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귀임 기자  사진 이경섭 실장

에니아이는 주방 자동화를 실현하기 위해 인공지능(AI)과 로봇을 활용, 국내 푸드테크업계를 이끄는 기업이다. 카이스트 출신의 황 대표가 지난 2020년 공동 창업자 4명과 설립한 후 햄버거 패티를 굽는 AI 조리로봇 ‘알파 그릴’ 등을 개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알파 그릴은 사전에 입력된 온도, 시간, 두께에 맞춰 패티 양면을 동시에 굽는 방식이 특징이다. 패티의 한 면을 익힌 후 뒷면을 굽는 전통적인 조리 방식과 차별화를 꾀해 시간을 단축시킬 뿐만 아니라 업무 강도도 낮출 수 있다. 특히 조리가 완료되면 알파 그릴 스스로 음식을 들어 올려 다음 조리를 위해 청소까지 진행한다.  

“알파 그릴을 사용하면 사람보다 조리 시간이 절반으로 줄고, 생산 속도 역시 빨라진다. 식당에서 가장 바쁜 시간대의 주문량도 수월하게 소화할 수 있도록 설계해 효율적이다.”

알파 그릴은 사용법도 어렵지 않다. 햄버거용 패티를 그릴에 올리고 스위치만 누르면 된다. 2개의 그릴에 4장의 패티를 각각 올릴 수 있어 한번 작동할 때마다 총 8장을 조리하는 것이 가능하다. 황 대표는 “알파 그릴은 시간당 200개의 패티 조리가 가능하다. 온도 변화까지 정밀하게 제어하고 초 단위로 조리하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동일한 맛의 패티를 구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알파 그릴은 직사각형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흔히 떠올릴 수 있는 로봇 팔이 없어 조리로봇이 맞는지 물음표를 떠올리게 된다. 이는 식당 주방에 설치하기 쉽게 기존 조리기구와 크기 등을 맞춘 것으로, 스테인리스 소재 등을 사용해 세척에도 용이하다. 움직임이 감지되면 작동을 멈추는 세이프티 센서까지 있어 화상 위험을 줄일 수 있는 것도 강점이다. 

알파 그릴을 상용화하기까지 1년 6개월 정도 소요됐다. 조리로봇 완성 기간을 이렇게 단축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명확했다. 전문 엔지니어의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객이 원하는 기능을 빠르게 개선 및 적용했기 때문. 이를 위해 낯설었던 외식업을 적극적으로 배우고, 실제 주방 환경을 익히면서 알파 그릴의 완성도까지 높였다. 

“초반에는 외식업에 대해 알지 못했다. 업계를 모르는 상태에서 어떤 시스템을 만드는 것과 알고 만드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판단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적용한 시스템이라 하더라도 고객을 설득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되는 법이다. 이러한 격차를 줄이기 위해 식당에서 직접 일도 배우고 외식업을 경험하는 과정을 거쳤다. 실제 외식 주방 환경에 대한 문제점을 인지하고 설계를 시작한 것이 시행착오를 줄인 비결이다.”

황 대표에 따르면 한 식당 주방에서 알파 그릴을 테스트했으나 오작동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 이유는 기존에 사용하던 튀김기로 인해 옆에 둔 알파 그릴까지 뜨겁게 달궈져 온도 감지기가 오작동한 것. 이후 고온에도 견딜 수 있도록 바꿨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는 최적화된 알파 그릴을 완성했다. 

알파 그릴을 개발하는 데 이러한 방식을 도입한 이유는 첫 번째 스타트업에서 얻은 교훈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의료 관련 솔루션을 3~4년간 연구해 최고 수준의 기술로 개발했으나 고객에게 외면 받았다. 황 대표는 “첫 번째 스타트업에서 개발한 솔루션은 만들기만 하면 엄청난 반응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 연구실에서 학문적으로만 접근했기 때문이었다”며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고객이 공감하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 사업 자체가 쉽지 않다. 그 한 끗 차이를 배운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말한 토마스 에디슨의 명언처럼 초반에 겪은 시행착오가 결국은 두 번째 스타트업인 에니아이의 성공을 빠르게 이끈 셈이다. 사소하다고 여길 법한 한 끗 차이가 성패를 갈랐다. 

왜 햄버거 패티 조리로봇이었을까. 황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확장하는 햄버거 시장과 간편한 오퍼레이션에 주목했다. 그는 “전 세계 외식업계에서 햄버거 시장이 40% 정도 차지한다. 단일 요리 메뉴 중 햄버거 시장이 가장 큰 것”이라며 “햄버거 조리법은 복잡하지 않고 정형화되어 있기 때문에 로봇을 도입하기 좋다. 특히 어디서든 동일한 맛의 패티를 굽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알파 그릴은 식당 주방에 최적화 되어 있는 만큼 유명 햄버거 프랜차이즈 브랜드에서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롯데리아, 맘스터치, 바스버거 등 10개 이상의 햄버거 브랜드에서 알파 그릴을 도입해 운영 중이다. 이외에도 알파 그릴과 관련된 외식 브랜드의 문의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에니아이는 미국에서도 그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지난해 5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최대 외식 박람회 ‘NRA(National Restaurant Association) 쇼’에서 알파 그릴로 ‘키친 이노베이션 어워즈’를 수상했다. 올해는 클라우드 기반의 AI 기술인 ‘알파 클라우드’로 동일 박람회에 한번 더 초청받는 성과를 이뤄냈다. 알파 클라우드는 비전 센서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패티 표면의 마이야르 반응을 감지하고 맛을 평가하는데, 이를 통해 프랜차이즈 본사에서는 수백 개의 점포에서 조리되는 햄버거 맛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 고객 역시 브랜드 고유의 레시피를 일관되게 경험하는 것이 가능하다. 

“지난해 NRA 쇼에서 미국 주요 외식업계 종사자들을 만나 판로를 개척했다. 현지에 법인을 설립해 직원도 채용했고, 미국 햄버거 브랜드와의 협력 역시 진행 중이다. 올해도 다양한 주요 고객들과 만나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에니아이의 로봇 기술은 외식 주방에서 발생하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주목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알파 그릴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로 외식업계의 인력난을 빼놓을 수 없다. 고된 업무를 기피하는 현상까지 두드러지면서 인력난은 외식업계가 풀어야 할 주요 과제가 됐다. 황 대표는 외식업계가 직면하고 있는 인력난과 열악한 근무환경, 그리고 낮은 이익률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엔지니어로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명감이 결국 로봇 개발로 이어졌던 것 같다”면서 “거대한 사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로봇이 유일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불과 기름을 다루는 주방은 그야말로 전쟁터와 같다. 바쁜 점심시간에만 수백 개의 햄버거를 조리해야 하는 직원들은 속도, 품질, 위생 규칙을 준수해야 할 뿐만 아니라 뜨거운 불 앞에 서서 패티를 구워야 하는 만큼 신체적 피로도 역시 높은 편”이라면서 “ 주방에서 발생하는 단순하고 힘든 일을 로봇이 대신해 직원들의 근무 환경이 개선된 점이 긍정적 지표로 평가되고 있다. 관리자 역시 운영비용 절감, 안정적인 인력 관리, 생산성 향상 등의 측면에서 만족 중”이라고 덧붙였다.  

황 대표는 알파 그릴과 알파 클라우드에 이어 맛있는 음식을 체계적으로 조리할 수 있는 방향으로 푸드테크를 발전시키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할 뜻을 드러냈다. 이를 위해 인천 부평 지역에 약 2000㎡ 규모의 생산 공장도 본격 가동 중이다.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우려가 있지만, 실제로 외식업 종사자들에게 로봇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근무 강도가 높은 주방 일을 더 쉽고, 빠르고, 안전하게 해줄 수 있는 수단으로써 로봇과 인공지능 기술을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외식업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촉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