부의 정책 지원을 바라는 것도 시기상조다. 전체 주류 산업에서 전통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10% 미만(2013년 주류산업정보 실태조사보고서)에 불과해 산업에 미치는 가시적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부분의 전통주 산업은 자생력이 부족한 영세한 업체들로 구성되어 있어 효율적인 정책을 추진하기에 구조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양질의 원료 확보가 어렵고 제조시설·기술 낙후, 마케팅력 부족의 문제는 하루아침에 개선될 사안도 아니다. 대기업이나 수입 주류의 물량공세를 생각하면 모든 게 다 열악한 수준이다. 
이승훈 한국막걸리협회 전 사무국장은 “다행인 건 전통주의 대중화를 실현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여전히 활발하다. 찾아가는 양조장, 우리 술 품평회, 전통주와 다양한 퀴진 페어링, 전통주박람회 등을 통해 외식업경영주, 2차 소비자와 전통주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일차원적이지만 정공법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전통주 업체들의 인식 변화·마케팅 ‘절실’
그럼에도 전통주시장은 청신호다. 문배주와 매실원주, 아황주, 동몽, 오메기술, 자희향 등 패키지 변신과 무한 마케팅으로 대중 시장에서 매력을 어필하고 있는 전통주들이 그 예다.  
대중이 사랑하는 캐주얼 한식당과 파인 다이닝, 유명 정통 이자카야에선 이미 전통주를 눈여겨보고 적극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전통주유통전문업체 부국상사 김보성 대표는 “5년 전만 해도 전통주를 취급하려는 외식업소가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전통주 문의가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고 파인 다이닝 셰프들은 더욱 특이하고 지방색이 묻어나는 유니크한 전통주를 찾는 중”이라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전통주 업체들은 ‘업장에서 내가 만든 술을 팔고 싶으면 직접 찾아오라’는 식의 보수적인 생각과 마인드를 버리고 늦지 않게 대중 시장과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전통주 업계 스스로 만찬주, 건배주 정도의 일회성 이슈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트렌드를 구축해야 한다. 이미 감각 있는 젊은 경영주와 셰프들은 전통주의 가치에 주목하고 온라인과 SNS 등 다양하고 이색적인 홍보 채널들을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2015-09-02 오전 01:50:50 (c) 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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