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숙성’ 키워드를 내세워 고기전문점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트렌드가 대세였다. 하지만 이제 숙성만으론 차별성을 강조하기란 쉽지 않다. 많은 고기전문점에서 숙성이란 단어를 남발하다 보니, 흔한 단어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고객은 이제 필터링 되지 않은 숙성이란 단어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적토발효구이’는 ‘발효’를 키워드로 선택해 기존 트렌드를 살짝 비튼 영특함이 돋보인다. 발효라는 키워드로 전통적인 의미를 담은 것은 물론, 옹기에 젓과 직접 만든 특제소스 그리고 삼겹살을 절여 발효한 젓삼겹(양념육)을 시그니처 메뉴로 선보인 점이 신선하다. 생고기를 대표메뉴로 선택하면 원육, 숯불, 두께 등에서 차별점을 줄 수 있지만, 이는 누구나 따라할 수 있다는 리스크가 있다. 적토발효구이는 생고기만으로는 차별화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간파해 양념으로 이곳만의 시그니처 메뉴를 개발한 것. 또 발효하면 떠오르는 막걸리, 전통주를 메인 주류로 준비해 적토발효구이의 정체성을 강화했으며, 식기와 불판 역시 발효에 알맞은 옹기로 제작해 일관성있는 브랜딩 전략을 구축했다.

적토발효구이는 입만 즐거운 공간은 지양한다. 옹기들이 놓여있는 숙성고, 별도로 분리한 초벌 공간, 층마다 다른 적토발효구이의 스토리, 매달 새로운 브랜드와 진행하는 협업 등을 통한 종합예술 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 일대는 트렌디한 식당, 카페, 주점 등이 집중된 상권으로 급성장했다. 이에 따라 임대료 변화가 일어났으며, 자연스럽게 권리금도 크게 상승하게 됐다. 높은 임대료와 권리금에도 많은 창업자가 용산에 점포를 오픈하려고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주말과 평일에 구애받지 않고 상권을 찾는 소비자 때문이다. 적토발효구이 김성빈 대표는 “용산은 트렌디한 F&B 브랜드들이 모이는 중심상권으로 변모하고 있다. 다양한 기업들이 위치해 있어 저녁에도 사람이 북적거리는 상권”이라며 “유동인구가 많은 경기 판교, 서울 여의도·마곡에 점포를 오픈하는 것과 서울 전역에서 찾아오는 서울 용산·성수 상권에 개업하는 것은 전달하는 메시지가 다르다. 적토발효구이는 서울은 물론 전국에서 찾아와 방문하는 브랜드로 거듭나고자 한다”고 용산에 점포를 오픈한 이유를 설명했다. 

식당의 본질은 맛. 적토발효구이는 맛을 강화하기 위해 한돈, 듀록, 버크셔 등 다양한 품종의 원육을 테스트했다. 양념육이 시그니처 메뉴였기에 육질의 품질은 높지만 고기 고유의 육향은 약해야 했다. 이는 젓삼겹 양념의 향을 배가시키기 위해서다. 또한 고기의 두께에 대해서도 매우 세심한 연구 과정을 거쳤다. 생고기는 두껍게 썰었을 때 육즙과 식감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양념육은 고기에 양념이 잘 스며들어야 하는 것이 포인트다. 적토발효구이는 8mm, 9mm, 1cm, 1.5cm 등 양념이 스며드는 최적의 두께를 테스트했다. 이러한 과정 끝에 적토발효구이가 선택한 두께는 9mm. 이보다 더 얇으면 대패 삼겹살이 됐고, 더 두꺼우면 양념과 고기가 조화롭지 못했다. 젓과 특제소스에 24시간 동안 절이고 옹기에서 6~8시간을 숙성한 젓삼겹은 젓, 육질, 양념의 삼박자가 어우러져 기존 삼겹살에선 느낄 수 없던 새콤한 맛과 콤콤한 풍미가 특징이다. 여기에 겨자씨, 깻잎마늘절임, 청어알젓, 참나물 무침 등의 곁들임 찬을 제공해 부족함 없는 구성은 물론 젓삼겹의 맛을 배가했다.

고기전문점에서 1~2인분의 사이인 용량으로 구성한 고기 메뉴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는 객단가를 높이는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적토발효구이도 젓삼겹 260g을 2만8000원에 판매하는 영리한 메뉴 전략을 짰다. 고기전문점마다 삼겹살 1인분은 150~180g으로 1만 6000원~2만원까지 구성돼 있다. 반면에 젓삼겹 260g은 일반적인 1인분 분량이 아니기에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체감은 둔해진다. 특히 2인이 방문할 때 젓삼겹을 주문하면 1인당 130g을 나눠 먹는데, 성인 평균 130g의 고기를 먹고 포만감을 느끼는 이는 적다. 그렇기에 추가로 고기를 주문해야 하는 메뉴 구성이다. 젓삼겹 2개를 주문할 때도 520g, 1근에 미치지 않는다. 여기에 후식으로 탁월한 된장찌개, 메밀면 등의 사이드 메뉴를 추가해 객단가 높이는 효과를 얻었다. 메뉴 네이밍을 달리해 차별화한 점도 눈에 띄는 장점이다. 수많은 고기전문점 사이에서 고객의 눈에 띄기 위해서는 커팅, 숙성, 양념, 네이밍 등이 달라야 한다. 적토발효구이는 이 4가지의 포인트를 모두 충족한다. 9mm의 고기 두께, 발효 키워드, 직접 만든 특제양념, 젓을 활용한 네이밍 등으로 차별화했다. 특히 네이밍은 발효를 핵심 전략으로 다루는 브랜드의 정체성과 일관되게 연결된다. 더불어 점포에 방문하는 고객에게 웰컴드링크 서비스를 제공해서 주류 주문으로 이끄는 것은 물론, 초벌 시스템을 구축해 테이블마다 직원이 직접 구워주는 번거로움을 줄였고, 굽기에 따라 달라지는 고기 맛을 균일하게 했다는 점 등에서 영리함을 살펴볼 수 있다.

적토발효구이는 상징성을 부각한 ‘장주화락(醬酒火樂)’으로 공간 활용에서도 포인트를 줬다. 입구에 위치한 숙성고는 장을 담그는 ‘장’, 지하 1층은 술을 마시는 ‘주’, 1층은 불을 다루는 ‘화’, 2층은 장과 술과 고기를 즐긴다는 ‘락’으로 공간을 분리해 각각의 콘셉트를 달리했다.

글 김종훈 기자  사진 이경섭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