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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순도 전통장 명인  <통권 469호>
취재부 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24-03-29 오전 04:07:02

K-푸드의 근간은 발효 370년 종가의 장맛을 잇다

기순도 전통장 명인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찾아든 지난 3월 초, 전남 담양군 창평면에 위치한 기순도 명인을 찾아갔다. 기순도 명인은 장흥고씨 양진재 종가의 내림 씨간장과 장맛을 이어받아 미국 뉴욕과 프랑스 파리, 인도 등 세계 20여 개 나라에 진출해 K-소스로 전통장을 알리고 있다. K-푸드의 인기와 함께 ‘발효’의 가치에 주목한 세계적인 셰프들을 사로잡은 기순도 명인을 찾아갔다.
글 육주희 기자  사진 이현석


세계적인 셰프들이 주목한 종가의 전통장 ‘씨간장’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다가 거의 막다른 길에 다다를 즈음, 대나무와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한 가운데 1200여 개의 장 항아리가 펼쳐진 풍경이 나타났다. 370년 종가의 장맛을 이어 온 기순도 명인의 장고(醬庫)다. 이곳은 매년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유명 셰프뿐만 아니라 국내의 스타 셰프, 식품·외식업체 대표, 연구원 등 수많은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세계적으로 K-푸드가 주목을 받으면서 한식의 근간이 되는 발효와 전통장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을 해결할 요량이다. 
기순도 명인은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지정하는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35호 진장 명인이다. 그러나 진짜로 애지중지하는 간장은 창평 고씨 양진재(養眞齋) 문중 10대 종부로써 종가 장독대를 맡아 관리해 오면서 지금까지 유지해 온 370년 된 ‘씨간장’이다. 
간장은 발효 기간에 따라 불리는 호칭이 따로 있다. 새로 담근 간장은 햇간장, 숙성시간에 따라 1~2년은 청장, 3~4년은 중간장, 5년을 넘기면 진장이라고 부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간장 속 발효에 영향을 미치는 세균·곰팡이·효모의 수가 증가하면서 감칠맛을 내는 유리아미노산의 함량이 높아진다. 명인의 씨간장은 진장 가운데 가장 풍미가 좋은 것을 ‘덧장’해 370년을 이어왔다. 씨간장은 진득한 흑색을 띠고, 짠맛에 더해 기분 좋은 단맛과 부드러운 풍미를 자랑한다.


세계 어디에도 유례없는 덧장 문화의 결정체 ‘씨간장’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참혹한 시기를 거쳐오면서 집집마다 담가 놓은 장 항아리가 깨지고, 지방의 권세가는 이념 갈등으로 풍비박산 나면서 제대로 남아 난 장 항아리가 없다시피 했다. 그러나 양진재 종가에서는 약 370년간 씨간장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그 비결을 물으니 기순도 명인은 “양진재 종가는 베푸는 것을 일상으로 여기며 더불어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전쟁과 이념의 회오리를 피해 갈 수 있었고, 그 덕택에 씨간장이 지금까지 유지돼 오고 있다”고 말한다. 씨간장과 덧장 문화는 유사한 장문화를 가진 중국과 일본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장문화로 주목받고 있다. 
기순도 명인의 씨간장은 2017년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입맛도 사로잡았다. 당시 청와대 만찬에 한우 갈비구이가 메인 음식으로 올라왔는데, 세계 각국 언론사들이 집중 조명한 것은 갈비구이 소스에 들어간 양진재 종가의 360년 된 씨간장이었다. 당시 외신들은 미국의 역사보다 오래된 간장이라며 열띤 보도를 이어갔고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후 이곳 씨간장을 맛보고 간장 담그는 법을 배우기 위한 국내외 유명 셰프들의 발길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기순도 명인의 장고에는 명인에게 장 담그는 법을 배운 후 장을 담가 놓은 국내외 유명 셰프들의 간장 항아리가 발효의 시간을 더해가며 익어가고 있다. 
한국의 전통장을 배워 간 유명 셰프들은 세계 곳곳에서 자신의 레스토랑 음식에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8위에 오른 미국 뉴욕의 한식당 ‘아토믹스’ 역시 이곳 전통장으로 맛을 내고 있다. 간장뿐만 아니다. 미국 워싱턴 소재 미쉐린 원스타 레스토랑 ‘레버리(reverie)’의 조니 스페로 셰프는 기순도 딸기고추장을 활용, 백악관 만찬 때 선보이면서 유명해졌다.




BTS 공연장, 파리 센강, 각종 박람회 등 전통장 홍보
기순도 전통장은 일찍이 뉴욕, 파리 등 글로벌 시장 진출을 꾀해 CNN 등 해외 매체에 소개되며 전 세계 많은 셰프들의 요리에 발효의 깊이를 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해외 진출 성과 이면에는 기순도 명인의 아들인 고려전통식품 고훈국 대표와 진장 기능 전수자인 딸 고민견 씨의 노력도 함께 했다. 어머니를 대신해 해외 식품 박람회에 나가 홍보하고, 수출 판로를 개척하는 등 명인의 전통장을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발을 벗고 나섰다.  
고 대표가 기순도 명인의 전통장을 본격적으로 세계에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18년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 열린 BTS 공연이었다. 한국의 장을 알리기 위해 정부의 지원으로 행사장 VIP실을 대관해 프랑스 유명 식품계 인사와 셰프를 초청, 기순도 전통장과 김치 등의 식자재를 이용한 음식을 선보이는 행사를 진행해 현지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었다. 이 밖에 파리 센강의 바토뮤슈 선상 홍보, SIAL 등 각종 박람회에 참가하며 전통장 홍보에 공을 들인 결과 2019년 세계적으로 유명한 봉마르쉐 백화점 입점에 성공했다. 이후 갤러리 라파예트, 베아슈베 백화점 등 현지 대형 유통 채널을 통해 세계 곳곳에 입점하고 있다. 


유명 스타 셰프들 직접 장 담가 자신의 장 항아리 소유
전통장은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할 수 없고, 전 세계 유명 셰프들이 수시로 직접 체험하러 오는 일이 잦아져 기순도 명인의 일 년은 숨 가쁘게 흘러간다. 별도의 홍보를 하지 않아도 해외 유명 셰프가 먼저 기순도 장고를 찾고, 장을 담그며 전통장의 쓰임새에 대해 소통하고 있다. 이들은 콩, 죽염, 물 세 가지의 단순한 재료로 이렇게 복합적인 맛을 내는 발효의 힘과 효능에 놀라움을 표한다. 대부분 인플루언서기도 한 셰프들은 본인의 소셜미디어(SNS)에 기순도 장고와 장 담그기 체험, 자신의 장 항아리를 올리는데, 이것을 본 다른 셰프들도 호기심과 새로운 메뉴 개발에 대한 기대감으로 앞다퉈 이곳을 찾고 있다. 특히 기순도 명인의 종가 밥상을 받아본 외국의 셰프들은 장과 소금만으로도 깨끗하고 깊은 맛을 내는 한식에 감탄한다. 이곳에 장을 담가 놓고 간 각국의 셰프는 숙성된 자신의 장을 받아서 그 장으로 음식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레시피는 고민견 기능 전수자가 다시 받아 정리하고 있다. 결국 이들이 전 세계에서 우리 장을 어떻게 활용하고 소개할지를 알려주는 한식의 첨병 역할을 해주고 있다. 
기순도 명인은 “대대로 집안에 내려오는 방식 그대로 장 담그는 일을 꾸준히 해왔을 뿐인데, 전 세계의 유명 셰프들이 일부러 시골까지 찾아와 장을 담그는 법을 알려달라고 하고, 간장과 죽염으로만 간한 우리 집 음식을 먹어보고는 입을 모아 맛있다고 한다”며 “K-푸드가 각광받고 있는 지금, 진정한 한식 세계화를 위해서는 일본의 달달한 기꼬만 간장이 아닌 우리 전통장과 장문화가 함께 전파돼 그들의 일상식에 녹아들도록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체계적인 장 교육 위해 ‘기순도 발효학교’ 개설 
기순도 명인은 지난해 10월 기순도 발효학교를 개설했다. 담양군 창평면 종가 고택과 기순도 장고지를 개방해 8주간 전통장에 대한 이론과 전통 방식으로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 등 장 담그는 법 전반을 배우는 깊이 있는 과정이다. 특히 한식의 뿌리를 지켜나가기 위해 다양한 발효 장을 활용한 종가의 음식과 발효밥상 체험은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프로그램으로 수강생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식품영양학계 원로인 이화여대 이종미 명예교수와 음식문화 콘텐츠 전문회사 (주)다이어리알의 도움을 받아 1년을 밤낮없이 고민해 가며 준비했다. 프로그램은 1기 수료생들의 장을 활용한 졸업작품 발표까지 모두 마치고 3월부터 2기 발효학교를 시작했다. 
장고를 향해 고사를 지내며 개강을 알린 첫날은 양진재 종가의 밥상 체험을 했다. 간장과 죽염으로만 맛을 낸 음식은 나물, 찌개, 전, 갈비찜, 게장까지 모든 음식이 깔끔하면서도 맛이 깊었다. 특히 양진재 종가의 김치는 젓갈을 일절 넣지 않고 간장으로 간을 맞춰 담그는데 시원하면서도 깊은 맛이 모두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기순도 명인은 “한식에 장을 빼고는 한식이라 할 수 없다”고 몇 번이고 강조하며 “K-푸드가 인기를 얻으면서 오랜 숙성의 시간을 거치고 자연 발효를 대표하는 간장이 주목을 받고 있는 만큼 전통장 식품명인이라는 타이틀의 무게에 맞게 큰 사명감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봄기운이 조금씩 찾아드는 3월, 따스한 햇살과 살랑이는 바람이 놀러 온 종가 마당에는 1200여 개의 장 항아리 속에서 익어가는 장의 꿈틀거림이 울려 퍼지는 듯하다.


 
2024-03-29 오전 04:07:02 (c) 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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