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조수연 기자  사진 이경섭 실장

K-문화의 열풍으로 한식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한식을 새롭게 해석해 시도하는 업소가 주목받고 있다. 퓨전 한식을 표방하는 이들 업소는 양식, 일식, 중식 등의 다양한 재료와 조리법을 더해 무궁무진한 방법으로 고객에게 이색적인 미식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치즈를 넣은 감자전, 매생이를 활용한 파스타, 크림소스로 만드는 수제비 등의 퓨전 한식 메뉴들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 고객에게 한식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음식의 카테고리 넓히는 역할을 한다. 

퓨전 한식은 국내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제철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재료 수급이 비교적 원활해 신선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좋은 재료는 맛있는 음식의 기초다. 하지만 때론 퓨전요리의 특성상 여러 재료를 조합하는 가운데 사용하는 재료가 많아지고 조리 난이도가 높아지는 경우도 있다.

퓨전 한식 메뉴는 대중적인 한식으로 고객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만큼 그 친숙함 때문에 오히려 메뉴 개발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누구나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한식이기에 메뉴 개발자는 현실적인 눈높이에서 음식의 양, 단가를 고려해 고객의 기대보다 퀄리티 높은 맛을 구현해야만 고객 만족을 이끌 수 있다. 따라서 퓨전 한식은 어떤 메뉴가 고객에게 인상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며 메뉴를 개발하고 선정하는 과정이 중요한 영역이다. 고객이 생각하는 한식의 틀이 있기에 지나치게 한식에서 벗어난 메뉴도 고객 호응을 얻기 어려울 수 있다. 

현재 퓨전 한식을 판매하는 업소는 저마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담긴 메뉴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각 업소의 시그니처 메뉴 비주얼은 고객의 SNS 업로드를 유도하고, 고객이 업로드 한 사진은 다른 고객의 방문을 이끄는 홍보 효과를 내고 있다. 브랜드의 개성을 담은 특별한 메뉴로 더욱 다양해질 퓨전 한식의 확장이 기대된다. 

지난 1월 리뉴얼을 하면서 더욱 한식적인 요소를 가미한 데이릿은 퓨전 한식으로 고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오픈 초기부터 꾸준히 인기를 얻는 ‘묵은지 육회마키’는 일식의 후토마키에서 영감을 받았다. 김 대신 묵은지를 활용해 재료의 겉을 싼다. 묵은지 안에는 일본식으로 찐 달걀, 양념을 한 육회, 깻잎이 듬뿍 들어간다. 들깨와 흑임자를 넣은 소스에 찍어 먹는 이 메뉴는 타원형 접시에 일렬로 여섯 피스를 담았으며 육회의 빨간색, 달걀의 노란색, 깻잎의 초록색이 돋보이는 비주얼을 구현했다.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인 ‘직화 족발 누들’은 중식의 도삭면을 파스타 느낌으로 구현하고, 채소와 족발을 볶아 ‘맛있는 것에 맛있는 것’을 더했다. 족발과 면을 함께 먹는 것이 익숙하지 않기에 메뉴 개발 당시 고민을 했으나 출시 후 고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원형 접시에 도삭면과 족발을 반반씩 담고 가운데에는 고수를 올렸다. 고객의 선호에 따라 고수 대신 쪽파를 토핑할 수도 있다. 파스타처럼 롤링해 담아낸 도삭면과 고수의 초록 색감이 ‘직화 족발 누들’의 매력이다. 

MZ 세대 입맛을 겨냥한 ‘마라 볶음 떡찜’은 마라 베이스의 찜 요리로 고기, 해산물, 채소 등을 볶아 아래에 깔고 위에는 튀긴 떡과 중국 당면 등을 올린 메뉴다. 마라 소스에 떡 튀김을 찍어 먹는 것이 별미다. 사이드 메뉴인 ‘모짜렐라 김춘권’은 춘권피에 고기 대신 치즈와 김을 넣고 튀겨 내 한입 베어 물면 치즈가 쭉 늘어나 맛과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매콤한 치폴레 마요 소스를 더하면 안주로도 손색없다. 

어슬청담의 시그니처인 ‘명태회 들기름 파스타’는 이영원 셰프가 속초에서 먹었던 명태회 막국수와 들기름 막국수를 오마주한 냉파스타다. 베이스는 마늘콩 소스로 만들고 면은 파스타 면을 사용했다. 파스타 위에는 명태회와 달걀을 올리고 쪽파와 김으로 토핑했다. 여기에 방앗간에서 짜온 들기름을 부어 먹는 메뉴다. ‘명태회 들기름 파스타’는 풍미를 즐길 수 있는 메뉴로 레몬 향이 나는 막걸리 ‘온지문’과 함께 먹기 좋다.

이영원 셰프가 고민해서 만든 ‘감자전’은 처음엔 숟가락으로 떠먹는 모양으로 개발했다가 고객들의 니즈에 따라 일반적인 전의 모양으로 바꿨다. 먼저 통감자를 삶아서 감자의 질감과 형태가 살아 있게 큼직하게 으깨고 바삭하게 구운 후 유자 드레싱 샐러드를 올려 양식적인 퍼포먼스를 살렸다. 여기에 버섯 콩피, 초리조 콩피, 수란을 올리고 스모크 파프리카로 향을 더했다. 함께 즐길 전통주로는 은은한 쑥 맛이 나는 막걸리 ‘쑥쿠레’를 추천한다. 

‘오리다리 콩피’는 오리능이백숙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능이버섯을 우린 물로 찹쌀 리조또를 만들고, 그 위에 콩피 조리법으로 낮은 온도의 기름에 장시간 끓인 부드러운 오리다리를 올렸다.   

된장찌개를 모티브로 한 ‘우렁된장 크림리조또’는 직접 만든 메주와 된장으로 베이스를 했다. 보리와 쌀로 만든 리조또에 막걸리와 된장 소스로 졸인 우렁이를 곁들이는 메뉴다. 재료를 재해석해서 새로운 조리법으로 만드는 것이 이 셰프가 메뉴를 개발하는 전략이다.  

​마장동에서 직접 고기를 받아와 만드는 ‘육회’는 우리나라의 육회에 이탈리아의 타르타르 소스를 곁들인 이색적인 메뉴다. 크리미한 맛의 타르타르 소스는 배를 넣어 상큼함을 추가했다. 

윤공의 인기 메뉴인 ‘육회 파스타’는 막국수를 모티브로 한다. 깻잎으로 만든 페스토에 들기름을 섞어 파스타를 만들고, 소스에 버무린 육회를 곁들여 낸다. 파스타 위에 김과 영양부추를 올리고, 육회에는 무말랭이를 얹어 식감을 더했다. 

‘크림수제비’는 춘천에 위치한 들깨수제비 가게에서 쫀득한 생수제비를 납품받아 만드는 메뉴다. 쫀득한 생수제비와 네 가지 치즈를 넣은 생크림만 사용해 끓인 뒤, 접시에 담아 매운 고춧가루로 느끼한 맛을 잡고 영양부추, 달걀노른자를 올려 색감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소주와 페어링이 좋다. 

이 외에 직접 만든 라구소스와 된장의 배합을 맞춰 짭조름한 맛을 내는 ‘된장 라구파스타’, 동치미를 직접 담고 쪽파와 홍고추로 색감을 더한 ‘동치미 소면’도 있다. 

윤 대표는 “플레이팅 담당 직원이 따로 있을 정도로 비주얼에 신경을 많이 쓴다. 음식에 최소 3~4가지 색감을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고객 방문을 이끄는 윤공의 비법이다. 비주얼이 좋은 음식을 고객들이 선호하는 것 같다”고 한다. 또 “윤공은 치즈와 면 외에는 모두 국산 재료를 사용하면서 소스와 페스토는 모두 직접 만든다. 음식은 술과 함께 먹어도 괜찮을 수 있도록 간을 맞췄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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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권반상 매출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메뉴는 ‘중국인 친구가 가르쳐 준 볶음밥+제육볶음’이다. 권기은 대표가 부모님 가게에서 일할 때 스태프로 있던 중국인 친구에게서 레시피와 노하우를 배워 응용한 메뉴다. 달걀, 대파, 당근이라는 단순한 재료를 사용하고 불맛을 입힌 중국식 볶음밥에 한식의 제육볶음을 추가했다. 

권 대표가 추천하는 ‘마제소바가 되고 싶은 차돌숙주 볶음면’은 한식 재료를 사용하고 일식의 비주얼을 낸 메뉴다. 달걀을 먼저 터뜨리고 다른 재료들과 섞어서 먹는 메뉴로 남은 양념에는 밥을 비벼 먹는 것도 메뉴를 즐기는 방법이다. 

로제와 제육을 더했다는 뜻의 ‘로제육(면)’은 한식과 양식을 조합한 메뉴다. 토마토 베이스에 생크림, 어머니의 비법이 담긴 제육 소스가 들어간다. 

이양권반상 직원들의 식사로 개발했다가 반응이 좋아 매장에서 판매하게 된 ‘파스타면 없는 샐러드 파스타’는 더운 날씨에 시원하게 먹을 수 있도록 만든 메뉴다. 파스타면 대신 중식 면을 사용해 쫄깃한 맛을 내고 샐러드에는 새우, 양상추, 치커리, 토마토, 양파 절임, 치즈 등을 사용했다. 직원들에게도 가장 사랑받는 메뉴로 자신 있게 고객에게 판매하고 있다. 

사이드 메뉴로 인기 있는 ‘오레오 튀김’은 오레오 튀김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얹고 스프링클을 뿌렸다. 권 대표는 로제, 마제 소바 등 트렌디한 메뉴에서 영감을 얻어 이양권반상의 스타일로 연구해 보다 새로운 메뉴를 개발한다. 

 *더 많은 정보는 <월간식당> 2024년 9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