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준성 기자  사진 이작가  

지난 7월 3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브로이하우스 바네하임’(이하 바네하임)에서는 창립 20주년 행사가 열렸다. 2004년부터 수제 맥주를 만들기 시작한 1세대 크래프트비어 브루어리, 이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김정하 대표는 국내 여성 1호 브루마스터이기도 하다.

20년간 그가 만들어온 것들은 국내 수제 맥주 시장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결과물이다. 2016년 국제맥주대회에서부터 아시아맥주대회, 호주국제맥주대회 등 2023년까지 전 세계적인 맥주대회에서 15개 부문 수상을 한 바 있으며 미국·영국·일본 등 각 나라의 국제맥주대회 심사위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2019년엔 《맥주 만드는 여자》라는 책을 펴내기도. 그런 그가 창립 20주년 행사를 진행하면서 가지게 되는 느낌이란 건 어떤 걸까.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서 바네하임을 시작한 이유는, 내가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이 동네에 맛있는 맥줏집, 그리고 편안하게 오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오픈 초기에 방문했던 손님이 이제는 결혼해서 유모차를 끌고 오고, 동네 꼬마가 다 큰 어른이 되어 이곳을 찾게 되면 왠지 뿌듯하다. 바네하임이 지금 이 자리에서 20년을 맞은 것은 모두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애정 덕분이다.” 

현재 바네하임은 수제 맥주전문점만 운영하고 있는 게 아니다. 2019년엔 경기도 남양주시에 400㎡ 규모의 제2양조장 설비를 갖추며 연간 300㎘의 맥주를 생산, 유명 레스토랑과 외식업체 등 전국 200여 곳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기도 하다. 외식업체나 식품기업들의 컬래버레이션 제안도 꾸준히 이어지는 중. 이처럼 바쁜 와중에도 그는 창립 20주년 행사를 기획·진행했고 방문객만 2500명가량 됐다고. 지난 20여 년의 세월 동안 바네하임이 주변에 전한 진심과 정성, 어떤 질감이었을지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게 만드는 풍경이다.

그는 20대 때 전통 조리를 전공했다. 원래 음식에 관심은 많았지만 구체적인 계획 같은 건 없었다. ‘일반 회사 다니다가 서른 넘으면 가게 하나 운영해 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아버지를 따라 양조장 시설이 있는 맥줏집을 방문하게 되고 그곳에서 맥주의 맛과 향, 매력을 느끼게 된다. 

“평소 술이나 맥주, 탄산음료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와 함께 간 그 양조장에서 맥주를 마셔보곤 생각이 달라졌다. 탄산은 느껴지지 않으면서 향도 좋고 맛있었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좋아할 정도라면 맥주 좋아하는 이들에겐 몇 배 더 매력적인 술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때부터 막연하게 ‘손님들과 소통하는 작은 맥줏집’을 운영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게 됐다.”

이후 그는 맥주 만드는 것도 배우고 유명한 맥줏집들을 모두 찾아다녔다. 그리고 2004년, 스물네 살 되던 해에 지금의 바네하임을 오픈하게 된다. 하지만 첫 창업이 어디 그리 쉬웠을까. 혼자서 시장을 보고 맥주를 만들고 매장에만 머물다 보니 불안감과 우울증도 동시에 찾아왔다. 게다가 나이 어린 사장이다 보니 뒤따를 수밖에 없는 직원들의 무시, 지역주민들의 민원 등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전쟁이었다. 그럴 때마다 ‘바네하임이 아니라면 혼자서 뭘 할 수 있는데? 때려치우는 건 언제든 할 수 있다. 그러니 조금만 더 버텨보자’라는 생각으로 매장을 이끌었다. 자꾸만 가라앉으려 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단골 거래처 만드는 데 공을 들였고, 해외에서 맥주를 공부했던 사람들과도 교류하며 새로운 맥주 공법들을 시도해 보기도 했다. 그렇게 다양한 시행착오 속에서 바네하임은 서서히 발효되고 단단해져만 갔다.

이후 2014년 매장 리뉴얼, 2017년 농촌진흥청 국가 과제 중 하나인 기능성 쌀 맥주 ‘도담도담’ 개발, 2019년엔 400㎡규모의 제2양조장 설비와 함께 단행본 《맥주 만드는 여자》 발행 등 바네하임은 바쁘게 돌아갔다. 특히 가장 바빴던 해인 2019년엔 로컬 행사 ‘노원맥주축제’를 구상·기획, 관공서에 제안하기도 했다.

“통계적으로도 보면, 서울시 노원구 지역엔 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 술 또는 먹을거리와 관련된 축제 하나쯤 있을 법도 한데 그런 게 없다는 게 참 아쉬웠다. 그래서 하나하나 기획하고 만들어 축제 제안서를 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상황을 접하면서 무기한 연기될 수밖에 없었고, 그 기간 동안 기획안을 꾸준히 업그레이드해 나가면서 2023년, 드디어 제1회 노원맥주축제를 개최하게 됐다.”

지난해 6월 진행한 이 행사의 예상 방문객 수는 하루 5000명 정도. 하지만 이틀간의 행사 동안 총 3만명이 다녀가며 높은 호응도를 기록했다. 서울시 노원구의 상인들도 함께 참여하는 브랜드 페어까지 진행해 축제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처럼 예상외의 성과에 지난 5월 개최한 제2회 노원맥주축제엔 이틀간 방문객 수 8만명. 그리고 지난해보다 3배 넓은 행사장, 2배 이상 확대한 브루어리로 축제의 규모는 점차 커져만 갔다. 궁극적으로 그는 이 축제를 통해 ‘서울시 노원구’라는 로컬 문화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이러한 활동들이 결국 지역 상권을 활성화시키고, 더 나아가 다른 지역의 콘텐츠 개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로컬 문화를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니다. 단지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그 애정의 발현으로 뭔가를 만들고 시도했던 것이고, 나중엔 그것이 로컬 문화로 불리게 된 게 아닐까. 지역의 상권과 문화가 활성화되면 지역 내에서의 채용과 고용이 원활히 이뤄지고 각 매장에도 탄탄한 팬층이 생기게 된다. 이 과정은 타 지역의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그 지역 사람이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같은 공간에 머물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정서와 스토리텔링, 그것이 핵심이라 생각한다. 바네하임의 지난 20년 또한 마찬가지고.”

바네하임의 2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 그곳에 서서 그는 시간의 흐름이 굉장히 빠르다는 걸 다시금 느낀다. 바네하임 오픈 후 첫 10년은 모든 걸 그만두고 싶었고, 이후의 10년은 ‘뭔가를 하나하나 만들어 꽉 채워보자’라는 생각으로 가득한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버텨온 것을 성공한 걸로 봐주시는 분들이 많다. 지역주민이나 고객들로부터 ‘늘 그 자리에 있어서 좋다’라는 말을 들으면 ‘운영을 더 잘 해야겠구나’라는 사명감도 더 강해지고 만다. 아직 하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많다. 바네하임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서울 노원구의 김정하로, 차곡차곡 하나씩 만들어 나가고 싶다.”

20년 전 바네하임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그 당시의 맥주는 진하고 강한 맛과 향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고객들의 호불호가 강할 것 같아 그 도수와 향을 매년 조금씩 부드럽게 풀어 선보여왔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년 후 행사에서 바네하임의 팬들은 20년 전의 진한 맛과 향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했다. 그래서 다시 한정 수량으로 만든 게 ‘바네하임 오리지널’이다.

이처럼 시간은 조용히 흐르며 모든 걸 능숙하면서도 흐릿하게 만든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바네하임은 다시 날 것의 진지하고 강렬한 향으로 새로운 20년을 향하고 있다. 무엇에든, 그 어디에든 취할 준비를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