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육주희 기자  사진 이경섭 실장·업체 제공

한여름 뙤약볕이 가득한 드넓은 소금밭에 핀 하얀 소금을 대파(염전에서 쓰는 밀대)로 써래질해 한 곳에 쌓으니 찰랑이는 수면 위로 하늘의 구름이 내려 앉았다. 염전에 물 대는 물레방아를 힘껏 밟아대는 소금장인의 얼굴에 땀방울이 뚝뚝 번질 즈음, 고된 소금밭 일을 날려버리려는 듯 노동요를 대신한 ‘진도아리랑’이 울려 퍼지자 일행들의 흥도 폭발했다. 지난 7월 말 이하연 김치명인과 함께 김치의 주재료 가운데 하나인 소금 산지 태평염전을 찾았다. 

우리나라 최대의 소금 생산지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에 위치한 태평염전은 전국 단일 염전으로는 최대 규모(462만㎡)를 자랑한다. 청정 무공해 지역에서 청정해수로 깨끗하고 건강한, 미네랄이 풍부한 천일염을 생산하고 있다. 태평염전은 2007년에 대한민국 국가등록문화재 제360호로 지정됐다.

세계 3대 갯벌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일조량이 많은 곳에 위치한 태평염전은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 구제와 국내 소금 생산 증대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염전에는 1940년대부터 소금창고로 짓기 시작해 1953년에 완성된 석조건물이 있다. 등록문화재 제361호로 근대문화유산이 된 이 소금창고는 우리나라 염전 역사의 귀중한 자산이자 근대 건축물로서 역사적 의미도 지니고 있다. 소금창고는 2007년 이후 소금박물관으로 활용돼 현대 예술과 자연의 조화로운 만남의 장이 되고 있다.

천일염은 ‘자연이 인간에게 준 보물’이라고 한다. 특히 한국 음식에 천일염을 빼놓고는 설명이 되질 않는다. 전국의 수많은 음식점 사장들의 한결같은 코멘트 중 하나가 ‘3년 이상 간수 뺀 천일염으로 간을 한다’는 말이다. 

태평염전은 우리나라에서 천일염을 상징하는 염전이자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다. 태평염전이 위치한 증도는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이며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과 갯벌의 생태를 보전하는 람사르 습지 등 국제 인증을 받은 천혜의 생태 청정지역이다. 

증도의 천일염은 성분면에서 외국산과 비교해 미네랄 성분이 풍부하며 프랑스 게랑드산 천일염과 비교해도 마그네슘 함량이 탁월하다. 특히 태평염전은 맑고 깨끗한 청정 다도해의 바닷물과 생태계의 환경을 그대로 간직한 갯벌에서 소금장인의 땀방울을 더해 자연의 순리에 따라 미네랄이 풍부하며 깨끗하고 건강한 소금의 결정체를 수확하고 있다. 

똑같은 환경과 똑같은 염전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은 신기하게도 누가 생산을 하느냐에 따라 품질과 생산량에 차이가 생긴다. 소금장인의 정성과 노력에 따라 소금의 맛과 결정의 크기, 생산량 등이 결정되는 것이다. 태평염전의 소금장인들은 60년 전통의 천일염 생산기술과 세계 0.1%에 해당하는 천일염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태평염전의 소금 브랜드 섬들채는 이름 그대로 ‘섬과 갯벌을 가득 채운’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섬들채는 건강한 먹거리를 위해 전남 신안군 증도와 천일염 생명과학연구소가 협력해 만든 미네랄 함유가 높은 소금이다.  

태평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에 특히 미네랄이 풍부한 또다른 이유는 염전에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자연 함초 군락지가 있기 때문이다. 일부 염전에서는 함초가 염분을 빨아들이고 수분 증발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제초제를 뿌려 함초를 말려 죽이곤 한다. 함초와 같은 염생식물들이 염전에서 자라게 되면 생산량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태평염전의 함초는 유기농산물로 인증(인증번호 제16-1-32호)을 받은 친환경 식품이다. 덕분에 천일염의 생산량은 줄었지만 염도는 낮고 함초와 갯벌이 주는 미네랄을 간직한 천일염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태평염전에서는 토판염도 생산하고 있다. 토판염은 갯벌 흙을 여러 차례 찰기 있게 다진 염전에서 생산하는 소금이다. 일반적인 천일염에 비해 나트륨 함량이 적어 쓴맛이 덜하고 풍미가 뛰어나다. 또한 갯벌 속의 미네랄이 많고 마그네슘과 칼륨 함량이 높다. 일반적인 장판염에서 생산하는 천일염에 비해 시간과 노력을 훨씬 많이 들여야 좋은 소금을 얻을 수 있다. 토판염을 생산하는 염전은 우리나라 전체 염전의 1%에 불과하다.

이번 소금 탐방에 동행한 식품명인 제58호 이하연 김치명인은 김치를 담글 때 김치의 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식재료 가운데 하나가 바로 소금이라고 강조한다. 이 명인은 “저는 김치를 절일 때나 김치를 담글 때 무조건 태평염전에서 나오는 천일염으로 김치를 담근다. 좋은 소금으로 배추를 절이면 배추가 아삭하고 단맛이 올라오는데, 그렇지 않은 소금으로 간을 하면 쓴맛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김치소를 만들 때는 반드시 간수를 빼 달큰한 맛이 나는 천일염으로 밑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염전은 크게 저수지, 증발지, 결정지로 구성돼 있다. 먼저 바닷물(염도 1~2도)을 저수지로 유입시킨다. 저수지는 해수를 저장하는 공간이며, 태평염전에는 3곳의 저수지가 있다. 소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저수지에 보관 중인 바닷물을 수로를 통해 염전 제1증발지(난치)로 보내 통상 1주일 정도 증발시켜 약 6~8 염도의 소금물(간수물)을 만들어 제2증발지(누테)로 옮긴다. 이후 함수창고에 소금물을 보관(4곳으로 분리)해 소금물의 농도가 23~25도가 되면 결정지에 보낸다. 

결정지는 농축된 포화함수를 더욱 농축시켜 소금을 분리해 내는 곳이다. 오전 6시경 결정지에 보급된 소금물은 오후 4~6시 정도에 소금으로 채취할 수 있다. 소금을 채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4일 정도 소요된다. 결정지에서 채취한 소금은 대파로 한곳에 모은다. 채염된 소금은 수분을 어느 정도 뺀 다음 수레를 이용해 소금창고로 이동시킨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소금을 생산하기까지는 약 20~25일 정도 소요된다. 소금창고로 옮겨 일정기간 동안 간수를 뺀 천일염은 제품 단위별로 포장해 유통된다.

태평염전은 소금밭만 있는 것이 아니다. 태평염전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소금박물관부터 태평염생식물원, 염전체험, 천일염 힐링캠프, 소금바람길, 낙조전망대, 천일염을 활용한 제품을 판매하는 숍, 카페&레스토랑 등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가 가득하다.  

낙조전망대는 태평염전과 섬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로 이곳에서 내려다 보는 광활한 염전과 염전 물에 비친 붉게 물든 낙조가 일품이다. 또 소금바람길은 슬로시티답게 3Km에 달하는 염전의 옛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태평염생식물원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의 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우리나라 유일의 염생식물원이다.  

특히 소금은 예로부터 질병 예방과 건강 증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소금동굴 힐링센타는 태평염전에서 생산된 최고의 천일염만으로 만든 인공소금동굴이다. 내부는 항상 20~23°C의 상온으로 유지되며, 몸에 이로운 88가지 미네랄과 요오드가 흡수돼 혈관을 확장시켜 혈류를 개선하고 노폐물을 제거해 피부미용과 피로 해독에 도움을 준다. 

해양힐링스파는 일명 ‘사해 체험’으로 알려진 미네랄 부양욕 테라피로 모래찜질하듯이 소금을 몸 전체에 덮어도 좋고, 그냥 누워만 있어도 완벽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이외에 인체가 독소를 배출하는 최적의 온도인 40~50℃로 뜨겁게 달군 천일염으로 찜을 해 피로를 풀어주는 소금 족욕기와 소금 좌욕기로 몸의 피로를 풀 수 있다. 

이곳 김상일 대표는 “태평염전은 빠르게 변해가는 현대사회 속에서 천일염을 통해 느림과 치유, 자연과의 교감을 바탕으로 생태와 문화라는 새로운 생태환경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희귀한 자원인 갯벌염전을 기반으로 1차 산업에서 3차 산업에 이르기까지 소금과 관련된 분야에서 세계 일류의 명품 천일염 생산을 넘어 세계 일류 브랜드로 도약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태평염전은 국내외 작가들과 ‘소금 같은, 예술’을 통해 다양한 아트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과거 염전 노동자들 가족이 살았던 연립식 주택을 개조해 작업 공간을 마련, 작가들에게 제공하고, 작품들은 소금박물관에 전시를 해왔다. 김 대표는 향후 기존 작업동 외에 아직 옛 모습 그대로 방치돼 있는 연립주택 동을 활용해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할 계획도 있다고 말했다. 

 *더 많은 정보는 <월간식당> 2024년 9월호를 참고하세요.