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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 장인 - 제로투나인 정성구 셰프  <통권 395호>
관리자 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18-02-08 오전 11:09:20


 

국내 스테이크 시장에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 붐을 일으킨 스테이크전문점 구스테이크에서 활약했던 정성구 셰프가 2016년 5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서판교에 위치한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전문점 ‘제로투나인’이 그 공간이다. 요리에는 10점 만점이 없다는 뜻에서 출발한 상호의 제로(Zero)는 요리하는 매 순간 처음이라는 마음가짐을, 나인(Nine)은 정상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글 이내경 기자 nklee@foodbank.co.kr  사진 이종호 팀장

2010년 전후 국내 스테이크 시장에 큰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주역 중 한 명을 뽑으라면 제로투나인 정성구 셰프를 꼽을 수 있다. 몇 해 전부터 주목받고 있는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 붐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드라이에이징은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가축을 도살한 후 2~3일간 실온에 두었다가 먹던 것에서 유래해 통풍이 잘되는 곳에 고기를 거꾸로 매달아 말리는 방법이다. 그 과정에서 고기 속의 아미노산이 농축되어 진한 육향을 즐길 수 있다.
약 20년이라는 그의 요리 인생을 이야기할 때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는 국내에서 드라이에이징이라는 개념이 낯선 시기에 전문적인 숙성기기 없이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를 기획 상품으로 소개하기도 했으며 지금도 자신만의 숙성 노하우를 개발하기 위해 자체 숙성고를 만드는 등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전문적인 교육과 유학 없이도 특유의 집중력과 근성으로 성공을 거둔 그는 오늘도 새로운 도전을 마주하고 있다.

Q. 어렸을 적 모습은?
삼형제 중에서 둘째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유별났다. 형이나 동생과는 달리 나는 공부는 못했지만 손재주가 뛰어났고, 사교적인 성격에 친구들도 많았다. 자립성도 강했는데 친구와 어울리기 위해 돈이 필요해도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였다. 중학생 때부터 인형공장, 호두과자 판매, 공사장 막노동 등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고등학교도 지금으로 치면 특성화 고등학교의 자동차학과에 입학했다. 손재주가 좋아 실습으로 나갔던 자동차 공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인정도 받았었다.
동시에 틈틈이 부모님이 운영하는 한식당에서 일손을 돕기도 했다. 부모님은 내가 성장하는 동안 닭요리전문점, 고깃집 등 한식당을 운영했다. 방학에는 부모님과 함께 장을 보기도 했고 홀에서 서버로 활약하는 등 어려서부터 음식점은 나에게 친숙한 공간이었다.

Q. 요리를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은 언제인가?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한 것은 제대하고 나서다. 제대한 직후에는 자동차 공장에 입사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만족할 수가 없었다. 고민이 많아지던 찰나 부모님께서 요리사를 직업으로 삼을 것을 권유했다. 부모님도 내 손이 야무지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서울 압구정동에 위치한 호텔 출신의 오너셰프가 운영하는 프렌치 레스토랑을 통해 외식업에 입문했다.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쉼 없이 일하며 외식업계가 녹록지 않은 세계라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힘들었지만 요리에 대한 기본자세와 철학을 정립한 시기였다. 요리를 잘하기 위해서는 몸을 민첩하게 움직이면서 머리도 빠르게 굴려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2년 정도 내 생활 없이 일에만 빠져 있었다. 그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는지 부모님은 다른 직종을 택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2년 동안 쏟아부은 열정이 일을 쉽게 놓을 수가 없게 했다. 그때 셰프로서 평생을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Q. 스테이크와의 인연은?
25세에 화덕 피자전문점 오찌에 수셰프로 입사했다. 메인 요리인 그릴 요리를 담당하면서 자연스럽게 스테이크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당시 오찌는 안심, 등심 등을 기본으로 돼지 티본 등 이색적인 식재료를 많이 활용했다. 이곳에서 다양한 재료에 대한 이해도와 응용력을 높일 수 있었다.
오찌에서 스테이크에 대한 기본기를 익혔다면 국립극장 내부에 있는 해와달 레스토랑에서는 숙련도를 높이는 시간이었다. 해와달은 다양한 국적의 무용단 등 단체 고객층이 주였다. 나라마다 가지고 있는 식문화를 고려하며 메뉴를 구성했다. 당시에 가장 고된 작업은 스테이크를 굽는 것이었다.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스테이크 굽는 일은 그야말로 극한 직업이다. 고객의 식사 흐름에 맞게 20~30인분의 고기를 한 번에 구우면 주방 안이 금방 매캐한 연기로 자욱해지는데 마스크를 써도 콧속이 검게 물들고 물안경을 써도 눈이 맵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스테이크를 태우지 않고 완벽하게 굽기 위해 스스로 연마했다.

Q. 어린 나이에도 인정받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주도로 떠났다. 돌연 이런 결정을 한 이유는?

줄곧 소규모 로드숍에서 근무해 외식기업의 체계적인 시스템을 배울 수 없었다. 더 많은 사람과 협업하며 성장하고 싶은 마음에 제주도에 있는 대규모 골프 클럽의 예약제 레스토랑에 입사했다. 이곳에서 1년 반 정도 고객을 상대하면서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성이란 것을 배웠다. 이후 경기도 양평으로 발령을 받아 양식과 중식 파트의 70명에 가까운 인력을 통솔하며 대규모 외식업체의 오퍼레이션을 터득했다. 중식은 생소한 분야였지만 배우는 자세로 임해 빨리 익힐 수 있었다. 특히 음식을 여럿이서 나누어 먹을 수 있도록 푸짐하게 제공하는 중식의 플레이팅 방식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주전공 분야였던 스테이크에도 나누어 먹을 수 있는 방식을 접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양평 매장은 불특정 다수의 워크인 고객이 많아 고객 만족도를 전반적으로 높이는 것이 과제였다. 컴플레인도 많아 자신감이 추락하기도 했지만 만회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당시 깨달은 것은 고객의 관점에서 음식을 생각해야 한다는 단순한 명제였다. 주방에서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도 어떻게 서빙되고 고객이 어떤 방법으로 먹느냐에 따라 맛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날 수 있다. 고객의 입장이 되어 홀 테이블에 앉아 봤다. 메뉴를 주문하고 먹는 방법을 머릿속에 그려가며 시뮬레이션을 거듭했다. 이후 홀 인력과 서빙 방법, 각각의 요리에 맞는 코멘트를 구상했고, 고객 만족도는 당연히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Q. 2008년 구스테이크 오픈 멤버로 참여해 시장에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를 선보였다. 그 계기가 궁금하다.
어느 정도 외식기업의 체계를 배웠다는 생각이 들자 요리사로서 더 성숙하고 싶다는 도전 의식이 생겼다. 마침 서울 신사동에 오픈을 준비 중이었던 구스테이크에서 좋은 제안이 왔고 브랜드 기획부터 참여해 33세에 총괄 셰프가 되었다.
론칭 초기의 구스테이크는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가 아닌 웻에이징 스테이크를 미국식 스테이크 콘셉트로 제공하는 스테이크하우스였다. 미국식 스테이크는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는 푸짐한 양을 제공하는데 코스 방식에 익숙한 고객에게는 낯선 방식이었다.
실제로 운영 초기에 난항을 겪었다. 이때 문득 맛으로 차별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돌파구를 찾기 위해 벤치마킹 목적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한 스테이크전문점에서 드라이에이징한 스테이크를 맛보았는데 신세계를 영접한 기분이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건조  숙성 방법을 연마해 기획 상품으로 드라이에징 스테이크를 선보였다. 이때 입소문이 무섭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드라이에이징한 스테이크를 찾는 고객이 날로 많아지더니 줄을 서기 시작했다. 저녁 장사만 해도 하루에 1000만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릴 정도였다. 

 


Q. 구스테이크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을 것 같다.
스테이크하우스의 기본을 연마한 시간이었다. 당시 국내에는 드라이에이징이 보편화되지 않아 제대로 된 숙성고가 없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짬 날때마다 숙성고에 달려가 습도와 온도를 확인했다. 고기가 부패하지 않도록 습도가 올라가면 제습제를 가져다 놓고, 온도가 낮으면 선풍기를 켜놓는 등 고기를 임시방편으로 숙성했다. 다행히도 양질의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를 선보일 수 있었고, 구스테이크를 찾는 고객도 급증해 다양한 부위를 건조 숙성하는 노하우를 축적했다.


Q. 구스테이크를 떠나 제로투나인을 오픈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구스테이크에서는 거의 10년 동안 있었다. 회사가 확장하고 후배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나라는 존재가 방해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다시 한번 모험을 하고 싶었다. 맛이 좋다면 고객이 찾아온다는 것을 다시 증명하고 싶었다. 서울을 벗어나 경기 서판교 지역을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제로투나인은 미국산 최고 등급인 프라임을 사용, 건조 후 그릴에 구워 겉면은 바삭하면서 육즙은 촉촉한 최고의 스테이크를 낸다. 시그니처는 본 인 스테이크(Born in Steak)다. 본 인 스테이크는 뼈가 붙어 있는 채로 드라이에이징해 공기에 노출되는 표면적이 작다. 반면 뼈가 없는 원육은 지방층만이 공기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공기와 맞닿은 표면을 잘라내도 제대로 숙성하지 못하면 먹을 때 냄새가 날 수 있다. 진정한 스테이크를 즐기고 싶다면 본 인 스테이크를 추천한다. 

 


Q. 정성구에게 제로투나인은?
제로투나인은 삶의 일부가 아니라 내 생활이다. 제로투나인은 인테리어와 시공부터 직접 내가 했다. 매장 곳곳을 자세히 둘러보면 보다 나은 요리를 선보이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나의 흔적들을 볼 수 있다. 공부하며 필기했던 메모부터 고기에 관해 모아두었던 다양한 자료 등으로 벽면을 장식했다. 매장에 비치한 숙성고도 직접 제작했다. 외국에서 전문 숙성기기를 수입할 수도 있지만, 가격도 고가인 데다가 외부 환경에 민감해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기후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매장 크기에 맞게 숙성할 수 있는 고기의 양을 설정하고, 나만의 숙성 노하우를 접목해 숙성고를 제작했다.

Q. 정성구 셰프의 숙성 노하우가 궁금하다.
정확한 판단과 섬세한 관심이다. 같은 등급, 같은 부위라도 크기가 모두 다르다. 각각에 맞게 숙성 기간을 먼저 정한다. 보통 3주 정도 드라이에이징하는데 크기에 따라 숙성 기간을 늘리기도 줄이기도 한다. 이후부터 중요한 것은 관심이다. 똑같은 습도와 온도에 보관해도 고기별로 수분 함유량이 제각각이기에 숙성 정도를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보통 1~3℃에서 숙성하는데 얼지 않는 최적 온도를 유지하면서 습도는 70% 정도를 유지한다.
숙성한 후에는 정형이다. 특히 스테이크는 한 번의 칼질로 상품성이 결정되는 만큼 정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스테이크는 특유의 각이 살아 있어야 하며 구울 때 지방층이 수축되거나 뼈가 비틀어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보통 숙성하는 동안 수분이 날아가 무게가 10% 정도 줄어드는데 건조한 표면을 잘라내면 전체 원육의 40% 정도가 추가로 감소한다. 100㎏의 원육에서 50㎏의 스테이크가 나오는 것을 감안해 잘못된 정형으로 버리는 양을 최소화해야 한다.

 


Q. 굽는 노하우도 있는가.
제로투나인은 고객이 원하는 굽기보다 약간 덜 익혀 제공한다. 미디엄을 시키면 미디엄 레어로 굽는다. 드라이에이징한 고기는 수분이 적어 활성화가 빨라 고객이 식사하는 동안 조금 더 익는다. 또 수분이 적다 보니 근섬유 지방층으로만 열을 유지해 빨리 식는다. 고기를 따뜻하게 먹고 싶다면 다시 구워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드라이에이징 고기는 식었을 때도 매력 있다. 일반 스테이크는 수분이 증발해 딱딱해지지만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는 덜 딱딱하며 식감이 살아 있고 부드럽다.

Q. 마지막으로 요리 철학은?
기본이다. 칼과 불, 팬을 내 몸과 같이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오랫동안 요리를 하지 않았어도 몸에 익어 바로 요리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더불어 요리는 멋이 아니라 맛이 우선되어야 한다. 내가 최고로 맛있는 스테이크를 굽고 싶다면 모든 요리에 대한 기본기를 갖춰야 한다.

 
2018-02-08 오전 11:09:20 (c) 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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