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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중심에서 오리진을 말하다  <통권 466호>
취재부 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23-12-27 오전 11:43:34


변화의 중심에서 오리진을 말하다




우리 사회를 유지해 오던 시스템이 순식간에 디지털로 바뀌면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들이 밀려오고 있다. 혹자는 이를 ‘핵개인 시대’ 가 도래했다며, 엄청난 속도로 세상이 변화하고 있음을 설파한다. 퓨전, 융합, 컬래버레이션이 대세가 된 요즘, 우리는 역으로 오리진에 대해 생각했다. 기본과 본질을 딛고 넘어서지 않으면, 그 어떤 변화무쌍한 주제라도 무용지물이다. 다양한 시대와 분야를 넘나들고 있는 외식인 6人을 만나 외식인으로 살아가는 존재이유와 그들의 오리진에 대해 들어봤다. 2024년 월간식당은 ‘오리진(Origin)’에 주목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오래된 것, 새로운 것, 다른 것

나주곰탕 하얀집 길형선 대표




나주곰탕 하얀집(이하 하얀집) 길형선 대표는 외식업을 ‘음식을 통해 다양한 경험적 가치를 제공하는 서비스’라고 정의 내린다. 
이에 끊임없이 공부하고, 격변하는 시대 흐름을 발 빠르게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며, 한발 앞서 대응하는 데 주력한다. 한 세기를 지켜온 하얀집의 성공 비책이 아닐 수 없다.
글 임나경 편집장  사진 이경섭


외식창업의 기본은 원가계산을 하는 것이다. 예비창업자나 창업 초보자들이 창업 전문가들로부터 “원가 계산도 못하면서 어떻게 장사를 하느냐”는 비아냥 소리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100년 넘게 장사를 해오면서 원가계산을 하지 않는 집이 있다. 그것도 하루에 많을 때는 1000명의 고객이, 주말이면 2000명까지도 문전성시를 이루는 집에서 말이다. 취재기자들이 방문한 날에도 인근 군부대에서는 큰 들통을 가져와 특식으로 80인분을 구매해 갔다. 군부대에서 행사나 특식 때면 100~200인분씩 구매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 또 1년에 고깃값만 20억원, 지난 12월에는 김장김치만 62t을 담궜다고 한다. 서울에서, 전국에서 KTX를 타고 와 밥만 먹고 가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특유의 냄새로 인해 원래 곰탕을 먹지 못하는 이들까지 매료시키는 하얀집 얘기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다 

하얀집은 1910년 매일시장 내 상인들의 허기를 채우고자 해장국, 국밥을 판매하던 것에서 시작된다. 하얀집 길형선 대표의 증조모인 원판례 사장이 1대, 류문식당을 시작으로 1940년 2대로 이어진 조모 임이순 사장 그리고 3대 부친 길한수 사장이 분가하면서 하얀집이 탄생했다. 4대는 길형선 대표와 두 딸이 전라도 광주에서 각각 하얀집 하남점과 운암점을 운영하고 있다. 길 대표는 7년간의 공직생활을 접고 가업을 계승해 나주 본점을 운영 중이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 손을 잡고 시장을 보고 심부름을 해왔던 터라 그는 뼛속까지 하얀집의 정통성과 진정성을 체득해 온 장본인이다. 세계 명인의 위치에 오른 110년 나주곰탕의 역사 속에서, 국내 대표 곰탕 전문점으로서의 맛과 내공을 자랑한다. 이런 명성은 비단, 과거의 명성만으로는 현재에 이르지 못했을 터. 
길 대표는 지금도 전국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공부하고 연구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하얀집은 3년 전 점포 리모델링을 단행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 있는 방을 입식으로 모두 개선하고, 새로운 로고도 만들었다. 가마솥 뚜껑을 연상케 하는 로고는 전라도의 젖줄 영산강이 흐르는 천년고도 나주로, 전통을 이어온 나주곰탕의 근원과 그 중심에 하얀집이 있다는 의미를 담아 표현했다. 또 최근엔 가마솥으로 곰탕 끓이던 것을 모두 회전 솥으로 교체해 청결과 효율을 가져왔다. 새벽 2~3시부터 일어나 끓이던 곰탕은 이제 아침 일찍 일어나 가동하면 되는 일이다. 길 대표는 “내 평생 과제는 단지 대를 잇는 식당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곰탕의 오랜 역사를 지켜나가 항상 사람들 옆에 있는 한결같은 곰탕 한 그릇이 되는 것이다. 하얀집의 변치 않는 맛이 곧 경쟁력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변화, 발전해야 함도 잘 알고 있다. 멈추는 것이 곧 후퇴임을 알고 있다. 100년을 넘어선 1000년도 거뜬히 지켜낼 수 있는 기반을 후대에게 마련해 주는 것 또한 나의 역할일 것”이라고 강조한다. 


장인정신으로 끓인 ‘정성’이 다한 맛 

길 대표는 외식업의 형태가 많이 바뀌어왔음을 잘 알고 있으며, 코로나19가 앞당긴 비대면 사회는 외식업의 위기를 가져왔다고 설명한다. 소비 형태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비중이 많이 옮겨졌고 외식 트렌드 역시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닌 고객 한 명 한 명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함을 잘 알고 있다. 요즘 고객들은 가격에 비해 성능이 좋다는 뜻의 ‘가성비’ 좋은 제품이 아닌,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선택하기에 고객이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강조한다. 그 역시 이에 발맞추기 위해 지속적인 변화를 넘어선 진화를 위해 주력한다. 
아울러 길 대표는 “하얀집을 운영하며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단연 원재료다. 좋은 재료가 좋은 음식을 만든다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당일 도축한 최고급 한우를 사용한다. 신선하고 품질 좋은 한우를 오랜 시간 끓이며 기름과 불순물을 제거해 정성들여 끓인 육수로 곰탕 한 그릇이 완성된다. 절대 냉동육이나 진공포장 된 고기에서는 이 맛이 나올 수 없다. 음식의 본질은 맛이다. 하지만 맛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우리 곰탕이 최고 맛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가장 신선한 재료로 정성 들여 끓인 곰탕임을 누구 보다 자부한다”고 말한다. 이렇듯 한 세기를 이어온 역사 또한 고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직원들의 포근한 인심이 다시금 하얀집을 찾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라고 덧붙인다. 


하얀집의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 

전국 유명 맛집이라고 해서 그에게 애환이 없는 건 아니다. 같은 외식업을 하는 이들은 수시로 겪는 일이지만 그 역시 2018년 광우병 파동을 잊을 수 없다. 전국 도축장들의 도축률이 70% 이상 감소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광주에 있는 대형 매장들을 비롯해 장성, 함평, 화순, 강진, 장흥, 해남 등 전라도 구석구석에 있는 도축장이나 대형 매장들을 찾아다니며 원재료 구매에 안간힘을 써야 했다. 코로나19 역시 가장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고, 내부적으로는 직원 문제가 큰 걸림돌이 됐다. 길 대표는 “하루아침에 거리에 사람이 없어지고 가게로 오는 발길이 뚝 끊겼다. 체온측정기, 칸막이 등을 설치해 사람들의 불안감을 낮추려 노력했다. 그렇게 고객들과 신뢰를 쌓으며 조금씩 회복했고, 외부 강사를 초빙해 직원교육에도 매진했다. 직원들과 각지의 유명 맛집을 탐방하며 맛, 서비스 등을 몸소 체험하고 느끼게끔 했다. 직원 단합과 자부심을 갖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도 전국을 돌며 외식시장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트렌드를 익히기에 여념이 없다. 새로 생긴 점포가 있으면 직접 가본다거나 자녀들과 함께 방문해 요즘 고객들의 시선을 쫓고 있다. 그는 또 과거부터 4대에 이르기까지 해왔던 방식을 과감하게 진화, 발전시키며, 하얀집만의 경쟁력과 차별화를 이끌어낸다. 최근 신축한 공장에서 위생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을 완비하고, HACCP 인증을 신청해 놓는다거나 향후 배달과 밀키트 등을 선보이기 위해 각종 장비까지 구축하는 등 하얀집의 진화를 위한 준비를 아낌없이 해오고 있다. 
그의 이런 지속적인 노력은 분명, 또 다른 소비 형태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건네는 길 대표의 마지막 얘기가 울림을 전한다. 
“지금의 하얀집은 내가 만든 가게가 아니다. 하얀집의 맛을 지키기 위해 조상들의 정신을 자식들에게도 전하고 싶고 신선한 원재료 구입과 사용, 정성 들여 끓여 그 맛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내 임무다. 맛을 지키고, 나주로 찾아오도록 하게끔 하는 게 나의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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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어지는 법

진사향 진생귀 대표





그는 ‘중식 4대 문파’라고 불린다. 중식 요리 경력만 51년, 어린 시절에 그저 먹고살기 위해 시작했던 일이 이제는 그만의 세계를 만들고 더 나아가 대중과의 활발한 소통을 꿈꾸고 있다. 누구에게나 일상은 지겹고 힘든 것일 테지만, 그는 이러한 고단함에 아무 말 없이 속삭인다, 그냥 묵묵히 걸으면 돼.
글 김준성 기자  사진 이경섭


중식업계 사람들 사이에는 특유의 끈끈함이 있다. 타 외식업계보다 재한 중국인 비율이 높아서이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중식업계 관계자들만의 정기적인 커뮤니티가 활발하게 열리기도 한다. 그도 재한 중국인이다.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 내전 당시,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와서 삶을 이어 나가게 됐다. 그의 동생인 진생용 셰프도 ‘강호대결 중화대반점’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널리 이름을 알렸고, 홍대 인근에서 중식당을 운영 중이다.


먹고사는 일이란 중요하고 지겹고 서글픈 일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와서 강원도 영월, 그리고 서울에서 살았다. 그런데 안 좋은 일은 한 번에 밀어닥친다고 했나. 아버지가 운영하는 식당에 불이 나고, 때마침 어머니도 병을 얻게 되면서 집안 사정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는 신문배달, 우유배달, 구두닦이 등 돈 되는 거라면 닥치는 대로 했다. 가정환경이 어려운데 정착할 수 있는 일은 또 뭐가 있겠나. 중식당에 들어가 배달과 설거지부터 하는 것 말곤 딱히 다른 방법도 없었다.”
당시의 작은 중식당 주방엔 재한 중국인, 그리고 타 지역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많았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빠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칠었고, 그만큼 싸움이나 언쟁도 자주 일어났다. 그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걸 참고 누르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더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다. 그러나 14세 때부터 주방 스승들에게 일을 배우며 빠르게 터득했기에 그를 아끼고 예뻐하는 선배들도 못지않게 많았다.
“처음 주방에 들어가면 배달과 설거지부터 한다. 그다음이 면판, 칼판 보조, 칼판 메인 순서로 맡게 된다. 마지막 단계에서 불판을 담당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초보 기술이라 할 수 있는 튀김부터 배우며 익히게 된다. 그런 단계를 거쳐 서서히 주방 일에 익숙해지게 되는 것이다. 작은 규모의 중식당일수록 한 사람이 여러 일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배우는데, 그래서인지 나 또한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뜨거운 기름에 데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칼이나 제면기에 손가락 자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그럴 때 바로 병원에 가지 못하는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주방에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식당이 안 돌아가니까. 세상 누구나 그렇겠지만, 먹고살기 위해 일한다는 건 그 무게만큼 중요하고 지겹고 또 서글픈 일이기도 하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오랫동안

태화관과 국일대반점, 프라자호텔, 맘모스호텔, 삼정호텔 등 그의 20~50대는 여러 커리어들로 가득하다. 그를 좋아했던 여러 주방 선배들이 이끌어준 이유도 있겠지만, 그 자신만의 부지런함과 재빠른 일 처리가 빛을 발하며 가는 곳마다 좋은 대우를 받게 된다. 물론 좋은 일들만 있던 건 아니었다.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30년 이상 모아왔던 재산이 일순간 사라지기도 했다. 그래서 잠시 잠깐 나쁜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다시 살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낮엔 개인 장사를 하고 밤엔 주방장 일을 번갈아 가며 매일 빚을 갚아나갔다. 그렇게 살아남기 위한 시간들을 견디다 2018년, 지금의 ‘진사향’을 오픈했다.”
서울 구로역 인근에 위치한 진사향은 정통 중식의 맛과 형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캐주얼한 가격대를 갖추고 있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중식 요리가 있는데, 가격대와 양이 부담스러워 대중화되지 못하고 있는 게 그는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진사향을 방문하는 고객들의 수는 꾸준하다. 특히 5만원대 이상의 단품 요리들을 3~8만원 대의 코스요리로도 쉽게 접할 수 있어 다양한 연령대의 고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중식 4대 문파’의 높은 가치를 가격으로 매기는 소비자들도 있겠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다. 좀 더 캐주얼하고 대중화된 중식 요리로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며 소통하는 것 또한 비교할 수 없는 가치 아닐까. 중식 요리가 다른 음식에 비해 좀 더 힘들기는 하다. 하지만 딱 그만큼의 자부심을 함께 가지고 있다. 올해 나이 66세, 앞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오랫동안 일하고 싶다.”
중식 요리 경력만 50여 년 된, 그의 유일한 바람 중 하나다.


소통엔 아픔과 성장이 동시에 뒤따른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시작한 요리다. 그래서 더 절실하게 배웠다. 물러날 곳도 곁눈질할 곳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요리를 오래 할수록 욕심이라는 것이 또 생긴다. 비주얼도 신경 쓰고 싶고 건강까지 생각한 음식이었으면 좋겠고, 뭐 그런 거. 진사향을 운영하며 굴 소스 등의 완제품을 안 쓰면서 옛 맛 그대로를 내려고 노력하는데, 이러한 노력도 그와 같은 맥락 아닐까. 물론 음식도 유행을 따라간다. 그러나 자신만의 고집도 그 안에 어느 정도 녹아들어있어야만 삶의 의미도 생기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고집이 있다는 건 반드시 커뮤니케이션을 필요로 하는 것일 테고. 때문에 함께 일하는 구성원이든 고객에게든 누구에게나 솔직하게 대하려 한다. 그런 대화, 커뮤니케이션 안에서 더 나은 것이 만들어질 수 있고 생각과 시선의 확장 또한 이뤄지는 것이겠지. 가능한 한 오래 일하고 싶은 건 나의 성장 또한 제자리에 멈추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현재 그가 사용하고 있는 국자는 12년, 중식도도 8년가량 됐다고 한다. 그 세월만큼 손에 익어 능숙해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베임과 데임, 그리고 상처가 있었을까. 제대로 된 대화와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또 얼마만큼의 아픔을 미리 감수하며 뛰어들어 오래 품어왔을까.
한때는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 이제는 더 넓은 소통을 하기 위한 도구이자 공간이 되고 있다. 구로역 인근 어느 중식당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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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는 나의 운명 ‘순대 전도사’

희스토리푸드 육경희 대표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순대 전도사’, ‘열정 만랩 경영주’라고 말한다. 2004년 대학로에 향토음식전문점 ‘남도이야기’ 오픈을 시작으로 ‘핏제리아오’, ‘순대실록’을 론칭해 가맹사업까지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주)희스토리푸드 육경희 대표. 우연히 만난 ‘순대’가 그의 인생을 바꾸고 있다.
글 육주희 기자  사진 안재훈



순대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순대는 시장이나 분식집에서 먹던 간식거리에 불과했다. 그런 순대가 최근에는 국내 고급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순대 오마카세’로 선보이는가 하면 일본에서는 미쉐린 스타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과 유명 한식당에서 메뉴로 선보이며 주목받고 있다. 이처럼 순대의 위상을 새롭게 쓰고 있는 주역이 있으니 바로 육 대표다. 


순대에 ‘홀릭’ 연구·개발에 열정 쏟다

육 대표는 순대 전도사로 불린다. 2011년 대학로에 위치한 순대국밥 점포를 인수하면서 순대는 그의 운명이 되었고, 이제는 순대를 세계에 알리는 순대 전도사가 되었다. 2013년 대중적이지만 오랜 전통을 지닌 순대라는 음식의 서사를 담아 순대의 역사를 새로 쓰자는 다짐으로 순대실록 브랜드를 론칭하고 본격적으로 순대 연구에 나선 것. 
“처음 순대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는 ‘나는 어떤 순대를 만들어야 하지’하는 생각에 주말이면 전국의 유명한 순댓집을 찾아다녔다. 지방마다 순대의 종류도, 먹는 방식도 조금씩 달랐다. 이때부터 ‘우리 조상들은 언제부터 순대를 먹었고, 어떤 순대를 먹었을까’라는 호기심이 생겼다. 도서관에서 순대에 관한 고서를 찾아 읽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순대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우리 선조들이 만들었던 순대의 뿌리를 찾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찾아낸 것이 《시의전서》 속 ‘도야지 슌대’다.”
순대실록에서 선보이는 순대는 바로 이 조리법을 기본으로 현대인 입맛에 맞게 맛과 영양을 보강했다. 견과류 등 28가지 재료를 넣어 개발한 ‘순대 스테이크’는 순대를 철판에 구워 스테이크처럼 썰어 먹도록 해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일본에도 진출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최근에는 키토 순대를 개발해 특허출원과 특허등록을 마쳤다. 이밖에 대학 강의와 특강은 물론 국내 미쉐린 스타 셰프들이 그의 순대 연구소에서 순대를 배우는 등 순대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순대실록으로 세계 순대 투어 집대성하다

어렵게 찾고 공부한 것을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깝다는 생각에 육 대표는 책을 쓰기로 마음먹고 본격적으로 정리 작업에 나섰다. 
“처음에는 국내 순대 연구에서 시작하다가 점점 판이 커졌다. 순대의 근원을 찾기 위해 중국, 유럽의 고조리서를 찾아보면서 순대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나 먹었던 음식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 직접 가서 확인해 볼 수밖에. 당시 순대 여행을 하면서 놀랐던 것 중 하나가 음식으로서 순대의 위상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길거리 음식 내지는 떡볶이와 함께 먹는 분식 메뉴 중 하나로 인식하는 순대가 프랑스에서는 유행을 선도하는 비스트로 요리로 제공하는 것을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시작한 순대 탐구는 약 4년 6개월에 걸쳐 지구 여섯 바퀴 반을 돌며 세계 20여개 나라, 40여개 도시의 수많은 순대를 맛보고 연구해 《순대실록》으로 출간했다. 2017년 출간한 《순대실록》에는 국내의 오랜 순댓국집부터 스페인의 모르시야, 영국의 블랙푸딩, 프랑스 부댕, 스코틀랜드 해기스, 이탈리아 비롤도, 체코의 옐리토 등과 같은 세계의 순대를 맛보고 연구한 모든 내용이 살뜰하고 맛깔스럽게 펼쳐져 있다. 수년이 지난 지금은 K-푸드와 함께 우리나라 순대의 위상도 상당히 달라졌고, 그 선봉에는 순대 전도사 육 대표가 있다. 
육 대표는 2023년 1월 일본에 희메스토리 법인을 설립, 본격적으로 일본 시장 진출에 나서 성공적으로 연착륙시키고 있다. 일본 내 고급 한식당과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는가 하면, 지역 마쯔리에 초대돼 팝업스토어를 열어 선풍적인 반응을 얻었다. 조만간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의 일본 팝업 레스토랑 등 유명 레스토랑을 프로듀싱하는 일본의 미쉐린 레스토랑 ‘스가라보(SUGALABO)’의 스가 요스케(須賀洋介) 셰프의 레스토랑에서도 순대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을 듯하다. 
“순대실록의 일본 진출은 코로나19가 계기가 되었다. 전 세계가 발이 묶이면서 한국에 들어올 수 없었던 지인과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다가 ‘순대가 너무 먹고 싶다’는 말에 순대 스테이크를 한 박스 보냈다. 사실상 육가공 제품은 반입이 불가능해 폐기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용케 지인의 손에 들어갔다. 워낙 많은 양이라 주변 지인들과 나눠 먹었는데 현지의 반응이 너무 좋다며 또 보내달라고 했다. 다시 한 박스를 보냈지만 손에 닿지 못하고 폐기되고 말았다.”
이 일을 계기로 일본 수출을 계획했다. 그러나 육가공 수출 협약 체결이 안돼 결국 현지에서 만들기로 결정, 우여곡절 끝에 소시지 장인 오지마 상을 만나 현지 생산을 시작했다. 45년 동안 소시지를 만들어 온 오지마 상은 독일에서 소시지 만드는 경연대회에 나가 5번이나 상을 받았을 정도로 자부심은 물론 실력을 갖춘 장인이다. 약 20여 차례 방문해 기술 지도를 하고 매뉴얼화 해 순대 스테이크를 생산하고 있는데 퀄리티가 국내 생산 제품보다 높다는 평이다.
현재 일본 내 순대 스테이크는 오더 메이드 방식으로 하루 400개를 생산하고 있지만, 올해부터 일본의 온라인 유통 사이트 라쿠텐, 아이고를 비롯해 나무, 한일관 등 한식당, 다카키 푸드에서 운영하고 있는 50여 곳의 백화점 정육코너, 그리고 아사히 홈쇼핑 등에도 론칭할 계획으로 월 2만 개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다. 


순대는 나의 운명, 순대로 세계 정복 ‘꿈’ 

‘순대는 나의 운명’이라고 말하는 육 대표. 여러 브랜드와 매장, 생산공장, 유통업체, 해외사업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가장 주력하는 작업은 전통순대 복원프로젝트를 비롯해 현대인들의 입맛과 취향에 맞는 순대를 개발해 세계인의 입맛을 정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희스토리푸드의 부설 연구소인 순대연구소에서는 《주방문(1600년대 말》의 팽우육법(烹牛肉法), 《소문사설(1740년께)》의 어장증(魚腸蒸/대구 창자), 《증보산림경제(1766년)》와 《규합총서(1809》의 우장증방(牛腸蒸方), 《임원경제지(1800년대 초)》의 관장방(양 창자), 《농정회요(1830년》의 도저장과 양두자(돼지 위), 《시의전서》의 어교(민어 부레)순대 등 전통순대 복원을 지속하고 있다. 또한 MZ세대 취향을 저격하며 국내 최초로 선보여 공전의 히트를 친 순대 스테이크, 선지를 이용한 초콜릿 순대, 프랑스의 부당에서 영감을 얻어 푸딩처럼 탱글탱글한 식감의 순댕이, 비건과 다이어터들을 위한 키토 순대등을 개발했다. 
“순대는 전 세계인이 먹는 음식이다. 최근 K-푸드 열풍으로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지금이 순대를 세계에 널리 알릴 기회라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순대를 비롯한 한식을 잘 안착시킨다면 세계 어디에서도 승산이 있겠다는 마음으로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히 달려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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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기게 오래, 원하는 길로

서동한우 유인신 대표




한 분야의 1인자가 되는 것도,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국내 숙성육 분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서동한우 유인신 대표의 지나온 길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한 곳에 오래 집중시켜야만 겨우 얻어낼 수 있는 검붉은 꽃들, 서동한우의 이야기다.
글 김준성 기자  사진 안재훈



음식을 잠시 공기 중에 놓아만 둬도 숙성은 진행되기 때문에 1~2일의 운송 과정을 숙성에 포함시키는 걸 거짓말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개념을 제대로 따진다면, 운송 과정까지 숙성이라 하지 않는다. 숙성이란 위생과 온도, 습도, 바람, 그리고 보관에 따르는 모든 과정에 관리자의 세심한 컨트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장 많은 연구 개발, 고민을 했던 사람 꼽으라면 단연코 유 대표다. 숙성육 분야에서 그의 이름은 그만큼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숙성육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이었을까.


동물 키우기를 좋아한 소년, 축산업의 꿈을 꾸다

“어릴 때부터 동물 키우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중학교 때부터는 ‘축산학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서 돈 벌기 위해 다양한 일들을 했지만, 축산업 관련 일을 하며 살겠다는 꿈은 늘 변함이 없었다. 게다가 소나 돼지를 키워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동물 키우는 걸 좋아하는데 그걸로 돈까지 벌 수 있다니. 내게 그보다 더 좋은 직업은 없었다.”
하지만 단번에 원하는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그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되던 해에 집안 사정이 더 안 좋아지면서 무작정 돈을 벌어야 했다. 공사장 막노동, 커피숍 아르바이트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 와중에도 정식으로 취업은 하지 않았다. 그가 하고 싶은 일은 축산업이었으니까. 주변 친구들이 모두 취업을 해도 그의 마음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소 인공수정 관련 일을 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라도 천천히 축산업 일로 옮겨가고자 했다. 10대 후반에 시작했던 소 인공수정 관련된 일은 무려 14년의 세월이 흐를 때까지 계속해서 하게 된다. 그토록 원했던 축산업 일을 하기 위한 기다림, 그리고 생활의 고단함까지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당시 국내에서는 소 인공수정 사업도 초창기 시장이었기 때문에 큰돈을 벌 수 있던 건 아니었다. 그래서 돈 벌기 위해 이것저것 다양한 것들을 했다. 힘들게 모은 돈으로 1993년에는 396㎡짜리 땅을 사서 농장 사업도 시작했고 경제 사정이 조금씩 나아지는가 싶었는데, 농장끼리 서로 보증을 섰던 게 IMF 때 잘못되기 시작했다. 그 후 하루 40만원씩 11년의 빚을 갚아나갔다. 빚도 갚아야 했고 농장에서 키우던 소도 소비하기 위해 1997년에는 고깃집을 오픈하기도 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다.”
198㎡ 규모로 오픈한 고깃집은 200~300만원의 일매출을 올릴 정도로 기대 이상의 반응이었다. 그렇게 상황이 나아지면서 고기에 대한 고민과 연구의 시간 또한 점차 늘어나게 된다.


아무도 가지 않은 곳에 묵묵히 만든 길 

“숙성육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하지만 당시엔 숙성육에 대해 물어볼 곳이 없었기에 혼자서 모든 걸 겪어보고 정리해나갔다. 진공포장기가 있던 때도 아니어서 고기 관리가 더 어려웠다. 그러던 중 정육점을 운영하던 한 지인이 100kg 분량의 지육을 내게 맡겨놓고는 오랜 기간 아무 연락이 없었다. 고기의 색은 변하고 있는데 찾아가지를 않으니 때마침 색이 변하고 있는 고기 부위의 맛과 향을 천천히 음미해 볼 수가 있었다. 이렇게 테스트하며 느낀 것들을 블로그에 꾸준히 올렸는데, 그 내용이 점차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며 서동한우의 50~60일 숙성 고기를 찾는 사람들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서동한우 숙성육의 맛이 근간을 잡은 건 2012년부터. 당시 일본 현지의 소 사육농장, 숙성육 전문식당 관계자들도 서동한우를 방문해 시식해 볼 정도로 숙성육 기술과 노하우는 일정 수준 이상에 이르러 있었다.
“‘숙성육은 마케팅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건 숙성육이라고 내놓은 고기가 숙성하지 않은 고기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숙성육을 먹어봤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또한 숙성육은 단순히 온도와 습도 관리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원료육을 가져오는 것에서부터 보관 과정에 이르기까지 디테일한 관리가 필요하다. 발효균을 위한 숙성고 안의 환경, 판매되는 고기의 양도 고려해야만 한다. 즉, 숙성이란 하나의 여정인 셈이다. 정답은 없다. 결과물 편차의 간극을 줄여 표준화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숙성의 최대치다.”
숙성육 테스트로 연 1억5000만원어치의 고기를 버릴 때도 있었고 월 전기요금만 500만원이 나올 때도 많다. 그럴 때 ‘내가 왜 이런 길을 가고 있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고. 하지만 아무도 가지 않은 곳을 혼자 묵묵히 걸어 길을 냈기에 ‘서동한우=숙성육’이라는 독보적 브랜딩, 그리고 포지셔닝을 점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 브랜드의 힘을 근간으로 이제는 좀 더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해나갈 계획까지 가지고 있다. 현재 서동한우는 부여 본점과 규암 직영점, 859㎡ 규모의 공장을 운영 중이며 연매출 90억원 내외다.


관심과 애정이 숙성육으로 변하는 순간

인터뷰 중 숙성 과정에 관한 얘길 들으면서 양자역학 이야기가 무심코 떠올랐다.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면 사물의 입자도 형태와 성질이 변한다는, 그런 흥미로운 이야기. 게다가 그가 지나온 과정들도 우연과 필연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축산업, 그리고 맛있는 고기를 선보이기 위한 길만을 바라보며 걸어왔다. 그토록 간절히 원하고 기다리는 것이 있었기에 그때마다 누군가 나타나 도움을 준 게 아닐까. 양자역학의 얘기도 마찬가지다. 온도와 습도 같은 수치 외에도 고기에 대한 관심과 애정 때문에 숙성육으로 변하는 순간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에너지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존재한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에너지가 물질을 만들어낸다. 서동한우의 숙성육도 그렇게 차별화되어왔다고 생각한다.”
서동한우는 이제 또 다른 변화를 계획하고 있다. 국내 숙성육 시장을 선도했던 포지셔닝은 한층 더 깊고 다양하게, 두 번째 브랜드는 좀 더 캐주얼하게. 2세 경영인으로서 현장에 함께하고 있는 유예담 대표는 말한다.
“서동한우는 숙성 기간별로 더 디테일하고 다양하게 상품화할 예정이고, 그 외의 서브 브랜드를 통해서는 가성비 부위로 부담 없는 가격의 상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또한 장기적으로 좋은 브랜드육을 만들려면 농장과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한데, 이러한 부분들도 하나하나 탄탄하게 만들어 나갈 것이다. 지금까지 숙성이라는 키워드에 갇혀 새로운 변화를 주지 못했는데, 앞으로는 서동한우의 노하우를 근간으로 한 여러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는 검붉은색’일 거라 믿게끔 만드는 유 대표의 묵직한 시선과 애정, 세상에 이보다 더 끈질기고 강한 게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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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 실행을 위한 것

집반찬연구소 박종철 대표




부드러운 웃음 뒤엔 잔잔한 물결의 강함이 있다. 외식업 2세 경영인으로서, 오프라인 상품의 퀄리티를 기반으로 온라인 비즈니스로의 확장을 전개해나가고 있는 젊은 CEO. 2016년, 온라인·IT기술과 외식업을 연결하며 반발자국 앞서 시작된 비즈니스는 이제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고 있다.
글 김준성 기자  사진 이경섭



그는 잘 웃는다.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다. 대화 도중 차분하게 움직이는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그 느낌이 더 강하게 전해져 온다. 4~5년 후 당연하게 밀어닥칠 몇 가지 시장 트렌드를 예측, 선택하고 그에 걸맞은 사업을 미리 준비하며 기다려왔던 그의 지난 커리어들을 곱씹어보면 그 차분함은 예리함의 또 다른 이름으로 설명하고 싶어진다.


온라인·IT기술, 외식업과의 연결고리

그가 처음 외식사업을 시작한 건 2007년이다. 아버지가 해오던 외식사업에 합류하며 강원도 음식 코스요리의 토속한정식전문점 ‘산너머남촌’ 15개 매장, 그리고 곤드레밥 전문점 ‘영월애곤드레’ 3개 직영점을 직접 운영했다. 한때는 전국 100개 지점 오픈을 목표로 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게 늘 그렇듯, 계산대로 계획대로 흘러가는 건 없었다.
“저가의 한식뷔페 브랜드들이 여기저기 생겨나면서 경쟁도 치열해졌고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까지 유행하면서 큰 타격을 받았다. 매달 5000만원씩 적자가 이어지는 상황. 그야말로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혼란스러울 때 온라인 식품몰 ‘더 반찬’에 대한 얘기를 전해 들었다. 당시엔 온라인으로 반찬이나 식품을 판매하는 사례가 거의 없었기에 더 반찬의 사업 초기 연매출은 더더욱 놀라웠다. 그때부터 온라인 비즈니스를 구상하게 됐다.” 
그러나 모두가 반대했다. “지금 잘하는 식당 운영에나 집중해라”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당시엔 온라인과 IT기술이 외식업과 연결될 것이라 생각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으니 대화를 나눌 사람조차 없었다. 그럴수록 그는 더더욱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온라인 비즈니스, 오랜 시간의 누적과 투자 이어져야

당시 온라인 마케팅이라는 이름이 붙은 모든 수업을 수강하고 HTML도 직접 공부하며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모든 걸 직접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관련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준비해야 시간과 에너지를 몇 배 더 아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전문가를 채용, 온라인 비즈니스의 속도를 점점 더 가속화해나갔다. 그렇게 2016년 12월, 집반찬연구소의 온라인 마켓이 오픈하게 된다. 
“오픈한 후에도 쉬운 건 아니었다. 매달 6000만원가량의 적자가 이어졌으니까. 하지만 온라인 비즈니스는 오랜 시간의 누적과 투자가 이어져야만 한다. 단순히 ‘식당에서 음식 잘 팔리니 온라인에서도 잘 팔리겠지’의 시선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10년 만에 흑자 전환한 쿠팡, 오아시스 등 온라인 마켓 대부분이 IT전문가들의 시선과 전략 때문이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기존의 외식업 운영 마인드로는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IT분야의 시선으로 봐야만 한다.”
사업 시작 7년 만인 지난해 11월, 집반찬연구소는 인천 서구 가좌동에 3140㎡ 규모의 4층 건물 ‘메가 팩토리’를 세워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해내고 있다. 1층에서는 물류와 택배, 2층과 3층에서는 식자재 생산, 그리고 4층은 사무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생산하는 반찬 제품만 250종, 하루 1만개의 제품들이 전국 소비자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2023년 연매출은 110억원 내외, 생산량은 향후 3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앞으로는 제조 전문회사, 유통 전문회사 등으로 카테고리가 명확히 나눠질 것으로 예상한다. 때문에 제조 또는 유통, 둘 중 하나라도 특화한 무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최근엔 캐나다에 다녀오면서 해외 시장에서의 K-푸드 경쟁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는데, 집반찬연구소 또한 장기적으로는 해외 진출을 고민하고 있다.”
미리미리 준비하고 있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2023년 여름엔 ‘바디리폼연구소’를 설립해 혈당과 탄수화물 제어는 물론 영양까지 챙길 수 있는 ‘리포머 밀’을 생산·출시, 건강 식단 프로그램으로 선보이고 있으며 올해엔 1인 가구 타깃의 반찬 제품, 정기구독 환자식 상품도 출시할 예정이다.      


곰처럼 한 우물 깊이 파 내려가는 스타일 

“주변에서는 내 모습을 곰 같다고 한다. 다른 곳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한 우물 깊이 파 내려가는 스타일이라고 할까. 7년 전에 세웠던 계획들도 하나하나씩 이뤄가고 있다. 나의 계획이라는 건 잠시 미뤄질 수 있어도 하지 않는 건 없다. 단, 계획을 짜기 전에 깊은 고민을 한다. ‘거시적인 흐름 안에서 어떤 방향이 맞는가, 그 흐름은 반드시 오게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의 난 무얼 준비해야 하고 잘 할 수 있는가’와 같은 고민 후에 즉시 실행에 옮기려고 한다. 무엇보다 경영인으로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두 가지는 쓰러지지 않는 힘, 그리고 회복력이다. 죽을 것 같던 스트레스와 어려움도 내성이 생기게 되면 한결 버티기 쉬워진다.”
늘 새로운 분야를 고민하며, 천천히 하나하나씩 만들어 나가고 있는 과정에 피로함은 없을까. 현재의 성공에 충분히 안주할 만도 한데. 그의 답변이 이어진다.  
“나이를 먹을수록 연륜이나 노하우는 늘어나지만 아이디어나 센스, 현상 속의 트렌드 읽는 능력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미 성공한 이들을 곁에서 지켜봐도 그렇게 무딘 부분들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사람이 반짝거릴 수 있는 나이가 40~45세까지라고 본다. 이때가 지나면 반짝거리는 아이디어와 콘텐츠 센스가 서서히 사라진다. 또한 새로운 변화와 시도는 늘 주변인들의 반대에 부딪히기 마련이고, 그걸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들을 끄집어 내게 만든다. 기존의 일하는 방식, 형태가 익숙하기에 새로운 콘텐츠의 형태가 뭔가 어색하고 그게 아닌 것만 같다. 그래서 다시 과거의 익숙한 기준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건 단지 익숙하지 않아서다. 눈에 익숙해지는 순간, 새로운 게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아이폰의 무선 이어폰도 처음엔 콩나물처럼 생겼다고 욕먹지 않았나. 형태와 방식에만 묶여있으면 어떤 변화도 쉽지 않다.”
그는 평소 직원들에게 “집반찬연구소는 식품을 기반으로 한 IT회사”라고 말한다. 쿠팡이나 SSG 또한 물류유통회사인지 IT플랫폼회사인지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만큼 여러 경계를 오가며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기업이어야만 과거의 화려한 영광에 묶이지 않고, 앞으로의 지속가능성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집반찬연구소는 지금 그 길을 묵묵히, 각 지점의 퀘스트를 해결해나가듯 가고 있다. 박종철 대표, 그의 거시적인 시선과 준비·실행이 그 여정을 한층 더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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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에 진심을 담았다

현우동 박상현 대표




신선한 새우와 채소튀김이 한껏 뽐을 내 치장한 것이 조연이라면, 그 속으로 특유의 굵직한 우동 면발과 쯔유와의 조화는 주연이다. ‘덴푸라 붓카케 우동’ 얘기다. 또 걸쭉한 국물에 명란을 넣고 달걀을 풀어놓은 특별한 우동의 별미를 느낄 수 있는 ‘멘타이코앙카케 타마고토지 우동’은 그의 단짝이다. 이렇듯 현우동의 ‘우동별곡’은 시작된다.
글 임나경 편집장  사진 이경섭



서울 강남구 논현로149길 53번지, 오전 11시 30분. 목조 건물의 창살을 연상시키듯, 우드루버 스타일 일식당 문이 스르륵 열리고, 위생모를 쓴 조리사가 첫 고객을 맞기 시작한다. 점포 문 앞으로 길게 줄을 선 고객들은 기다렸다는 듯 점포 안으로 하나둘 들어가 자리에 앉고 음식을 주문한다. 이곳은 ‘합리적인 가격에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에 영광을 가져다주는 미쉐린 가이드 빕구르망을 4년 연속 수상해 우동 마니아들로부터 성지로 떠오른 곳이다. 바로 고객들에게 특별한 맛과 경험을 제공하는 현우동이다. 일본인들도 이곳에 와서 맛을 보고는 감탄하곤 한다. 특히 해외에서 미쉐린 가이드로 선정된 점포 방문을 목적으로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많다. 고객을 향한 정성과 자신만의 노하우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자가제면 우동 맛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곳이다.


현우동의 특별한 우동 여정

현우동이 특별한 것은 우동 마니아인 그가 일본에서 배운 기술과 경험, 전통적인 제조 기술을 고집하며 이곳에서만이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우동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곳엔 17가지의 메뉴가 있다. 5가지의 덮밥을 빼고는 직접 자가제면한 10여 가지의 우동을 선보인다. 박 대표는 아직도 고객들에게 선보이고 싶은 우동이 많다. 미처 소개하지 못한 우동은 계절 메뉴로 선을 보인다던가, 앞으로도 고객들에게 꾸준히 새로운 우동의 신세계를 맛보이고 싶다. 급하지 않게 하나하나 면발 풀듯 풀어낼 것이다. 현우동에서는 덴푸라 붓카케 우동과 멘타이코앙카케 타마고토지 우동이 많은 고객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데, 이는 박 대표만의 독자적인 맛과 특별한 조합이 고객 입맛을 매료시키기 때문이다. 
박 대표에 따르면 우동의 맛을 결정 짓는 요소들이 몇 가지 있다. 자가제면으로 만든 1.8mm 이상의 두께, 15분 정도 삶아내 적정 시간에 건져내면 온몸에 자르르 흐르는 광택, 물의 온도와 소금 등 여러 요소로 인해 압력을 받아 살짝 홈이 패이고, 잔뜩 긴장한 듯 각이 살아 있는 면발. 입술을 한껏 모으고 힘을 주어 후루룩 들어오는 면발, 이를 타고 함께 입안으로 퍼지는 육수와의 조합. 입속에서 한창 쫄깃함의 향연이 치러지고 나면, 매끄럽게 목 넘김이 시작되고, 자신의 존재감을 마지막으로 아우성치듯 목을 살짝 긁어주듯 각인시키고 사라진다. 현우동의 우동 맛을 이렇게 즐기다 보면, 앞에 앉은 사람보단 우동에만 집중하게 된다. 때문에 이곳을 찾는 고객들은 자칫 현우동 주인을 닮아 과묵하단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그게 바로 자가제면 현우동에 대한 예의거나 음식 맛에 집중하게 하는 마력이다. 
박 대표는 자가제면을 통해 면발의 퀄리티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며, 매일 아침 출근해 면 반죽과 숙성을 직접 해오고 있다. 우동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일정함을 유지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만의 정교한 작업을 거쳐야만 일률적인 우동 맛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박 대표는 또 자가제면이라고 해서 모두가 제대로 된 우동 맛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우동전문점을 하는 이들이 많이 묻곤 한다. 꼭 자가제면을 해야 하느냐고. 자가제면이 대단한 게 아니라,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우동을 균일한 품질과 맛으로 뽑을 수 없다면 차라리 공장 면을 쓰거나 냉동면으로 우동을 만들라고 한다. 우동의 품질과 맛이 일률적이지 않다면 자가제면을 하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우동집이 생기면 3번 이상은 가본다. 매일 같은 맛이 나올 수는 없지만, 그 점포만의 기준점은 갖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면은 뽑는 것도 쉽지 않지만, 삶는 것이 더 어렵다. 면을 보통 15분 삶는데, 정확한 타이밍에 건지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다 보니 우동을 365일 만들어도 계절과 날씨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해 미묘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현우동의 존재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동의 신세계를 맛보다 

박 대표가 이토록 면에 진심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어릴 때부터 면을 유난히 좋아했다. 특별히 면 요리가 맛있어서라기보단, 씹는 것을 워낙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릴 땐 고기가 가장 싫어하는 음식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음식 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그는 자연스레 우동 마니아가 됐다. 군대 제대 후, 일식집을 중심으로 일해오며, 선배들로부터 요리를 배우며 일식에 대한 매력에 점점 빠져든다. 하지만 대학에서 조리를 전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서러움을 많이 받았다. 박 대표는 배우는 데 한계에 부딪혔고, 정통 일식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떠난다. 츠지조리사전문학교에서 일본요리를 배우기 시작, 낮에는 학교를 다니고 밤에는 일식당에서 일하며 갖은 수모를 견뎌가며 요리를 배웠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그는 목표와 꿈이 있었기에 개의치 않았다.  
그는 “다행히 훌륭한 스승을 만나 우동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때로는 혹독하고 서럽기도 했지만, 제대로 된 우동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일하면서도 일본의 각지를 다니며, 면 요리 잘한다는 집은 두루 섭렵했다. 지역마다 우동 맛이 다르고, 도시와 음식점마다 자기만의 특별한 우동 맛이 있는 것에 매료됐다. 그야말로 신세계를 만난 기분이었다”고. 또 그는 우동의 본고장 일본에서 우동 맛은 ‘맛이 있다, 없다’를 떠나 자신의 취향에 맞는 가게를 선호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면의 식감과 스타일을 찾아냈다. 박 대표는 오사카의 부드러운 우동 식감을 좋아했고, 그만의 우동 스타일을 찾아 현우동에서 이를 재현했다. 처음엔 고객들도 익숙지 않은 면 식감에 의아심을 갖기도 했지만, 그러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한 가지에 몰두하면 끝장을 볼 때까지 파고드는 그의 성격은 우동에 진심이었다. 그 진심을 고객들이 서서히 알아주기 시작했다. 그가 우동의 매력에 빠졌던 것만큼 고객들에게도 서서히 전이되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우동에 몰두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맛과 특색을 찾아 나간 박 대표. 일식에 발을 들인지 벌써 20년을 넘어선다. 그간의 우동을 향한 여정은 그의 열정과 노력에 의해 현우동에서 완성되고 있다. 서울 홍대와 경주, 부산 등지에서 제2의 현우동이 속속 탄생하고 있다. 그로부터 배운 후배들이 현우동의 음식 맛을 고스란히 복제하고 있는 것. 그는 후배들에게도 아낌없이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준다. 더 많은 고객이 훌륭한 우동 맛을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또 직원들과 함께 최고급 식당을 순회하기도 한다. 요리하는 사람이 최고의 음식을 맛봐야 일류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매일 아침 자가제면을 하고, 첫 고객을 직접 맞는 일은 어쩌면 그에게 우동에 대한 마음을 다잡는 일이기도 하다. 박 대표에게 우동은 스승이자, 친구이자, 고객이며, ‘인생’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고객은 그의 맛있는 현우동을 마음껏 즐길 수 있어서 좋다.


*더 많은 정보는 <월간식당> 2024년 1월호를 참고하세요. 

 
2023-12-27 오전 11:43:34 (c) 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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