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성장을 거듭한 외식업계라지만, 그 커리어가 20년 이상인 프랜차이즈 기업의 대표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것도 ‘한식’이라는 바운더리로 한정한다면 그 범위는 더욱 좁아진다. 대중적인만큼 차별화를 점하기가 어렵고, 시스템화에 애를 먹는 척박한 한식업계에서  한 우물을 판 이가 있다. 최근 한식뷔페 열풍의 근원이자 선봉장으로 불리는 「풀잎채」를 운영하고 있는 정인기 대표이사가 그 주인공이다. 20년 외식인생의 노하우를 집약한 풀잎채를 통해 그의 한식에 대한 사랑, 그리고 철학을 들어봤다. 

대담 육주희 국장 | 글 김성은 기자 fresh017@foodbank.co.kr | 사진 이종호 팀장

 

한식 조리법 시스템화로 레디 투 잇(Ready to eat) 활성화가 목표

한식뷔페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외식시장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한식뷔페가 기존 외식시장에 전혀 없던 아이템이라고 할 순 없지만 ‘직거래’, ‘건강식’, ‘집밥’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트렌디하게 풀어낸 것은 최근 선보인 한식뷔페 레스토랑들이 새로운 길을 닦은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대기업의 물량공세가 거센 한식뷔페의 인기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 열풍의 초창기 주인공이 「풀잎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근 20여 년을 한식업에 종사하던 (주)풀잎채의 정인기 대표가 불경기에 제대로 된 한식을 고객들에게 제공하고자 2013년 1월, 창원에 최초의 한식뷔페 브랜드 「풀잎채」를 론칭한 것이 이 열풍의 시작인 것이다. 

 

고객이 주인공인 한식문화를 꿈꾸다

한국사람이라면 너무 익숙한 우리 한식은 사실 운영이 매우 까다로운 분야 중 하나다.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메인 메뉴 이외에 다양한 반찬을 함께 내놓는데 이로 인해 원가율이 높아질 뿐 아니라 손품도 많이 가고, 레시피 역시 체계적이기보다는 주방 찬모의 손맛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정인기 대표는 ‘푸짐함’을 미덕으로 하는 한식의 한상차림도 고객의 입장에서는 일견 일방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한식당을 가보면 고객마다 선호하는 반찬은 따로 있는데, 고객은 메인 메뉴만 선택할 수 있고 반찬은 온전히 주인이 주는대로 먹어야 합니다. 일명 ‘시골밥상’ 스타일 한식의 경우가 특히 그렇죠. 한상차림의 가짓수를 채우는 것에만 집중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어떤 면에 있어서는 고객의 선택권이나 의사를 무시하는 느낌이랄까…. 내 입에 맞는 반찬은 계속 리필하고 싶고, 그렇지 않은 반찬은 손이 가질 않는데 우리 한식의 한상차림은 그러한 고객 선택권을 배제하는 형태인 것입니다. 한식이 갖고 있는 이러한 특성이 매우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20여 년간 ‘한식’이라는 한 우물을 파온 정인기 대표는 고객의 입장에서나 경영주의 입장에서 모두 아쉬운 이러한 부분을 개선해 우리 한식을 제대로 한번 구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양한 종류의 한식 중 고객이 원하는 메뉴를 골라 먹을 수 있는 시스템, 메뉴는 시즌별로 다양하게 바꾸고, 메뉴개발 역시 자유로운 그런 시스템이 한식매장이라고 왜 불가능할까 싶었다.    

한식업계에 몸담으며 개인적으로 아쉽고 목말랐던 부분을 보완한 풀잎채는 그렇게 탄생했다. 풀잎채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좀 더 고급화된 한식을 경험할 수 있는 최초의 ‘한식뷔페 브랜드’이자 ‘주인보다는 고객이 중심’이 되는 경영방침을 추구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 속 리딩기업이라는 자부심 

한식뷔페 열풍으로 다양한 브랜드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가운데 풀잎채 역시 차별화된 경쟁력을 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인기 대표는 풀잎채는 ‘메뉴’와 ‘즉석요리’라는 두 가지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한다. 풀잎채의 시그니처 메뉴는 주문 즉시 면을 뽑아 제공하는 수제 함흥냉면과 돌솥에 즉석조리하는 곤드레가마솥밥, 10여 종의 다양한 나물류 등이다. 이외에도 100여 종에 해당하는 풀잎채의 다양한 한식메뉴는 우수한 품질의 원재료 사용과 조리 노하우로 고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어떻게 보면 아주 작은 것이고 기본적 인 것일 수도 있지만 그 기본을 지켜가는 것이 풀잎채의 성공비결이자 차별점이다.

풀잎채의 궁극적인 목표는 고객이 건강한 우리 한식을 제대로 맛보고, 그 맛을 마치 어머니가 지어준 집밥처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정인기 때표는 풀잎채를 특별한 날 어쩌다 한번 방문하는 뷔페가 아니라 언제든지 와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 재방문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식뷔페시장이 커지고 소비자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풀잎채가 ‘한식뷔페 최초의 브랜드’이자 ‘한식뷔페 전문 브랜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풀잎채는 비록 중소기업이지만 여러 대기업 관계자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을 만큼 실력 있는 브랜드라는 사실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20여 년간 외식브랜드를 운영해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내린 뿌리는 단단하다고 자부합니다. 이 자부심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꾸준히 한식뷔페의 선도적 역할을 담당할 것입니다.”

 

‘Ready to cook’ 아닌 ‘Ready to eat’이 목표

풀잎채는 계열회사로 정푸드빌이라는 유통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매장에 들어가는 모든 식재료는 전국에 당일배송을 진행하고 있다. 더불어 체계적이면서도 차별화된 품질 유지를 위해 식재료의 80% 이상을 PB화 해 운영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고객에게 꾸준한 퀄리티와 가격에 다양한 메뉴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농가와의 직거래를 통해 수급과 가격을 안정화시키는 것 역시 정인기 대표만의 운영 노하우다. 

대표적인 것이 풀잎채의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인 나물류로, 강원도 정선 농가와 직접 거래 계약을 체결해 재료를 구매하고 있다. 농가에서 받은 나물은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풀잎채 CK센터에서 일일이 선별하고 가마솥에 조리해 매장에서 동일한 맛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품화시키고 있다. 

정인기 대표가 수많은 메뉴 중 나물에 특히 집중하는 이유는 나물류가 맛의 표준화, 완제품 생산이 특히 쉽지 않은 식재료이기 때문이다.  

“현재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는 나물은 농가에서 나물을 가져와 살짝 데쳐서 제공하는 정도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수십여 개 매장에 동일한 맛을 제공하고 운영의 편리함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면 조리가 까다롭다고 말하는 나물 역시 완벽하게 가공해서 매장에서는 살짝 볶아 내면 될 정도의 기술력이 필요합니다. 궁극적으로는 나물류를 ‘레디 투 쿡(Ready to cook)’이 아닌 ‘레디 투 잇(Ready to eat)’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이자 회사의 중점 사업입니다. 이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식의 ‘손맛’을 균일화하고 대량 유통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외식에서 검증받은 메뉴를 2차 사업화 시키는 경우가 많다. 풀잎채 역시 고객 만족도가 높은 품목 위주로 RTE(Ready to eat) 제품을 만들어 풀잎채 온·오프라인 유통망에서 판매하기 위해 찬찬히 준비하고 있다. 

 

한식뷔페 거품 꺼진다? “일상 속에 자리 잡을 것”

풀잎채를 시작으로 한식뷔페시장은 최근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우려도 없지 않다. 대기업 외식계열사가 자본력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서고 새롭게 시장에 가세하는 등 경쟁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식뷔페가 머지않아 레드오션화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당사자의 입장에서 전망하는 한식뷔페의 미래는 어떠할까. 정인기 대표는 비교적 냉철하게 이야기한다. 

“무엇이든 트렌드가 변화하는 것은 막을 수 없습니다. 내년 정도면 한식뷔페가 성장기에서 안정기로 접어들 것으로 전망합니다. 안정기라는 것은 결국 ‘쇠퇴기’를 의미하죠. 더 이상의 고속성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이 시기를 안정적으로 넘길 수 있게 하는 것은 결국 경영, 관리의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고품질 저가격’이라는 원칙에 충실한 운영을 고수한다면 ‘유행이어서 먹는 한식뷔페’, ‘특별한 날 먹는 한식뷔페’가 아니라 ‘언제라도 찾아가는 일상속의 한식뷔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풀잎채를 일상 속에서 친근하게 찾는 한식뷔페로 만들 수 있다고 정인기 대표가 확신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본인을 비롯한 직원들의 ‘노력’과 ‘열정’을 믿기 때문이다. 

“풀잎채에는 24시간 풀잎채만을 생각하는 임·직원이 있고, 늘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그 맛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팀들이 있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고객이 중심이 된 브랜드로 성장해 나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풀잎채, 지역별 거점 명소로 만드는 것이 목표 

정인기 대표는 올해까지 전국에 45개 이상 매장 운영을 계획하고 있다. 오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각 매장이 그 지역에서 명소로 자리 잡을 수 있을 때까지 관리·운영하며 내실을 기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 7월에는 부산에 영남 사무소를 오픈하기도 했다. 

풀잎채 메뉴의 2차 사업을 현실화시키는 것 역시 목표다. 1인 가구 및 맞벌이 가구 증가, 캠핑과 같은 아웃도어 문화 확산, 요리프로그램 활성화로 인한 ‘집밥’ 열풍 등은 ‘가정간편식(HMR)’ 시장의 확산을 예상할 수 있는 근거다. 풀잎채는 이중 ‘나물’ 메뉴를 특화시켜 RTE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갈 계획이다. 

어느덧 외식업에 종사한 지 22년째. 정인기 대표가 외식업을 시작하면서, 그리고 앞으로 사업을 전개해 나감에 있어서 추구하고 있는 경영철학은 무엇일까. 

“철학까지는 너무 거창하고요. 그렇지만 크고 작은 실패와 성공을 무수히 겪으면서 확립한 가치관은 분명히 있습니다. 바로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장사를 하게 되면 눈앞의 작은 이익에 휩쓸리게 되는데 그렇게 하다 보면 사업도, 브랜드도 롱런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다양한 브랜드를 통해 고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에 보답할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의 K-food가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외식 기업인으로서 역량을 펼치는 것이겠죠. 양질의 전문 인력 양성, 재래식 방식이 대부분인 한식 조리법의 시스템화 등 여전히 척박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현실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경영자이자 한사람의 외식인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 이를 개선하는데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